T ime / 시간
A ssociation / 관계
B ackground / 배경
U nderstand / 이해
L ook again / 다시 보기
A ssessment / 판단
오늘날 우리는 모더니즘을 이어받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취 속에서 살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종의 비-운동으로서, 이전 시대가 표방했던 뚜렷한 양식 구분을 거부하고, 그것을 점차적으로 해체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8
현대미술은 공격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미술작품에 아주 단순한 태도로 대응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 책은 근래에 제작된 각양각색의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 공식'을 소개한다. 이 공식을 활용하면, 소외감과 복잡한 심정을 일으키는 작품에 간단하고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미술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하게 된 것은, 1972년에 출간된 'Ways of seeing 다른 방식으로 보기'의 저자 존 버거 덕분이다. 버거는 작품을 감상하려면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거장의 명작을 대상으로 미술의 탈신비화 작업을 시도하고, 작품을 미술사적 의의로부터 분리하고자 했다. 작품에 부여된 가치를 넘어 단순한 바라보기 행위로만 이루어지는 감상법을 제시한 것이다. 8~9
현대미술을 경험할 때는 고정된 견해가 없는 백지상태, 즉 Tabula Rasa타뷸라 라사(빈 서판)접근법이 필요하다. 9
A는 관계를 의미한다. "도대체 이 작품이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 어쨌든 작품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피상적이나마 그 작품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작가의 숨은 의도보다는 그런 관계 맺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일단 흥미를 갖고 작품과 관계를 맺어야만 비로소 우리는 작품의 의미와 배경을 탐구할 수 있다. 15
현대미술의 가치를 전혀 믿지 않고 오직 적개심만 갖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도발적이거나 낯선 작품을 접하면 아무런 고민도 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태만과 고집만으로 버틸 뿐이다.
현대미술이 지적 우월함을 내세우는 복잡한 문화 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게으른 선입견이다. 또한 현대미술이 특정한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멤버십 클럽이라는 고정관념 역시 꼭 바로잡고 싶다. 21
오늘날 미술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본능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그런 미술의 오브제는 대체로 불확실하고 일시적이다. 결국 남는 것은 미술에 대한 기억, 미술의 잔재, 혹은 사진과 비디오뿐인지도 모른다. 74
현대미술은 점차 하이브리드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감상자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바라봐야 한다. 갤러리에서든 극장에서든, 혹은 길거리에서든 간에, 미술이 전달해 주는 의미와 그 매체를 접할 때는 선입견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미술은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84-85
우리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미술작품을 힐끗 보기만 한다. 관심이 있는 척만 할 뿐, 제대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과 미술의 대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88
기억할 만하고 의미 있는 미술작품은 하나의 고정된 메시지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답을 제시해 준다. 94
현대미술은 대체로 모호해서 감상자를 당혹케 한다. 작가는 마음대로 애매한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감상자는 그것을 두고 판사, 배심원, 집행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모호한 작품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태도를 통해 우리는 작품의 요점과 주제, 그리고 철학을 보다 미묘한 차원까지 이해하게 된다. 97
우리가 블록버스터 작품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거기서 미학적 끌림뿐 아니라 물리적 끌림을 느끼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것은 시각적이라기보다는 본능적인 현상이다. 4장 사건과 현대미술과 달리, 스펙터클한 작품에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퍼포먼스 요소도 없다. 대신에 우리는 보다 압도적인 오브제들과의 육체적 상호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미술작품은 이미지나 개념이 아니라 경험으로서 기억에 남는다. 자세히 바라볼 사이도 없이, 그저 놀랄 뿐이다. 127
리처드 세라는 지난 반세기를 대표하는 기념비 조각가이지만, 단순히 '클수록 좋다'는 강령만으로는 그의 작가적 명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 뜻밖에도 그는 기념비성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세라는 선, 형태, 공백을 비롯해, 구조물 제작의 다양한 기술적 측면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부실 공사로 인해 바닥과 돔이 고르지 못한 어느 로마 교회에 들어가 보고서는 그 흥미로운 불균형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세라는 자신의 작품들이 "공간을 통과하는 육체의 지속적 움직임,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런던에서 전시된 그의 구조물은 10-20미터 길이의 강철로 제작되어 거대하고 무겁지만,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마치 흐르는 물 사이를 지나다니는 느낌이 든다. 가공된 벽 표면은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안으로 굽어 들거나 밖으로 휘기도 하며, 마치 절벽처럼 가파르게 솟아오르기도 한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폐소 공포증이 엄습해 올 것 같지만, 그래도 계속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