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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전
쓰카 고헤이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치열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보냈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매운 최루탄 연기속에 서본적도 없다. 나는 나름 평안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학생운동이니 뭐니 그런거에는 눈한번 두지 않기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며칠뒤 한강에 시체로 떠오르던, 그런시절을 겪은 엄마에게 대학에 가는 철없는 막내딸은 걱정의 대상이었다.
사실 대학운동이니, 최루탄이니 하는 것도 이젠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투쟁'이니 하는 것보다는 토익시험과 취업준비에 목을 맨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재미없고 뻔한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있어 "비룡전"의 참 의미를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항쟁마저도 먼 옛날 이야기로 들리는 내가, 한국도 아닌 일본의 70년대 전투공을 배경으로한, 그 것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있는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선천적인 맹인에게 코끼리를 묘사해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혼돈...
"비룡전"은 앞서 말했듯이 70년대 일본학생운동을 다루고 있다.
지방 유지가 밖에서 낳아온,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 의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긴바야시. 그녀는 그저 전투공이고 뭐고 상관치 말고 처음 그 마음대로 의학공부에만 매진하면 되었다. 기한이 정해진 아버지의 매정한 후원과 원인모를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 두가지면 긴바야시가 공부에만 매진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긴바야시는 전투공을 선두에서 이끄는 가쓰라기에게 마음을 줘버렸고, 혼란하기 그지없는 70년대의 그 상황에 휘말려버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학생운동을 이끄는 선두자가 되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투공을 저지하는 최일선의 기동대의 대장 야마자키와 위장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야마자키를 사랑하게된다.
70년대 일본의 그 상황처럼, "비룡전"의 인물들과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데 거리낌 없다. 거기에 재일한국인인 오니시마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이야기에 좀처럼 숨을 쉴만한 틈이없다. 그냥 혼란한 그 시대를 느끼고 지켜보라는 작가의 의도일까?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살해당하지만, 그 남편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살해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자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람은 다시 자식에게 살해당하는 그런 운명이 행복하다고? 운명처럼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아들인 긴바야시는 그런 운명을 살아간다.
자신이 목숨처럼 지켜야할 대의와 야마자키를 사랑하는 여자로서의 감정 앞에서 긴바야시는 무력하다. 어느 한쪽을 강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양쪽다 유지하려고 하는듯 하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운명에 쫓긴다.
그까짓게 뭐라고 목숨까지 거는거지?
70년대 일본의 수많은 청춘들을 고통스럽게, 혹은 열정 그 이상으로 미치게 만든 그 전투공의 목적인 무엇인지 나는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쓰카고헤이...
재일한국인, 한국계인 그가 70년대 그 치열한 시기를 경계자로 살아오면서 이 글을 남긴건 그 치열했던 젊음들을 추모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경계자이건 아니건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일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나는 치열하지 않은 대학시절을 보냈다.
민주주의를 외치며 매운 최루탄 연기속에 서본적도 없다. 나는 나름 평안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한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학생운동이니 뭐니 그런거에는 눈한번 두지 않기로...
민주화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며칠뒤 한강에 시체로 떠오르던, 그런시절을 겪은 엄마에게 대학에 가는 철없는 막내딸은 걱정의 대상이었다.
사실 대학운동이니, 최루탄이니 하는 것도 이젠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투쟁'이니 하는 것보다는 토익시험과 취업준비에 목을 맨다.
학교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재미없고 뻔한 대학생활을 한 나에게 있어 "비룡전"의 참 의미를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민주화항쟁마저도 먼 옛날 이야기로 들리는 내가, 한국도 아닌 일본의 70년대 전투공을 배경으로한, 그 것을 주요한 소재로 삼고있는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선천적인 맹인에게 코끼리를 묘사해주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혼돈...
"비룡전"은 앞서 말했듯이 70년대 일본학생운동을 다루고 있다.
지방 유지가 밖에서 낳아온, 하지만 공부는 잘해서 의학부에 수석으로 입학한 긴바야시. 그녀는 그저 전투공이고 뭐고 상관치 말고 처음 그 마음대로 의학공부에만 매진하면 되었다. 기한이 정해진 아버지의 매정한 후원과 원인모를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이 두가지면 긴바야시가 공부에만 매진해야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긴바야시는 전투공을 선두에서 이끄는 가쓰라기에게 마음을 줘버렸고, 혼란하기 그지없는 70년대의 그 상황에 휘말려버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학생운동을 이끄는 선두자가 되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투공을 저지하는 최일선의 기동대의 대장 야마자키와 위장으로 결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야마자키를 사랑하게된다.
70년대 일본의 그 상황처럼, "비룡전"의 인물들과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데 거리낌 없다. 거기에 재일한국인인 오니시마와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까지, 이야기에 좀처럼 숨을 쉴만한 틈이없다. 그냥 혼란한 그 시대를 느끼고 지켜보라는 작가의 의도일까?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살해당하지만, 그 남편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살해당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자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사람은 다시 자식에게 살해당하는 그런 운명이 행복하다고? 운명처럼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받아들인 긴바야시는 그런 운명을 살아간다.
자신이 목숨처럼 지켜야할 대의와 야마자키를 사랑하는 여자로서의 감정 앞에서 긴바야시는 무력하다. 어느 한쪽을 강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양쪽다 유지하려고 하는듯 하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운명에 쫓긴다.
그까짓게 뭐라고 목숨까지 거는거지?
70년대 일본의 수많은 청춘들을 고통스럽게, 혹은 열정 그 이상으로 미치게 만든 그 전투공의 목적인 무엇인지 나는 잘 감이 잡히지 않는다.
쓰카고헤이...
재일한국인, 한국계인 그가 70년대 그 치열한 시기를 경계자로 살아오면서 이 글을 남긴건 그 치열했던 젊음들을 추모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경계자이건 아니건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일까?
나는 아직도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