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뇌를 써라 - 뇌의 부정성조차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뜻밖의 지혜
강동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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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적이고, 그래서 추천하고픈 책이다. 저자는 뇌신경의학자로 수많은 뇌졸중 환자를 만나면서 심각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앓기는커녕 오히려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행복한 뇌졸중환자들을 통해 얼핏 실수하고 합리화하고 왜곡하고 망각하고 비합리적이고 냉정하고 중독되고 병든 뇌가 사실은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좌우뇌가 만들어가는 그 균형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뇌의 기능으로 창조적 행위를 계획-감독-실행하는 전두엽, 외부자극을 받아들이는 촉두엽, 두정엽, 후두엽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목표지향적이며 창의적인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변연계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1장 실수하는 뇌에서는 두뇌가 집중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실수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임을 설명한다. 우리는 실수 그 자체를 탓하기보다, 실수가 큰 사고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두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주의력 산만과 집중이 사실은 이성과 감성 사이의 좌우뇌의 기능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음은 장기적이고 자신을 돌아보는 뇌가 더 활성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2장, 합리화하는 뇌에서는 좌우뇌의 성격 차이를 알 수 있다. 좌뇌는 타고난 해석가로 상황에 따른 부조화를 견디지 못하고 그에 따른 해석을 한다. 우뇌는 또한 좌뇌가 엉뚱한 해석을 가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한다. 때때로 이 둘의 불일치가 합리화 또는 의심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충고한다.

 

3장 왜곡하는 뇌에서는 기억이 진짜 진실인가하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 일을 영속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기고 반면 내가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그 사건을 일시적이고 특수한 것으로 여긴다. 또한 이렇게 과거를 왜곡하여 해석하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나쁜 일일 수 있지만 감성적으로는 오히려 삶을 긍정하여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고 한다.

 

4장 망각하는 뇌, 5장 결정하는 뇌, 6장 공감하는 뇌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감성과 이성의 우뇌와 좌뇌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하며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좋은 쪽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우리의 지혜다.

 

7장 몰입하는 뇌, 8장 창조하는 뇌에서는 창조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몰입과 중독이 사실은 무척이나 닮았다는 사실. 그리고 뇌질환자의 경우 뇌의 특정 일부분이 손상 또는 마비되었을 때 나타나는 창조성을 통해 뇌의 기능을 좀 더 세심하게 풀어본다.

 

영화 [머큐리]에서는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폐아가 나타난다. 사이몬이라고 하는 이 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직설적이지만, 반면 미국 CIA의 국가암호를 눈으로 풀어낼 정도의 뛰어난 암호해석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자폐아들 중에는 계산력이나 기억력, 혹은 시각화 능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서벤트증후군이라고 한다. 이들은 보통 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사전을 통째로 다 외운다든지 1590년 4월 24일은 무슨 요일 하는 식으로 전부 다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음악에 굉장히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든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역설적으로 삶에 곤경을 겪고 있으며 오히려 양쪽 뇌의 건강한 균형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더 행복함을 알 수있다. 또한 무한한 우리 뇌의 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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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맨 Idea man - 빌 게이츠의 경영보다 폴 앨런의 발상을 배워라 자음과모음 인문경영 총서 1
폴 앨런 지음, 안진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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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프로그램 언어를 배웠다. BASIC, 코볼, 포트란, C언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1.5세대 정도 되는 것 같다. BASIC은 프로그램 초보자에게 안성맞춤으로 기계어인 어셈블리에 비해 편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논리적인 사고를 배우기에도 아주 좋다. 프로그램을 배울 그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포트의 빌게이츠가 만든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이디어맨]을 읽고 나서 BASIC을 폴 앨런이 주역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폴 앨런의 자서전이다. 폴 앨런의 일생을 통해 열정과 도전을 배울 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스토니악처럼 폴 앨런은 마이크로소포트의 주역 프로그래머다. 이에 비해 스티브잡스나 빌 게이츠는 오히려 계산적인 사업가에 가깝다. 그동안 빌게이츠는 우리에게 기부를 잘하는 대부호 정도의 이미지였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그의 다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그 시각 차이는 아마 사업가와 기술자의 차이일 것이다.

 

1974년 12월 겨울, 앨런은 파플러 일렉트로닉스 신년호를 구입한 그는 하버드 학부생이자 중학교, 고등학교 단짝 친구였던 빌 게이츠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잡지는 최초의 진정한 PC인 알테어 8800에 관한 커버스토리였다. 앨런은 게이츠와 자신이 알테어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로 했다. 폴 앨런은 게이츠에게 알테어에 돌릴 BASIC의 개발을 위해 협력하자는 제안에 동의하였고, 그럼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협력관계가 출범한 것이다.

 

결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젊었고 도전에 겁이 없었으며 과제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나이가 더 많았거나 뭘 좀 더 알았더라면 빌과 나는 우리 앞에 놓인 과업의 막대함에 질려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젊었고, 어떻게든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 풋내기였다.‘

 

그가 이룬 성과들은 모두 끊임없는 준비와 고된 노력의 선물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행운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시기에 맞춰 프로그램 언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고, 그의 비전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들을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년기 이후로 그는 항상 미래 시제로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업계의 리더는 절대로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빌과 내가 처음부터 추구했던 슬로건인 ‘우리가 표준을 세운다’를 고수했다.‘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에 걸려 마이크로소프트를 일찍 떠났지만, 그 이후의 인생에서는 고향인 시애틀과 가까운 미국 북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의료와 인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기부를 하였다. 또 지역주민들의 열망을 반영하기도 하였다. ‘20대 말년에 심각한 병에 걸리자 나는 내 인생이 너무 편협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후회가 일었다. 하지만 병에서 회복한 후 세상을 여행하자 나는 다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이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열정과 도전, 그리고 아이디어로 무척이나 유명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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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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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밭을 팔아가며 암으로 고통 받는 아내를 병간호했던 복천 영감은 끝내 아내를 잃고 말았다. 심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더 이상 시골에 살 마음이 없었던 복천 영감은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다. 그가 올라온 서울은 시골의 넉넉한 인심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사람들의 푸근한 인정을 기대할 수 없는, 오로지 하루하루를 위한 팍팍한 생존경쟁과 돈에 대한 무한한 숭배뿐이다.

 

평소 복천 영감은 소심한 성격에, 그렇다고 세상물정에 밝은 주변머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자리며 잠 잘 곳이며 앞으로의 앞날에 대해서 막막하다. 그가 겪은 서울은 눈 뜨면 코 베어간다는 풍문 그대로다. 다행히도 서울역에서 우두커니 아이들을 데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복천 영감을 보고, 같은 고향사람이던 시장에서 떡집을 하던 아주머니가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다.

 

복천 영감은 떡집 내외의 도움으로 살 곳을 마련하고, 바로 지게꾼 노릇을 해보려 한다. 마침 지게꾼을 부르는 소리에 복천 영감은 빨리 달려가지만 그만 넘어지고 만다. 바로 다른 지게꾼이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유유히 짐을 싣는다. 마저 복천 영감을 골목으로 불러내 이곳에서 일을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구타를 한다. 지게꾼을 포기하고 땅콩장사를 시작한다. 모든 돈을 털어서 땅콩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마저도 리어카째 통으로 도둑맞는다. 며칠 새 끔찍하도록 심한 몸살을 앓게 된 복천 영감은 그 후 스멀스멀 올라오는 역한 냄새를 맡는다. 바로 서울냄새다.

 

서울냄새. 이 대목에 무릎을 쳤다. 시골에 살다 대학 입학으로 서울에 올라온 지 며칠 되지 않아 나 역시 무언가 구역질나는 냄새를 맡았다. 나중에 대학에서 만난 어느 형에게 ‘형, 서울에 올라와서 역한 냄새 때문에 쓰러질 정도로 머리가 아프더라고’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형은 오버하지 말라며 도리어 화를 내는 터에 입을 다물었다. 그 후, 시골에서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다가, 시골에서 만난 C에게 우연히 그 이야기를 또 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손바닥을 치며 말하길 ‘너도 그랬니? 나는 사람과 차가 모여 있는 곳에서 그 냄새를 맡았어. 지금은 많이 못 느끼게 됐는데, 다만 비가 올 때는 지금도 느껴. 그 비릿하고 역한 냄새’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복천 영감과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 여기까지 생각이 확장되자, 실향민의 아픔에 관한 책들이 공감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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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의 뇌구조 -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수업
마광수 지음 / 오늘의책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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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광수 교수님의 수업을 직접 들었던 학생으로서 교수님은 굉장히 밝고 솔직하고 재미난 분이셨다. 또한 신사다우면서도 권위주의적이지도 않아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편하게 대해주셨고(나는 남학생이었음에도) 수도 그래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마광수 교수님의 책, 그것도 오래전에 출간된 책(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만 읽고(심지어는 읽지도 않고) 마광수 교수님을 마치 성직자가 신도를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는 변태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광수의 뇌 구조는 마 교수님이 그동안 야한 여자가 좋다거나 즐거운 사라 등으로 이끌어냈던 성담론의 이유와 철학을 담고 있다. 만약에 섹스교가 생긴다면 그 바이블 정도 될 것 같다.

 

먼저 성담론을 이끌어낸 데에는, 마 교수님의 출생과 성격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마 교수님의 집안은 주변의 부당한 압력으로 몰락한 ‘선비가문’이 아니었기에 애초부터 반드시 되살려야 할 오기를 갖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빨치산 이력으로 몰락한 영남 선비 이문열이 갖고 있었던 오기와 의지를 되새기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기에 마 교수님은 세상을 좀 더 너그럽고, 비권위, 비관념적으로 볼 수 있었다. 비관념적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우리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성행위임을 알 수 있었고, 비권위적이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그것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는 마 교수님의 직업이 교수라는 것을 걸고넘어지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는 가장 보수적인 직업에 속한다. 또한 가장 관념적인 집단이다. 그런 사회에서 솔직하게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밤에는 야동을 보고, 낮에는 야동을 단속하는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은 곧 경직된 교수집단과 보수성 양측을 모두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그를 격렬히 공격했고 진보는 보수의 공격 측면에서 또 격렬히 옹호했던 것이다.

 

보혁논쟁을 떠나서, 관념적 쾌락이 위험한 이유는 정신적 쾌락의 정점에는 일종의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교는 도그마로서 인간을 구속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억압이 강한 곳일수록 육체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머리를 짧게 깎기를 강요하는 곳일수록 억압이 강한 곳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가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더 낫다'로 가치관이 바뀔 것’이라는 주장은 경청해 볼만하다(p.19)

 

이 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읽어야 하는데, 솔직함의 측면에서 예를 든 내용들(페티시, 야한 여자), 비권위 측면에서의 내용들(유연적 사고), 비관념 측면에서의 내용들(놀이사회, 정신적인 쾌락보다 육체적인 쾌락의 중시) 등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첫 번째 측면에서 든 내용 페티시나 야한 여자의 예만 보고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대가 변해 이제는 성이 어느 정도 사회의 공적인 측면으로 부각되었다. 문학으로는 장정일이 있고 연극으로는 교수와 여제자 등이 있다. 마 교수님처럼 되자는 것이 아니라 마 교수님의 생각도 존중해 보자는 뜻이다. ‘무조건 치밀어 오르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자는 말은 아니다. 인류는 그러한 야수성 정도는 막을 수 있을 만한 문화적 대리배설 장치를 개발해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중적 의식구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본능적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담론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도덕이 이루어진다. 참된 도덕이란 '솔직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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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의 경제학 - 세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힘
하라다 다케오 지음, 강신규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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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대공황을 불러온 금융위기 이후,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과 새로운 시스템을 모색하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세계 경제 질서에 어떤 음모가 행해지고 있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동양의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체제를 제시한다.

 

지금의 금융자본주의가 자유경쟁을 통해 부의 절대적인 크기를 확대하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이미 허구임이 판명났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주주와 월스트리트의 몇몇 자본가들의 사치를 위해 애쓸 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의 끝없는 탐욕은 5%의 미국인이 전 세계 50%의 부를 집중하며 동아시아로 이양되는 부의 분배를 막고 있다고 본다.

 

한쪽에는 부채에 짓눌린 미국이 있고 또 한쪽에는 그 부채의 절반을 짊어진 동아시아 국가들이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디폴트 소동을 끊임없이 일으키면서 도무지 수습하려 들지 않는 유럽과 미국을 일본과 중국, 한국이 말없이 처리해 주고 있다.

 

이런 부조리가 어디 있을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저자는 그 원인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받아들인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배경은 동아시아에 전통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음양사상이 노골적인 침략전을 벌인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무력화된 역사에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음양사상은 동아시아 내에서 잇달아 무시되고 은폐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서구식 사상이 근대화,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아 갔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누구나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유지되고 있는 미묘한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15~22쪽) 저자는 이를 음양의 경제학이라고 말한다. 즉,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를 끝없는 탐욕에 의한 확대만을 추구하는 서양의 경제학 대신 조화와 균형을 찾는 동양의 경제학을 새롭게 모색하는 것이다

 

확대만이 능사가 아니며, 인플레만도 능사가 아니다. 바람직한 모습은 균형이며, 추구해야 할 것도 균형이다. 지금까지의 근현대사가 확대 일변도였던 이상, 그것과의 균형을 취하기 위해 앞으로의 역사는 오히려 축소 지향적인 길로 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음과 양의 경제학이다(231쪽)

 

경청할 만한 이야기임에도, 다만 아쉬운 건 이 책의 저자가 책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엄밀한 논증으로 설득력을 높이는 대신 음양도, 풍수, 황제의 식탁통치 등은 오히려 설득력을 떨어뜨린 것 같다. 어쩌면 이도 실증과 논리를 중시하는 서구식 사상에 경도된 나의 잘못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하나 우려할 점은 저자 하리다 다케오가 보여주는 사고방식이 너무 국수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간 써온 저작들 《속이는 미국과 속는 일본》, 《북한 VS 미국》, 《일본 봉쇄 시대》, 《일본 때리기를 막아라》, 《누군가 노리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금괴》등을 통해 봤을 때, 한쪽의 일방적인 피해자와 일방적인 가해자로 양분하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 사고방식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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