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광수의 뇌구조 - 마교수의 위험한 철학수업
마광수 지음 / 오늘의책 / 2011년 8월
평점 :
나는 마광수 교수님의 수업을 직접 들었던 학생으로서 교수님은 굉장히 밝고 솔직하고 재미난 분이셨다. 또한 신사다우면서도 권위주의적이지도 않아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편하게 대해주셨고(나는 남학생이었음에도) 수도 그래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것은 마광수 교수님의 책, 그것도 오래전에 출간된 책(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만 읽고(심지어는 읽지도 않고) 마광수 교수님을 마치 성직자가 신도를 유혹해 범죄를 저지르는 변태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광수의 뇌 구조는 마 교수님이 그동안 야한 여자가 좋다거나 즐거운 사라 등으로 이끌어냈던 성담론의 이유와 철학을 담고 있다. 만약에 섹스교가 생긴다면 그 바이블 정도 될 것 같다.
먼저 성담론을 이끌어낸 데에는, 마 교수님의 출생과 성격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마 교수님의 집안은 주변의 부당한 압력으로 몰락한 ‘선비가문’이 아니었기에 애초부터 반드시 되살려야 할 오기를 갖지 않을 수 있었다. 이는 빨치산 이력으로 몰락한 영남 선비 이문열이 갖고 있었던 오기와 의지를 되새기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기에 마 교수님은 세상을 좀 더 너그럽고, 비권위, 비관념적으로 볼 수 있었다. 비관념적이었기에 있는 그대로 우리 사회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성행위임을 알 수 있었고, 비권위적이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그것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는 마 교수님의 직업이 교수라는 것을 걸고넘어지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는 가장 보수적인 직업에 속한다. 또한 가장 관념적인 집단이다. 그런 사회에서 솔직하게 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될 수 있었다. 밤에는 야동을 보고, 낮에는 야동을 단속하는 사회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것은 곧 경직된 교수집단과 보수성 양측을 모두 공격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수는 그를 격렬히 공격했고 진보는 보수의 공격 측면에서 또 격렬히 옹호했던 것이다.
보혁논쟁을 떠나서, 관념적 쾌락이 위험한 이유는 정신적 쾌락의 정점에는 일종의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종교는 도그마로서 인간을 구속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억압이 강한 곳일수록 육체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머리를 짧게 깎기를 강요하는 곳일수록 억압이 강한 곳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가서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섹스를 즐기는 돼지가 더 낫다'로 가치관이 바뀔 것’이라는 주장은 경청해 볼만하다(p.19)
이 책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읽어야 하는데, 솔직함의 측면에서 예를 든 내용들(페티시, 야한 여자), 비권위 측면에서의 내용들(유연적 사고), 비관념 측면에서의 내용들(놀이사회, 정신적인 쾌락보다 육체적인 쾌락의 중시) 등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첫 번째 측면에서 든 내용 페티시나 야한 여자의 예만 보고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대가 변해 이제는 성이 어느 정도 사회의 공적인 측면으로 부각되었다. 문학으로는 장정일이 있고 연극으로는 교수와 여제자 등이 있다. 마 교수님처럼 되자는 것이 아니라 마 교수님의 생각도 존중해 보자는 뜻이다. ‘무조건 치밀어 오르는 욕구에 따라 행동하자는 말은 아니다. 인류는 그러한 야수성 정도는 막을 수 있을 만한 문화적 대리배설 장치를 개발해냈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이중적 의식구조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개인의 본능적 욕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담론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도덕이 이루어진다. 참된 도덕이란 '솔직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