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찾아 삼만리>
크렘린의 담장 외부를 따라 축조된 계단에 앉았다.
성 바실리 성당을 향해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몇 개의 계단을 오르다 뒤를 돌아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성당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시야로 뛰어들었다. 처음 보는 것처럼 또 놀란다. 사람들이 그렇게 앉아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내려다보이는 성당의 발치. 고개가 아프도록 젖힐 필요가 없는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성당의 지붕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향하면 파란 하늘에 색색의 풍선이 가득 떠있는 것 같았다. 정말 지겨운 줄 모르고 앉아 있게 되는 곳이었다. 정해놓은 시간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계단에 앉아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더 이상, 어딜 가 볼까, 하는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바실리 성당에서 오늘의 일정을 끝내기로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방법은 올 때처럼 도보.
그런 결정을 내린 시간이 오후 3시.
벌써? 싶겠지만 씨스뜨라는 충분히 지쳤다. 집을 나선 시간을 생각한다면 빠른 귀가도 아니다. 점심을 먹느라 앉아있었던 30분 정도를 빼면 내내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집에 도착할 때까진 일정이 끝난 게 아니다. 돌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가장 지름길을 찾고자 하겠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소망. 실현까지는 시행착오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대중교통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소를 찾느라 걸어야 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예 걷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 물론 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택시를 탈 마음은 없어 보인다. 떠나기 전부터 씨스뜨라의 머리를 지배한 택시조심의 경고등이 아직 켜져 있는 상태인 모양이다.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면 아무래도 씨스뜨라가 택시를 탈 일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하여간 씨스뜨라는 지금 걷는 것이 제일 속편하다는 결론 상태에 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뒤를 따르는 것.
그렇다. 우린 어제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렇게 걸어서 붉은광장까지 진출한 것이니 이것만으로도 위대한 것 아닌가. 말도 설고 물도 선 땅에서 말이다.
분명 3시쯤 숙소를 향해 출발했는데 집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5시.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을 찾느라 고난의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지쳐서 멀미가 날 정도가 되어 집 안으로 기어들었다.
지도상에 있는, 분명 그 곳에 있어야 할 슈퍼마켓이 보이지 않았다. 같은 길을 몇 번이나 돌았는지 모른다. 슈퍼마켓이란 러시아 말을 찾아 묻기도 했는데 가 보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가 물었던 단어는 음료나 과자를 파는 작은 가게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여간 천신만고 끝에 슈퍼마켓을 찾긴 찾았다. 찾고 보니 몇 번이나 지나왔던 곳에 있었으니 얼마나 허탈했을까. 상점은 큰 건물의 반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지상에 있는 매장이었으면 진열창 안으로 들여다보이기라도 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앞에 몇 번이나 서서 둘러보고 살피면서도 몰랐다.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큰 규모였는데 그렇게 넓은 매장에 비해 입구는 턱없이 작았다.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았다. 매장 입구에 적힌 간판 글씨는 알고 찾아가는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그저 간판을 찾고 있었던 외국인에겐 있으나마나였다.
그렇게 애타게 찾았던 슈퍼마켓에 들어섰을 땐 아무런 의욕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밥도 싫고 물도 싫고 그냥 눕고만 싶었다. 자주 쉬기만 했어도 이처럼 피폐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 골목만 돌면, 저만큼만 가면, 나오지 싶기도 했거니와 도시 한가운데 쉴 만한 장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정의 마지막 한 시간이 나에게 지독한 악재로 작용했다. 그래도 인간의 정신은 악재보다 더 지독한 모양이다. 당나귀나 소는 정말 힘들다 싶으면 꼼짝하지 않지만 인간은 좀 다르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정신력이란 것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씨스뜨라의 밥 담당이다.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이 단체에서만 내가 요리사로 활약한다. 한심한 현실이다. 변변치 않은 체력과 변변치 않은 솜씨를 기꺼이 견뎌야 하는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한심하고 슬픈 현실임에 틀림없다.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장을 본다. 오늘은 기필코 음식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재료를 사야만 한다. 음식목록이 내 머리에 들어있어야 하지만 머리는 지금 백지 상태. 오직 내 눈이 요행히 재료를 발견해야한 한다. 쌀. 달걀, 오이. 눈에 들어온 것들 중 필수품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주워 담았다. 그것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다른 것을 살필 여력이 정말 없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몸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내가 의욕을 잃고 있는 사이에 과자 몇 봉지가 더 담긴다. 지치고 배가 고픈 그들이 고른 것들이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두 각자의 잠자리에 드러눕는다.
나갔던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몸을 쉬게 하는 것.
사람은 먹는 것으로만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니다. 휴식으로도 에너지를 충전한다.
아무도 말이 없다.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적어도 저녁을 해먹을 만큼의 에너지가 모인다.
나는 기운을 내어 일어난다. 내가 일어나 주방으로 가자 갈마가 따라 들어온다. 높새도 뒤이어 들어온다. 얼마나 거창한 저녁을 먹자고 주방에 세 사람씩이나? 옳은 선수가 없으니 오합지졸이라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오합지졸 속에서도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씨스뜨라의 숨은 힘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해서 식탁 위에 꺼내놓으면 그들이 다듬고 씻고 썬다. 사실 난 무얼 할 것인지 먼저 머리를 굴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면 갖추어지지 않은 재료로 우리나라 음식 흉내를 내는 것. 그것이 여행지에서 주방장을 하게 만든 나의 능력이다.
하지만 오늘은 재료가 갖추어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재료가 없다고 해야 할 판이다. 내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건 달랑 오이 한 가지. 식탁을 슬쩍 훑어보는 높새의 눈에 실망의 빛이 스친다. 높새에게 맛없는 것 보다 싫은 맛은 똑같은 맛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불평의 말은 못한다.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 난 눈치를 챘지만 속으로 웃고 만다.
갈마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표정으로 오이를 만지며, 깎을까? 한다. 표정으론 생각을 읽을 수가 없다. 어쩌면 맛에 대한 상상을 하지 않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생각의 켜기와 끄기가 잘 되는 사람이니까. 미리 당겨서 걱정을 하지도 않고 과거를 곱씹지도 않는다. 어쩌면 우리 중 가장 당면한 현실에 충실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늬는 궁금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왔지만 아무 생각이 없는 표정이 되어 서 있다. 식탁 위에 있는 재료가 그녀의 상상력을 끌어오기엔 너무 빈약한 것 같다. 음식 재료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자기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미리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녀의 표정은 이 상황에서 보일 수 있는 당연한 것이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표정이라고나 할까.
사실은 모두가 본연의 모습에 충실한 중이다. 저녁 메뉴는 아직 내 머리 속에만 있기 때문에 모두들 오이 한 가지로 저녁을?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재료가 턱없이 가난하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너무 피곤해서 대충 장을 본 것도 있지만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모스크바 숙소엔 사흘을 묵는다. 내일 하루 더 자고 나면 짐을 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먹는 게 좋을 듯 했다. 음식 재료가 남으면 짐스럽기도 하거니와 양념 같은 건 밀봉을 잘한다 해도 옷가지가 든 여행가방 속에 함께 넣기는 그렇다. 그래서 사실은 가지고 간 유일한 양념인 고추장, 된장도 포장을 뜯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결심이고 발표하지 않은 채 실천에 옮긴다.
그렇다고 양념 없는 저녁을 먹은 건 아니다.
정말 아무런 대안이 없었다면 고추장 포장을 뜯었을 것이다. 적어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 그런 여자는 아니니 말이다. 우리에겐 하늬의 고추장 양념이 있었다. 잣과 매실즙을 넣어 버무린 고추장이다. 가리는 음식이 많다보니 비상용으로 준비한 것이다. 그걸로 오이 무침이 가능했다. 그리고 냄비 밥을 짓고 가져온 라면 하나를 끓여 국 대신 식탁에 올려놓았다. 고향냄새가 물씬 나는 식탁이 차려진 것이다. 어찌하였든 국과 밥과 반찬이 있는 저녁이었고 식탁을 마주한 그들의 표정에서 비로소 의구심이 사라졌다. 익숙한 수저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마음이 푸근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밥을 입에 먼저 넣고 젓가락질로 오이무침을 먹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퍼먹는 식사법.
고국에서야 참 듣도 보도 못한 상차림이겠지만 이게 외국에선 통하는 것이다. 찰기가 없는 밥도 구수하고, 고추장 색깔만 나도 침이 고이는 오이무침에, 라면 국물은 얼큰하고 시원하다. 고국에선 도저히 통하지 않을 맛에서도 고향을 느끼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 멀어진 곳에서는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 가 아닌, 고향냄새가 나는가? 이국 냄새가 나는가? 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