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실리 성당>
참 예쁘다!
정말 독특하다!
볼수록 아름답다!
보면 볼수록 정말 예쁘고 특별하고 아름답다!
성 바실리 성당(흐람 바실리야 블라줸노보) 앞에 한 시간 가량 머물면서 생긴 느낌의 변화이다.
내내 감탄했지만 느낌은 시시각각 요동쳤다.
그것은 타지마할처럼 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큰 건물이 그렇게 가볍게. 더구나 결코 뜰 수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성 바실리 성당은 광장 저 멀리에서 색색의 풍선처럼 떠올랐다.
붉은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눈은 그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건 어디서나 보이는 신기루 같은 건지도 모른다. 기대할 필요도 들을 필요도 없는 건지도 모른다. 정말 위대한 것은 말이 필요 없다는 증거같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난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그 곳에 갔고 존재를 눈으로 보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이름을 물었고 알았다. 어디선가 떠들었겠지만 머리에 담겨 있지 않았다. 요즘 세상엔 정보가 너무 많아 정보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차피 사람에겐 한 끼에 한 그릇의 밥만 있으면 된다. 수백 수천 그릇을 갖다 준다 해도 한꺼번에 위 속에 담을 수는 없다. 먹을 수 없는 밥은 용도의 가치가 없는 것처럼 머리에 담기지 않는 정보는 정보가 아닌 것이다. 그것에 대한 정보도 그렇게 흘러가는 정보 속에 들어있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오면 오히려 정작 필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니까.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박쥐 무리 속에서 사냥감을 선택하는 것이 힘든 것처럼.
하지만 그런 문제를 초월한 곳에 성 바실리 성당이 있었다.
부활의 문을 통과하자마자 아득한 넓이를 자랑하며 눈앞에 나타난 광장.
그 광장을 이루고 있는 직사각형의 수많은 돌.
돌바닥을 눈으로 더듬는 순간 내 눈길을 당기는 강력한 그 무엇.
마치 황제가 신하를 부르듯 당당하고도 힘차게 끌어당기는 힘.
나는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가듯 그에게 다가간다.
감히 눈길도 돌리지 못한 채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광장을 메운 엄청난 인파도 보이지 않았고 크렘린의 긴 담장도 보이지 않았고 굼 백화점의 위용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저 멀리 덩실 떠 있는 황홀한 풍선만 보였다. 오른쪽 붉은 담장이 크렘린 궁전이고 왼쪽의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 굼 백화점이란 건 나중에야 알았다. 크렘린과 굼 백화점의 미적 가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만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은 같은 듯 모두 다르고 높이도 색도 무늬도 다르다. 다양함 속의 조화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화려하다고 말하기엔 눈부시지 않고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너무 신비하고 예쁘다고 말하기엔 너무 고상하다. 중앙의 제일 높은 첨탑 꼭대기는 황금의 양파. 지금은 금이 곧 돈으로 환산되는 이유로 가치가 높겠지만 원래 가치는 그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보아도 황금의 가치는 찬란함이다. 변하지 않는 찬란함이 황금의 진짜 값이 아닐까. 지금 훌쩍 날아오른 높이로 푸른 창공에 떠있는 금빛 구체는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눈부신 태양과 그보다 더 눈을 시리게 하는 하늘에 밀리지 않는 찬란함으로 존재를 뽐낸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입이 벌어지는 당당한 아름다움이다.
고개를 조금 숙이면 또 다른 감탄 속으로 이끄는 녹색 다각 지붕의 첨탑들. 참으로 신비한 녹색이다. 색채가 주는 신비함인지 그런 색채로 치장된 모양과 선의 아름다움이 내뿜는 신비함인지 구분할 수는 없다. 아니면 그 색채는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할 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저히 따로 존재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운명은 참 무거우면서도 신비한 것이니까.
이제 눈길은 조심스럽게 녹색의 지붕을 벗어난다.
아니 벗어난 게 아니라 다른 것에 붙들린다. 겨우 큰 숨을 길게 내쉬는 짬을 얻었을 뿐이다. 생색내지 않겠다는 듯 침착한 붉은 벽돌의 몸체. 몸체는 조심스럽게 존재를 드러낸다. 붉지만 결코 나대지 않는 채도다. 고요히 절을 하고 얼굴을 든 신부 같은 얼굴로 나를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더 자세히 보면 또 다른 세계로 몰입하게 만드는 세부 조각과 무늬.
눈을 잠시 감고 심호흡을 한다. 잠깐 쉬어가고 싶다. 계속될 감탄에 대한 대비책이다. 하지만 쉬지 못한다. 감은 눈 속에서 색채들이 춤을 춘다. 예쁜 사탕들이 즐비한 사탕가게다. 맞다! 무늬도 색깔도 다른 색색의 양파 지붕은 앙증맞고 알록달록한 사탕 같지 않은가. 그렇게 큰 건물의 지붕이 사탕이라니. 하지만 아기자기하고도 우아한 아름다움이 분명 거기에 있다.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라니. 어른들의 동화가 있다면 그런 모습일까.
눈을 뜬다.
아, 동화의 나라다!
아이의 마음도 어른의 마음도 훔쳐갈 환상의 세상이 눈앞에 있다.
성당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아야 한다. 볼수록 매력덩어리. 코앞까지 다가갔다 물러나기를 여러 번. 그럴 때마다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사진으로 담아놓으면 더욱 감탄스럽다. 러시아를 떠나기 전, 기회가 있어 다시 온다 해도 여전히 무섭도록 정신을 홀릴 게 분명했다. 그래서 성당의 건축에 관련된 무서운 이야기는 나에겐 더 이상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러시아 황제 이반 4세는 타타르족의 왕국, 카잔한국을 물리친 기쁨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래서 뛰어난 건축가를 불러 성당을 짓게 했다. 성당은 지은 지 5년 만인 1560년에 마침내 완성된다. 완성된 성당은 완벽했고 황제는 그 아름다움에 완전히 취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이 성당만이 가져야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다른 곳에 이와 같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 건축가의 눈을 멀게 했다고.
물론 건축가의 눈에 대한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난 성당을 보고 나서야 가이드북에서 이 글을 읽었다. 아마 보기 전에 읽었다면 웃어넘겼을 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설 같은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무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이유를 수긍한다는 의미다. 어떤 말로도 표현해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던 모양이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길이 없는 답답함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강렬한 감동을 강렬하게 새겨줄 단어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방법.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는 강렬한 감동을 전할 수는 없어도 강렬한 자극을 주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전설이 될 만큼 지독하게 아름다운 건물.
전설 같은 이야기를 먼저 읽고 성당을 보게 된 여행객들일지라도,
끔찍한 이야기가 주는 것보다 더 강렬하고,
더욱 오래 남을,
감동을 받을 것이,
분명한 건축물이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이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타타르인에게 성 바실리 성당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지금은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이 된 카잔.
그들의 눈에도 성 바실리 성당은 그토록 아름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