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크렘린>
학창 시절에 ‘크레믈린’이란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란 의미로 그렇게 불렸다. 그 시절 우리들에게 사회주의는 그런 의미였다. 러시아가 아닌 소련이었던 그 때, 소련이란 나라만큼이나 그 나라 정치의 중심이었던 ‘크렘린 궁(마스꼽스끼 끄레믈)’도 온통 깜깜한 비밀이었다. 신비에 싸인 비밀이 아니라 알려진 것이 없어 그저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검은 비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만큼 불신도 커서 꿈에도 크렘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고 비밀의 베일이 벗겨진 지금, 찬란한 보석별과 붉은 벽돌의 아름다운 배열에 감탄한 채, 나는 서 있다. 두려움 그 자체였던 크렘린 앞에서 설레고 있는 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크렘린은 제정 러시아 시대에 만들어진 도시의 성채를 말한다.
특히 모스크바에 지어진 크렘린은 14세기에 이반 3세가 건축한 뒤로 제정 러시아 황제들의 거주지가 되었고 지금도 러시아 정부의 여러 기관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 그러니 역사적인 건축물인 동시에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생생한 문화재인 것이다. 그래서 크렘린, 하면 모스크바에 있는 크렘린 궁전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크렘린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따라 간다.
우선 입장권을 구입해야 하니까.
관광지에선 정보보다 눈치가 한 수 위인 경우가 많다. 정보를 믿지 못하느냐고? 당연히 믿는다. 그러나 참고할 뿐이다. 정보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늘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정보다. 그리고 달라지지 않는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구실을 하겠는가. 박물관, 전시관의 정보도 늘 바뀐다. 전시물이 교체되기도 하고 전시관이 옮겨지기도 하며, 입장권 가격이 달라지고 출입구 위치도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유명 건축물이 해체되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다. 비록 최신의 정보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바로 그 날 일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가는 날이 장날’이란 속담이 하루아침에 그냥 생긴 것이 아닌 것이다. 알고 보면 오랜 경험과 엄청난 철학이 담겨 있는 위대한 말씀이다. 그러니 정보를 맹신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는 선의 융통성을 열어두는 것이 좋다. 특히 여행지에선.
뜨로이쯔까야 망루 쪽에 크렘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고 하는데, 사진으로 확인한 망루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처음 본 서양인 얼굴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모든 망루는 비슷해 보인다. 적어도 미묘한 차이의 아름다움까지 알아보려면 좀 더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여행이 끝나갈 때쯤에는 확실히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걸 느꼈다. 한눈에도 수려하게 다가오는 건축물이 있었고 그 감탄엔 일리가 있었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르지만 또 누구나 감탄하게 하는 보편의 기준이란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걸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 내 눈은 드디어 러시아 건축물의 걸작을 알아볼 정도로 보는 감각이 세밀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뜨로이쯔까야 망루를 발견한다.
사람의 행렬을 따라가니 거기 망루가 있었다. 정말로 눈치가 승리한 것이다. 시야가 넓은 높새가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망루를 가리킨다. 꼭대기에 오각형 보석별을 달고 있는 붉고 둥근 몸통의 망루가 햇살 아래 우뚝 솟아 있다. 햇살도 망루도 눈이 부시다.
아, 하지만 망루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의 줄.
망루를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금세 기가 꺾이고 만다.
햇살은 이미 맹렬한데 그 타오르는 햇빛 아래 고스란히 노출된 채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난 못하겠다. 땡볕에 줄 서긴 싫어.
나만 엄두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구도 선뜻 줄을 서자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씨스뜨라는 햇살 속의 긴 줄을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다. 어떤 결정이든 내려야 하는데 난감하다. 오직 크렘린 궁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어왔던 길이고 지금 그 길의 끝이며 시작점에 와 있는 것이다. 입구를 앞에 두고 돌아서서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묘안이 떠오르지도 않지만 결코 줄을 설 마음도 없다.
차라리 안 보고 만다.
아니 지금은 아니다.
언젠간 줄이 줄어들겠지.
현재의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눈길을 돌린다. 주변엔 나무도 많고 나무 그늘 아래엔 벤치도 있다. 벤치마다 한가로이 앉아 있는 사람들. 그들도 우리처럼 줄 설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러고 있는 것인가. 내가 벤치를 살피며 두리번거린다.
우선 좀 앉아서 생각할까?
갈마가 반가운 제안을 한다. 기다렸다는 듯 앞장 서 벤치로 간다. 내가 앞장설 때는 딱 이럴 때 뿐이다. 쉬는 자리를 발견했을 때.
아픈 다리가 편해지고 바람도 시원하다.
비로소 새롭게 파악되는 상황.
여유를 가져야 보이는 것이 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니다. 대개 공원에 놀러 나온 러시아인들. 물론 관광객들도 더러 섞여 있긴 하지만 그들은 잠시 앉았다 일어난다. 목적지가 따로 있는 까닭이다. 그들에게 공원은 거쳐 가는 곳. 그래서 대부분은 크렘린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거나 입장권을 사는 곳에 몰려 있다. 그리고 그제야 파악한다. 우리가 앉아 있는 벤치 뒤에 있는 유리 건물이 입장권 판매소라는 걸. 망루 앞의 긴 줄은 입장권을 구입한 사람들의 입장 대기 줄이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의 위치는 알렉산드로프 정원. 모스크바 최초의 시민공원이기도 한 정원 안에 크렘린 티켓오피스가 있는 것이다. 분명 가이드북에서 읽었을 테지만 조금 전까지 그 정보는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에게도 떠오르지 않았던 기억이었으니까. 벤치에 앉아 책자를 펼치고서야 기억이 났고 저마다 혀를 찼다.
갈마와 함께 티켓오피스로 가서 크렘린 입장권을 구입한다. 입장권이 다양했지만 ‘사원광장 및 성당’ 이라고 쓰인 표를 구입한다. 성인 500루불. 가장 간단한 걸 구입한 이유는 어차피 넓은 궁전 안을 샅샅이 본다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서이다. 작정하고 돌아다니면 점을 찍듯 구경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마음은 없다. 그렇게 본다 해서 기억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느낌 없는 기억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표를 사서 나오니 크렘린 입구의 긴 줄이 사라지고 없다.
알고 보니 관람 시간이 되지 않아 입장이 되지 않고 있었던 것.
여유를 가지고 움직인 보람이 있다.
크렘린 궁전 안에는 군인들이 많았다.
사실 가장 색달랐던 풍경이었다.
여행객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아닌 곳에는 반드시 군인들이 있었다. 그리고 군인들의 지시에 순응하는 시민들.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비로소 체제가 다른 나라란 느낌이 몸에 와 닿는다. 다니지 않아야 할 길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제지를 당하는데 관광객의 표정과 현지인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 불편한 표정이 스치는 관광객과는 달리 시민들의 표정은 당연한 듯 아무렇지도 않다. 너무나 순한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 여러 생각이 스친다. 크고 억세게 보였던 러시아 사람들. 아니 그런 생각은 정말 편견이었던 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 대한 많지도 않은 정보조차 왜곡된 정보가 아니었는가 하는. 유럽에 대한 정보에 비하면 정말 가난한 정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의 순한 모습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길들여진 모습인지 아님 이들에 대한 생각이 정말 편견이었던 것인지.
자꾸만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공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구나 그들이 만들어낸 문학과 무용과 음악을 생각하면.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임에는 틀림없지 않은가.
예술은 신의 영역이라는데.
신의 영역을 사랑하는 사람들.
절로 사색하게 만드는 사원광장.
금빛의 아름다운 둥근 지붕.
단순하고 우아한 선으로 이어진 궁전의 담장.
망루 꼭대기의 보석별.
궁전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움을 대하는 심정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