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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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근세의 사회변화인 공산화, 문화대혁명이 민중의 삶을 어떻게 휘젓고 지나갔을까.

  민중은 그러한 변화를 원했을까.

  문화대혁명이 지향해 가는 곳을 알고나 있었을까.

  변화를 필요로 하는 민중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더 편안한 삶으로 향하는 변화에 대한 욕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오히려 민중에게 잔인하게 작용했다. 혁명의 뜨거운 불길과 변화 과정의 혼란은 주동자의 삶이 아니라 민중의 삶만 흔들었고 민중은 그저 감내해야 했다. <허삼관 매혈기>는 변화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민중의 삶을 미화 없이, 그렇지만 비관도 없이 그려나간 소설이다.

 

  강물속을 마구 휘젓는 대나무 막대기가 수초를 흔들고 흙물을 일으키고, 심지어 물속 생물들의 서식지를 망치고 생물들의 목숨까지 가져가지만 막대기가 물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지럽힐 수는 있어도 없애지는 못한다. 없어지는 건 막대기지 물속 세상은 아니었다. 허삼관의 매혈은 흔들리는 물속에서 생명을 지탱해야하는 민중의 질기고도 고난한 삶을 덤덤한듯한 어투로 진하게 보여준다.

  강한 어조로 외치지 않지만 지배자들의 세상과 민중들의 세상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소설.

  아주 작은 권력만 쥐고 있어도 민중의 피를 빨아대는 그들의 세상과, 가진 건 움직일 수 있는 몸 하나뿐이라도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따뜻한 세상을 대변하는 민중들의 세상. 권력과 정치는 망하고 변해도 민중은 도도히 흐르는 큰 강처럼 변함없이 흘러가는 강이었다. 망할놈의 정치와 권력자에게 승리하는 길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건 원망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그들처럼 변하지 않고 살아야한다는숙명에 절대복종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 이라는 느낌까지 들었다.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었던 허삼관.

  드디어 세 아들을 장가보내고 할 일을 마친, 60이 넘은 우리의 주인공이 이제 더 이상은 피를 팔 일이 없을 것 같다. 그런 그가 피를 팔 때마다 먹었던 돼지간볶음과 황주가 몹시 먹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 피를 팔아 큰돈을 만질 때만 누렸던 호사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피를 팔 생각을 한다.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먹기 위해. 하지만 너무 늙은 피라 사주지를 않는단다. 절망하여 울며 거리를 걷는 허삼관을 대하는 세 아들의 태도. 창피하단다. 그렇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다 알지 못한다. 나중에 알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들들의 반응에 몹시 허망하고 섭섭해진 허삼관 옆엔 아내 허옥란이 있었다. 아들들을 나무라며 기꺼이 생활비를 털어 돼지간볶음과 황주를 사 준다. 처음으로 자신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호사를 누린다. 서로 위로가 되어가며.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권력의 부조리도

정치가의 기이한 정치 행태도

인생의 한 모습이라 이야기하는 소설.

그러나 진짜 인생을 누리는 자는,

민중의 머리 위 허공을 누비며 짱구를 굴리는 자들이 아닌,

흙에 발을 붙이고 일구고 살아가는 민중이라고 외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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