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피도 눈물도 없다
운주사는 너무 변했다.
나지막한 산 아래 작은 법당 한 채, 그 앞에 펼쳐진 펑퍼진 벌판 여기저기 탑이 흩어져 있었다. 탑이 흩어져 있는 벌판 한 쪽엔 고추밭도 있었다. 별다른 경계 구분도 없이. 고추를 따고 있던 아낙이, 둘러싸인 낮은 산, 탑들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았었다.
안내판도 들어가는 문도 없어, 미경이 아니었으면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너 국사선생 자격 있다. 내가 허락할 테니 선생 노릇 계속해라.’
던 소형의 농담도 생각났다.
너무도 한가한 국도를 계속 달리다 난데없이 오른쪽으로 꺾인, 길 같지도 않은 비포장 길이었다. 미경이가 ‘바로 이 길이다.’고 외쳤을 때도, 목을 빼고 그 길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다. 길이랄 것도 없이, 무너진 도로 한 쪽을 임시로 흙으로 메워놨나 했을 정도였다. 미경의 장담에도, 수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핸들을 돌려 울퉁불퉁한 길로 방향을 틀었다.
방향을 트는 순간 우리 눈앞에 나타난 풍경!
우린 그 풍경을 또 믿을 수 없었다.
‘별유천지 비인간’이라더니, 그 풍경에 그만큼 맞는 말이 없었다.
그 때까지도 운주사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절이었나 보았다. 매표소도 관리인도 없는 벌판에 선 우리는 황당했다. 늘 도로를 가로막는 쇠막대와 돈을 지불해야만 통과되는 매표소에 익숙해 있던 우리였다. 그래서 새장 문을 열어 놓아도, 선뜻 새장 밖으로 날아나가지 못하는 새처럼,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눈앞에 나타난 인간의 세상 같지 않은 풍경에 얼이 빠지고, 그런 풍경 속으로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경의 당당한 ‘갑시다’ 소리를 듣고도 마치 앞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나 있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온전하게 보존된 탑이 하나만 있어도 철책을 둘러치고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설명이 적힌 간판을 세워놓아 보물이라는 것을 강조해 감히 손도 대보지 못하게 했다. 그런 탑들만 보다가, 버려진 듯이 철책도 없이 벌판에 서 있는 탑을 보는 기분이라니. 더구나 그 귀한 탑 이 한 두 개도 아니고 벌판 여기저기에 한 눈에 헤아려지지도 않는 숫자로 흩어져 있었다.
그 때의 기분을 표현하자면 ‘많은 보물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여 있어도 되나?’였다.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여행을 갔다가 지나가던 길 가 가게에 가득 쌓여있는 바나나를 보고 ‘그렇게 귀한 것이 한꺼번에 저렇게 많이?’ 하던 심정과 비슷했다.
풀, 바람과 함께 벌판에 편안하게 서 있던 탑들을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올려다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정답고 아늑했던 벌 가운데를 지금은 허옇게 포장된 길이 가로지르고 있다. 쭉 벋은 훤한 길은 벌판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빛났다. 정답게 어울려있던 탑들과 돌부처도 시멘트 길이 갈라놓았다. 벌판에 놓인 탑과 산자락에 기대 선 돌부처는 이제 더 이상 다정한 한 식구가 아니다. 들판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올려다 보아야했던 탑과 탑의 상륜부를, 높은 길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했을 때는 화까지 났다. 탑이란 본래 우러러 볼 때 제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길 위에서 탑을 내려다보자니 성이 차지 않고 길에서 내려가 탑 주변을 돌아볼라치면 높은 길이 시야를 가로막아 기분이 상했다. 산자락에 놓인 작은 돌부처들은 이젠 탑들이 흩어져 있는 들판에선 볼 수가 없었다. 단절된 풍경. 마치 한 쪽이 잘려나간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입장료를 받기 시작하면 철책부터 두른다. 돈이 사람만을 망치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밟아서 훼손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보호라는 이름아래 망가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산마루에 누워있는 와불(臥佛)은 괜찮을까.
운주사 서쪽 산마루에 조성한 석불(石佛)도 이젠 울타리 속에 누워있었다. 산세와 조화를 이루게 조성되었을 와불(臥佛) 주위에, 굉음을 일으키며 쇠막대를 박았을 공사를 생각하니 진저리가 쳐진다. 어차피 비와 바람에도 조금씩 마모되어갈 돌부처에 사람의 손길이 좀 닿으면 어떠랴 싶은데, 안타까웠다.
그릇 하나도 어디 놓이는가에 따라 인물이 달라진다. 위대한 석공이 산꼭대기에다 그 힘든 작업을 시작하고 완성시켰을 때에는 철저한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곳에 그렇게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 뺄 것도 보탤 것도 없는 구성이었으리라. 들판의 갓바위 부처와 팔공산 마루의 갓바위 부처가 어찌 느낌이 같겠는가. 더구나 주변에 다른 구조물을 덧붙인다는 건…….
울타리 주위를 빙빙 돌며 석불을 감상하자니 참 찐맛이 없었다. 그 인정스러운 모습을 멀리 두고 손님처럼 맴을 돌다니. 도무지 보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울타리를 넘어 들어갔다.
묵직하게 누워있던 돌부처가 성큼 다가온다. 부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성거리다 부처 옆구리에 등을 대고 앉았다. 이제야 좀 무엇을 사랑할 마음이 생긴다. 형상을 가진 것을 감상한다고 해서 꼭 눈만이 이용되는 건 아니다. 마음을 열고 있으면 그것은 통째로 오감을 통해 뛰어 들어온다. 손으로도 보고 피부로도 느끼는 것이다.
오랜 세월의 무게와 질감이 기대고 있는 등에 천천히 스며든다.
일요일인데도 아침나절이라 아직 관광객은 아무도 없다. 날까지 흐리니 늦잠들을 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