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면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속해있는 세계의 시각으로 사람을 바라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고 있는 길을 버린 내가 문제지 상식선상에서 반응하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나야 이런 문제에 많이 부닥치니까 자기 방어적으로 해놓은 생각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들에겐 닥치지도 않을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방어할 필요 없는, 나름의 사는 방식이 생겼을 테고, 그런 방식에 투덜대는 내가 도리어 이상하겠지요.>

  나의 한숨.

  <아니에요.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저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을 좀 하게 됐거든요. 어쩌면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이 속이 더 좁은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어요. 물론 결혼생활 힘들죠. 저야 편한 편이지만. 말 들어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나 할 정도로 사는 사람 많거든요. 그래도 결혼한 여자들이 하는 걱정이나 고생은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고생이잖아요. 하소연을 하면 대개가 공감도 하고.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기도 하고요. 쉽게 위로를 받을 수 있거든요. 적어도 전혀 엉뚱한 곳에 복병이 숨어 있어 공격당하는 그런 황당함은 당하지 않죠.

  그런데 선생님 말 듣고 있으면, 어머 저럴 수도 있구나, 저런 괴로움도 있었네, 하는, 놀랄 일도 많더라구요. 저도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보기 전에는 전혀 몰랐어요. 가끔 화제에 오르기라도 하면 그냥 돌 던지듯이 독신? 자유롭겠네? 가 끝이죠. 생각 길게 안 해요.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런 세상에 같이 살아가야 되니까 차라리 이해심이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참아야 할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다수를 상대로 이해를 받아내는 수고를 하기보단 포기하고 이해하는 쪽을 택하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 다르다면 많이 다른 세계일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면 다른 세계에 대한 관심이 먼저라야 한다. 관심과 시간을 가지고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런데 소수자의 모르는 세계를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이해받기란 거의 불가능일지도 모른다.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쌓인다. 오해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어떨까. 살아가기 위해선 차라리 자신을 감추고 이해받기를 포기하는 쪽이 편하지 않을까. 기대를 버리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더 편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저보단 선생님 마음이 더 넓을 거다. 어때요? 맞아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장선생 나 너무 심하게 변호하는 거 아냐? 아무리 변호해 줘도 내가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건 사실인데 뭐.>

  <어머 선생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도 있잖아요. 그래도 물고기 세계에서 연어를 욕하진 않을 걸요. 드물다 해서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힘내세요. 저 아줌마라도 선생님 좋아하고 이해하잖아요.>

  연어? 내 분노가 지극히 정상적인 장선생을 이상하게 만들어놓았다. 연어가 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 일생에 딱 한 번, 알을 낳고 수정을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장선생이 그걸 모를 리는 없고. 부덕 높은 그녀가 변호하는 데 눈이 어두워 뻥을 치거나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내가 죄인임은 더욱 분명한 것 아닌가.

  <아줌마인 저를 봐서라도 애신 아줌마 용서하고 잊어버리세요.>

  그녀의 따뜻한 눈빛. 마음이 절로 누그러진다.

  <, 선생님…….>

  무슨 말을 하려다 놀라며 자기 입을 막았다. 그러나 이미 없던 일로 돌리기엔 늦었다고 생각되는지, 손을 내리더니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오늘 나가실 거예요?>

  나는 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웃음 뒤엔 서글픈 생각이 따라붙었다. 결국 나를 이해한다는 장선생까지도, 무심코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라며 수습하게 만드는 죄가 나에게 있구나. 어떤 말이든 무심코 할 수 없는 말이 있다는 건, 상대에게 벽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녀도 나를 이해해주고 싶은 거지 통째로 이해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의 처지도,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만 받아들여지는 답답한 처지가 아닌가.

  <안 나갈 거예요. 여러 사람 심정 생각하면 나가야 되지 않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정말 나가기 싫어요. 그 심정 위로해주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고, 또 내 위로 받을 정도로 그들이 안 된 처지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 그런 차원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맞아요. 선생님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애신 언니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는 걸요.>

  장선생이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며 응수를 했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의 머리를 날렸다. 시원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장선생의 약간 들려진 오똑한 콧날이 바람 속에 도도하게 보였다. 그래,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자. 바람은 나를 스치고 지나갈 뿐. 잠시 들려진 옷자락도, 머리칼도 결국은 제자리도 돌아오는 것. 노여움도 기쁨도 다 내게서 나온 나의 것이었다. 바람에 잠시 흔들렸다고, 그래서 형태가 조금 변했다고 내 것이 아닌 게 아니다. 내 흐트러진 마음을 두고 남 탓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나뭇잎 사이를 지나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운동장엔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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