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시면 그냥 하던 이야기 계속 하세요. 그 질문엔 노코멘트입니다.>
<왜요?>
<그냥, 선생님 답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이번엔 언니 같은 표정이다. 어떤 이야기든 들어줄게, 하는.
저 속엔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영감이 서넛 들어앉아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어머니의 그 말. 난 그 말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몰라요. 내 뜻이 좋으니 그대는 무조건 좋은 뜻으로 받아들여라, 피해를 보더라도 참고 견뎌라, 하는 자기 위주의 발상. 봉사의 의미가 원래 그런 게 아니잖아요? 도움 받을 사람한테 필요한 도움. 정말 도움이 되는 행위를 실천하는 게 봉사 아니에요? 내 뜻만 중요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건 자기 만족이죠.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술이 고맙지 배가 부른 사람에게 억지로 밥 한 그릇을 떠넘기고 만족해한다는 거 우습지 않아요? 원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걸 받고, 도움을 받았다는 부담감만 안은 거잖아요. 얼마나 우스워요. 자기가 원할 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 놓고 좋은 뜻이니 좋게 생각하라구요? 그건 봉사가 아니라 취미생활이죠. 그 농부는 다시 해야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고, 새참을 준비하고, 고마워해야 되는 건가요. 그렇게 되면 도대체 도움을 받은 쪽이 누구란 말인지.
봉사라는 허울 좋은 말에 멍드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진정 도움을 주고 싶으면 일단 도움 받을 사람에 대해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말 필요한 것을 알아내고, 그 뜻을 존중해서, 정히 거부를 하면 철회할 수도 있어야 해요. 그렇게 복잡해서 어떻게 봉사를 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게 복잡하다면 안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미 초점을 상대가 아니라 자기에게 맞춰놨잖아요. 봉사는 봉사 받을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는 거잖아요. 의사 무시한 채 관철하는 것은 자기만족이지 봉사는 아니에요. 봉사라는 이름 아래 자기만족의 희생자가 탄생하는 꼴이죠.>
말을 끝내자 숨이 찼다.
새소리가 다시 들렸다.
연설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무 장광설이 되어버렸다. 말을 하다 흥분해버렸다. 나는 늘 이 모양이다. 말을 하다 내 말에 흥분하고 그래서 내용은 길어지고 목소리는 커지고. 그리고 다 끝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간결하고 요약된 생각만 이야기하려 했는데. 습관인지, 성격인지 정말 버려지지 않는다.
<역시, 선생님 생각은 재미있어요. 그리고 결혼 하지 않고 사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도 들구요.>
<들켰네. 애신 언니 사건은 털어버리려 했는데. 이야기하다 흥분해서. 난 왜 이야기하다 내 이야기에 흥분하는지 몰라.>
<선생님 흥분할 때 사실 전 더 재밌어요. 덜 걸러진 이야기도 막 나오고요.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 어떤 땐 드라마 보는 것 같다니까요.>
<놀리는 거죠?>
그녀의 웃음.
나의 장단점을 꿰고 있는 그녀다. 좀 부끄러워진다. 너무 가벼웠다. 또 흥분하다니. 자격지심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같은 문제를 두고 부닥칠 때마다 그렇게 흥분할 리가 없다.
난 조금 의기소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