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이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마음이 복잡하다는 증거다. 걱정이 있거나 불안할 때 노래를 부르는 건 소형의 습관이다. 물론 기분이 좋을 때도 노랠 부르긴 하지만 느낌이 분명 다르다. 조금만 신경 쓰면 그건 금방 알 수 있다. 그 차이를 모른다면 친구라 할 수 없다. 알고 싶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데 수자는 오늘 그걸 알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앞을 보고 앉아있는데 가라앉으려던 화가 다시 끓어오른다.
나쁜 버릇이란 걸 안다.
무슨 좋은 일이라고 되새김질을 할까.
끓어오르는 화를 단박에 식힐 재주를 아직 익히진 못했다.
내가 그렇지.
똥을 밟았으니 똥 밟은 신을 신고 또 한참을 걸어가겠지. 역한 냄새에 기분 나빠 하면서. 왜 툭툭 털어 내질 못하는 걸까. 이성으로 아무리 타일러도 감정은 제멋대로 갈 길을 간다. 언제 끓고 있는 화가 가라앉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되는 대로 두고 볼 순 없었다. 그건 친구로서 책임 회피이기도 하다. 예측이 되는 데도 그대로 두는 건 고의보다 나을 것도 없다. 침묵이 대단한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군가 위험하면 소리라도 질러 주어야 되는 것 아닌가.
나의 침묵의 결과는 너무도 분명하다. 소형의 제안은 분명히 제안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10년이 넘게 겪어온 일이다. 수자의 대응방식은 불을 보듯 훤히 그려진다.
집 도착이 코앞에 이르면 그때야 ‘정말 갈래?’ 할 테고, ‘왜 새삼스럽게 다시 묻냐’고 하면 ‘확실하게 물어보려고 그랬지’ 할테고, 수자의 마음을 꿰뚫은 우리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 집에 가까워지고, 노래방 못 가 환장한 사람 없으니까 어정어정 각자의 집으로 가게 된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러면 노래방 건은 자기가 거절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의견이 되는 것이다. 수자는 의향이 분명할 땐 절대 두 번 묻지 않는다. 아까 칼국수집 갈 때처럼.
수자의 오늘 대답은 흔쾌하지 않았다.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
‘이유를 대고 산뜻하게 거절하면 어디가 덧나나?’
수자가 늦으면 수자 어머니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신다. 물론 마흔이 다 된 나이에 통금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어머니는 어머니 마음으로 딸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고, 수자는 그게 불편한 것이다. 전화를 하면 물론 오케이다. 걱정하지 않고 볼일을 보거나 주무실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수자는 병적으로 그런 전화 하는 걸 꺼린다. 늦는 날은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정말 전화하기 싫어하는 티가 역력한 날은 수자의 입장에 맞춰주었다. 이유를 말하지 않을 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우린 알아서 계획을 취소한다. 그냥 눈치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수자는 아마도 그걸 의견 수렴이라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늘은 수자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 줌으로써 이 판을 깨고 싶지는 않다. 벌써 보름이나 학교와 병원만 오갔을 소형의 제안이 더 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번번이 그랬다. 불분명한 반응만 보고도 소형이든 누구든 선수 치듯 이유를 대서 ‘수자 너 때문에’라는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아무도 탓하지 않을 책임을, 수자는 큰 명예나 지키듯 지키려고 혼자 꿍꿍 애를 썼다.
내 몸에서 풍겨 나오는 냉기를 느끼는지 수자가 헛기침을 했다. 생각을 바꿔먹었다는 증거다. 상황 판단이 이제 되었나 보았다. 운전을 하면서 자꾸만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내 안색을 살폈다. 난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수자의 눈길을 피해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마음이 정해진 수자의 운전은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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