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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가 다 되어 운문사로 향했다.
오늘은 석가 탄신일, 그리고 휴일이다.
불명도 없는 엉터리 신도인 우리는 오늘 같이 절이 붐비는 날은 조용한 저녁 때 절에 간다. 작년에도 그랬다. 남들이 돌아오는 저녁 무렵에 절에 가는 정말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설마 엉터리 신도인 우리가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서? 물론 그것도 아니다. 법고 치는 의식이 우릴 이끄는 진짜 이유다.
그 시간에 가야만 짙어 가는 산그늘을 배경으로 범종을 울리고 법고를 치는 스님들의, 그야말로 정중동의 장엄함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거름에 고요한 숲으로, 하늘로, 두둥두둥 퍼지는 법고 소리는 가슴을 울리고 영혼을 흔드는 마력이 있다.
그리고 초파일에 꼭 절에 가야하는 또 다른 이유.
바로 연등 점등식.
어두워지는 절 마당에 아른아른 새벽꽃처럼 피어나는 연등.
그 불빛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조용하지만 찬란한 슬픔과 기쁨이 있다.
병원 앞에서 소형을 마지막 손님으로 싣고 수자는 본격적으로 속력을 낸다. 경산쯤만 가도 공기가 다르고 운문댐 건설로 산중턱으로 난 도로를 달릴 땐 열린 창안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산골의 물처럼 달콤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소형이 코가 시원해졌다고 소리쳤다. 늙으면 전원주택에서 살아야한다고, 늘 하던 소리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운문댐 물은 엄청나게 줄어 있었다.
물이 찰랑이던 산기슭이, 낮아진 수위로 바리캉으로 밀어버린 머리처럼 허연 흙을 띠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비가 너무 오래 동안 오지 않았다. 지난겨울에도 눈다운 눈을 구경하지 못했다. 비가 적은 지역에는 눈도 적은지, 눈이 풍성하게 내리는 곳은 아니지만 지난겨울처럼 그렇게 눈이 오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물이 말라버린 댐 바닥에 아직도 경계가 선명한 논밭과 집터, 그리고 차가 달리던 도로가 드러나 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 도로는 전에 우리가 운문사를 갈 때 달리던 도로의 한 부분일 것이다.
운문댐이 만들어지기 전,
지금은 수몰된 그 마을은 참 아름다웠다.
산굽이를 돌고 돌아 닦여진 도로를 따라 달리면, 감나무에 둘러싸인 마을들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사라졌고, 구획정리가 안 된 구불구불한 흙두덩이로 경계를 둔 논과 밭에는 정성과 땀으로 가꿔진 채소와 곡물이 철따라 다른 색으로 곱게 자랐다. 조용한 도로를 따라 달리면 마을의 처마와 감나무 가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스쳤다. 댐이 없었을 땐, 운문사보다 운문사로 가던 그 길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산이 깎이고 어느 날 마을로 연결되던 길이 끊겼을 때의 그 당혹감.
늘 말끔하던 까만 콜타르 도로는 흙과 먼지로 더럽혀진 채 잘려 있었다. 길 저쪽으로 보이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그 마을을 멀리서 보기만 하고 차를 돌려야했다. 산 중턱까지 높아진 도로를 따라 달리며 마을을 내려다보던 난, 친구들 몰래 눈물을 좀 흘렸었다.
그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기기 전까지,
차츰 폐허로 변해가는 과정을 난 보았다.
빈집이 생기고,
더 이상 차가 달리지 않는 도로엔,
도로를 가로지른 진흙 묻은 경운기 바퀴 자국과 발자국이 덮여갔고,
채소와 곡물이 자라지 않는 논밭이 늘었고,
마을을 덮었던 초록이 줄었다.
벼 수확기 때쯤 되어서 그 해 마지막으로 운문사엘 갔을 때였다.
덩그렇게 올라앉은 도로를 달리며 처참하게 무너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을은 폭격을 맞은 것 같았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저렇게 폐허가 될 수 있구나.
마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려앉은 지붕이며 얽혀있는 기둥들.
잡초로 뒤덮인 경계가 모호한 논밭과 마당.
마을은 죽어 있었다.
그런데,
텅 빈 줄 알았던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순간 호흡이 멎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보았다. 분명 사람이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어지러운 주변과 너무나 다른, 사람의 손길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웅변하는 듯한, 잘 자란 누런 벼 속에서 낫질을 하고 있었다. 폐허 속의 낫질, 가슴이 콱 막혔다. 쓰레기 더미 속에 핀 장미를 보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할아버지가 거두어들이는 저 곳에서의 마지막 양식. 늘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이 지겹다 하지만, 일상의 단절이 던져줄 공포감과 허무함에 비하면 지겨움은 가벼운 감정일 것 같았다. 저 할아버지는 추수가 끝나면 그 곳을 떠날 것이다. 할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나는 창문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멀어지는 논을 돌아다보았다.
할아버지의,
망망대해 속의 한 점 섬 같은 논을.
운문댐을 지날 때마다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드러난 댐 바닥엔 할아버지도 없고, 잡초도 없고, 집의 형태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호미로 파고 쟁기질을 하던 논밭과, 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을 길의 흔적은, 곧바로 마을 사람들을 되살리고 감나무들을 자라게 하고 밭에는 푸릇푸릇 채소를 가꿔냈다. 나는 그 땅이, 공기가, 마을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오랫동안 생명이 머무르던 자리가 갑자기 無로 돌아가는 덴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병으로 오래 자리 보존했던 아버지가 누워있던 자리를, 항상 아버지가 누워있다는 착각에 그 곳을 선뜻 밟고 다니게 되지 않았었다. 키우던 개가 어느 날 나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때, 누가 봐도 죽었음이 분명할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도, 드나들 땐 개 집 쪽을 돌아보게 되고 개가 잘 앉아 있던 자리를 피해 디디고 다녔다. 처마를 덮던 나뭇가지가 베어지고 난 뒤에도 상상 속에 그 가지를 달아주고, 감나무에서 감을 다 따고 난 뒤에도 자꾸 가지 끝에서 감을 찾게 된다.
저수지의 드러난 바닥과 도로의 높이가 비슷해지면서 마을의 흔적은 끝났다. 내 상상도 끝을 맺는다. 나는 옆 창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길은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