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애 돌이라고 온 집안에 초대장을 돌렸더라. 폼 잡을 일은 얼마나 잘 찾는지. 집안이 뭐 그리 번성하다고 초대장까지 찍어 부쳤는지 몰라. 사흘이 멀다 하고 얼굴 보고 지내지, 멀리 사는 것도 아니지, 전화 한 통이면 되는 거 아냐? 그것도 한 집에 한 장씩만 부쳤다면 또 모른다. 아버지 앞으로 한 장, 어머니 앞으로 한 장, 내 앞으로도 따로 부쳤더라. 주소 적은 글씨체 보니까 삼촌 글씨는 아니고, 통 큰 척 폼 잡는 셈치고는 글씨는 쪼잔하거든. 또 숙모 괴롭혔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숙모가 좀 일이 많니? 분명히 애들 다 잠든 밤에 눈 비벼가며 적었을 거라고. 안 봐도 비디오지.>

  <그랬겠지.>

  소형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네가 왜 한숨이니?>

  내가 핀잔.

  소형은 돌아보고 빙긋 웃고 수자는 들은 척도 않고 하던 이야기만 계속한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좋았다. 초대장 받고 다음날인가, 그 다음날인가 숙모한테서 전화가 왔더라. 어머니가 받아서 나를 바꿔주며 숙모다하셔. ‘숙모가 나를 찾을 일이?’ 내가 그런 표정이었는지 어머니도 무슨 일인데 널 다 찾네. 내가 물어도 웃기만 하면서 바꿔 달래네?’하며 수화기를 건네주시네. 숙모가 날 직접 찾는 일은 처음이었거든. 통화야 많이 했지만 그건 어머니나 아버지 찾는 전화 내가 받았을 때, 바로 바꿔주지는 못하고 인사로 몇 마디 나눈 경우고.>

  <그래서?>

  내가 재촉했다.

  <전화를 받았는데 인사를 하더니, 머뭇머뭇하고 말을 잘 못해. 내가 딱 집히는 게 있어서 삼촌이 뭐 곤란한 거 시키셨어요? 괜찮아요. 말해보세요.’했지. 부정을 안 하더라고. 역시 맞구나 싶었어. 그런데 이 번에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더라. 도대체 숙모까지 대동해서 나한테 할 말이라는 게 뭘까 하고 말이야. 나는 답답해 죽겠는데 숙모는 입을 못 떼. 그래서 무슨 일인지 괜찮다고, 숙모가 전화했을 땐 안 할 수가 없어서 했을 텐데, 삼촌 성격 다 아니까 걱정 말고 이야기하라고 했지. 너희도 들어보면 기가 찰 거야.>

  <알아야 기가 차지. 이야기나 계속해.>

  긴 서두에 짜증이 난 내가 수자를 몰아세웠다.

  <알았어.>

  수자의 목소리가 약간 퉁명해졌다.

 

  겪을 당시엔 화가 얼마나 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수자는 두고두고 화를 곱씹는 성격이 아니다. 분노는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말하는 재미에 열중해있었다. 집중해 있는 우리의 눈들을 즐기며 사건을 천천히 즐기려는 데 내가 초를 쳐서 기분이 심드렁해진 것 같았다. 미경이가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웃고 소형은 나를 보고 혀를 차는 시늉을 했다.

  <궁금하다. 빨리 계속해.>

  소형이 수자 쪽에 바짝 붙어 앉으며 어깨로 수자를 밀었다. 아직 어두워진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수자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자의 표정은 장담하건대 일 분 안에 풀릴 것이다.

  <몇 번이나, 화내지 마세요, 하더니,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이렇게 말해. ‘삼촌이 돌잔치 음식 준비하는데 아가씨 오셔서 음식 하는 것 좀 도우라고…….’ 여기까지 듣다가 난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하고. 숙모는 잠시 조용하더니 말까지 더듬거리며 아가씨 시집가려면 신부 수업 받아야 한다고, 음식하는 거랑 차리는 거 보고 배워야 한다고, 와서 일도 거들고 저보고 가르치라고. 내가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그 이 막무가낸 거 아가씨도 아시잖아요. 며칠을 버텼는데 어제는 와서 내가 아직 전화 못했다고 하니까 소리 지르고 집어던지고, 무서워서. 아가씨 미안해요.’ 하면서 나중엔 울먹이더라.>

정말 색다른 사건이기는 하다.

  미경은 입을 벌리고 바보처럼 앉아있고 소형은 맥없이 웃기만 했다.

  <일이야 내가 왜 못 도우겠니. 힘 있겠다. 시간 자유롭겠다. 숙모가 정말 도와 달래면 날아서 가지. 그런 부탁할 숙모도 아니지만.>

 

  정말 재밌는 삼촌이다.

  신부 수업이라고? 삼촌이 장가들기 전 신랑 수업을 받았다는 소린 듣지 못했다. 신랑 노릇은커녕 사람 노릇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신랑과 살아내는 데 필요한 수업이 신부 수업인가? 그렇다면 그건 이해가 된다. 삼촌의 신부 노릇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얼마나 재미있는 발상인가. 여자에게는 학교 수업 외에 받아야 할 수업이 또 하나 있나니, 그게 일명 신부 수업이라. ‘엄마 수업’ ‘주부 수업도 아닌 신부 수업’.

  나는 피식 웃었다.

  하긴 신랑 수업이 부재한 이 나라에, 婦德은 있어도 夫德이란 건 없는 이 나라에서 신부 수업없는 결혼 생활의 유지는 힘이 들기도 하겠다. 어느 한 쪽이라도 밥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청소와 빨래하는 법, 더 나아가 남녀에 대한 온갖 편견들을 감수할 참을성을 배우지 않으면 그 망나니 같은 삼촌과의 동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신부 수업이란 발상이 신랑 수업이 전혀 안된 삼촌 같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올 법도 하다. 망나니도 살기는 살아야 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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