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소형아, 나 하나 물어볼 거 있다.>
<뭔데?>
<너 왜 자꾸 옷 사 주는데? 그 옷 입은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소형이는 왜 자꾸 내 옷을 사주고, 나는 왜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받아 입었을까, 하고 말이야.>
<친구한테 옷 선물하는 게 뭐가 이상하다고?>
<선물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지. 근데 그게 꼭 그래야 되는 것처럼, 말하자면 부모가 자식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하듯이 여러 번이니까 그렇지. 생일도 아니고. 너는 또 그렇다 치고 나는 왜 그 동안은 이런 생각이 한 번도 안 들었냐는 거지. 당연한 듯이 받았던 것 같애.>
<글쎄, 듣고 보니 좀 그렇기도 하네. 그냥 내가 시장이나 백화점 자주 다니니까, 사이즈 작은 옷 보면 네 생각나고, 그러다 예쁘겠다 싶으면 사게 되더라. 그렇지 뭐.>
<수자나 미경이 옷은 안 사잖아?>
<걔들이 입을 만한 옷이면 할인 할 때까지 남아 있는 게 잘 없지. 넌 워낙 치수가 작으니까. 옷 찍어놓고 세일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걔들 치수는 제일 잘 나가는 치수야. 네 사이즈는 그래도 남아있는 게 많은 편이고. 적은 돈으로 좋은 옷 고르는 맛이지 뭐.>
<정말 치수가 작아서만일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은데?>
난 대꾸 없이 웃었다.
<단비야.>
소형이 정색을 하고 나를 불렀다.
<왜?>
<난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돈 싫다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 돈으로 내가 큰집을 사고, 보석을 사고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주변에 도와주고 싶은 사람, 하여튼 꼭 필요한데 돈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런 걸 쓱쓱 해결해 주고 싶어. 주제넘게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몰라. 너한테는 옷을 사주고 싶고. 너 다른 건 몰라도 옷 욕심은 장난 아니잖아? 엄마는 시설 좋은 병원에 입원시켜주고 싶고, 할 수 있으면 미경에게는 집도 사주고 싶어.
미경이 그 기집애, 마음 좋아 돈 못 모으잖아. 평생 월세 못 면할 거야. 지금은 부모 살아 계시니까 모르지. 아직 쓸쓸한 걸 몰라요. 부모 돌아가셔 봐.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동생들이 모른 척 안할 거라 하지만, 그래도 십 수 년 선생해서 집 한 칸도 없다면 믿겠어?
지 돈이 엄마 돈이고 엄마 돈이 지 돈이라며 마구 퍼붓는데, 그건 부모 살아 계실 때 얘기고, 부모 돌아가시면 형제자매 돈은 각각 다른 가정 소속이지 공동 소유가 될 수가 없어. 제 가족을 가진다는 건 그런 거거든. 나중에 아무리 그 동안 부모 집에 들어간 거 따져본들, 일일이 본 사람이 있나. 속속들이 알아줄 사람이 있나. 그냥 헤프게 살았다 생각할 걸?
자식도 없고, 결혼 생각도 없는 주제에 그렇게 돈이 없어 어떡하려나 몰라. 노후 대책도 없이. 물론 자식이 노후 대책은 아니지만……. 수자야 뭐 돈 걱정은 없는 애니까.>
<소형이 너 희귀한 콤플렉스 갖고 있는 거 아니? 그러니까 네가 부자가 못되지. ‘모아서 누굴 주겠다’는 마음으로 백만장자가 되겠니? 옆도 안 돌아봐야 돈이 모이지. 그렇게 주변을 휘휘 둘러보면서 갑부는 무슨 갑부.>
<그런가?>
<백만장자 될 인물은 따로 있지. 억만금을 물려받았거나, 자린고비라고 주변에 소문이 날 정도로 돈 모으는 데 억척이거나……. 하나 더 있긴 하네.>
<뭔데?>
<운이 대통해서 복권에 당첨되거나. 네 운이 얼마나 대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하여튼 헛소리하는 걸 1초도 그냥 못 듣고 있다니까.>
<돈 벌려면 장사가 최곤데, 너 옷가게 열지. 옷 장사하면 내 옷은 네가 알아서 갖다 놓을 거 아냐? 정말 생각만 해도 신난다.>
<너도 헛소리 하니? 돈이 있어야 하지. 가게는 손바닥에다 차리니? 너답지 않다. 하나마나한 소리도 하고.>
조용필이 죽어라 같은 노랠 부르고 있다.
잠이 왔다.
침대에 기대어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침대 위였다.
베란다로 스며드는 햇살은 맥이 빠져 있었다.
일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소형은 또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