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면을 싫어한다.
보고 있으면 무섭다. 감정을 볼 수 없는 소형의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감정이 없다는 건 사랑이 없다는 거고, 사랑이 없으면 측은지심이 있을 리가 없고, 측은지심이 없는 마음에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있을 리가 없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데서 온갖 잔인한 일들이 저질러진다고 나는 보고 있다.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표정 없는 인형들.
가면을 쓴 변태 성욕자들.
영화에서 보는 로봇 인간.
어떤 잔혹한 장면이나 공포스러운 상황에서도 변화를 전혀 읽을 수 없는, 그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가면의 표정이 내겐 너무도 끔찍하게 다가왔다.
<왜?>
여전히 맹한 표정으로 소형이 물었다.
나는 눈으로는 소형의 표정을 읽으려 애쓰며 입으로는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네가 사준 옷 예쁘더라고.>
<아, 그래.>
영혼 없는 대답만 남긴 채 소형은 얼굴을 돌렸다.
말문이 막혔다. 짧은 답을 예상하고 한 말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끝나버린 답을 이을 말은 준비 자세도 취하지 않았다. 때문에 입술이 붙어버리고 만 나는 소형의 옆얼굴을 보았다.
날카로운 콧날이 앞을 향한 채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굳어 보였다. 상당히 높은 콧대였다. 코가 저렇게 높았나? 속으로 감탄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가 꼼지락거리며 무릎을 한 번 비비고 발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소형을 볼 때까지 소형의 콧날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앞을 보고 있었다.
목석같이 앉아 있는 소형이 낯설었다.
난 좀 불안해졌다.
불안함이 나의 이성에 흠을 내고 있었다. 소형의 감정을 읽지도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말을 잇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는 건 내 방식이 아니다.
<학교 선생들이 다 예쁘다고, 어디서 샀냐고 난리 났었어. 장선생이 너 소개 좀 시켜 달래. 자기도 덕분에 날개 좀 바꿔보자고.>
그런데,
마구 지껄인 내 말에 소형이 감정 섞인 대꾸를 해왔다.
<날개?>
말끝을 올리며 의문의 표정으로 돌아보는 그 얼굴이 얼마나 반갑던지. 나는 신이 났다.
‘상대의 감정 담긴 표정에 이렇게 엎어지며 좋아하다니. 좋아하는 표정도 아니고, 기뻐죽는 표정도 아니고, 기껏 의아한 표정 때문에 내가 왜 이러지?’ 라는 의문은, 마음을 얻으려고 아양을 떠는 첩처럼 한참이나 떠들고 난 뒤에나 들었다.
<옷이 날개라잖아. 네가 골라주면 스타일이 확 바뀔 거라고 믿고 하는 얘기지. 너 정말 다르더라. 나 같으면 그런 옷 선택 못 했을 거야. 전공이 무섭긴 무섭다. 어떻게 반짝이 들어간 옷을 살 생각을 했니? 난 반짝이 하면 밤무대에서나 입는 건 줄 알고 있었거든.>
소형이 픽 웃었다.
소형의 코에서 나는 바람 새는 듯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내가 입을 닫은 방 안.
잠깐 동안 아무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폭풍우 속에 있다 갑자기 닫힌 공간으로 뛰어든 것 같았다. 잠시 후, 멍한 귀 속으로 노래가 밀려들어왔다. 그가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전원을 꺼지 않는다면 영원히 부르고 있을 그 노래를. 도대체 몇 번이나 돌아갔을까.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옷 하나 얻어 입고 아부가 심하다?>
소형의 얼굴이 내가 알던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부로 들려? 내가 언제 아부하는 것 봤어? 마음에 없는 소린 못 하는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소형의 모습이, 나를 평소의 신단비로 돌려놓았다.
<그래, 넌 마음에 있는 소리만 해서 탈이지. 하고 버릴 말이라도 헛소린 안 하니까.>
<어째, 비난으로 들린다.>
<그렇게 들려도 할 수 없고. 네 친구 오래 하다 보니까, 나도 마음에 없는 소린 못하게 됐나 봐.>
이건 또 무슨 소리?
그 다음은 이게 아닌데?
난 미심쩍은 눈으로 소형을 쳐다보았다.
<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니? 하여튼 너한텐 쉰 소릴 못한다니까. 조금만 방심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난 절대로 기분 상해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니까. 봐, 금방 공격당하잖아.>
소형이 부덕 높은 중전 같은 어진 미소를 짓고 있다.
<옷이 예뻤다고?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도도하신 신단비 친구신데. 아무나 단비 친구 하나? 나중에 갑부 되면 예쁜 옷 더 많이 사 줄게.>
꼭 이런 식이다.
지금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되는 판인가 말이다.
소형과 벌이는 티격태격은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삐지기’와 소형의 ‘달래기’로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