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소형이 앞머리를 옆으로 쓸며 묻는다.

  <오빠 바꾸라고.>

  <, 그렇지? 역시 똑똑해. 듣는 태도 아주 좋아.>

  그 말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할 기분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소형의 눈빛이 그랬다. 웃음기가 하나도 없었다.

  <새언니 별 말없이 오빠 도로 바꾸더라. 다짜고짜 엄마 누운 채 똥 쌌다고 했지. 좀 놀라긴 하더구만. 그렇게 심하냐고. 몰랐다고. 병세가 늘 그렇고 그러니까 바쁠 건 없다 싶었다고. 또 하필 결혼기념일이라서 그렇게 됐다고. 그런데 그 다음 말이 기운을 쑥 빼놓더라.>

  <......>

  < ‘오늘 대변 봤으니까, 오늘은 괜찮겠네.’ 하는데, 그 말 듣는 순간 왜 그렇게 힘이 빠지든지. ‘큰일 났네.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 네가 정말 큰 고생했구나.’ 뭐 이런 말을 기대했었나봐. 참 웃기지. 같은 일이 그렇게 다르게 인식되다니. 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큰일이었는데.>

  <입원은 언제 했어?>

  <어제 낮에. 그것도 어제 아침에 내가 또 한바탕 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그냥 그러고 있었을 걸?>

  <어제까지 오빠는 안 오셨단 말이야?>

  <아니, 그 다음 날, 결혼기념일 다음 날이지. 점심 때 오빠가 왔더라.>

  <새언니는?>

  <몰라. 안 물어봤어. 언니는 생각도 안 나더라. 나는 빨리 입원이라도 시키고 싶더라고. 있던 병은 그렇다 치고 허리 아픈 건 다른 병일지도 모르는데, 허리라도 나아야 엄마도 그렇고 나도 살 거 아니니? 나는 오빠가 먼저 입원시키자고 할 줄 알았어. 업든지 들든지 해서 차에 태워도 태워야 되는데,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잖아. 오빠 온 김에 내가 당장 입원시켜 진찰 받아보자 했거든. 그런데 나만 급하지, 오빠는 한 다리 건너에 서 있더라. 점심시간 빼서 잠깐 나온 거라 금방 들어가 봐야 된다고, 며칠 있어 보자나? 혹시 저러다 괜찮을지도 모르지 않냐고. 실망은 됐지만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고, 내가 너무 수선을 피웠나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다시 대변을 보고 싶다 하면 어쩌나 걱정은 됐지만, 할 수 없이 그러자 하고 오빠를 보냈지.

그 전날 열 낸 거에 비하면 너무 싱겁게 끝냈지?>

  <용변은?>

  <그래, 그렇게 오빠를 보내는 게 아니었어. 하루 밤 불안하게 자고, 그러니까 바로 어제지. 어제는 아침부터 시장 갈 일이 있어 서둘렀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천 뜨러 가는 걸 계속 미뤄두고 있었거든. 빨리 아침 해먹고 천이라도 구해 놔야지 싶어 마음이 급했어. 밥이 소리 내며 끓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급한 목소리였어.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볼일인지 알겠더라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데 벌써 냄새가 나. 밥 냄새랑 섞이니까 정말 야릇해서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다. 처리할 생각보다 오빠에 대한 원망이 앞서더라. 가슴은 뛰고 이마는 싸늘하게 식어. 오빠에게 전화부터 했어. 출근하려던 길이라 난처해하더라. 잠시 안 된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유하게 나가면 또 미뤄지겠다 싶어 단호하게 나갔지. 힘에 부쳐 혼자서는 뒤처리 못 하겠으니까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누군 놀고먹는 사람이니? 바쁜 건 마찬가진데. 그래도 오빠가 금방 대답을 안 해. 그래서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굴면 나도 생각이 있다고 협박했더니 온다고 하더라.>

  <무슨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은, 그냥 해 본 소리지. 그리고 계속 그대로 나가면 나 밥줄 안 끊어지란 법도 없어. 강의 있는 날 갑자기 그래 봐.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이 어떻게 계속 세월만 보내?>

  <뒤처리는? 또 혼자 했겠네.>

  <그랬지. 어떻게 기다려. 참 경험이 무섭대. 처음 보다 훨씬 낫더라고.>

  <오빤 바로 오셨고?>

  <, 작정하고 왔는지, 오자마자 병원 갈 채비하라고.>

  <병원에서는 뭐래? 얼마나 있어야 되는데?>

  <허리 아픈 건 디스크 같다고, 다른 병도 있으니까 일단 입원해서 물리치료 받아보고 수술을 하든지 그건 봐가면서 결정하자고. 입원은 잘한 것 같아. 근육 마사지도 받을 수 있고.>

  <병원엔 어머니 혼자 계셔도 돼?>

  <어림없어. 보호자 당연히 있어야 되지. 아니면 사람을 쓰든지.>

  <그것도 보통일 아닐 텐데.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닐 거 아냐.>

  <글쎄, 안 그래도 답답해. 거의 내가 있어야 될 거 같아서. 서울 언니들도 하루 이틀이야 어떻게 해보겠지만 길어지면 곤란하겠지. 새언니들도 벌써 밤에 혹시 있으랄까봐 조카들 아침 걱정, 학교 보낼 걱정을 얼마나 하든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난 이제 집에는 돌봐야 될 사람 없잖아. 아침 챙겨 줄 일도 없고. 사람을 구하든지 뭔가 결정날 때까진 밤에는 내가 있는 수밖에 없어.>

  <그럼 낮에는?>

  <모르겠어. 그것까지 생각하기 싫어. 밤은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 낮에는 의논해서 알아서들 하라고 하고 왔어.>

소형은 비어있는 커피잔을 들고 일어났다.

  <내려와. 편하게 앉자.>

 

  빈 잔을 개수대에 담그고 바닥에 앉으며 소형이 말했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소형과 나란히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의자 높이만큼 들려있던 마음이 방바닥에 내려앉자 그만큼 놓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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