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밥 남았는데.>
<어째 더 먹고 싶지가 않네.>
<정말? 왜? 밥 남아 있는 꼴 두 눈 뜨고 못 보잖아.>
<두 눈 뜨고 못 볼꼴이 어딨어. 별꼴을 다 보는데. 나도 이제 너처럼 살란다. 배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억지로 먹지 말자. 네가 늘 그랬잖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나 배속에 버리는 거나 뭐가 다르냐고. 너도 다 못 먹겠으면 그만 먹어도 돼.>
<왜 그래?>
나는 밥이 담긴 숟가락을 든 채 소형을 바라보았다.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다. 소형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얼굴을 돌리며 일어났다.
<커피나 마시자.>
얼굴을 냉장고에 묻은 채 소형이 말했다.
나는 숟가락에 뜬 밥을 입으로 가져가 맨밥을 씹었다.
그리곤 숟가락을 놓았다.
찌개는 그대로 남은 채 식어가고 있다. 그녀가 남긴 밥과 함께.
소형은 커피가 든 통을 꺼내어 싱크대로 갔다.
그리고 전기포트에 물을 붓고 전원을 눌렀다.
서랍을 열어 거름종이를 꺼내고 커피 가루를 두 스푼 담았다.
그리고 물이 끓는 걸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얼굴은 한 번도 식탁 쪽으로 향하지 않았다. 완강하게 눈앞만 향해 있었다. 애써 내 눈을 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무슨 일일까.
어머니 일이겠지.
이젠 병원에 계시게 되는 걸까.
좀 편하게 된 건가.
힘은 들었지만 마음이 좋을 리 없겠지.
내가 봐도 빈 침대가 허전한데.
나는 묻지 않고 기다렸다. 말을 하고 싶으면 묻지 않아도 할 것이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이라면 묻는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라면 물어서까지 듣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소식이든 소식에 목말라 한 적은 없다. 세상일이라는 게, 정확하게 말해서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알아서 더 시원해질 일이 별로 없다.
커피가 다 되면 눈물을 거두고 무슨 얘기든 하겠지.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면 잡담이라도.
잡담 속에 하고 싶은 이야길 양념처럼 섞어서.
소형이 내 앞에서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는 걸 아직 본 적이 없다. 자기는 울면 얼굴이 흉하게 구겨진다고, 자기가 봐도 보기 싫다며 절대 남 앞에서는 울지 않는다나. 나는 그 말을 듣고 깔깔 웃었었다. 디자이너의 미적 감각은 울 때도 작용을 하나 봐? 하고.
나는 소형 앞에서 우는 일이 많다. 울 일이 있으면 일부러 소형을 찾아와 울기도 했다. 사람에게는 울음을 보여주고 싶은 상대가 따로 있나 보았다. 달래는 것도 보고 있는 것도 싫어 신경질적으로 울음을 그치게 만드는 사람도 있으니까.
소형도 나처럼 울음을 보여주고 싶은 상대가 있을까.
있다면 누굴까.
우습게도 소형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상대가 없다 해도 적어도 내가 그런 상대, 응석을 부리고 싶은 상대는 아닌 게 분명했다. 내가 느끼는 소형과 소형이 느끼는 나는 많이 다른지 모른다. 나는 소형에게 어머니나 아버지의 관대함을 느낀다. 그 관대함을 어떤 때는 느긋하게, 어떤 때는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누린다.
소형은 내게 무엇을 느낄까.
어떤 면에 기대고 있을까.
나는 그녀에게 어떤 그늘이 되어주고 있을까.
나는 장난으로도 흘릴 수 있는, 앞 뒤 맞지 않는 말을 참아내지 못한다. 소형이 아무 생각 없이 흘린 말에도 반드시 ‘수정’ 시비를 붙는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꿀꺽하고 삼킬 참을성도, 말없이 받아주는 소형에게 내 참을성은 이성을 잃는다. 어쩌면 소형은 내가 그녀의 울음도 참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우는 사람 싫고 우는 사람 보는 것도 싫다’고. 그러고 보니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인물인가. 소형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입으로는 ‘우는 사람 싫다’는 말을 그렇게 천연스레 내뱉었으니.
신단비, 그런 네가 정말 더 싫다.
인격이 의심스럽다.
반성해라.
그래, 머리 숙여 깊이 반성한다.
혼자 대사를 주고받으며 픽 웃었다.
<혼자 왜 그래?>
소형이 커피 잔을 내 앞에 놓았다.
아뿔싸, 들켰구나. 상상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대사는 안 들렸을 테니 말이다. 혼자 웃고 있었던 건 좀 그렇지만.
<와, 냄새는 정말 좋다.>
영혼을 까무러치게 하는 향이었다.
소형은 눈물을 거두고 늘 보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네가 조선시대 며느리냐. 울면서 커피 만들고.>
<조선시대 며느리보다 나을 것도 없다. 요새 같으면……. 커피 어때?>
<끝내주지 뭐.>
<끝내주면 뭘 하냐. 남길 거면서.>
<딩동댕.>
<안 먹으면 안 먹었지 그걸 먹는 거라고. 넌 어째 혀를 담그다 말면서도 그걸 먹는다고 하니?>
<한 모금만 먹고 싶은데 어떡해. 사람마다 주량 다르듯이 커피량도 다른 거야.>
<갖다 붙이기는……. 정말 맛은 있는 거니?>
<그럼, 어디 한 두 해 뽑아 본 솜씨니? 너 다른 사람 원두가 뭔지도 모를 때부터 커피 사치는 부렸잖냐.>
소형은 흐흠 코웃음을 웃었다.
<그렇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커피는 까다로워. 절대 포기도 양보도 못할 품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