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독립을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제일 걱정한 것도 밥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과한 걱정이 독립을 힘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난 남동생이 결혼을 하면 바로 독립을 하려고 했다.
동생이 결혼 날짜를 받은 날.
처음으로 독립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닌 펄쩍 뛰었다. 안 되는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오직 밥! 자식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 어머니에겐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인 것 같았다. 아니 다른 목표는 애초에 없는 사람 같았다. 물론 나는 수천 번 더 밥을 잘 해 먹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은 다른 이유를 들이대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굳이 그런 감정을 어머니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머니껜 내가 딸이지만 새사람에게는 시누이고, 요즘 시부모와 같이 산다고 하는 사람도 흔치 않은데 시누이까지 말이 되냐고, 입장을 바꿔 보라고. 내가 시집갈 곳에 결혼 안한 시누이가 같이 산다면 좋겠냐고.’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며느리가 들어와도 살림은 내가 한다. 그건 며느리가 살림할 때나 해당된다.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있으면 일 많다고 싫어한다는 말 아니더냐. 하지만 살림은 내가 맡아 할 텐데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냐. 너는 엄마 밥 얻어먹는 거지 동생댁 밥 얻어먹는 거 아니니 하나도 어려울 거 없다.’
강력했다.
나는 어머니 때문에 일단 주저앉았다.
그러나 며느리를 맞이한 우리집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일은 예상했던 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었다.
남동생과 나의 출근 시간은 비슷했다.
어머니는 마음 놓고 나의 아침 뒷바라지를 할 욕심으로 서둘러 부엌을 차지하려 했고 동생댁은 동생댁대로 ‘시집살이라는 게 이렇다.’고 들은 대로 잘해보려고 아침을 서둘렀다.
두 사람이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손에 익은 어머니가 주도권을 잡게 돼 있었다. 그래서 동생댁은 그저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수저를 놓고 반찬 접시를 날랐다.
남동생과 내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계속 반찬을 만들고 우리가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분주했다. 시어머니가 그러고 있으니 며느리도 앉을 수가 없고 참 묘하게도 나는 서 있는 동생댁에게 미안한 신세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