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피곤한 날은 꼭 몸도 피곤하다.

 피곤한 꿈 때문에 몸이 고단한 건지 고단했기 때문에 꿈이 피곤한 건지, 어느 게 먼저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정말 먼 거리를 뛴 것처럼 다리가 무거웠다.

       

  '소리를 내며 오른쪽으로 돌아누웠다.

  다시 잠들 때를 대비해서 미리 돌아누워 있는 것이다. 같은 자세는 꾸던 꿈을 계속 꾸게 한다는 속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벽이다. 벽을 보고 있으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서 덜 성가시다.

  스님들이 그래서 벽을 보고 앉아서 수행을 하는 건가?

  눈이라는 게 워낙 사교성이 좋아서 보이는 것마다 꼭 생각을 하나씩 물어낸다. 그래서 보이는 게 많으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잠들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벽 쪽으로 누우면 금방 잠이 드는가?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벽을 보고 누워 두 세 시간씩 시간을 보내며 잠을 놓쳐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굳이 잠을 청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다음날 출근이 기다리고 있는 한밤중도 아니고, 자고 싶으면 하루종일이라도 잘 수 있는 일요일이다. 그냥 잠자리를 떠나기 싫어서 뒹굴 뿐이다.

     

  혼자 살면서 좋다고 느낄 때가 이런 때이다.

  내 기분에 충실할 수 있으니까.

  입 떼기도 싫은 날 아침에 대꾸해줘야 할 상대가 없어 좋고, 울고 싶을 때 울음을 참느라 목이 아플 필요가 없어 좋다. 그냥 한없이 앉아 있고 싶은 날, 내 얼굴 쳐다보며 무슨 걱정 있냐고 물어 맥 빠지게 하는 사람 없어 좋고, 내 표정보고 내 마음 멋대로 추측하는 사람 없어 좋다. 상대 기분 맞추느라 표정 관리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오늘 같은 날,

 혼자 산다는 게 정말 좋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지?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좋은 걸 이렇게 많이 나열하면서 눈물을 흘리다니.

**

 

  집에서 독립하여 나오기 전,

  일요일 아침마다 어머니는 잔칫상을 차렸다.

  ‘평소엔 네가 바빠서 옳게 먹을 시간 없고, 일요일 하루라도 골고루 먹어야지.’

  잔칫상 앞에서 어머니가 노래삼아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리하여,

  아홉 시는 넘어야 먹을 아침을 위해 새벽부터 부엌에서 덜그럭거렸다.

  그 때 나는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을 보고 부담부터 느꼈다.

  그 가짓수 많은 반찬들을 한 번씩만 먹어도 배는 찰 것인데, 한 번씩 들어내서는 표도 안날 정도로 어머니는 손이 컸다. 안보는 척 하면서 내가 먹는 걸 보고 있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특히 아침에 밥 먹기가 괴로운 나로서는 일요일마다의 잔칫상 식사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 고역도 동생이 결혼을 하고부턴 동생댁 눈치 보는 고역이 되어버렸지만.

      

  많이 먹지도 않는데 제발 한 두 가지씩만 하라고 당부하면,

  ‘그런 소리 마라. 안 그래도 양 적은데 골고루라도 먹어야지. 한 번씩만 먹어도 열 가지면 열 번 먹잖냐.’

가 내 말문을 막아버리는 어머니의 주장이다.

  미안하고 황송한 마음이 한데 섞여 슬프기까지 했다.

  한 공기 소복하게 뜬 밥을 먹다가 먹다가 다 못 먹고 숟가락을 놓으면 어머니는 내 먹던 밥을 당겨다 드셨다.

 다 안 먹을 줄 알면서 왜 그렇게 많이 푸느냐고 하면,

 ‘사람 밥은 그렇게 뜨는 게 아니다. 남기더라도 복스럽게 담아야 나중에 잘 살지. 그래야 또 니가 밥 한 술이라도 더 먹을 거 아니냐. 혹시 아냐? 더 먹을 수 있는데도, 밥 적어 그냥 있는 대로만 먹고 숟가락을 놓을지.’

  그 말에 내가 어떤 대꾸를 할 수 있겠는가. 정말 할 말이 없었다.

  결국엔 아무리 반찬을 많이 하고 밥을 수북하게 담아 놓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먹고 도저히 못 먹겠다 싶으면 숟가락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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