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도 때론 힘들게 한다
‘나는 두부 장수가 싫어요.’
아무리 싫다고 소리치며 도망가도 두부장수는 딸랑딸랑 종을 흔들면서 따라왔다. 한복 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찢어진 밀짚모자가 얹혀 있었다. 분명히 두부를 안 산다고, 나는 두부를 싫어한다고 손까지 내저으며 말했는데도, 두부 장수는 표정도 없이 계속 두부가 얹힌 목판을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두부 목판에 밀려 뒷걸음치다 할 수 없이 뒤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달아나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목판을 묶고 있는 끈을 목에 걸고 한손으로는 목판을 단단히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속 종을 흔들며 따라오고 있지 않은가.
멈출 것 같지 않는 동요 없는 같은 자세로 나를 쫓는 사람.
갑자기 두부가 문제가 아니라 두부 장수가 무서워졌다.
푹 눌러 쓴 밀짚모자에 얼굴이 반이나 가려 표정을 알 수 없는 남자의 추적이 이젠 그 자체만으로 공포가 되었다. 남자는 빨라지지도 느려지지도 않는 속도로 따라오고 있었다. 그 사람이 영원히 그렇게 따라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않는 기계,
멈추지 않는 자동차,
멈추지 않는 세월.
저 사람은 영원히 뛰는 사람이다.
건전지만 넣어주면 ‘소녀의 기도’에 맞춰 뱅글뱅글 돌아가며 쉼 없이 춤을 추는 인형처럼.
이런 생각이 들자 무릎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난 무릎을 떨면서 멈춰서고, 그 다음엔 떨리던 무릎을 꺾고 고꾸라지듯 땅바닥에 앉아버렸다.
두부 장수가 내 앞에 와서 섰다.
나는 도망갈 힘이 없었다.
앞에 서서도 두부 장수는 내 머리 위에서 딸랑딸랑 종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쉬지 않고 종을 흔들어댔다. 귀가 아팠다. 손으로 귀를 막아도 소리는 작아지지 않고 점점 아프게 귀를 파고들었다.
나는 괴로워서 머리를 흔들었다.
잠을 깨서도 나는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꿈이었다는 걸 의식하고 난 뒤에도 흔들던 머리를 곧바로 멈출 수 없었다. 어지러웠다. 의식은 아직 꿈과 현실, 두 세계에 걸쳐져 있다. 다른 세계로 옮아가는 덴 시간이 필요했다.
드디어 머리가 베개 위에 얌전히 놓이고 의식이 또렷해진다.
천장에 달려있는, 전구가 박힌 튤립 모양의 전등갓이 눈에 들어왔다. 자명종이 울리고 있었다. 알람 때문이었구나. 왼손을 뻗어 방바닥을 더듬어 시계를 찾아 들었다. 여섯 시 반이었다. 소리를 죽이고 다시 방바닥에 시계를 내려놓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습관적으로 어제 밤 자기 전에 알람을 눌러놓았나 보았다.
머리 밑이 축축했다.
다시 꿈 생각이 났다.
나는 정말 두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콩을 싫어하고 콩으로 만든 음식들도 만찬가지다. 콩나물도 두부도. 꿈에서도 두부가 싫었다. 꿈속에서도 식성은 그대로라니. 그런데 웬 난데없는 한복? 두부 장수는 한복을 입었다. 한복이 그렇게 무섭게 보이다니, 두부 장수의 한복이 떠오르자 섬뜩했다.
나는 두부 행상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한복 입은 두부 장수라니, 그리고 그 찢어진 밀짚모자는 또 뭔가. 각설이 타령에서나 보았음직한 밀짚모자를 왜 두부 장수의 머리에서 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