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1 - 영원한 '지금'의 메시지 불멸 1
이각 지음 / 지혜의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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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중생들의 질문과 이각의 답변만으로 채워진 책이다. 물론 이각은 스님이니 질문은 불교와 삶에 대한 고민과 의문이며 그 답은 순전히 불교가 주는 해답이다. 불교 경전과 깨달음에 대한 책을 제법 읽었고, 더 이상 특별할 게 없을 줄 알았다. 다만 점수하는 자세로 수행하는 차원의 경전읽기라고 생각하며 책을 들었다. 그런데 그 답이 놀랍다.

 한 곳을 가리키는 법문은 흔들림이 없고, 답변은 명쾌하며, 지금까지 읽었던 법문과 다른 새로운 해설에 그대로 정신이 꽂힌다. 어쩌면 전혀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 2권에 걸쳐 끝없이 이어지는 데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나는 이제야 정말 참스승을 만난 것인가?

  정말 부처님의 말씀(불경)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시라고 권한다. ‘불립문자라 설명할 수 없고, 이심전심이라 말로 다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대답을 회피하는 법이 없다. 불경의 어떤 구절, 어떤 낱말에 대한 질문에도 자세하고 명쾌한 설명이 있고 그 설명들이 서로 얽혀 넘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경구에 대한 의문도 서로서로 풀어주며 이어져 있다.

 

 이각 스님 답변의 명쾌한 맛을 기억하기 위해 질문과 답변 하나를 그대로 인용해둔다.

 

2393.

<학교 공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저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중략)불교에서는 불도수행이 곧 공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부의 목적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긴 많은 잡념(번뇌)들을 없애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과학, 외국어 등입니다 저는 가끔 생각해봅니다. ‘과연 이것들을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저 수학문제나 국어문제를 풀고 틀린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이 막연함 속에서 결국 얻어지는 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저의 목적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어보려는 욕망일지도 모르고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그저 그런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어떤 목적으로 학교 공부를 해야 가장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스님의 의견을 여쭙니다.

 

<보편타당한 지식>

세상에서 몰라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는 독이 무엇인지까지 알아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학문이 진리를 아는 것과 상통하지 않는 것은 없다. 지금 이 글을 읽은 것은 국어를 배웠기 때문이고 여기서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소를 이야기할 때는 과학을 배웠을 것이라는 전제를 두었기 때문이다.

진리를 이야기할 때는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모두가 아는 보편타당한 이야기여야 한다. 그리고 설명하는 자의 입장이 된다면 만나는 사람이 천차만별이다. 이들 모두의 지식을 알아야 그들을 읽고 그들을 교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먹고살기 위하여 세상을 산다고 하여도 남들을 알아야 하고, 남을 안다는 것은 그들의 지식을 아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다. 단지 그 세상을 이해하는 차이가 곧 각각의 생활모습이고 인격이며 행과 불행의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하나라면 그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도 단 하나일 뿐이다. 진리든 생활 교육이든 모두가 다가가야 할 곳은 단 하나의 이치인 것이다.

그리고 현대교육은 그 하나의 이치를 쫓아가며 서술해놓은 데이터라고 할 수 있고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자료다. 즉 현대교육은 진리에 다가가기 위하여, 단 하나의 이치에 근접하기 위하여 노력한 중생들의 마지막 결과인 것이다. 그러니 그것들을 알아야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가 용이하다. 이를테면 보편타당하게 알려진 진리를 알아야 최상의 진리를 이해함에 있어 수월하다는 것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알아야 그들에게 최상의 진리를 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보편타당한 진리가 곧 현대학문이다.

수학을 배우는 이유는 수학이 삶이라는 것의 순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11=2. 둘을 이루고 싶다면 하나와 다른 하나를 합해야 한다는 진리가 들어 있다. 이런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미 배워서 익숙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런 학습이 없었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진리를 공부하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라면 역시 이 현대교육도 그와 같다. 산수를 모른다면 물건을 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만큼은 알아야 한다. 만약 대학을 꼭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사에 맡기겠다. 그러나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이 사회의 지식에 능통할수록 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진학과는 상관없이 수업능력은 우수해야 한다. 그럴수록 스스로가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서 편하게 살려면 이 사회의 법을 따라야 한다. 필요는 없지만 면허증을 원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아무리 스스로의 능력이 우수하다고 해도 대학 졸업장이 없다면 아무도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 사회는 진리를 모르는 자들의 집합소이다. 만약 진리를 아는 자가 있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인데, 대학도 나오지 않은 자가 진리를 말한다면 과연 누가 그 사실을 믿으려 하겠는가.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잣대가 없기에 오직 학벌이나 재력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편하려면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인격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진리도 얻을 수 없다. 세상공부도 하지 못하는 그런 나태한 마음으로 어찌 온 우주를 손에 넣고 나아가 생사를 초월하겠는가. 스스로가 처하는 때에 맞게 해야 할 일이 있다. 젖먹이 때에는 젖을 먹어야 하고 밥 먹을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한다. 세상을 배울 때는 세상을 배우고 인생을 배울 때는 적극적으로 인생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리를 얻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자질이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석가세존도 일체의 세속학문에 능통하고 나서 진리를 얻으러 나서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단을 오름에 있어 낮은 곳의 계단은 무시하고 중간부터 오르겠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실행할 수는 없다. 일단은 처음부터 중간까지 가야만 무시를 하든지 다음으로 나아가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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