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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영역
사쿠라기 시노 지음, 전새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인간 세상에서 ‘순수의 영역’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세상에서 ‘천부’라고 말하는 재능을 타고 난 사람은 자기 재능을 알지 못한다. 아니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 남과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름을 알지 못하기에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 말도 잘못되었다. ‘가치’라든가, ‘이용’이라는 말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설사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는 세상의 잣대와 상관이 없고, 따라서 이용이 아니라 그저 사용만 있을 뿐이다.
아무런 분별없이, 욕심도 없이, 세상의 이목과 상관없이 발현되는 재능, 그저 표현의 욕구와 그 욕구의 발현이 걸작이 되는 영역, 그게 바로 ‘순수의 영역’이 아닌가.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주제가 이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술의 세계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에게 신의 영역을 맛보게 하는 세계인지도 모른다. 우린 그런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들을 예술가라 부르며 그 창조의 재능을 ‘천부의 재능’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 말에 들어있는 의미는 그 재능이 귀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재능이란 의미도 사실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재능이 더욱 부럽고 가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천재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즐기는 차원을 떠나 창조의 열망을 가진 자들이 세상엔 많은가 보다. 문제는 재능이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된 열망.
<순수의 영역>은 그런 사람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았다. 오직, 창조적 예술가가 되겠다는 열망만으로 사는 사람. 그 열망은 사실 순수한 예술적 창조가 아니라,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고 주목을 받음으로써 그는 드디어 ‘천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천재’인가? 작가는 진짜 천재 소녀인 ‘준꼬’를 등장시킴으로써 열망만으로는 결코 진짜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준꼬는 서예의 천재다. 남의 글씨를 완벽하게 모방할 수도 있고, 완벽한 균형을 갖춘 글씨를 쓸 수도 있다. 그녀의 글씨는 ‘진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서체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비교하지도 않는다. 물론 평가를 받기 위한 공모전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재주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바보라 부른다.
세상의 이목에 전전긍긍하고,
세상의 평가에 목매달고,
끝없이 이해관계를 따지고,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사랑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고,
아무런 분별없이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사랑을 내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사랑하는,
준꼬를,
바보라 불렀다.
그런데도 예의바르고 웃는 얼굴인 그들 속에서 무표정하며 먼 곳을 쳐다보는 준꼬만이 순수한 밝음으로 빛나는 듯하다. 마치 흑백의 영화 속에서 어떤 한 사물만 밝은 색깔로 처리해 놓은 것처럼. 그만큼 세상엔 순수의 영역이 적은 것인가. 그래서 더 빛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