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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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리 차일드""잭 리처" 시리즈 열한 번째 작품 "1030(Bad Luck and Trouble)"입니다. 그동안 헌병출신 방랑자 "잭 리처"의 단독 활약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작품 "1030"에서는 "잭 리처"의 예전 동료들과의 팀 플레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잭 리처"와 특수부대 동료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지구방위군 같은 포스를 내뿜습니다.

LA근처의 사막 위를 나는 헬리콥터 벨 222가 상공 900미터에서 정지 비행 모드로 바꿉니다. 정지된 벨 222의 옆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지상으로 떨어집니다. 17일 뒤, 포틀랜드에 있던 "잭 리처"는 돈이 필요해서 ATM기를 찾아서 계좌를 확인합니다. 계좌 속 잔액을 확인한 "잭 리처"는 두 가지 이유로 놀랍니다. 첫째, 떠도는 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잔액이 자신이 기억하던 금액과 일치 하지 않아서. 둘째, 금액이 정확하게 1030달러가 더 많아서. 1030.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숫자이지만 "잭 리처"에는 달랐습니다. 동료들의 지원을 다급히 요청하는 헌병대의 무전 암호가 1030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특별할 게 없는 숫자다.
1030.
은행 측의 실수.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리처는 일단 기계에서 50달러를 인출한 다음 주머니에서 동전을 찾아 손에 쥐었다. 이제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다.

미국 전역을 떠도는 "잭 리처"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화도 없고 집도 없고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ATM기계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는 암호 1030을 보냅니다. 그 암호를 보낸 사람은 "잭 리처"의 옛 헌병대 소속 특수부대의 멤버인 "프랜시스 니글리"입니다. 그녀를 만나러 LA에 도착한 "잭 리처"는 그녀에게서 또 다른 특수부대 멤버 중 한명인 "캘빈 프란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900미터 이상의 상공에서 추락을 해서 죽은 동료의 소식에 "잭 리처""니글리"는 예전 동료들을 다시 모으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몇 년전 교통사고로 죽은 한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 둘은 나머지 멤버들과 계속 연락을 시도하면서 "프란츠"의 주변을 조사합니다. 그리고 곧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였던 "데이비드 오도넬""칼라 딕슨", 두 명의 멤버가 합류를 하면서 그 외 다른 세 명의 멤버들이 실종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죽거나 실종된 전 대원의 복수를 위해 "잭 리처"는 혼자가 아닌 예전 동료들과 함께 조사를 시작하면서 엄청난 음모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됩니다.

"자넨 잘 해내고 있어, 데이비드. 이건 진담이야. 내가 걱정하는 건 바로 나야. 자네와 프랜시스, 그리고 칼라를 보면서 난 내가 루저라는 느낌이 들어."
"정말요?"
"내 꼴을 봐."
"대장한텐 없지만 우리한테 있는 건 여행 가방뿐인데?"
"하지만 자네들한테 없지만 나한테 있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죽은 동료들의 복수를 위해 뭉친 예전 팀원들과 다시 리더가 된 "잭 리처"는 그들의 슬로건이었던 '특수부대원들에게 덤비지 마라.'를 행동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오래전 2년 동안 서로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일반 범죄와는 차원이 다른 군 범죄자들을 수사한 이 헌병대 특수부대원들은 멤버 전원이 특출난 군인들 이었습니다. 그런 부대원들의 죽음은 믿기지 않는 일이며, 그들을 죽인 자들이 길거리 범죄자 수준이 아닌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흩어진 단서들을 모으고 잘못된 추리와 판단으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살인자들의 정체에 다가갑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들과 메모, 이니셜이 같은 이름 명단 등 여러 단서를 가지고 추리하고 사건을 재조합하는 사이사이 인상적인 액션들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잠입과 섬멸, 그리고 복수로 구성되는 클라이막스는 이번 작품 최고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히나 이번 "1030"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잭 리처"가 오랜 동료들과 재회를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떠돌이 생활에 불안감을 느끼는 부분이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제대를 한 동료들은 군에서 배운 특기를 살려 흥신소나 보안업체 등에서 일하며 사회에 적응을 했습니다. 몇몇은 "잭 리처"가 가진 돈으론 꿈도 꿀 수 없는 옷을 입거나 비싼 음식들을 먹고, 몇몇은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회에 맞추어 적응을 해나아 가고 있습니다. 그런 동료들과 재회에서 느낀 "잭 리처"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리더의 자리도 거부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리더 자리를 맡은 후에도 한동안은 불안해 하고 자신의 판단착오에 자괴감도 느낌니다. 하지만 "잭 리처"가 누굽니까? 결국 우리가 "잭 리처"에게 바라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적들에게 과감히 선언했던 그대로의 복수를 완수 합니다.

"유언장을 작성해 뒀나요?"
"뭐하게?" 리처가 말했다. "저자들이 내 칫솔을 부숴 버렸으니 난 이제 가진 게 하나도 없어."
"기분이 어때요?"
"엿 같지. 난 그 칫솔이 참 좋았거든. 아주 오랫동안 함께해서 정이 들었어."
"아니, 칫솔 얘기가 아니라 지금 기분을 묻는 거예요."

이 시리즈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각 작품들 마다 액션과 미스터리의 비중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이 작품 "1030"은 의외로 미스터리 부분의 비중이 훨씬 많습니다. 오랜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여러 단서들로 추리를 해가는 부분은 꽤 훌륭합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짧은 액션 부분, 특히나 클라이막스 부분은 더 끝내줍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적들을 제거하는 장면들에서는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에 나올 "잭 리처" 시리즈는 영화 "잭 리처"의 후속으로도 제작이 결정된 시리즈 열여덟 번째 작품 "Never Go Back"이 될듯합니다. 얼마 전 영국에서 발표한 기사에 따르면 2012~13년 동안 영국의 도서관들에서 가장 대출이 많이 된 책 1, 2위가 "잭 리처" 시리즈인 "어페어""원티드 맨"이었습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판매량도 상당합니다. "스티븐 킹" 형님도 이 시리즈들의 광팬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별로 인기가 없네요. 물론 우리나라에서 책 시장이 넓지도 않고 거기다 점점 더 어려워 지고 있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지만, "잭 리처" 시리즈가 꾸준히 나와주길 원하는 입장에선 국내에서도 인기가 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1030, 리차일드, 잭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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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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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 소설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작가 "마이클 코넬리""해리 보슈" 시리즈 열세 번째 작품 "혼돈의 도시(The Overlook)"입니다. 이번 작품은 '뉴욕 타임스 선데이 매거진'에 연재한 이야기를 수정, 보완해서 단행본으로 낸 작품입니다. 그래서 인지 기존 시리즈들에 비해 페이지 수가 상당히 짧습니다.

멀홀랜드 댐 위에 있는 산마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시체는 처형당한 것처럼 뒤통수에 두 발의 총알이 박혀져 있고 살해 직전에 꿇어 앉아 있었던 흔적도 발견됩니다.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긴 형사 "해리 보슈"는 현장으로 출동하고 곧 FBI 요원 "레이철 월링"도 현장에 나타납니다. 살인사건 현장에 갑자기 나타난 "레이철"을 본 "보슈"는 일반적인 살인사건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살해당한 남자가 방사능물질에 접근권한이 있는 의학물리학자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보슈는 자기 눈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살인사건 수사의 기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현관문을 나가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기꺼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럴 능력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어떤 총알도 자기를 맞힐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끌벅적 했던 에코 파크 사건으로 몇 개월 정직을 당하고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으로 발령을 받은 "해리 보슈"가 맡은 첫 사건은 멀홀랜드 댐 근처에서 처형 당한 듯 보이는 한 남자의 살인사건입니다.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수사해야할 첫 사건에 갑자기 FBI가 코를 들이댑니다. "보슈"와 인연이 있는 FBI요원 "레이철"의 등장은 이 사건이 일반적인 살인사건이 아니라는 냄새를 풍깁니다. 죽은 남자는 의학물리학자 "스탠리 켄트"로 로스 엔젤레스 카운티 내의 거의 모든 병원에서 보관 중인 방사능 물질에 접근권한을 가지고 있음이 밝혀 집니다. "보슈""레이철""스탠리 켄트"가 죽을때 지니고 있던 병원 출입증을 보고 그 병원으로 출동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병원 금고에서 미안하다고 적힌 "스탠리"의 메모와 그안에 보관되어 있던 세슘들이 사라진것을 발견합니다. 이는 사라진 세슘이 세슘을 변형시켜 사제폭탄으로 만들 수 있는 테러리스트에게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FBI를 포함한 국가 안보 기관들은 세슘을 찾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해리 보슈" "스탠리"의 살해범들 찾기 위해 수사를 시작합니다.

"이건 국가 안보가 달린 사건이지 않습니까, 선배님. 일반 사건과는 다르죠. 공공선이, 국민의 안녕과 사회질서가 달린 문제니까요." 보슈에게는 페라스가 교과서나 어느 비밀 결사의 규정을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만의 규정이 있었다.
"국민의 안녕과 사회질서는 산마루에 죽어 자빠져 있는 저 남자로부터 시작되는 거야. 우리가 그를 잊으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거든."

에코 파크 사건으로부터 1년간 "해리 보슈"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총상을 입었던 파트너 "키즈민 라이더" 대신 새로운 파트너 "이그나시오 페라스"를 배정 받고 특수살인사건 전담반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새로운 파트너가 맞게된 살인사건은 세슘이 연관된 테러의 징후가 보이면서 사건 수사에 FBI가 가세합니다. 언제나 서로 믿지 못하는 LA경찰과 FBI는 계속 충돌을 하고 국가 안보가 걸린 사건의 특성상 LA경찰청은 조금씩 공조수사에서 배제됩니다. 세슘을 탈취한 테러리스트가 연관되어 보이는 사건의 심각성에 놀란 "해리 보슈"도 그동안 맡았던 사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FBI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 수사를 위주로 사건을 수사합니다. 세슘을 찾으려는 FBI와 살인범을 찾으려는 "보슈"와 파트너는 계속 충돌하지만 "보슈"는 확신합니다. 살인범을 찾는 길이 세슘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곱게 가진 못했네요." 페라스가 말했다. 보슈는 두 개의 책상 너머에 앉아 있는 그를 쳐다 보았다.
"중요한 거 하나 알려 줄까?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뭘 알게 되는지 알아?" 보슈가 말했다.
"아뇨. 뭔데요?"
"곱게 가는 사람은 없다는 거."

사건 발생 이후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혼돈의 도시"는 뉴욕 타임스 선데이 매거진에 16주 동안 연재했던 이야기들을 단행본에 맞게 다시 수정하고 보완해서 출간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상당히 분량이 작습니다. 그동안 시리즈에 비해 2/3정도도 되지 않는 분량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속도감은 엄청납니다. 잡지에 연재된 이야기의 특성상 매 챕터마다 작은 기승전결이 있고 마지막 부분에선 다음 챕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확실한 미끼가 던져 집니다. 그런 챕터들이 엮여서 큰 틀의 플롯이 구성되고 이야기 전체의 속도감을 향상시키는 겁니다. 복잡해 보이는 사건들 속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보슈"를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숨겨져 있는 사건의 본질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마이클 코넬리"는 자신의 장점을 잃지 않습니다. 조직과 개인, 기관과 기관과의 대립, 추악한 인간들의 욕망과 희생자들을 위한 "보슈"의 사명감 등 항상 다루어 왔던 이야기들은 적재적소에 유기적으로 엮여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911로 인해 미국에 새겨진 테러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으로 인해 뒤로 밀려난 한명의 희생자를 대비해서 또 다른 훌륭한 범죄소설을 탄생 시켰습니다.

우리 모두는 배수구를 빠져나가는 물처럼 하루하루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그 검은 수챗구멍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이들도 있고 좀 멀리 있는 이들도 있다. 그 검은 구멍이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빙빙 도는 물이 언제 자기를 움켜쥐고 그 어두운 수챗구멍 속으로 밀어 넣을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건 맞서 싸우는 거야, 보슈는 혼잣말을 했다. 쉼 없이 버둥거려 보는 거라고. 그 물에 휩쓸리지 않도록 계속 버텨 보는 거야.

이 작품 "혼돈의 도시"가 2007년도 작품이니 국내 출간 순서가 현지 출간 순서를 많이 따라 잡은 듯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해리 보슈"는 더 노쇠해졌습니다. 사건 증거물인 사진을 볼 땐 돋보기 안경을 쓰고 거기다 확대경까지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의 신념과 사명감에 대한 의지는 더욱 견고해집니다. 점점 더 좋은 수사관이 되어 가고 있는 겁니다. 비록 어린 새 파트너는 그런 "보슈"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지만 "보슈"는 마치 아버지처럼 파트너를 포용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해줍니다. 그리고 테러의 위험성에 가려진채 잊혀져 가는 단 한명의 희생자에 주목하는 "보슈"를 보면서 내가 왜 이 시리즈들을 사랑하는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올해 안으로 "해리 보슈" 시리즈 열네 번째 작품 "Nine Dragons""미키 할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The Reversal"이 출간됩니다. 올해도 "마이클 코넬리" 작품들 덕분에 즐거운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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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신예용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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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즈 페니(Louise Penny)"가 2008년에 발표한 작품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est Month)"입니다. 이 작품은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역시나 가상의 공간 스리 파인즈(Three Pines)를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데뷔작 "스틸 라이프"를 발표한 이후, 줄곧 코지 미스터리계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루이즈 페니"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수많은 상을 타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재림이라고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 "가장 잔인한 달" 역시 '애거서' 상을 수상했고 '앤서니', '배리', '마카비티' 상의 최종 후보에 올랐었습니다.

캐나다 퀘벡 주(州)의 작은 마을 스리 파인즈는 부활절을 맞이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스리 파인즈에서 가장 불길한 장소인 옛 해들리 저택에서 교령회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마을의 정화와 약간의 재미를 위해 폐허가 된 저택의 방에서 죽은 자를 불러들이는 의식을 진행하는 도중 참석한 마을 사람 중 한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옛 해들리 저택과 악연으로 엮인 살인 수사반 반장 "아르망 가마슈"는 사건 조사를 위해 다시 스리 파인즈에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자연사로 보였던 죽음에서 타살의 징후가 발견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네...... - T. S.엘리엇, 황무지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 스리 파인즈에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부활절 준비에 분주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우연히 영매가 마을을 찾아오고 사람들은 부활절 맏이 교령회를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교령회는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교령회를 하기로 합니다. 마을에서 가장 불길한 장소이자 마을 주변의 모든 악이 모여 있는듯한 옛 해들리 저택이 두 번째 교령회 장소로 정해지고 사람들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저택의 음침한 방에 둘러 앉아 죽은 자를 소환하는 의식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의식이 진행되는 도중 참가자 중 한명인 "마들렌"이 심장마비로 죽게 됩니다. 부인과 아들 내외, 손녀와 함께 평온한 휴일을 보내던 퀘벡 경찰서 수사반장 "아르망 가마슈"는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다시 스리 파인즈를 방문합니다. 겁에 질려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듯 보였던 "마들렌"의 죽음은 사체 부검 결과 에페드라가 검출되면서 자연사가 아닌 살인으로 밝혀집니다. 교령회에 참석했던 마을 사람들이 잠정적인 용의자들로 분류되고 "가마슈" 경감은 수사팀을 스리 파인즈로 집결 시킵니다. 그리고 "가마슈" 경감이 자신의 수사팀과 스리 파인즈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동안 경찰청 내부에선 "가마슈" 경감을 향한 음모가 진행됩니다.

스리 파인즈에서 늙어 죽는 사람은 없는 거야? 살인마저도 평범하지 않잖아. 그저 한 대 후려치거나 서로 찌르거나 총이나 몽둥이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거야? 아니다. 언제나 난해했다. 복잡하기까지 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아름다운 마을 스리 파인즈에 봄이 오고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자연사로 보였던 죽음이 살인사건으로 밝혀지면서 "아르망 가마슈"는 오랜만에 다시 마을을 방문합니다. 아름다운 풍경과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선한 마을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가마슈" 경감은 또 다시 스리 파인즈에 사는 친근한 사람들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염두해두고 사건을 수사해야 합니다. 거기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그 자신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는 옛 해들리 저택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의 감정에 집중하며 수사하는 "가마슈" 경감은 사려 깊은 행동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그가 자리를 비운사이 경찰정 내부에서는 "가마슈"를 향한 치명적인 음모가 진행됩니다. 전설적인 수사관이지만 내부 고발자로 찍힌 "가마슈"를 음해하려는 세력은 "가마슈"의 가족들에게 까지 마수를 뻗칩니다. "가마슈" 경감은 묵묵히 수사를 진행하면서 대응을 하지 않지만 음해의 강도는 점점 강해집니다. 경찰 생활 최대의 위기 속에서 자신이 죽음과 직면할 뻔했던 장소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가마슈" 경감은 잊을 수 없는 4월을 보내게 됩니다.

데뷔작 "스틸 라이프"가 추수감사절, "치명적인 은총"이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는데 이번 "가장 잔인한 달"은 부활절 시즌을 배경으로 합니다. 꽁꽁 얼어 잠들어 버린 땅에서 새 생명을 깨우는 4월은 우리에게 보통 희망과 새로움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억지로 깨운 생명들에게 변덕스러운 날씨로 고난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그 고난으로 중간에 시들어버린 생명들에겐 봄이란 잔인한 계절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4월을 배경으로 작가 "루이즈 페니"는 초창기 '스리 파인즈 삼부작'을 훌륭하게 마무리 합니다. 제 마음대로 삼부작이라고 부르는 건 이번 작품으로 인해 "가마슈", "클라라" 등 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다른 전개를 맞이하게 되고, 첫 살인의 시작이었던 마을의 불길한 장소를 다시 주 무대로 설정해서 제대로 된 마무리와 함께 시리즈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들이 서로 치유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암시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정을 모았다. 그리고 정서를 수집했다. 살인은 지극히 인간적이기 때문이었다. 살인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한 행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 지점에서 모든 일이 출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수사관 "가마슈" 경감의 시선에서도 보여지듯 "루이즈 페니"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항상 인간의 감정에 주목합니다. 데뷔작 "스틸 라이프"에서 추모와 애도의 감정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질투라는 감정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선망하는 대상에 대한 질투, 부인의 재능에 질투하는 남편 등 스리 파인즈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여러 형태의 질투를 보여줍니다. "가마슈" 경감을 향한 음모도 역시 질투로 시작됩니다. 사실 이전 두 작품을 읽었을 때는 스리 파이즈란 가상의 마을이 작가 "루이즈 페니"가 그리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길을 잃어 잘못 들어온 사람들까지 반하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운 마을, 그곳에 서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개성 넘치고 따뜻하고 선한 마을사람들, 맛있는 음식과 책들이 넘쳐나는 곳... 하지만 이번 작품을 읽고 나니 스리 파인즈라는 곳은 작가 "루이즈 페니"가 바라보는 세상 바로 그 자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루이즈 페니"가 묘사한 모든 건 우리 주위의 평범한 모든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차이만 있을뿐.

우리의 비밀이 우리를 병들게 하는 이유는 비밀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기 때문이다. 우리를 혼자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두렵고 성나고 비참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급기야 자신에게마저 등을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살인 동기나 살해 방법은 자극적이지 않고 평범한 편입니다. 어쩌면 사람에 따라서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작가 "루이즈 페니"의 능력은 탁월합니다. 특히 작품 속을 관통하는 일관된 정서와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오마쥬는 이 시리즈를 더욱 특별한 시리즈로 만들어 줍니다. 사실 저는 코지 미스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냥 제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만 해두겠습니다. 하지만 "가마슈" 경감 시리즈는 다릅니다. 그동안 접했던 코지 미스터리들과는 다른 진중함과 인간미가 넘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다 이 시리즈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요리 소설 시리즈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다채로운 먹방의 향연으로 정말 독서 내내 읽는 사람을 힘들게 만듭니다...^^;
이 작품 "가장 잔인한 달"로 인해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일단락됩니다. 그리고 "가마슈" 경감은 다음 작품 "The Murder Stone / A Rule Against Murder"에서 새로운 무대에서 벌어진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고 다섯 번째 작품 "The Brutal Telling"에서 다시 스리 파인즈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이 작품으로 인해 스리 파인즈는 또 다른 전개를 맞이한다고 하는데, 아마도 여섯 번째 작품 "Bury your Dead"과 함께 올해 8~9월쯤 나온다고 합니다. "스틸 라이프"로 시작해서 "치명적인 은총"을 거쳐 이 작품 "가장 잔인한 달"로 마무리 되는 삼부작은 꼭 읽어봐야할 훌륭한 미스터리 삼부작이라고 확신합니다. 잔인하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지친 분들에겐 더욱 더 특별한 삼부작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번에 전작들도 표지를 교체해서 새로 나왔으니 이번 기회에 삼부작을 구입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표지들이 상당히 이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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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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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John Grisham)"의 2013년에 발표한 작품 "속죄 나무(Sycamore Row)"입니다. 언제부터 인지 예전만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존 그리샴"은 자신의 데뷔작 "타임 투 킬(A Time To Kill)"의 후속작인 "속죄 나무"를 24년만에 발표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대중과 비평가들은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존 그리샴"의 복귀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고, 25주 이상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미시시피 주(州) 포드 카운티의 작은 도시 클랜턴에서 한 노인이 자살을 합니다. 시커모어 나무에 스스로 목을 메달아 죽은 "세스 후버드"는 돈이 꽤 많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 외의 신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던 노인이었습니다. 일년 넘게 암과 싸웠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세스 후버드"는 자살하기 하루 전에 변호사 "제이크 브리건스"에게 자신이 직접 쓴 자필 유언장을 씁니다. "세스 후버드"가 죽은 다음날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필 유언장을 받게된 "제이크 브리건스"는 유언장의 내용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흥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말썽이 생길 우려가 크기 때문에 내 유산 문제를 맡아서 처리해줄 변호사로 당신을 선택한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유언을 지켜야 하며, 당신에게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나는 성인이 된 나의 두 자녀, 손주 그리고 두 전처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들은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니, 당신도 싸울 준비를 하세요. 내가 남기는 유산은 상당한 액수에 달합니다.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액수가 밝혀지면 그들의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끝까지 그들과 맞서 싸우세요, 브리건스 씨.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미시시피는 물론 미국 전역의 관심을 받았던 "칼 리 헤일리"의 사건을 맡아서 승소했던 "제이크 브리건스"는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습니다. 900달러의 수임료를 받았지만 집은 불타 없어지고, 애완견과 직원의 남편은 죽었고 KKK단의 협박으로 3년이 지난 지금도 경호를 위해 경찰이 집 주위를 돌고 있습니다. 물론 "제이크"의 명성과 평판은 클랜턴에서 아주 우호적,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경제적으로 압박을 느끼며 그냥 그런 민사소송이나 맡는 변호사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부자라고 소문이 난 "세스 후버드"의 자필 유언장이 전달됩니다. 일년 전에 큰 로펌에서 작성되었던 유언장을 무효화 시키고 관계가 소원해진 자신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와 재산의 5프로는 교회로, 몇십년 전 집을 떠난 동생 "앤실 후버드"가 살아있다면 그에게 5프로를, 나머지 90프로는 자신을 3년 동안 보살폈던 흑인 가정부 "레티 랭"에게 준다는 유언장을 받은 "제이크"는 당황합니다. 하지만 곧 "세스"의 자산이 2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또 다시 미시시피를 뒤흔들 재판의 주인공이 될 거라고 직감하게 됩니다. "제이크"는 왜 "세스"가 가정부인 흑인 여성 "레티"에게 재산의 90프로를 주려고 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자필 유언장의 무효를 주장하는 "세스"의 자식들과 그들의 변호인들을 상대로 싸움을 준비합니다. 유족들의 변호사들은 "세스"가 죽기 직전까지 복용해야 했던 약물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레티 랭"과 성적 접촉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방향으로 공격을 준비하고, "제이크""세스"가 유언장을 쓸 당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방향으로 방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시시피 최대 규모의 유산을 둘러싼 민사재판은 돈 냄새를 맡아 몰려드는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과 곧 도시 최고의 부자가 될 흑인 여성에 대한 도시 사람들의 시기심 까지 더해져서 쉽지 않은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미시시피에서 모든 사건이 인종 문제야, 제이크. 그 점을 잊어서는 안 돼. 한 흑인 여자가 포드 카운티 유사 이래 제일 많은 유산을 상속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결정은 전적으로 배심원단의 몫이야. 압도적으로 백인의 수가 많은 배심원단이지. 이건 인종 문제와 돈 문제가 한데 얽힌, 이 주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사건이라고."

이 작품 "속죄 나무"에서 작가 "존 그리샴"은 예전부터 쌓아왔던 자신의 장점을 모두 끌어 모아 독자들에게 선물합니다. 우리에겐 까다로운 미국 미시시피 주의 법률을 알기 쉽게 풀어 놓고,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재판 준비 과정은 쉬운 문장과 재치있는 대사들로 구성하고, 오랜만에 만난 낯익은 캐릭터들과 살아있는듯 한 개성 넘치는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독자들이 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거기다 80년대의 미시시피에 빠질 수 없는 인종간의 갈등을 양념처럼 사용해서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신의 최대의 장점인 실제로 보는듯 한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법정 장면들 까지... 이 모든 걸 조합해서 오랜만에 또 한권의 훌륭한 법정 소설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마지막을 장식하는 꽤나 감동적인 결말 부분에 도달하면서 저 스스로도 "존 그리샴"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제이크 브리건스"를 다시 본다는 자체로도 전 상당히 흥분해서 그동안의 실망감은 잊고 처음부터 상당히 우호적인(?) 자세로 읽긴 했습니다만, 객관적으로 봐도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한데 제 글을 읽고 책을 사시는 분들을 위해 가급적 스토리의 초반만 쓰고 있을 정도로 스스로 주의를 하기에 아쉬운 부분을 언급하는 자체도 스포가 될까봐 쓰진 않겠습니다.

"레티, 이 대목에서 우리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네요. 나는 부인의 변호사가 아닙니다. 나는 후버드 씨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한 변호사입니다. 이 유언장에 기록된 세스의 뜻이 그대로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예요."

한동안 "존 그리샴"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가 되던 전성기의 모습을 잃어버렸었습니다. 물론 작가의 이름빨로 새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베스트셀러 차트 1위에는 무조건 오르긴 했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었습니다. 아마 작가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새로운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하는 시도도 했지만 작품의 질은 여지없이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자주 아마존이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차트를 찾아보는 저는 한동안 "존 그리샴"의 신작이 1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걸 보고 상당히 의아해 했습니다. 믿고 무조건 사는 작가 리스트 중에 제외된지 꽤 오래된 "존 그리샴"이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작품을 냈길래 이렇게 평이 좋을까란 생각만 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나오는 비평가들의 좋은 평과 차트에서 사라질 줄 모르는 걸 저력을 보고 정보를 찾아보다 데뷔작 "타임 투 킬"의 후속작품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존 그리샴" 책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타임 투 킬" 이었기에 기대감은 상승했고 속는 셈 치고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건 "존 그리샴"이 둔 신의 한수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어쩌면 작가가 스스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많은 고민의 끝에 초심으로 돌아가 데뷔작의 후속 작품을 쓰기로 결정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의 선택은 기대이상의 결과를 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 길이 없습니다. 오로지 세스만이 진실을 알겠지만, 그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습니다. 진실은, 여러분,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우리-변호인, 판사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는 세스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단 한 가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세스가 유언장을 작성할 당시, 과연 정신이 또렷했는가, 또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는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야기 속 시간의 흐름은 3년 이지만 실제로는 25년이나 지나서 나온 데뷔작의 다음 이야기인 "속죄 나무"는 주인공 "제이크"뿐 아니라 상속 당사자인 "레티 랭" 그리고 "세스"의 자식들을 포함한 클랜턴 사람들 모두가 도대체 왜?! 어마어마한 유산이 흑인 가정부에게 넘어갔는지 궁금해 하면서 진행되는 미시시피 최대 유산상속 민사재판을 다룬 작품입니다. 유산을 둘러싼 재판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탐욕, 차별, 죄와 구원, 용서라는 보편적인 테마들을 조화롭게 배치시켜서 흠 잡을 곳 없게 플롯을 구성해 놓았습니다. 전성기의 "존 그리샴"이 100퍼센트 돌아왔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90프로에는 근접하다고 할 만큼 전성기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사실 카타르시스는 "타임 투 킬"에 못 미친다고 생각은 되지만 결말 부분의 감동은 꽤 큰 울림을 주기에 아주 훌륭한 후속작이자 복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전작인 "타임 투 킬"을 모르시는 분들은 영화라도 먼저 보시고 읽으시면 더욱 재미있으실 겁니다. 그러고 보니 다시 "매튜 맥커너히"가 연기하는 "제이크 브리건스"가 보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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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드러머 걸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4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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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피오나지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John le Carré)"의 1983년도 작품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 "존 르 카레"의 장기인 현실주의적인 첩보물로, 1984년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다이안 키튼"이 주인공 "찰리"역을 맡았었습니다.

독일 주재 이스라엘 노무관 집에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합니다. 타겟은 노무관의 집에 머물고 있던 노무관의 사촌이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발언을 일삼던 탈무드 학자였지만 테러로 인해 죽은 건 노무관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테러에 의한 어린 아이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은 독일은 물론 이스라엘 사회를 흔들고 독일의 협조 하에 이스라엘의 요원들이 사건에 투입됩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범인과 테러 수법에 대한 윤곽이 잡히지만 이스라엘 쪽 현장 책임자인 "쿠르츠"는 깊숙이 숨어있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잡기위해 각본을 짜고, 영국인 여배우 "찰리"를 자신들의 각본대로 연기자로 캐스팅하게 됩니다.

광기가 없으면 제정신도 없다. 그리고 배역이 없으면 연극도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발생된 폭탄 테러에 어린 아이가 희생되고 이스라엘은 보복을 준비합니다. 이스라엘의 베테랑 요원 "쿠르츠"는 자신의 상사가 폭격을 퍼붓기 전에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우두머리를 잡고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가장 필요한 영국의 연극배우 "찰리"를 포섭하기 위한 계획도 역시 준비를 합니다. "쿠르츠""찰리"의 본능과 감정을 천천히 그리고 빈틈없이 자극시켜 자신들의 무대로 끌어 들이기 위해 자신이 가장 믿는 베테랑 요원을 투입 시킵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여배우 "찰리"는 자신의 연극을 보러왔었던 "요제프"라고 불리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요제프"에게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 여행에 동행을 합니다. 여행을 가서 "요제프"가 해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점점 더 "요제프"라는 남자에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요제프""찰리"를 데리고 간 장소에서 이스라엘 첩보 계획의 캐스팅 의뢰를 받습니다. 연극무대가 아닌 현실 세계, 그것도 민간인들에게 정말로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스파이 활동을 제안 받은 "찰리"는 혼란스러워 하지만 "요제프"에 대한 감정과 현실 세계에서의 연기할 기회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고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요원들은 "찰리"를 정해진 계획에 맞추어 세뇌 수준으로 각본을 주입시키고 때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 현장으로 그녀를 투입 시킵니다. 전혀 새로운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찰리"는 점점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면적 갈등을 겪게되고 조금씩 위험한 첩보 무대의 주연배우가 되어갑니다.

그녀가 그를 위해 영국에 있듯, 그도 그녀를 위해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그녀와 같은 꼭두각시였다.

최대한 피를 보지 않기 위해 짜여진 이번 이스라엘의 작전에 중심인물이 된 "찰리"는 영국 출신의 연극배우입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생활방식과 개방적인 성의식, 훌륭한 암기력과 반골기질을 지닌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최적의 인물이 된 이유는 그녀의 정치성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빨갱이 찰리'라는 별명의 "찰리"는 머리색이 붉기도 하지만 상당히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국 영국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터전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을 역겨워 하는 "찰리"의 성향은 "쿠르츠"를 포함한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이 찾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투입된 "찰리"는 점점 시나리오 속의 자신과 동화되기도 하고 현실의 자신을 망각하기도 하면서 엄청난 내적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냥 저 불쌍한 아랍인들을 내버려뒀으면 할 뿐이에요." 그녀가 다시 즉답을 피했다.
"좋소. 그래,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소?"
"마을 폭격을 그만해야죠. 사람들을 땅에서 쫓아내고 불도저로 마을을 밀어버리고 고문하고..."
"중동 지도를 본 적 있소?"
"물론이죠."
"지도를 보면서 아랍인들이 우리를 내버려뒀으면 하는 생각은 해본적 있소?" 쿠르츠가 되물었다. 여전히 위태로울 정도로 즐거운 표정이었다.

거짓된 이야기와 신분으로 위장하고 그에 맞는 상황을 연기를 해야하는 스파이 세계의 중심부에 연기가 직업인 배우를 투입시킨다는 감탄할만한 발상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은 읽으면 읽을수록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작품입니다. 작가 "존 르 카레"의 장기인 리얼한 첩보 활동과 정보전의 묘사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냉철하고 중립적인 작가의 시선과 태도도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여배우를 스파이로 만들기 위한 계획과 사전준비 그리고 포섭과 동시에 시작되는 세뇌수준의 교육 장면의 치밀함까지. 하지만 가장 기가 막히게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 "찰리"라는 여자의 심리묘사였습니다. 스파이가 된 여배우 "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자신과 허구의 자신이 느끼는 모순되는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고, 이스라엘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정치성향과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상황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의 심리 묘사는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내적으로 복잡하고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진 않겠죠. 만일 그렇다면 여지껏 전 여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걸껍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스파이 소설인 동시에 "찰리"라는 여자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찰리, 우리 연극과 학예회를 혼동하지 않길 바라겠소. 지금 마법의 숲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오. 조명이 무대를 비추게 되면 거리는 밤 시간이 될 것이오. 배우들이 웃으면 행복하다는 뜻이고, 흐느껴 울면 십중팔구는 상실감에 심장이 찢어진다는 얘기겠지. 배우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면(당연히 그렇게 될 거요, 찰리.), 막을 내린다 해도 후닥닥 뛰쳐나와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건 불가능할 게요. 장면이 어렵다고 까탈부리며 빠져나올 수도, 아프다고 쉴 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쳐야 하오. 찰리, 당신이 원하는 일이고 또 감당할 수 있다면(그러리라 믿소.) 이제 우리 얘기를 들어봐요. 그게 아니면, 오디션은 여기서 포기하기로 합시다."

가끔 책을 다 읽고 나서 엄청난 작품을 읽었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배경으로 스파이가 된 여배우의 이야기인 이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의 얽혀있는 첩보전에 휘말린 한 개인의 이야기는 참 많은걸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실 "존 르 카레"의 작품들은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만 넘고 나면 작가가 세밀하게 준비해놓은 스파이들의 첩보 전쟁에 완전히 빠져들게 됩니다. "스마일리" 시리즈들의 팬이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바로 아실듯 합니다. 이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은 많은 부분에서 참 훌륭한 작품입니다. 감히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은 작품입니다. 꼭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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