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드러머 걸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4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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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피오나지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John le Carré)"의 1983년도 작품 "리틀 드러머 걸(The Little Drummer Girl)"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 "존 르 카레"의 장기인 현실주의적인 첩보물로, 1984년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다이안 키튼"이 주인공 "찰리"역을 맡았었습니다.

독일 주재 이스라엘 노무관 집에 폭탄테러 사건이 발생합니다. 타겟은 노무관의 집에 머물고 있던 노무관의 사촌이자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발언을 일삼던 탈무드 학자였지만 테러로 인해 죽은 건 노무관의 어린 아들이었습니다. 테러에 의한 어린 아이의 죽음이 몰고 온 파장은 독일은 물론 이스라엘 사회를 흔들고 독일의 협조 하에 이스라엘의 요원들이 사건에 투입됩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범인과 테러 수법에 대한 윤곽이 잡히지만 이스라엘 쪽 현장 책임자인 "쿠르츠"는 깊숙이 숨어있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잡기위해 각본을 짜고, 영국인 여배우 "찰리"를 자신들의 각본대로 연기자로 캐스팅하게 됩니다.

광기가 없으면 제정신도 없다. 그리고 배역이 없으면 연극도 없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이지 않는 전쟁으로 발생된 폭탄 테러에 어린 아이가 희생되고 이스라엘은 보복을 준비합니다. 이스라엘의 베테랑 요원 "쿠르츠"는 자신의 상사가 폭격을 퍼붓기 전에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우두머리를 잡고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가장 필요한 영국의 연극배우 "찰리"를 포섭하기 위한 계획도 역시 준비를 합니다. "쿠르츠""찰리"의 본능과 감정을 천천히 그리고 빈틈없이 자극시켜 자신들의 무대로 끌어 들이기 위해 자신이 가장 믿는 베테랑 요원을 투입 시킵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여배우 "찰리"는 자신의 연극을 보러왔었던 "요제프"라고 불리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요제프"에게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제안한 여행에 동행을 합니다. 여행을 가서 "요제프"가 해주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점점 더 "요제프"라는 남자에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요제프""찰리"를 데리고 간 장소에서 이스라엘 첩보 계획의 캐스팅 의뢰를 받습니다. 연극무대가 아닌 현실 세계, 그것도 민간인들에게 정말로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스파이 활동을 제안 받은 "찰리"는 혼란스러워 하지만 "요제프"에 대한 감정과 현실 세계에서의 연기할 기회에 대한 유혹에 굴복하고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스라엘 요원들은 "찰리"를 정해진 계획에 맞추어 세뇌 수준으로 각본을 주입시키고 때가 되었다고 느낀 순간 현장으로 그녀를 투입 시킵니다. 전혀 새로운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찰리"는 점점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내면적 갈등을 겪게되고 조금씩 위험한 첩보 무대의 주연배우가 되어갑니다.

그녀가 그를 위해 영국에 있듯, 그도 그녀를 위해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그녀와 같은 꼭두각시였다.

최대한 피를 보지 않기 위해 짜여진 이번 이스라엘의 작전에 중심인물이 된 "찰리"는 영국 출신의 연극배우입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생활방식과 개방적인 성의식, 훌륭한 암기력과 반골기질을 지닌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최적의 인물이 된 이유는 그녀의 정치성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빨갱이 찰리'라는 별명의 "찰리"는 머리색이 붉기도 하지만 상당히 급진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국 영국은 물론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터전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을 역겨워 하는 "찰리"의 성향은 "쿠르츠"를 포함한 이스라엘 정보요원들이 찾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현장으로 투입된 "찰리"는 점점 시나리오 속의 자신과 동화되기도 하고 현실의 자신을 망각하기도 하면서 엄청난 내적 갈등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냥 저 불쌍한 아랍인들을 내버려뒀으면 할 뿐이에요." 그녀가 다시 즉답을 피했다.
"좋소. 그래,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소?"
"마을 폭격을 그만해야죠. 사람들을 땅에서 쫓아내고 불도저로 마을을 밀어버리고 고문하고..."
"중동 지도를 본 적 있소?"
"물론이죠."
"지도를 보면서 아랍인들이 우리를 내버려뒀으면 하는 생각은 해본적 있소?" 쿠르츠가 되물었다. 여전히 위태로울 정도로 즐거운 표정이었다.

거짓된 이야기와 신분으로 위장하고 그에 맞는 상황을 연기를 해야하는 스파이 세계의 중심부에 연기가 직업인 배우를 투입시킨다는 감탄할만한 발상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은 읽으면 읽을수록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탁월한 작품입니다. 작가 "존 르 카레"의 장기인 리얼한 첩보 활동과 정보전의 묘사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한 냉철하고 중립적인 작가의 시선과 태도도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여배우를 스파이로 만들기 위한 계획과 사전준비 그리고 포섭과 동시에 시작되는 세뇌수준의 교육 장면의 치밀함까지. 하지만 가장 기가 막히게 좋았던 부분은 주인공 "찰리"라는 여자의 심리묘사였습니다. 스파이가 된 여배우 "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의 자신과 허구의 자신이 느끼는 모순되는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고, 이스라엘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정치성향과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상황에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증오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의 심리 묘사는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내적으로 복잡하고 여러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진 않겠죠. 만일 그렇다면 여지껏 전 여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걸껍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은 스파이 소설인 동시에 "찰리"라는 여자의 열정적인 사랑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찰리, 우리 연극과 학예회를 혼동하지 않길 바라겠소. 지금 마법의 숲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오. 조명이 무대를 비추게 되면 거리는 밤 시간이 될 것이오. 배우들이 웃으면 행복하다는 뜻이고, 흐느껴 울면 십중팔구는 상실감에 심장이 찢어진다는 얘기겠지. 배우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면(당연히 그렇게 될 거요, 찰리.), 막을 내린다 해도 후닥닥 뛰쳐나와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향해 달려가는 건 불가능할 게요. 장면이 어렵다고 까탈부리며 빠져나올 수도, 아프다고 쉴 수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쳐야 하오. 찰리, 당신이 원하는 일이고 또 감당할 수 있다면(그러리라 믿소.) 이제 우리 얘기를 들어봐요. 그게 아니면, 오디션은 여기서 포기하기로 합시다."

가끔 책을 다 읽고 나서 엄청난 작품을 읽었구나!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배경으로 스파이가 된 여배우의 이야기인 이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들의 얽혀있는 첩보전에 휘말린 한 개인의 이야기는 참 많은걸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실 "존 르 카레"의 작품들은 진입장벽이 꽤 높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그 부분만 넘고 나면 작가가 세밀하게 준비해놓은 스파이들의 첩보 전쟁에 완전히 빠져들게 됩니다. "스마일리" 시리즈들의 팬이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바로 아실듯 합니다. 이 작품 "리틀 드러머 걸"은 많은 부분에서 참 훌륭한 작품입니다. 감히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은 작품입니다. 꼭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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