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제임스 엘로이"가 '타탄 느와르의 왕(The King Of Tartan Noir)'이라고 불렀던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이언 랜킨(Ian Rankin)"의 "존 리버스(John Rebus)"시리즈 첫 번째 작품 "매듭과 십자가(Knots and Crosses)"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한때, 매년 영국에서 팔리는 범죄 스릴러 소설의 10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 시리즈인 "존 리버스"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매듭과 십자가"는 원래 작가 "이언 랜킨"이 시리즈를 의도하지 않고 쓴 단발성 기획 즉, 스탠드언론이었습니다. 거기다 원래 의도한대로 마무리되었다면 독자들은 "존 리버스"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십대 소녀 두 명이 납치되어 교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비슷한 수법으로 미루어 연쇄살인일지도 모를 심각성이 대두되자 많은 경찰들이 이 사건 수사팀으로 배치됩니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메시지가 적힌 협박편지들을 받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존 리버스"경사 역시 다른 사건은 뒤로 밀어두고 이 사건을 수사하는 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얼마 뒤 또 다른 소녀가 납치되면서 연쇄살인임이 확실해자 경찰은 물론 에든버러 전체가 들썩이게 됩니다.


"게밀과 하틀리는 호별 조사를 맡도록 해."

다행히 그건 내게 오지 않았군. 호별 조사보다도 나쁜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유사사건 파일 조사는 모튼 경사와 리버스 경사."

늘 이런 식이지.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저녁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스코틀랜드 중앙 동부에 사는 변태 성욕자와 성범죄자들의 사건 기록을 훑어보는 것. 왜 저를 그토록 증오하십니까? 제가 무슨 욥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경찰서로 또 다시 매듭지어진 노끈과 함께 '단서는 사망에 널려 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편지를 배달받은 날, "존 리버스"경사는 에든버러를 공포로 몰아넣기 시작한 연쇄살인 사건 수사에 합류합니다. 뚜렷한 단서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찰들을 비웃는 듯이 범인은 또 다른 소녀를 납치해서 죽이고, 스코틀랜드 언론들은 소녀들을 납치해서 교살하는 범인을 에든버러 교살자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리버스"경사에게 다시 익명으로 '시간의 틈을 읽으라.'라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봉투 안에는 매듭지어진 노끈 대신 성냥개비로 만든 십자가가 들어있습니다. 범인은 또 다시 십대 소녀를 납치하고,  다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 시작하는"리버스"에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아직도 모르겠지? 그렇지?'


경찰은 산더미처럼 쌓인 규정과 씨름하며 깊은 범죄의 골을 한탄할 뿐이다. 범죄는 사방에 넘쳐난다. 속이고, 따돌리고, 권위를 모욕하고, 살인하고, 범죄에 한 번 물들면 합법성을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변호사들과 언제든 매수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용케도 그걸 알고 있었다. 마치 양쪽에서 타들어가는 막대를 쥐어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전직 SAS출신의 "존 리버스"경사는 제대 후 신경쇠약을 앓은 후 점점 더 고립되고 폐쇄적인 성격이 되어갔습니다. 경찰서 내에 친한 동료도 딱히 없을 정도로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형사입니다. 이혼 후 전처와 딸과 떨어져 혼자 사는 그에게 익명의 메시지들이 도착하고 그와 동시에 에든버러에는 에든버러 교살자라는 십대 소녀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납니다. 소녀들을 납치한 후 성폭행이나 다른 폭행을 하지 않고 단지 교살해서 버려 버리는 이 범인은 피해자를 무작위로 고르는 듯해서 뚜렷한 단서 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살인과 수사가 진행될 수 록 "리버스"에게 배달되는 메시지들은 그를 더욱 코너로 몰아넣으며 다시 두려운 기억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연쇄 살인사건은 매듭과 십자가 그리고 삼목두기 게임이라는 조각들에 "리버스"의 봉쇄된 어두운 기억이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모든 퍼즐들이 맞추어 집니다.

소설의 중반까지 주인공 "리버스" 경사는 사건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머무르며 주변을 맴돕니다. 적극적 수사 활동의 주체가 아닌 팀원으로서 호별조사나 파일조사 차량 조사를 담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리버스"는 감을 잡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조금씩 이 사건이 "리버스"와 관련이 있을 거란 단서를 발견 하지만 "리버스"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자신이 사건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감추고 있는 기억과 가끔씩 보이는 환영, 위태로운 "리버스"의 심리적 상태와 그에게 오는 괴상한 메시지들 그리고 "리버스"의 동생인 최면술사 "마이클"의 수상쩍은 행동까지 더해져 소설 후반부까지 독자들이 "리버스"를 객관적 관점으로만 보게끔 소설이 진행됩니다. 고전적인 고딕풍으로 묘사되는 에딘버러를 배경으로 담배연기가 자욱한 바, 맥주와 위스키 그리고 좋아할 수 없는 스코틀랜드 날씨까지 더 해지는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리버스"는 스스로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어 과거의 악몽과 마주합니다.


가엾군. 이제 좀 바뀌겠지. 인생이란 게임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대학 밖 세상이 얼마나 호화로운지 알면 이상주의가 싹 사라져버릴걸. 졸업하고 나면 모두 다 가지려고 할 거야. 런던의 좋은 직장, 멋진 아파트와 차, 많은 봉급, 와인 바. 더 이상 이런 궁상은 떨고 싶지 않게 될 걸. 하지만 지금은 이해를 못할 거야. 저건 그저 양육에 대한 반발일 뿐인데. 대학은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도록. 리버스도 다르지 않았었다. 그는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제대해 당당히 귀향하는 꿈을 꾸었었다. 현실은 그 반대였고.


1987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작가 "이언 랜킨"이 여러 번 이곳저곳에서 말했듯이 대학원생일 무렵 첫 데뷔작 "The Flood"를 쓴 후 바로 떠오른 스토리를 구상해서 쓴 작품입니다. 물론 시리즈로 만들 생각도 없었고. 런던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전까지 한때 수도였던 유령의 도시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고딕풍 서스펜스를 담고 싶었던 "이언 랜킨"의 의도는 고스란히 이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 담겨져 있습니다. 역시나 작가가 인정하듯 약간의 미숙함도 같이. 당시 20대였던 "이언 랜킨"은 범죄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경찰 업무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며 40대 중년 이혼남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출판사는 이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 단 한 푼의 홍보비도 책정하지 않아, 책은 그대로 사장되었고 "이언 랜킨"은 "존 리버스"라는 캐릭터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편집자의 권유로 그는 다시 "존 리버스"를 불러내고 이젠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범죄소설 시리즈를 쓰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매년 팔리는 범죄소설의 10퍼센트를 팔아치운다는 조사나 발표하는 책마다 영국에서 3개월 안에 50만부 이상을 팔아치운 다는 통계는 흔히 알려진 사실이니 더 이상 언급 안하더라도, 영국 최대의 서점 체인 중 한곳인 WHSmith에서 올해 초에 진행한 독자들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캐릭터 부분에 영국의 전설적인 캐릭터들인"모스"경감과 "미스 마플""포와로"를 제치고 "존 리버스"가 2위를 차지 한 것만 봐도 이 시리즈의 위상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1위는 당연하게도 "셜록 홈즈".)


서부 해안 동료들은 에든버러를 경찰의 천국이라고 불렀다. 파틱(Partick)에서 야간 순찰을 한 번 해보면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갈 텐데. 하지만 리버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든버러에서는 범죄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도시를 뒤덮은 기묘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에든버러는 정신분열증적인 도시였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탄생한 곳. 브로디 조합장의 도시. 겉으로만 번드르르한 실속 없는 도시.


2005년에 '에드거 상' 수상작인 시리즈 열세 번 째 작품 "부활하는 남자들"이 출간된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존 리버스"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그것도 시리즈의 시작점인 첫 작품 "매듭과 십자가"가. 출판사 오픈하우스가 새롭게 런칭한 장르브랜드 '버티고(Vertigo)'에서 앞으로 쭉 "리버스"시리즈를 내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동안 "리버스"시리즈가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는데. 간혹 사람들이 "이언 랜킨"을 영국의 "마이클 코넬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현시점에서 대중성이나 작품성으로 "마이클 코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범죄소설 작가는 "이언 랜킨"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영국 독자들이 듣게 된다면 정말 자존심이 상할 겁니다. 영국독자들이 보면 "마이클 코넬리"가 미국의 "이언 랜킨"일 테니까 말입니다.( "리버스"와 "보슈"도 약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흔치않은 이름 _"샤프트(Shaft)"의 "존 샤프트"와 퍼즐, 수수께끼 라는 뜻의 "Rebus"를 합친_, 군 출신, 군대 시절의 어두운 기억, 재즈를 좋아하는 음악취향, 쉽게 다가가지 못할 독불장군 스타일 등)

작가 "이언 랜킨"가 인정하듯 이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는 약간의 미숙함과 치기어림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설적인 시리즈의 시작으로 상당히 괜찮은 범죄소설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독특한 분위기와 건조한 문체들, 신경쇠약에 걸린 위태로운 캐릭터, 흥미로운 퍼즐들 그리고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재해석한 흔적들이 조합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물론 작품 자체로도 괜찮지만 또 하나의 전설적인 시리즈를 처음부터 맛보고 싶으시다면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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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드래곤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4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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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의 마스터'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가 2009년에 발표한 "해리 보슈"시리즈 열네 번째 작품 "나인 드래곤(Nine Dragons)"이 나왔습니다. 이번 작품 "나인 드래곤"에서는 "해리 보슈"가 미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약을 합니다. 그리고 시리즈 중 가장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서 폭주를 하는 "해리 보슈"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작가"마이클 코넬리"가 "로스트 라이트"를 끝내자마자 구상에 들어가서 7년간 공들인 작품인 만큼 "해리 보슈"라는 캐릭터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주류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주류점의 주인인 중국 이민자 "존 리"는 가슴에 총 세발을 맞고 사망했고, 주류점 내의 CCTV 녹화기의 디스크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건 현장으로 파트너와 출동한 "해리 보슈"는 원활한 사건 수사를 위해 AGU(아시아인 조직범죄 전담반)에 도움을 요청하고, 매주 피해자가 사망한 그 날, 그 시각에 삼합회의 조직원이 주류점으로 와서 상납금을 받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매주 상납금을 받으러 온 삼합회 조직원을 유력 용의자로 지목하고 감시하던 중 그가 미국을 떠나려는 낌새를 보이자 "해리 보슈"는 공항에서 그를 체포합니다. 그리고 아직 확실한 증거가 없어 촉박하게 수사를 진행해야 하는 "해리 보슈"에게 사건에서 물러서라는 협박 전화가 걸려 옵니다.


"뭘 보고 삼합회라는 거야?"

"상납금 액수가 216달러였다면서요."

"맞아. 존 리가 그 손님이 낸 돈을 되돌려줬어. 그러고는 20달러짜리 열 장, 10달러짜리 한 장, 5달러짜리 한 장, 1달러짜리 한 장을 꺼내줬고. 거기에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거야?"

"삼합회는 보호를 바라는 영세 사업자들로부터 매주 상납금을 받아가고 있어요. 상납금은 보통 108달러입니다. 216달러라면 두 배를 낸 거네요."

"왜 108달러야? 세금에다 부가세를 또 붙이는 건가? 끄트머리 8달러는 주 정부나 어디 다른 곳에 갖다 바치는 거야?"


사우스 LA의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행운주류'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 "해리 보슈"와 파트너 "이그나시오 페라스"가 출동합니다. 오래 전("앤젤스 플라이트"의 마지막 부분), 죽은 '행운주류'의 사장인 "존 리"와 짧은 인연이 있었던 "보슈"는 AGU의 "데이비드 추"형사의 도움을 받아 수사를 진행합니다. 사건 당일 찍힌 CCTV 디스크는 사라졌지만 다른 디스크를 찾아 본 결과 매주 사건 당일과 같은 요일에 삼합회 조직원이 상납금을 수거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조직원을 공항에서 검거 합니다. 용의자는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제대로 된 증거가 없어 초조한 "보슈"에게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보슈"는 이내 LA경찰청 내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간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홍콩에 있는 딸의 전화기에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된 30초짜리 동영상을 본 "보슈"는 경악을 하게 됩니다. 그 동영상에는 프로 카드 플레이어인 엄마 "엘리노어"와 함께 홍콩에서 살고 있는 딸 "매들린"이 어떤 방 안에서 의자에 결박 당한채 입에 재갈이 물려 공포에 떨고 있는 장면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보슈"는 용의자가 풀려나기 전에 딸 "매들린"을 구하러 홍콩의 카우룽(九龍)으로 떠나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박한 39시간의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보슈는 예전부터 줄곧 자신에게 사명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방탄조끼를 입은 것처럼 단단해져야 했다. 어느 것도, 어느 누구도 자기를 해칠 수 없도록 그 자신이 단단해지고 무적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존재도 모르고 살았던 딸을 처음 만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과 동시에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만이 아는 방식으로 세상과 영원히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맞서는 어둠의 세력이 언젠가는 딸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둘 사이에 거대한 태평양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임을, 악의 세력이 딸을 찾아내고 그를 치기 위한 방법으로 딸을 이용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베테랑 LAPD인 "해리 보슈"는 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고독한 코요테 같은 형사입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도 알지 못했던 딸 "매들린"의 존재는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베트남의 땅굴 속 어둠에 잠식된 자신의 인생에 한줄기 빛이 됩니다. 하지만 구원과도 같은 딸의 존재는 "보슈"에게 꼭 지켜야만 할게 있다는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제 "보슈"는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아홉 마리의 용'이 있다는 홍콩의 카우룽(九龍)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보슈"가 홍콩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이 이야기는 오로지 "보슈"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됩니다.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딸을 되찾겠다는 "보슈"는 완전히 폭주를 하고 그가 지나간 길엔 시체들이 쌓여갑니다. 시리즈 초창기의 거칠고 거침없던 "보슈"에게 분노가 더해진 이런 모습은 이 작품 "나인 드래곤"의 최대 매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소한 동양의 홍콩이란 도시에서 조력자인 전 부인 "엘리노어"와 그녀의 애인 "선 이"의 도움을 받아 제한된 시간 안에 딸을 찾는 "보슈"의 긴박한 상황들은 엄청난 흥분을 안겨주고 쉴 새 없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책을 한 순간도 덮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다다르면 "보슈"에게 짊어 져야할 또 다른 죄책감과 책임감이 생기는 것을 목격하고고 여전히 터널 안에서 멈추지 말고 다시 터널 밖을 찾아 헤메어야 하는 "보슈"의 운명에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무슨 용도로 원하느냐는 거죠. 아이들을 원하는 목적이 섹스일 때도 있고 장기 적출일 때도 있거든요. 또 아들이 없어서 사내아이를 사가는 본토 사람들도 많고요."

보슈는 혈흔이 묻어 있던 화장지 뭉치를 떠올렸다. 엘리노어는 범인들이 매들린을 통제하기 위해 약을 주사했다고 결론지었었다. 그러나 이제 보슈는 그들이 약을 주사한 것이 아니라 피를 뽑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혈액검사를 하려면 주사기로 정맥에서 피를 뽑아야 했을 것이다. 화장지는 주사기를 뺀 후 지혈을 위해 대어놓았던 것일 수도 있다.

"매디는 큰 가치가 있는 아이겠군, 안 그래?"

"그렇죠."


작가 "마이클 코넬리"는 언젠가는 꼭 "해리 보슈"를 미국 밖으로 보내고 싶었다고 합니다.("블랙 아이스"에서 국경을 넘어 잠깐 멕시코에 다녀오긴 합니다만) 이런 그의 생각은 고독한 독불장군 "보슈"에게 딸이라는 존재를 만들어준 "로스트 라이트"를 다 집필한 후부터 구상한 이야기와 합쳐져서 이 작품 "나인 드래곤"이 탄생했습니다. 앞부분에서 제가 너무 딸을 찾기 위한 "보슈"의 거침없는 액션만 강조 한 것 같지만 "나인 드래곤"은 당연히 훌륭한 범죄 소설이자 일급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이 작품이 출간 될 때 쯤 이탈리아 신문에 "데니스 루헤인"이 기고한 에세이 "The Lost Coyote: Michael Connelly’s Harry Bosch Novels"처럼 이 작품을 통해 "마이클 코넬리"는 스스로 이 시대의 "레이먼드 챈들러"임을 입증했고, "해리 보슈"는 완벽하게 "필립 말로"의 DNA를 계승해서 자신의 조상과 견줄만한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읽을 때는 눈치 채지 못 할 수많은 복선과 상황들은 마지막 반전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기둥과 밑거름이 되고 곁가지 같아 보이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구성하는 완벽한 조각들이 됩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애수어린 여운 역시 여전히 책을 다 읽고 난 뒤, 한참 동안 독자들 주위를 맴돕니다. 오랜만에 잠깐 등장하는 "미키 할러"와 살짝 언급되는 불쌍한 "잭 맥커보이"를 볼 수 있는 것은 보너스입니다.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팠다. 마음속 고통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신체적인 고통도 찾아왔다. 날카롭고 깊숙하고 가차 없었다. 그는 무겁게 숨을 몰아쉬며 해치에 등을 기댔다. 셔츠 단추를 한 개 더 풀고 녹슨 금속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가 두 무릎을 세우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한때 자기가 살았던 동굴만큼이나 폐쇄적인 공간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장 등의 배터리가 죽어가고 있으니 곧 그는 어둠 속에 남겨질 것이다. 패배감과 절망감이 그를 압도했다. 그는 딸을 실망시켰고 자신을 실망시켰다.


정말 오랜만에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원래 작년 말에 출간될 예정이었는데 6개월 가까이 밀려서 이제야 나왔습니다. 뭐 이런저런 출판사 문제도 있었겠지만 시리즈 표지까지 전부 바뀌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출판사의 행보에 많이 실망했었는데 "나인 드래곤"를 읽고 나니 그동안의 불만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도 아직 불만인 부분이 좀 있지만 역시나 작년 말에 출간될 예정이었던 "미키 할러"시리즈 세 번째 작품 "The Reversal"까지 올해 출간 된다면 남아있던 불만이 조금 더 누그러질 것도 같습니다.

사실 드라마 "BOSCH"에 대해서 하고픈 말들도 많았는데 그냥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현실적인 수사 드라마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이 드라마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본 미드 중에서 이렇게 LA라는 도시를 잘 표현하고 묘사한 드라마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 연출이나 연기, 각본, 음악도 훌륭하고. 아마존 프라임에서 기록까지 세워서 일치감치 시즌2 제작도 결정 났으니 국내에서도 드라마나 소설이 더욱 인기를 끌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인 드래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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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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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게일 린즈""람보"의 아버지 "데이비드 모렐"이 2004년에 만든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 ITW(International Thriller Writers)가 2014년에 발표한 앤솔러지 "페이스 오프(Face Off)"입니다. 비영리 단체인 ITW가 회원인 작가들에게 회비를 받는 대신 매년 회원인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아 앤솔러지를 발표해서 그 비용으로 단체를 운영하는데, 이번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동명영화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절대 권력(Absolute Power)"과 미드 "King and Maxwell"의 원작 시리즈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David Baldacci)"가 편집을 담당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 "야간비행(Red Eye)"은 2015 '에드거' 상 단편부분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야간비행"을 제외하고라도 이 작품 "페이스 오프"에는 스릴러 팬들이 꿈에서만 그리던 바램을 현실로 실현시킨 단편들만이 수록된, 정말 특별한 앤솔러지입니다.


이 책이 아니고선 대체 어디서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이 존 샌드포드의 루카스 데븐포트를 만나는 걸 볼 수 있겠는가? 해리 보슈가 패트릭 켄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또 어떻고? 스티브 베리의 코튼 말론과 제임스 롤린스의 그레이 피어스 팬들은 이 두 주인공들을 같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몇 년 동안 아우성쳤다. 그런가 하면 리 차일드의 잭 리처가 보스턴의 한 술집에서 조셉 핀더의 닉 헬러와 만나 리처의 필살기를 선보이는 장면도 나온다. 거기다 스티브 마티니의 폴 다드리아니가 린다 페어스타인의 알렉스 쿠퍼와 엮이게 되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짜 중의 괴짜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가 R. L. 스타인의 무시무시한 세계와 대면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문 中>, 데이비드 발다치-


그 동안 국내에서도 ITW에서 발표한 앤솔러지가 몇 권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 "페이스 오프"는 정말 특별한 단편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란 베스트셀러 작가 23명("더글라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는 공동 작업)이 팀을 이루어 써낸 총 11편의 단편들 모두가 작가들의 대표 캐릭터들이 만나서 서로 협력하거나 대립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들로 이루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야간비행"에서는 LAPD "해리 보슈"가 사건수사 차 보스턴으로 날아가 사립탐정 "패트릭 켄지"을 만나 사건을 해결합니다. 저 두 캐릭터 이외에도 "잭 리처", "존 레버스", "로이 그레이스", "링컨 라임", "루카스 데븐포트", "닉 헬러",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 등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서로 조우해서 같은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대립하거나 협력하는 흥미로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편집자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말 그대로 이런 기획의 앤솔러지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평생에 단 한번 만날 수 있는 작품일 지도 모릅니다.


"이름 한 번 기똥차네. 어떻게 불러야 하죠?"

"해리라고 불러."

"좋아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해리?"

"그런 당신은 뭐하고 있는데? 당신 목의 그 체인에 달린 게 경찰 배지는 아니잖아."

"아니라고?"

보슈가 고개를 흔들었다.

"셔츠 밑으로 윤곽이 보였어. 십자가인가?"

패트릭은 잠시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차고 다니면 마누라가 좋아해서요." 그는 손을 내밀었다. "패트릭 켄지라고 합니다. 경찰은 아니고 일종의 프리랜서죠".


이 앤솔러지의 시작은 "마이클 코넬리""데니스 루헤인"이 함께 쓴 "야간비행"입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서 90년대 벌어진 미해결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간 "해리 보슈"는 실종된 소녀를 찾는 사립탐정 "패트릭 켄지"를 만나고 그 둘은 서로가 같은 용의자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영국에서 최고의 범죄소설가로 꼽히는 두 작가 "이언 랜킨""피터 제임스"는 임종직전의 한 남자가 과거의 살인을 고백하면서 그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존 레버스""로이 그레이스"를 한자리에 불러 모읍니다. "더글라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는 작품 "가스등"에서 신비하고 기괴한 사건을 수사하는 FBI특별요원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를 미국에서만 3억 부가 넘게 팔린 "구스범스"시리즈의 작가 "R.L. 스타인"의 공포스러운 세계로 보내고, 법정 스릴러의 대가들인 "스티브 마티니""린다 페어스타인"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각자의 캐릭터인 변호사 "폴 마드리아니"와 여검사 "알렉산드라 쿠퍼"를 같은 사건 속에 몰아 넣습니다.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인 "제프리 디버""존 샌드포드""라임과 프레이"에서 "Prey"시리즈로 유명한 "루카스 데븐포트"를 뉴욕으로 불러들여 "링컨 라임""아멜리아 색스"함께 연쇄살인범을 뒤쫓게 하고 액션 스릴러의 대가들인 "스티브 베리""제임스 롤린스"는 전직 법무부 비밀기관인 '마젤란 빌릿' 요원인 "코튼 말론"과 '시그마 포스' 요원인 "그레이 피어스"를 아마존 밀림으로 보내서 위험한 독극물을 테러리스트로부터 지켜내야하는 임무를 맏깁니다. 오랜 낚시 친구인 "존 레스크로아트""T. 제퍼슨 파커""와이어트 헌트""조 트로나"를 낚시 관광으로 먹고 사는 맥시코의 작은 어촌마을을 카르텔에게서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대단한 배려"에서는 "리 차일드"의 떠돌이 영웅이자 뉴욕 양키스 팬인 "잭 리처"가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이 드글드글한 보스턴의 한 바에 들어가 "조셉 핀더"의 캐릭터인 사설 스파이 "닉 헬러"를 만나서 의기투합한 후에 엄청난 오지랖을 부려서 위기에 빠진 한 남자를 구합니다. 그 외에도 "웃는 부처", "지옥의 밤", "정차" 등 흥미진진한 단편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당신 이름은 있는 겁니까?"

"이름 없는 사람도 있소?"

리처가 대답했다.

"그럼 이름이 뭐죠?"

"리처."

"난 헬러라고 해요."

그 남자가 왼쪽 주먹을 내밀었다. 리처가 거기다 대고 들롱의 등 뒤에서 오른쪽 주먹을 쳤다. 레드삭스 팬과 주먹을 맞댄 게 처음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살살 친 건 처음이었다.


사실 작가들이 서로의 캐릭터를 만나게 하거나 서로의 작품 속에서 슬쩍 언급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들 마다 소속된 에이전시와 출판사가 다르기에 캐릭터의 이름은 언급하지 못하고 팬들이 알아챌 수 있도록 특징을 묘사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페이스 오프"는 오로지 ITW의 운영을 목적으로 기획된 작품이라 이런 꿈의 기획이 가능했습니다. 정말로 저 같은 스릴러 소설의 팬들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입니다. 처음엔 작가들이 팬들을 위한 서비스로 쓴 이벤트 성이 강한 단편들이 모였을 줄 알았는데, 하나 하나 독특하면서 흥미로운 작품들이 모였습니다. 어쩌면 작가들이 자신들의 주력 캐릭터의 명성에 흠집이 나지 않게 더 공들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히 훌륭한 단편들입니다. 몇몇 작품은 장편으로 다시 써졌으면 좋을 정도로 눈에 밟히는 캐릭터들의 조합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작품 하나 하나가 다 이색적이고 훌륭합니다. 특히나 서로의 캐릭터들이 처음 만나 탐색하듯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속으로 상대방에 대한 인상을 생각하는 부분은 마치 그동안 제가 받았던 인상을 다시 확인 받는듯한 느낌이 들어 묘하게 더 흥분됐습니다.


"별로 다르지 않아요." 레버스는 대답하면서 클라크와 그레이스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마침 때맞춰 왔네."

로이 그레이스가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는 곳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심지어 세대도 다르지만, 그는 존 레버스와 가장 중요한 걸 공유하고 있었다.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쾌감.


국내에 출간된적이 없는 작가도 있고 출간되었더라도 이 선집 "페이스 오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아닌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캐릭터에 대한 사전정보를 모르더라도 단편 시작 전에 캐릭터에 대한 간단한 기본 정보와 배경이 제공되어서 작품을 즐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동안 이야기만 듣고 처음 접하는 캐릭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란 걱정을 했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그동안 말로만 듣던 "F. 폴 윌슨"의 유명한 캐릭터 "수리공 잭(Repairman Jack)"을 만나보게 되었던게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번역도 각각의 작품들 분위기에 어울리게 잘 되었고 캐릭터 고유의 말투나 묘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단편인 경우 기출간작들과 분위기나 말투가 달라져서 찝찝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 부분에 있어서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살아 있다.

좋은 징조다.

그는 1분 더 기다렸다. 그리고 1분 더.

죽음은 오지 않았다.

피어스가 그의 옆에 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끝내주는 파트너였어요. 노인네치고는 동작이 빠르네요."

말론이 발사기를 내려놨다.

"누구 보고 노인네래?"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단편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페이스 오프"도 유명 캐릭터들이 만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뿐, 큰 기대를 안했는데 작품들이 하나같이 재미있어서 상당히 만족하며 읽었습니다. 정말 스릴러 소설의 팬이시라면 꼭 읽어보셔야할 단편 선집입니다. 솔직히 "해리 보슈""패트릭 켄지"가 만나서 같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스릴러 소설 팬이라면 어찌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단숨에 다 읽었지만 틈틈이 한 작품씩 시간내서 읽는 것도 이런 선집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상당히 좋은 작품들만 모아져 있고 특별한 기획의도 때문에 상당히 소장가치가 큰 작품입니다. 스릴러 소설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 "페이스 오프"를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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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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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가 2011년에 발표한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 "에이전트 6(Agent 6)"입니다. 이 작품은 냉전시대의 긴장이 다소 완화되기 시작하는 1960년대 후반의 구소련을 배경으로 젊고 유능했던 전직 MGB 요원이자 살인수사과의 수사관을 거쳐 평범한 노동자로 살던 40대의 "레오 데미도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평범한 공장의 매니저로 일을 하는 "레오 데미도프"는 자신이 그토록 지키려했던 가족들과 함께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 평범한 노동자가 된 남편 "레오"와는 달리 학교 교장이 되어 소련 교육계의 중요한 위치까지 올라간 "라이사"는 두 딸 "조야"와 "엘레나"를 데리고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레오"도 같이 가려고 노력했지만 KGB를 뛰쳐나온 그에게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 혼자만 모스크바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라이사"와 두 딸들이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인과 소련인 남녀가 같은 날 뉴욕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과 소련은 동시에 단순한 치정에 얽힌 사건이라고 발표를 합니다.


"하나도 잃을 것이 없는 자의 계산된 위험이지. 당신은 최대한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기술의 전문가잖아. 그런 수법은 적당히 써먹고 끝냈어야지. 당신에게 들어간 돈이 얼만데 지금까지 당신이 뭘 했어?"

"내가 소련을 위해 무엇을 더 할지 기꺼이 토론할 수도 있는데."

"토론은 이미 했어. 당신의 임무는 결정됐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좋겠군."

그 남자는 셔츠 입은 가슴을 긁다가 놀라울 정도로 길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자신의 손톱을 바라봤다.

"곧 아주 중요한 일이 일어날 거야. 그 일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를 해야 해. 당신은 카메라를 받았어. 내가 뭘 받았는지 보여주지."

그는 테이블 위에 권총 한 자루를 내려 놨다.


KGB를 뛰쳐나간 "레오"는 이제 권력에서 멀어져 평범한 작은 공장의 매니저로 일을 하는 반면, 중등학교 교장이 되어 점점 실력을 인정받게 된 "라이사"는 조금씩 권력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오"는 아내 "라이사"를 질투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며 입양한 두 딸과 아내가 함께하는 삶에 만족해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중심인 냉전의 갈등과 긴장이 조금씩 식어가면서 형성된 화해무드에 편승해서 소련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의 합동 공연이 UN 빌딩에서 기획되고 "라이사"는 소련학생들을 인솔하여 두 딸을 동반한 채 미국 뉴욕으로 떠나게 됩니다. 같이 가고 싶었던 "레오"는 괘씸죄로 인해 모스크바에 혼자 남게 되고 아내와 두 딸이 뉴욕으로 떠나는 여행에 불길함을 느낍니다. UN 빌딩에서 공연하는 당일 과거 미국에서 인기 가수이자 유명한 공산주의자였던 흑인 남자와 소련인 여자가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미국과 소련은 이 사건을 오래된 인연이 만들어낸 치정 사건으로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모스크바에서 평범한 인생을 살던 "레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뉴욕에서 죽은 소련인 여자가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라이사"였기 때문입니다.


레오는 라이사의 눈에서 두려움을 봤다. 물론 그리고리가 잘못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녀는 두려웠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온 것이다. 마침내 레오는 그녀에게 뭘 줄 수 있을지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보호해줄 수 있었다. 그게 대단한 재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시절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내를 만족시키고 그를 사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레오는 라이사의 손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노력해볼께요."


전쟁 영웅이자 비밀경찰, 수사관으로써 소련 사회의 특권층이었던 "레오"는 이젠 평범한 노동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동안 누리던 특권을 포기하고 전 보다 조금 불편하게 살아가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가 비밀경찰을 그만둔 이유는 "레오" 자신이 국가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아내 "라이사"가 싫어해서 이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레오"에겐 "라이사"가 삶의 지침이자 자신을 비추는 양심이 되었습니다. 그런 "라이사"가 뉴욕에서 살해당합니다. 미국과 소련은 단순하지만 치욕적인 이유를 대며 죽은 "라이사"를 모욕하고 "레오"는 아내를 죽인 살인범을 찾아내기로 다짐하며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예전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레오"는 무려 16년에 걸쳐 "라이사"가 죽은 바로 그 장소, 뉴욕까지 가기 위해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다가 잡히고 결혼한 두 딸에게 더 이상 피해가 가지 않도록 국가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일을 받아들여 아프카니스탄으로 가서 죽은 아내 "라이사"가 그토록 싫어했던 비밀경찰이 다시 되지만  "라이사"를 잊기 위해 아편에 의지하며 하루하루 무의미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다시 자신의 조국이 벌이는 나쁜짓에 동참하게 되지만 결국 어떻게든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자신의 나라 소련과는 너무도 다른 미국. 하지만 미국 역시도 국가의 힘이 국민의 눈을 쉽게 가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레오"는 오랜 시간을 견디어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냅니다. 비록 불륜을 저질러 애인을 죽였다는 오명을 벗겨내지 못하더라도. 정말로 이 여정이 너무 눈물겹도록 슬프고 애잔해서 몇 번이나 울컥하는 것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이바노프, 자넨 날 모르지. 하지만 난 자네가 저지른 짓을 알고, 엘레나의 아빠인 레오 데미도프도 잘 알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레오가 알게 되면 자넬 찾아서 죽일 거야. 그 점은 내가 상당히 확신해. 자넨 즉시 시내를 떠나야 해. 자네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몰라야 해. 그렇지 않으면 레오가 내게 물어봤다가 내 거짓말을 알아차릴 거야. 같은 이유로 만약 자네가 누군가에게 말하면, 가족 중에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레오가 자넬 찾아낼 거야. 자네가 살아남을 유일한 길은 내가 시키는 대로 입도 벙긋하지 않고 사라지는 거야. 물론 결정은 자네가 내리는 거지. 행운을 비네."


이 작품 "에이전트 6"는 삼부작의 첫 작품 "차일드 44"에 녹아있는 미스터리적 요소는 별로 없습니다. 삼부작 두 번째 작품인 "시크릿 스피치"보다도 더. 사실 저는 "차일드 44"도 이데올로기와 그 사회에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미스터리 요소를 도구로 사용했다고 생각하기에 그 점에 대한 불만 없이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작품 "에이전트 6"는 그냥 공산국가였던 구소련에서 살던 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 삼부작이 고스란히 "레오 데미도프"라는 한 인간의 삶 그 자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전쟁영웅에서 비밀경찰, 살인사건 수산관, 평범한 노동자에서 다시 점령지에 파견되는 군사고문이 되었다가 조국의 반역자가 되는 "레오"의 인생은 작가 "톰 롭 스미스"가 말하고자 하는 국가가 만들어낸 유토피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목격하게 되는 허구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신념에 대한 환상이 가리고 있는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영리하게도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구소련을 이 이야기의 주 무대로 고르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 "레오"의 마지막은 처음부터 비극이 될 운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타

다른 승객들은 이 브랜드의 악명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은 환타 병이 카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도 몰랐고, 취조실에서 기다리는 죄수의 마음속에 이 브랜드가 어떤 공포를 만들어내는지도 몰랐다. 여기 뉴욕에서 환타는 설탕이 들어 있는 음료수이자 활기찬 재미의 상징 이상은 아니었다. 레오는 그 광고를 빤히 보면서 자신이 또 다른 세계에서 찾아온 방문객이라고 느꼈다.


사실 저는 이 작품 "에이전트 6"가 슬프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어서 각오하고 읽었는데도 잘 참다가 마지막 한 장을 남겨두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창피하게도 말이죠.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의 집념과 사랑, 희생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꼭 "레오 데미도프"삼부작을 연달아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제가 상용구처럼 쓰는 생생한 캐릭터들, 잘 짜인 플롯 같은 글들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어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레오"의 인생을 쭉 따라가시다 보면 마지막에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실 겁니다. 어쩌면 제가 그랬듯이 마지막 장에서 눈물을 흘리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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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띠리 2015-06-09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라이사`가 .....비극이군요....
미스테리보다는 공산국가의 첩보전에 무게를 두면 되겠죠~?^^

다크차일드 2015-06-09 07:19   좋아요 0 | URL
첩보전이라기도 애매하고 그냥 역사스릴러로 보시면 될듯 합니다.

즐건독서 2015-07-0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께 다 읽었는데, 라이사가 갑자기 죽어서 ㅜㅜ.
레오의 인생을 쭉 따라가는 재미.
 
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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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발표한 데뷔작인 "차일드 44"로 '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을 포함한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고 '맨 부커' 상 후보까지 올랐던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가 2009년에 발표한 "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The Secret Speech)"입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구소련의 MGB 요원으로 활동하다 살인수사과를 창설한 수사관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 중 두 번째 작품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인쇄공이 인쇄소에서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살인수사과를 지휘하는 "레오 데미도프"는 칼에 찔려 죽은 인쇄공의 시체를 보고 살인이 아니라 자살임을 알게 됩니다. 자살한 아버지 때문에 장래가 막힌 인쇄공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자살한 후에 상처를 낸 것이었습니다. "레오"는 그 인쇄공이 무엇인가를 인쇄하던 도중 자살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GB 신입 요원 시절 상관의 연락을 받은 "레오"는 그가 한 동안 자신이 체포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받은 사실을 듣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살한 채로 발견되고, "레오" 앞으로 어떤 문서가 배달됩니다. 그것은 바로 "스탈린"이 죽은 후 서기장이 된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가 비공개 회의에서 발표한 '비밀 연설문'이었습니다.


"사실일 리가 없어."

어떻게 이게 사실일 수가 있어? 하지만 이 문서는 국가의 도장이 찍힌 편지와 함께 오직 국가만이 아는 정보, 출처, 인용문, 참조 번호를 담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믿었던 침묵의 공모가 끝난 것이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이 연설문은 사실이었다.


인쇄공과 직장인인 두 명의 남자가 자살을 합니다. KGB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살인수사과를 만들어 지휘하던 "레오 데미도프"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두 명 모두 전직 MGB 요원이었고 죽기 얼마 전부터 자신들이 체포한 사람들의 사진들을 배달 받았음을 알게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살한 날 그들에게 보도금지가 된 '비밀 연설문'이 배달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레오"에게도 그 '비밀 연설문'이 배달되었기 때문입니다. "레오"는 오래전 자신이 신입 MGB 요원이었을 당시 겪었던 어떤 사건을 기억해내고 당시 총대주교였던 사람을 찾아가지만 "레오"의 눈 앞에서 살해당합니다. 일반 사회에는 유출되어서는 안되는 '비밀 연설문' 때문에 사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레오"는 이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지우고 싶었지만 복수의 대상이 된 "레오"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체포한 수 많은 사람들이 보내졌던 57수용소로 가기 위해 죄수로 위장해서 볼셰비키 감옥선에 몸을 싣습니다.


레오는 한때 공산체제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이제 가족에 대해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유토피아에 대한 그의 비전은 더 축소되었고, 덜 추상적이 됐다. 이제 그의 유토피아는 전 세계가 아니라 단 네 사람이 속한 가족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그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살인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구소련에서 연쇄살인범을 잡은 "레오 데미도프"는 KGB를 거부하고 조력자 "티무르 네스테로브"와 함께 살인수사과를 창설하여 범죄를 수사합니다. 사상에 눈이 멀고 거짓에 속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진짜 범죄를 수사하는 "레오"에게 언젠가는 찾아와야할 과거의 유령이 찾아옵니다. 그 무렵 "스탈린"이 죽고 난후 "흐루쇼프"가 발표한 '비밀 연설문'으로 소련 사회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절대 신이자 법 이었던 "스탈린"이 저지른 악행을 인정하고 비판하는 이 연설문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비밀로 부쳐져야 했지만 유출이 되어 소련을 넘어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은 이제 보복과 비판을 두려워 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궐기할 조짐이 조금씩 보이게 됩니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레오" 자신과 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인 가족까지 위험하게 되면서 "레오"는 모스크바에서 감옥선을 타고 서태평양을 건너 콜리마에 있는 57수용소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험난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이 험난한 여정에 따르는 엄청난 고통을 "레오"는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그게 자신의 과오를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험난한 "레오"의 고난과 활약이 중심이긴 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레오"와 그가 입양한 딸들과 아내 "라이사"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첫째 딸 "조야". 전작에서 국가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눈이 멀어 명단에 적힌 사람이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사람들을 체포했던 "레오"가 그 믿음의 모순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 때문에 죽게된 부부의 두 딸들을 입양하고 절대적으로 사랑을 쏟지만 자신의 부모가 죽는걸 목격한 큰 딸 "조야" "레오"가 사랑을 쏟을수록 증오를 키웁니다. 그가 상처받아야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것처럼 잔인하게 구는 "조야"의 행동을 알면서도 "레오"는 묵묵히 큰 딸을 위해 모든 걸 견디어 내며 그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칩니다. 그의 행동은 "레오"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아내 "라이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고 자신이 체포한 무고한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길이기도 한 것처럼 처절합니다. 이 부분이 정말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던 공산체제의 실체를 깨닫고 그 공허함을 사랑으로 채우려는 미련하고 헛된 노력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세계만방에 우리가 진정한 괴물이란 걸 보여주고 있는 거지. 나도 거기서 제외될 수 없고. 이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든 우리 모두가 괴물인 거야. 난 지금 다섯 명의 이름이 적힌 명단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게 아니야. 난 지금 이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거나 암묵적으로 공모한 수백만 명을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런 면에서 유죄인 사람이 무죄인 사람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려해본 적 있나? 무죄인 사람이 소수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스탈린"의 살인, 공포정치를 비판하는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문'이 불러들인 파장 속에 펼쳐지는 "레오"의 험난한 여정을 담은 이 작품 "시크릿 스피치"는 전작 "차일드 44"와는 다르게 미스터리 부분 보다 스릴러적인 부분이 훨씬 큰 작품입니다. 그런데 정말 좋습니다. 어떤 부분은 "차일드 44"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격변하는 구소련 사회 속의 특권층이자 권력층이었던 한 개인의 변화와 속죄를 이렇게 멋지게 써낼 수가 있다니! 이건 주인공 "레오"가 구원을 받느냐 마느냐가 아닌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한 그의 힘겨운 노력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 이야기를 스릴러란 틀에서 이렇게 마음껏 펼쳐내다니, 작가 "톰 롭 스미스"는 정말 대단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랜만에 정말 뛰어난 전작에 부족함이 없는 후속작을 만나서 즐거운 독서를 했습니다. 물론 스릴러 작품이기에 오락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하긴 합니다만 그부분에서도 전혀 부족한 부분이 없습니다. 문장, 플롯, 서스펜스 모두가 훌륭합니다. 오히려 너무 성공한 "차일드 44"의 그늘에 너무 가려져 있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레오, 우린 나라의 생존을 위해 침묵의 전쟁을 하고 있는 거야. 이건 스탈린이 도를 넘었는지 넘지 않았는지와는 아무 상관없어. 스탈린은 도를 넘었지. 당연히 넘었지. 하지만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거야. 그런데 우리의 권력은 과거에 기반을 두고 있거든. 우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철권통치를 해야 해.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시민들이 전과 같이 우릴 사랑해주길 바랄 수는 없지. 앞으로 우리가 사랑받을 가망성은 없으니까, 반드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거지."


영화 "차일드 44"가 개봉되는 시기에 맞추어 이 작품 "시크릿 스피치"와 삼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이전트 6"가 동시에 출간 되었습니다. 이 삼부작 완결되길 3년 이상은 기다린 것 같은데 영화화 되는게 이렇게 고맙기는 오랜만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삼부작 마지막 작품인 "에이전트 6"는 정말로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작품이라는고 하던데, 이 글을 마치고 바로 시작할 예정입니다. 작가 "톰 롭 스미스"가 써낸 네 작품 중 세 작품을 읽고 나니 이젠 이 친구에게 확고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출간하는 즉시 사서 읽어도 최소한 실망할 일은 없겠다는 믿음 말입니다.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사라진 후 격변하는 소련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일급 스릴러인 "시크릿 스피치" 추천드립니다.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가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이 기회에 삼부작을 연달아 읽으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이제 "에이전트 6"를 읽으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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