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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과 십자가 ㅣ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제임스 엘로이"가 '타탄 느와르의 왕(The King Of Tartan Noir)'이라고 불렀던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작가 "이언 랜킨(Ian Rankin)"의 "존 리버스(John Rebus)"시리즈 첫 번째 작품 "매듭과 십자가(Knots and Crosses)"가 드디어 나왔습니다. 한때, 매년 영국에서 팔리는 범죄 스릴러 소설의 10분의 1을 차지했을 정도로 인기 시리즈인 "존 리버스"시리즈의 출발점이 된 "매듭과 십자가"는 원래 작가 "이언 랜킨"이 시리즈를 의도하지 않고 쓴 단발성 기획 즉, 스탠드언론이었습니다. 거기다 원래 의도한대로 마무리되었다면 독자들은 "존 리버스"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십대 소녀 두 명이 납치되어 교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비슷한 수법으로 미루어 연쇄살인일지도 모를 심각성이 대두되자 많은 경찰들이 이 사건 수사팀으로 배치됩니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메시지가 적힌 협박편지들을 받고 있어서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존 리버스"경사 역시 다른 사건은 뒤로 밀어두고 이 사건을 수사하는 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얼마 뒤 또 다른 소녀가 납치되면서 연쇄살인임이 확실해자 경찰은 물론 에든버러 전체가 들썩이게 됩니다.
"게밀과 하틀리는 호별 조사를 맡도록 해."
다행히 그건 내게 오지 않았군. 호별 조사보다도 나쁜 게 딱 한 가지 있는데......
"유사사건 파일 조사는 모튼 경사와 리버스 경사."
늘 이런 식이지.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오늘 저녁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스코틀랜드 중앙 동부에 사는 변태 성욕자와 성범죄자들의 사건 기록을 훑어보는 것. 왜 저를 그토록 증오하십니까? 제가 무슨 욥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그래서 이러시는 겁니까?
경찰서로 또 다시 매듭지어진 노끈과 함께 '단서는 사망에 널려 있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편지를 배달받은 날, "존 리버스"경사는 에든버러를 공포로 몰아넣기 시작한 연쇄살인 사건 수사에 합류합니다. 뚜렷한 단서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찰들을 비웃는 듯이 범인은 또 다른 소녀를 납치해서 죽이고, 스코틀랜드 언론들은 소녀들을 납치해서 교살하는 범인을 에든버러 교살자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리버스"경사에게 다시 익명으로 '시간의 틈을 읽으라.'라는 메시지가 도착하고 봉투 안에는 매듭지어진 노끈 대신 성냥개비로 만든 십자가가 들어있습니다. 범인은 또 다시 십대 소녀를 납치하고, 다시 신경쇠약에 시달리기 시작하는"리버스"에게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합니다. '아직도 모르겠지? 그렇지?'
경찰은 산더미처럼 쌓인 규정과 씨름하며 깊은 범죄의 골을 한탄할 뿐이다. 범죄는 사방에 넘쳐난다. 속이고, 따돌리고, 권위를 모욕하고, 살인하고, 범죄에 한 번 물들면 합법성을 되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변호사들과 언제든 매수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용케도 그걸 알고 있었다. 마치 양쪽에서 타들어가는 막대를 쥐어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전직 SAS출신의 "존 리버스"경사는 제대 후 신경쇠약을 앓은 후 점점 더 고립되고 폐쇄적인 성격이 되어갔습니다. 경찰서 내에 친한 동료도 딱히 없을 정도로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형사입니다. 이혼 후 전처와 딸과 떨어져 혼자 사는 그에게 익명의 메시지들이 도착하고 그와 동시에 에든버러에는 에든버러 교살자라는 십대 소녀들만 노리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납니다. 소녀들을 납치한 후 성폭행이나 다른 폭행을 하지 않고 단지 교살해서 버려 버리는 이 범인은 피해자를 무작위로 고르는 듯해서 뚜렷한 단서 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살인과 수사가 진행될 수 록 "리버스"에게 배달되는 메시지들은 그를 더욱 코너로 몰아넣으며 다시 두려운 기억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 잔인한 연쇄 살인사건은 매듭과 십자가 그리고 삼목두기 게임이라는 조각들에 "리버스"의 봉쇄된 어두운 기억이 마지막 한 조각이 되어 모든 퍼즐들이 맞추어 집니다.
소설의 중반까지 주인공 "리버스" 경사는 사건의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머무르며 주변을 맴돕니다. 적극적 수사 활동의 주체가 아닌 팀원으로서 호별조사나 파일조사 차량 조사를 담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리버스"는 감을 잡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조금씩 이 사건이 "리버스"와 관련이 있을 거란 단서를 발견 하지만 "리버스"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자신이 사건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감추고 있는 기억과 가끔씩 보이는 환영, 위태로운 "리버스"의 심리적 상태와 그에게 오는 괴상한 메시지들 그리고 "리버스"의 동생인 최면술사 "마이클"의 수상쩍은 행동까지 더해져 소설 후반부까지 독자들이 "리버스"를 객관적 관점으로만 보게끔 소설이 진행됩니다. 고전적인 고딕풍으로 묘사되는 에딘버러를 배경으로 담배연기가 자욱한 바, 맥주와 위스키 그리고 좋아할 수 없는 스코틀랜드 날씨까지 더 해지는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리버스"는 스스로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되어 과거의 악몽과 마주합니다.
가엾군. 이제 좀 바뀌겠지. 인생이란 게임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대학 밖 세상이 얼마나 호화로운지 알면 이상주의가 싹 사라져버릴걸. 졸업하고 나면 모두 다 가지려고 할 거야. 런던의 좋은 직장, 멋진 아파트와 차, 많은 봉급, 와인 바. 더 이상 이런 궁상은 떨고 싶지 않게 될 걸. 하지만 지금은 이해를 못할 거야. 저건 그저 양육에 대한 반발일 뿐인데. 대학은 학생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도록. 리버스도 다르지 않았었다. 그는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제대해 당당히 귀향하는 꿈을 꾸었었다. 현실은 그 반대였고.
1987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작가 "이언 랜킨"이 여러 번 이곳저곳에서 말했듯이 대학원생일 무렵 첫 데뷔작 "The Flood"를 쓴 후 바로 떠오른 스토리를 구상해서 쓴 작품입니다. 물론 시리즈로 만들 생각도 없었고. 런던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전까지 한때 수도였던 유령의 도시 에든버러를 배경으로 고딕풍 서스펜스를 담고 싶었던 "이언 랜킨"의 의도는 고스란히 이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 담겨져 있습니다. 역시나 작가가 인정하듯 약간의 미숙함도 같이. 당시 20대였던 "이언 랜킨"은 범죄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경찰 업무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며 40대 중년 이혼남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이해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출판사는 이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 단 한 푼의 홍보비도 책정하지 않아, 책은 그대로 사장되었고 "이언 랜킨"은 "존 리버스"라는 캐릭터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편집자의 권유로 그는 다시 "존 리버스"를 불러내고 이젠 영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범죄소설 시리즈를 쓰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매년 팔리는 범죄소설의 10퍼센트를 팔아치운다는 조사나 발표하는 책마다 영국에서 3개월 안에 50만부 이상을 팔아치운 다는 통계는 흔히 알려진 사실이니 더 이상 언급 안하더라도, 영국 최대의 서점 체인 중 한곳인 WHSmith에서 올해 초에 진행한 독자들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캐릭터 부분에 영국의 전설적인 캐릭터들인"모스"경감과 "미스 마플", "포와로"를 제치고 "존 리버스"가 2위를 차지 한 것만 봐도 이 시리즈의 위상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1위는 당연하게도 "셜록 홈즈".)
서부 해안 동료들은 에든버러를 경찰의 천국이라고 불렀다. 파틱(Partick)에서 야간 순찰을 한 번 해보면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갈 텐데. 하지만 리버스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에든버러에서는 범죄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도시를 뒤덮은 기묘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에든버러는 정신분열증적인 도시였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탄생한 곳. 브로디 조합장의 도시. 겉으로만 번드르르한 실속 없는 도시.
2005년에 '에드거 상' 수상작인 시리즈 열세 번 째 작품 "부활하는 남자들"이 출간된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존 리버스"시리즈가 출간되었습니다. 그것도 시리즈의 시작점인 첫 작품 "매듭과 십자가"가. 출판사 오픈하우스가 새롭게 런칭한 장르브랜드 '버티고(Vertigo)'에서 앞으로 쭉 "리버스"시리즈를 내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동안 "리버스"시리즈가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였는데. 간혹 사람들이 "이언 랜킨"을 영국의 "마이클 코넬리"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현시점에서 대중성이나 작품성으로 "마이클 코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범죄소설 작가는 "이언 랜킨"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영국 독자들이 듣게 된다면 정말 자존심이 상할 겁니다. 영국독자들이 보면 "마이클 코넬리"가 미국의 "이언 랜킨"일 테니까 말입니다.( "리버스"와 "보슈"도 약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흔치않은 이름 _"샤프트(Shaft)"의 "존 샤프트"와 퍼즐, 수수께끼 라는 뜻의 "Rebus"를 합친_, 군 출신, 군대 시절의 어두운 기억, 재즈를 좋아하는 음악취향, 쉽게 다가가지 못할 독불장군 스타일 등)
작가 "이언 랜킨"가 인정하듯 이 작품 "매듭과 십자가"에는 약간의 미숙함과 치기어림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전설적인 시리즈의 시작으로 상당히 괜찮은 범죄소설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독특한 분위기와 건조한 문체들, 신경쇠약에 걸린 위태로운 캐릭터, 흥미로운 퍼즐들 그리고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재해석한 흔적들이 조합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물론 작품 자체로도 괜찮지만 또 하나의 전설적인 시리즈를 처음부터 맛보고 싶으시다면 꼭 읽어야만 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