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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작가 "게일 린즈"와 "람보"의 아버지 "데이비드 모렐"이 2004년에 만든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 ITW(International Thriller Writers)가 2014년에 발표한 앤솔러지 "페이스 오프(Face Off)"입니다. 비영리 단체인 ITW가 회원인 작가들에게 회비를 받는 대신 매년 회원인 작가들의 단편들을 모아 앤솔러지를 발표해서 그 비용으로 단체를 운영하는데, 이번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동명영화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절대 권력(Absolute Power)"과 미드 "King and Maxwell"의 원작 시리즈로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David Baldacci)"가 편집을 담당했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 "야간비행(Red Eye)"은 2015 '에드거' 상 단편부분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야간비행"을 제외하고라도 이 작품 "페이스 오프"에는 스릴러 팬들이 꿈에서만 그리던 바램을 현실로 실현시킨 단편들만이 수록된, 정말 특별한 앤솔러지입니다.
이 책이 아니고선 대체 어디서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이 존 샌드포드의 루카스 데븐포트를 만나는 걸 볼 수 있겠는가? 해리 보슈가 패트릭 켄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건 또 어떻고? 스티브 베리의 코튼 말론과 제임스 롤린스의 그레이 피어스 팬들은 이 두 주인공들을 같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몇 년 동안 아우성쳤다. 그런가 하면 리 차일드의 잭 리처가 보스턴의 한 술집에서 조셉 핀더의 닉 헬러와 만나 리처의 필살기를 선보이는 장면도 나온다. 거기다 스티브 마티니의 폴 다드리아니가 린다 페어스타인의 알렉스 쿠퍼와 엮이게 되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짜 중의 괴짜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가 R. L. 스타인의 무시무시한 세계와 대면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문 中>, 데이비드 발다치-
그 동안 국내에서도 ITW에서 발표한 앤솔러지가 몇 권 출간되었는데 이 작품 "페이스 오프"는 정말 특별한 단편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란 베스트셀러 작가 23명("더글라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는 공동 작업)이 팀을 이루어 써낸 총 11편의 단편들 모두가 작가들의 대표 캐릭터들이 만나서 서로 협력하거나 대립하며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들로 이루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야간비행"에서는 LAPD "해리 보슈"가 사건수사 차 보스턴으로 날아가 사립탐정 "패트릭 켄지"을 만나 사건을 해결합니다. 저 두 캐릭터 이외에도 "잭 리처", "존 레버스", "로이 그레이스", "링컨 라임", "루카스 데븐포트", "닉 헬러",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 등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서로 조우해서 같은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대립하거나 협력하는 흥미로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편집자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말 그대로 이런 기획의 앤솔러지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평생에 단 한번 만날 수 있는 작품일 지도 모릅니다.
"이름 한 번 기똥차네. 어떻게 불러야 하죠?"
"해리라고 불러."
"좋아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해리?"
"그런 당신은 뭐하고 있는데? 당신 목의 그 체인에 달린 게 경찰 배지는 아니잖아."
"아니라고?"
보슈가 고개를 흔들었다.
"셔츠 밑으로 윤곽이 보였어. 십자가인가?"
패트릭은 잠시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차고 다니면 마누라가 좋아해서요." 그는 손을 내밀었다. "패트릭 켄지라고 합니다. 경찰은 아니고 일종의 프리랜서죠".
이 앤솔러지의 시작은 "마이클 코넬리"와 "데니스 루헤인"이 함께 쓴 "야간비행"입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서 90년대 벌어진 미해결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간 "해리 보슈"는 실종된 소녀를 찾는 사립탐정 "패트릭 켄지"를 만나고 그 둘은 서로가 같은 용의자를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영국에서 최고의 범죄소설가로 꼽히는 두 작가 "이언 랜킨"과 "피터 제임스"는 임종직전의 한 남자가 과거의 살인을 고백하면서 그 사건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존 레버스"와 "로이 그레이스"를 한자리에 불러 모읍니다. "더글라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는 작품 "가스등"에서 신비하고 기괴한 사건을 수사하는 FBI특별요원 "알로이시어스 펜더개스트"를 미국에서만 3억 부가 넘게 팔린 "구스범스"시리즈의 작가 "R.L. 스타인"의 공포스러운 세계로 보내고, 법정 스릴러의 대가들인 "스티브 마티니"와 "린다 페어스타인"은 서로 너무나도 다른 각자의 캐릭터인 변호사 "폴 마드리아니"와 여검사 "알렉산드라 쿠퍼"를 같은 사건 속에 몰아 넣습니다.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 작가들인 "제프리 디버"와 "존 샌드포드"는 "라임과 프레이"에서 "Prey"시리즈로 유명한 "루카스 데븐포트"를 뉴욕으로 불러들여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함께 연쇄살인범을 뒤쫓게 하고 액션 스릴러의 대가들인 "스티브 베리"와 "제임스 롤린스"는 전직 법무부 비밀기관인 '마젤란 빌릿' 요원인 "코튼 말론"과 '시그마 포스' 요원인 "그레이 피어스"를 아마존 밀림으로 보내서 위험한 독극물을 테러리스트로부터 지켜내야하는 임무를 맏깁니다. 오랜 낚시 친구인 "존 레스크로아트"와 "T. 제퍼슨 파커"는 "와이어트 헌트"와 "조 트로나"를 낚시 관광으로 먹고 사는 맥시코의 작은 어촌마을을 카르텔에게서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대단한 배려"에서는 "리 차일드"의 떠돌이 영웅이자 뉴욕 양키스 팬인 "잭 리처"가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이 드글드글한 보스턴의 한 바에 들어가 "조셉 핀더"의 캐릭터인 사설 스파이 "닉 헬러"를 만나서 의기투합한 후에 엄청난 오지랖을 부려서 위기에 빠진 한 남자를 구합니다. 그 외에도 "웃는 부처", "지옥의 밤", "정차" 등 흥미진진한 단편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당신 이름은 있는 겁니까?"
"이름 없는 사람도 있소?"
리처가 대답했다.
"그럼 이름이 뭐죠?"
"리처."
"난 헬러라고 해요."
그 남자가 왼쪽 주먹을 내밀었다. 리처가 거기다 대고 들롱의 등 뒤에서 오른쪽 주먹을 쳤다. 레드삭스 팬과 주먹을 맞댄 게 처음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살살 친 건 처음이었다.
사실 작가들이 서로의 캐릭터를 만나게 하거나 서로의 작품 속에서 슬쩍 언급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들 마다 소속된 에이전시와 출판사가 다르기에 캐릭터의 이름은 언급하지 못하고 팬들이 알아챌 수 있도록 특징을 묘사하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페이스 오프"는 오로지 ITW의 운영을 목적으로 기획된 작품이라 이런 꿈의 기획이 가능했습니다. 정말로 저 같은 스릴러 소설의 팬들에겐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입니다. 처음엔 작가들이 팬들을 위한 서비스로 쓴 이벤트 성이 강한 단편들이 모였을 줄 알았는데, 하나 하나 독특하면서 흥미로운 작품들이 모였습니다. 어쩌면 작가들이 자신들의 주력 캐릭터의 명성에 흠집이 나지 않게 더 공들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당히 훌륭한 단편들입니다. 몇몇 작품은 장편으로 다시 써졌으면 좋을 정도로 눈에 밟히는 캐릭터들의 조합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작품 하나 하나가 다 이색적이고 훌륭합니다. 특히나 서로의 캐릭터들이 처음 만나 탐색하듯이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속으로 상대방에 대한 인상을 생각하는 부분은 마치 그동안 제가 받았던 인상을 다시 확인 받는듯한 느낌이 들어 묘하게 더 흥분됐습니다.
"별로 다르지 않아요." 레버스는 대답하면서 클라크와 그레이스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마침 때맞춰 왔네."
로이 그레이스가 동의하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는 곳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심지어 세대도 다르지만, 그는 존 레버스와 가장 중요한 걸 공유하고 있었다. 사건을 해결했을 때의 쾌감.
국내에 출간된적이 없는 작가도 있고 출간되었더라도 이 선집 "페이스 오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이 아닌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캐릭터에 대한 사전정보를 모르더라도 단편 시작 전에 캐릭터에 대한 간단한 기본 정보와 배경이 제공되어서 작품을 즐기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그동안 이야기만 듣고 처음 접하는 캐릭터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란 걱정을 했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그동안 말로만 듣던 "F. 폴 윌슨"의 유명한 캐릭터 "수리공 잭(Repairman Jack)"을 만나보게 되었던게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번역도 각각의 작품들 분위기에 어울리게 잘 되었고 캐릭터 고유의 말투나 묘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공을 들였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단편인 경우 기출간작들과 분위기나 말투가 달라져서 찝찝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 부분에 있어서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살아 있다.
좋은 징조다.
그는 1분 더 기다렸다. 그리고 1분 더.
죽음은 오지 않았다.
피어스가 그의 옆에 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끝내주는 파트너였어요. 노인네치고는 동작이 빠르네요."
말론이 발사기를 내려놨다.
"누구 보고 노인네래?"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단편소설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페이스 오프"도 유명 캐릭터들이 만나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뿐, 큰 기대를 안했는데 작품들이 하나같이 재미있어서 상당히 만족하며 읽었습니다. 정말 스릴러 소설의 팬이시라면 꼭 읽어보셔야할 단편 선집입니다. 솔직히 "해리 보슈"와 "패트릭 켄지"가 만나서 같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스릴러 소설 팬이라면 어찌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저 같은 경우는 단숨에 다 읽었지만 틈틈이 한 작품씩 시간내서 읽는 것도 이런 선집의 장점이 아닐까 합니다. 상당히 좋은 작품들만 모아져 있고 특별한 기획의도 때문에 상당히 소장가치가 큰 작품입니다. 스릴러 소설 좋아하신다면 이 작품 "페이스 오프"를 꼭 한번 읽어 보시라고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