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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평점 :
서면에 볼일 보러 갔다가 영광도서에 들렀다. 새책 코너를 쭉 보는데 "雪戰"이란 책이 눈에 띄였다.'요즘 TV에 "썰전"이란 프로램이 떠오르면서 한자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싸움..이라..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은 글씨로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라고 적혀있었다.
법정 스님, 무소유로 유명했던, 날카로운 지식인이었으며 중생을 사랑했던 스님. 그 스님이 입적하던 해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잘 모르겠다 싶었다. 때마침 작년 여름 방학 시작되는 날, 지리산과 산청 일대를 돌다가 우연히 들렸던 성철 스님 생가가 떠올랐다.
주룩 주룩 내리던 아침비가 그칠 무렵 도착한 생가는 나의 상상과는 한참 멀었다. 생가가 너무나 화려했던 탓이다. 스님은 그렇게 청빈하게 사셨다는데 스님의 생가는 중생에게 깨달음을 주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게 만들었다. 93년도에 입적하셨으니 내가 교직에 발 디딘 해였다. 불교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나에게 성철 스님의 입적은 그저 그런 종교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3천배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나는 법정 스님과 성철 스님의 대화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 두 분의 스님은 어떤 것을 잘문하고 어떻게 답해 주셨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을 열어보지도 안고 계산대로 직행했다.
집에 와서 펼쳐보니 책의 뒷날개에 이 책의 제목이 왜 설전인지 알게하는 글이 실려있었다.
" 차갑고 냉철하면서도 부드러운 수도자의 자세를 눈이라는 매개로 형상화 하는 한편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웃게 만드는 유일한 다툼인 '눈싸움'의 이미지를 통해 설전과 법정 두 사람 사이에 오간 구도의 문답과 인연을 표현하고자 했다."
눈싸움, 한 번 던지고 한 번 받는 던질 때마다 받을 때마다 웃음꽃이 피는 싸움. 하얀 눈 밭에서 눈싸움을 하는 어린아이들이 상상이 되었다. 두 분 스님이 주고 받았을 아름다운 마음, 글, 말을 읽어내려갔다. 두분의 말씀을 3가지 이야기로 나눠 실어두었다. 첫번째 이야기는 我, 자기를 바로 보라. 삶을 살ㅇ가는 중생들을 위한 자신을 성찰하는 방법, 태도에 대한 대화들이고, 두번째 이야기는 俗. 처처에 부처이고 처처가 법당이네. 나와 세상,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대화들이다. 마지막 세번째 이야기는 불, 네가 선 자리가 바로 부처님 계신 자리. 불교가 추구하는 목표, 불자로서의 삶의 태도 등에 대한 대화이다. 처음에는 두 스님의 말씀이 지나치게 어려우면 어떻게 할까 지레 겁을 먹었는데 질문하는 법정스님이 무식한 중생이 알아듣기 쉽게 질문해 주셨고, 그 질문에 맞게 성철 스님께서도 쉽게 답해주셨다.
두 큰 스님께서 주고 받는 이야기가 참 따뜻했는데 스승으로서 성철 스님께서 후학인 법정스님을 아끼셨기때문에 내용까지도 훈훈했던 것 같다.
첫 대화에서 3천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성철스님을 만나기 위한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는 비판에 대해 성철스님은 "남을 위해 기도하고, 절하라"고 3천배를 시킨다고 하셨다. 직접적인 가르침은 아니지만 우선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늘 들어왔던 이야기이이지만 중생이 모두 부처라는 사실, 성불이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디 부처임을 깨다는 것, 부처님이 계신 곳은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라는 말씀. 곱씹을수록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가 말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어디에 살든, 어떤 종교를 믿든 거장들의 철학은 비슷한 듯 하다.
그리고 스님들이 공부하는데 꼭 지켜야 할 5계를 말씀하셨는데 지금 나에겐 이 말씀이 크게 와 닿았다.
잠을 적게 잔다. 말하지 말라, 문자를 보지 말라(지식에 얽매이지 말라), 과식하지 말고 간식하지 마라, 돌아다니지 마라. 정말 쉽지 않은 약속들이지만, 이것만 지키면 어떤 공부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론의 역할, 정치와 종교와의 관계, 최고 권력자의 태도, 교육 정책에 대한 대화들도 감명적이다, 교육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성 회복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알고 보면 상대방의 가치를 알고 보면, 나도 부처, 너도 부처, 다 부처라고, 서로 존경안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인간이 배제되고 지식만 남무하는 현사회를 잘 짚어주셨다. 그리고 후반부로 가면 성철스님의 출가사연도 보너스처럼 실려있고 처음을 법정 스님의 글로 시작했듯이 후반부도 법정 스님의 글로 끝나는데 거기에 성철스님의 열반송이 소개되어 있다.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죄업 하늘에 가득차 수미산보다 더하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리
한 덩이 붉은 해 푸른산에 걸려있다.'
거칠지만 가슴에 콱 박히는 겸손하고 아름다운 열반송이다.
두 스님이 가시고 난 뒤에 이렇게 예쁜 책이 발간되고, 또 그 책을 아무런 고민없이 사서 읽었기에 이런 아름다운 여운을 가지게 된다. 참.,,인연이란.
이 책엔 두 분의 말씀만큼 아름다운 자연풍광 사진들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내가 가 본 적이 있는 곳도 더러있다. 그 풍광들을 보고 있으니 두 분의 말씀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 곁에 두고 두고 읽으며 구절 구절 꼽씹어보아야겠다. 야무지게 씹어야 더 달게 느껴질 듯 한 아름다운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