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밍쯔 - 산양은 천당풀을 먹지 않는다
차오원쉬엔 지음, 김지연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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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나라 창작 동화를 읽을 때, 주인공 어린이가 지나치게 어려운 경제적 배경을 지녀서 어린이가 가져야 할 천진성, 명랑함, 밝음이 사라질 때 나는 정말 슬프다. 짧은 기간내에 세계에서 보기 힘든 경제적 기적을 이룬 나라이기때문에 못살았던 시절의 기억이 작가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탓이리라 생각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상관없는 풍요속에서 살아온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야 비로서 어린이다운 기지, 밝음, 창의성이 드러난다. 발랄하며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도 동화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이제서야 생긴 것이다.

  중국 소설인 17세 밍쯔.

급격한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가운데 빈부의 차가 엄청난 현재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자는 달나라까지 갈 듯 경제적 여유가 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은 3끼 끼니를 다 챙기지 못해서 자식들을 날품팔이 시켜야 하며 교육, 의료라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마저 모른 채 살아간다.

밍쯔는 가난한 아이이다.  17살이나 되어서도 이불에 오줌을 지리는 아이다. 밍쯔에게 허락 된 일은 하루 종일 목공일을 하든지 일거리를 맡으러 가는 일 뿐이다. 밍쯔가 힘들고 외로울 때 그를 다독여 줄 가족은 없다. 도둑질을 시키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부와 사부가 시키는대로 허수아비처럼 끌려가는 형 헤이관이 있을 뿐이다.

사춘기 소년이 누려야할 성장통을 누릴 여유가 없다. 하루 하루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며 돈이 없어 허덕이는 가족들에 돈을 보내주어야 하는 의무만 있을 뿐이다.  돈이 주는 권력을 알아버린 밍쯔는 얼른 돈을 모으고 싶지만 방법이 없다. 허황된 꿈의 상징인 어른들의 복권 장난에 자신의 자존심까지 팔아버린 밍쯔는 삶이 답답하고 어이없다.

하지만 서로 미워하고 증오했지만 같이 살아왔던 헤이관과 사부사이의 끈끈한 정, 정의를 소중히 여기는 어른들의 관용으로 밍쯔는 드디어 혼자서 살아 갈 수 있는 아이가 된다.

엉터리 같은 사부였지만 밍쯔를 독립하게 해 준 사부는

  "기억해라,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혼자서 살 줄 안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해 준다. 

힘들어도 혼자서 꾿꾿하게 나아갈 밍쯔가 내 눈앞에 그려졌다.

 

외국의 영화나 소설 중에서 우리 나라에 들여 오면서 제목이  바뀌는 일이 있는데 어떨 때는 바뀐 제목이 좋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엉뚱하게 제목이 바뀌어서 본래 영화나 소설의 느낌, 메세지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 경우가 있다.

이 책 "17세 밍쯔" 역시 본래 제목인 "산양은 하늘풀을 먹지 않는다" 그대로 출판 되었다면 작가 차오원수엔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을 한 순간에 알아차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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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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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비채

김주영 작가라고 하면 "객주", "활빈도" 등의 대하 소설로 유명하다.
10권짜리의 대하소설을 즐기는 나는 언젠가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른 동화인 "똥친 막대기"와 먼저 인연이 닿았다.
제목이 정말 재미있어서 큰 기대를 하고 책을 펼치니 강산 작가의 꿈과 같은 수묵화들이 펼쳐진다.
이 책을 2번 읽었는데 읽고 나서 그림만 1번씩 더 봤다. 그림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참을 보고 있을 수 있다. 김주영 작가가 자연속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 소설 연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 연작의 그림들도 강산 작가가 그렸으면 하고 바랄만큼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삽화들이다.

새 생명이 꿈틀거리며 세상으로 나와 구경하기 시작하는 4월의 한가로운 농촌.
20년동안 자란 키 큰 백양나무의 옹이에서 태어난 곁가지가 이 글의 주인공이다.
맞다. 큰 나무도 아니고 지금 막 땅을 힘겹게 뚫고 나온 새싹도 아니고 큰 나무에 붙어 자라고 있는 곁가지가 주인공이다.  시골이 아니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뭇가지에 생명의 호흡이 전해 진 것이다.
어미 나무가 전해주는 자양분을 받아 먹으며 평화롭게 따뜻한 봄을 즐길 수 있었을 곁가지가 한 시골 농부에 의해 아무 계획도 없이 꺾여진다. 나뭇가지 제깟것이 무슨 아픔이 있을까? 아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온다. 우윳빛 진액이 아픔을 달래 주기 위해 쏟아진다. 어미로부터 받았던 물이랑 양분을 머금고 이제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립문을 이루는 미라가 될 게 뻔 하다.
나뭇가지는 막대기가 되어 암소를 몰기도 하고 재희라는 여자 아이의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똥친 막대기가 되었다가 개구리까지 잡기도 한다. 소용을 다한 막대기가 이대로 버려지나 싶을 때 홍수로 인해 물을 머금고 떠내려온 돼지의 등을 타고 강을 벗어나 드디어 뿌리내림을 한다.

  "내 몸 위로 살랑 살랑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위대한 발견을 한 것입니다. 때마침 흙에 닿아 있는 내 몸 한쪽 끝으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간지럼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곳이 간지럽다는 것은 막대기 한쪽 끝이 땅속에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뿐만 아니라 흙 속에 박혀 있는 그곳으로부터 뿌리가 돋아나려 하고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뿌리내리고 서 있어야 할 장소에 도달한 것입니다." -p161

꺽여진 나뭇가지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수 많은 어려움을 견뎌내고
"그 대신 나는 필경 외로울 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혼자서 자란 나무의 그늘은 가지와 잎이 많아 더욱 시원하지요"
라고 밝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아! 아름다운 동화는 이렇게 '희망'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구나라고 또 한 번 느낀다.
생명일까 싶잖은 너무나 여리고 쓸 데 없을 것 같은 곁가지가 큰 나무가 되리라는 희망말이다.
그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 밑에서 푸른 바람을 맞으며 뛰어놀 아이들이 그려진다.
아이들에게 말해 줘야겠다.
'똥친 막대기도 큰 나무가 될 수 있어.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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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 나의 아버지 - 햇볕은 쨍쨍 3
황선미 지음, 김병하 그림 / 두산동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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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창작동화, 김병하 그림, 두산동아

동화작가 황선미 작가에 대한 신뢰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시작되었다.
동물이 의인화 되는 것은 동화세계에서 흔한 일이고, 우리 생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닭이 주인공이라 새로울 것 없을 것 같은 동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강하게 남아 있다. 주어진 일상을 탈출하여 자신만의 삶을 찾아 간다는 주제를 담았기때문일까? 아이들도 재미나게 읽고 감동적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그 이후로 황선미 작가가 쓴 책이라면 의심하지 않고 읽는다.

늘 푸른 나의 아버지.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정에는 아버지란 존재가 없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캄캄한 밤이 되어야만 돌아오고 가정교육이란 이름하에 뭔가를 가르쳐주는 일도 엄마가 도맡아 한다.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돈만 벌어오면 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가정이 쉽게 붕괴되고 학교 교육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의 원인을 아버지 부재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일까? 잃어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찾아 주는 소설들이 참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도  "내푸른 자전거"라는 작가의 첫 소설을 다시 손 봐서 내 놓은 작품이다. 첫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하였지만 제목이 자전거에서 아버지로 바뀔 때는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많이 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 본다.

다들 못 본척하는 친척의 보증을 서는 바람에 전 재산을 몽땅 날리고 쫓기듯 고향 마을을 떠나온 아버지.
일거리를 찾아 건설현장을 쫓아 다니며 집에는 월급날 딱 하루만 오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을 그대로 물려 받은 찬우는 뒷바라지 해 줄 수 없는 반장 자리도 버겁고, 비싼 물감을 준비해야 하는 미술시간도 버겁다.  이유없이 싸움을 걸어오는 해일이도  밉고, 이유없이 다가오는 은아도 감당할 수 없다. 공사현장에서 손가락 2마디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슬픔도 찬우의 슬픔이 되고, 비린내 풍기며 생선을 팔다 쓰러지는 엄마의 아픔도 찬우의 아픔이 된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철이 빨리 든다고 하던가?
엄마의 빈자리를 동생 영주가 메우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찬우가 메우면서 생활하긴 해도 찬우는 가슴 한 켠이 늘 차갑다.  특별해서 다른 늑대와 친해질 수 없었던 초록여우처럼 늘 혼자있는 찬우의 영혼을 알아본 은아는 해일이와 찬우 사이의 다리가 되어 두 친구의 오해를 풀어주고, 우정의 씨앗을 뿌려준다.
나는 "늘푸른 나의 아버지"라는 제목보다는 "내 푸른 자전거"라는 제목이 훨씬 많은 이야기를 전해 준다고 생각한다. 자전거 조립을 위해 푸른 불꽃이 얼굴, 옷에 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용접을 하셨을 아버지, 그 아버지의 사랑이 푸른 자전거에 그대로 담겨 찬우에게 전달 되는 장면이 이 소설의 압권이기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으로 봐서는 70년대, 80년대의 이야기 인 듯 하지만 오늘날 국제적 경제불활시대의 대한민국에도 찬우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가 많다. 갑작스런 회사 부도로 일자리를 잃은 아빠, 지나친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남의 집 살림까지 살아야 하는 엄마, 가슴 속에 응어리진 스트레스를 풀 여유도 없이 이 학원 저학을 맴돌아야 하는 아이들의 가정이 존재한다.
황선미 작가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를 항상 소중히 여기는 작가의 삶의 태도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마음이 맞지 않은 친구도 근본적으로 보면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을거라는 믿음.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지리라는 믿음.
그런 믿음이 황작가 작품의 선택의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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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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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첫사랑은 언제입니까?'

라는 물음에 모든 사람들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시대로 시계 태엽을 거꾸로 감는다. 첫사랑은 흔히 풋사랑이라고도 한다. 설익은 사랑. 그래서 마음이 아팠고 잊혀지지 않은 채 우리들 가슴 속에 쭉 남아 있는 첫사랑 이야기를 우리나라 대표적인 동화작가,이금이 작가가 해 준다.
이금이 작가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너도 하늘말나리아"를 비롯하여, 유진과 유진, 도들마을의 깨비, 내 친구 재덕이 등등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낸 작가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이금이 작가의 작품은 다소 무게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 읽으면 정말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이금이 작가의 책을 읽으면 눈여겨 보지 않았던 소외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과연 이 책 '첫사랑'에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어떤 소통을 이야기 해 줄까 기대를 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첫사랑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인 동재이다.
요즘 초등학교 교실에 가면 소위 "커플"인 아이들을 발견하기 쉽다. 커플링을 나눠 끼고, 학원 생활을 같이하며, 놀이공원을 가기도 하고, 영화를 같이 보러 가기도 한다.  때로는 어른들의 스킨쉽도 흉내내기도 한다.
동재도 이런 공식에 따라 연아와 사귀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감정을 마음에 담고 있을 때와는 달리 입밖에 내었을 때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하기 위해 각종 선물, 이벤트 준비를 해야했고,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하기 싫은 집안일을 거들면서 돈을 모아야만 했다. 하지만 사랑에 서툴렀던 동재는 자신의 마음을 연아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결국 첫사랑에 실패하고 만다.  쓰디 쓴 실패의 아픔을 맛봐야만 했던 동재에겐 아빠, 새엄마, 그리고 새동생이란 지지대가 있어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제목은 첫사랑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새가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좋았다. 언제까지나 내편이고 내 곁에 머물러 줄 거라고 믿었던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고 스페인으로 훌쩍 떠나버릴때 동재는 배신감을 느낀다. 엄마, 아빠의 재결합이라는 동재의 유일한 바램을 무시하듯 아빠는 재혼을 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줌마와 여자 아이를 엄마와 동생으로 불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고 비뚤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새가족 구성원들은 동재를 잘 보듬어 안아준다.  이혼과 재혼으로 새로이 구성되는 가족들이 서로 서로 얽히고  상처 주면서 가족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그런 과정을 겪어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고, 아이들이 그런 가정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과연 내가 동재라면 외국인과 사랑에 빠지는 엄마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엄마의 새로운 출발도 축하해 줄 수 있는 동재가 되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뿌듯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따듯한 시선으로 잘 그려낸 이 소설은 이금이 작가의 또다른 대표 소설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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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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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책과 콩나무

이 책을 읽을 때 무슨 책 제목이 그렇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더위를 식히는 호러물이냐? 나도 좀 빌려줘라는 말과 함께...
생각하면 끔찍한 장면 아니겠는가? 아빠가 자식을 죽이려하다니? 무슨 사연이길래 이런 가슴 아픈 대사가 책 제목일까라는 호기심으로 책을 펴 들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숀. 14살 소년이다.
하지만 이 아이의 아이큐는 1.2 정신연령 3~4개월밖에 안 된다고 추정될 뿐이다.
태어날 때 사고로 근육을 조절할 수 없는 심한 뇌성마비가 되었고 주변의 도움없이는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다. 게다가 보는 사람도 견디기 힘든 발작을 수시로 일으킨다.
그런 아이가 무슨 소설의 화자가 될 수 있느냐고? 맞다. 그는 엄마도, 아빠도, 의사도 알아챌 수 없는 천재였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나타낼 수는 없지만, 한 번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스스로 문자를 익혔으며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간파할 수 있는 멋진 소년이었다. 남들 보기에 너무나 힘든 발작도 숀에게는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환상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숀의 아버지 시드니 맥다니엘은 아무것도 몰랐다.
숀이 자신의 말을 듣고, 느끼고,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발작을 즐기는 지도 몰랐다. 생을 이어가기 위해 해야하는 모든 동작을 남의 힘을 빌려야만하고,  끔찍한 발작을 견뎌내야만 하는 숀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이의 고통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내 아이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아이였다면, 나는 지금의 나의 직장도 포기했을 터이고, 책읽기, 영화보기 등의 사치스런 행동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며 종교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나 자신의 생존의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아이때문에 힘들고 지치겠지만 아이의 고통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아이의 목숨을 거두지는 않으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야겠는데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라 정말 그렇노라고 딱 대 놓고 말할 수 는 없다.

테리 투르먼은 자신의 아들도 숀과 같은 최중증발달 장애를 갖고 있다고 지은이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소설속의 이야기들이 창작이긴 하나 자신의 삶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 숀처럼 천재일까? 로큰롤과 감자칩을 좋아할까? 살아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느낄까? 라는 대답에는 네라고도 아니라도고 말할 수 없다고, 오직 모르겠다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있다.
숀처럼 천재가 아니더라도 로큰롤과 감자칩을 모르더라도 살아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못 느끼더라도 내 자식은 내 옆에 있길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테리 투르먼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먼 길을 돌아돌아 오는 것 같다.

소설 중에서 시드니가 인터뷰 하면서 한 질문이 생각이 난다.
  " 우리의 학교, 여러분의 학교가 배움이 불가능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일년에 수백, 수천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왜 배울 수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까요? 열네 살 아이에게 신발 끈 묶는 방법과 '고양이'라는 낱말의 철자를 가르치는 데, 그것도 교사 개인당 수백 시간을 투자해야 겨우 될까 말까 한 일이라면, 지금 당장 이 많은 재원을 할당한다는 게 진정 가치 있는 일일까요?"

나는 큰 목소리로
"진정 가치 있는 일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행복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 많은 재원으로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기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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