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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친 막대기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김주영 지음 강산 그림 비채
김주영 작가라고 하면 "객주", "활빈도" 등의 대하 소설로 유명하다.
10권짜리의 대하소설을 즐기는 나는 언젠가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어른 동화인 "똥친 막대기"와 먼저 인연이 닿았다.
제목이 정말 재미있어서 큰 기대를 하고 책을 펼치니 강산 작가의 꿈과 같은 수묵화들이 펼쳐진다.
이 책을 2번 읽었는데 읽고 나서 그림만 1번씩 더 봤다. 그림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참을 보고 있을 수 있다. 김주영 작가가 자연속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 소설 연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 연작의 그림들도 강산 작가가 그렸으면 하고 바랄만큼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삽화들이다.
새 생명이 꿈틀거리며 세상으로 나와 구경하기 시작하는 4월의 한가로운 농촌.
20년동안 자란 키 큰 백양나무의 옹이에서 태어난 곁가지가 이 글의 주인공이다.
맞다. 큰 나무도 아니고 지금 막 땅을 힘겹게 뚫고 나온 새싹도 아니고 큰 나무에 붙어 자라고 있는 곁가지가 주인공이다. 시골이 아니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나뭇가지에 생명의 호흡이 전해 진 것이다.
어미 나무가 전해주는 자양분을 받아 먹으며 평화롭게 따뜻한 봄을 즐길 수 있었을 곁가지가 한 시골 농부에 의해 아무 계획도 없이 꺾여진다. 나뭇가지 제깟것이 무슨 아픔이 있을까? 아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온다. 우윳빛 진액이 아픔을 달래 주기 위해 쏟아진다. 어미로부터 받았던 물이랑 양분을 머금고 이제 혼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사립문을 이루는 미라가 될 게 뻔 하다.
나뭇가지는 막대기가 되어 암소를 몰기도 하고 재희라는 여자 아이의 회초리가 되기도 하고 똥친 막대기가 되었다가 개구리까지 잡기도 한다. 소용을 다한 막대기가 이대로 버려지나 싶을 때 홍수로 인해 물을 머금고 떠내려온 돼지의 등을 타고 강을 벗어나 드디어 뿌리내림을 한다.
"내 몸 위로 살랑 살랑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위대한 발견을 한 것입니다. 때마침 흙에 닿아 있는 내 몸 한쪽 끝으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간지럼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곳이 간지럽다는 것은 막대기 한쪽 끝이 땅속에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뿐만 아니라 흙 속에 박혀 있는 그곳으로부터 뿌리가 돋아나려 하고 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내가 뿌리내리고 서 있어야 할 장소에 도달한 것입니다." -p161
꺽여진 나뭇가지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수 많은 어려움을 견뎌내고
"그 대신 나는 필경 외로울 테지요. 그러나 외로움을 사르며 자라나는 나무는 튼튼합니다. 외로움을 갉아먹고 자라난 나무의 뿌리는 더욱 땅속 깊이 뻗어 나갑니다. 혼자서 자란 나무의 그늘은 가지와 잎이 많아 더욱 시원하지요"
라고 밝게 이야기 하고 있다.
아! 아름다운 동화는 이렇게 '희망'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구나라고 또 한 번 느낀다.
생명일까 싶잖은 너무나 여리고 쓸 데 없을 것 같은 곁가지가 큰 나무가 되리라는 희망말이다.
그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 밑에서 푸른 바람을 맞으며 뛰어놀 아이들이 그려진다.
아이들에게 말해 줘야겠다.
'똥친 막대기도 큰 나무가 될 수 있어.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