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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장보러 마트에 들렀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시간보다 빨리 쇼핑이 끝났다. 습관처럼 마트 내에 있는 서점에 들려 이 책 저 책 구경을 했다. 썼다 하면 베스트 셀러가 되는 공지영의 소설, 에세이들이 줄줄이 베스트 셀러 코너에 진열 되어 있었다. 도가니, 이 책을 펴 들었던 것은 공지영 소설 특유의 흡입력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점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이 수다를 떨어대는 20대 여성들,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속에서 펼쳐진 소설에서 도시 무진을 만났다.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도시이건만, 김승옥 소설집 "무진 기행"을 읽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반갑기 짝이 없었다.
김승옥님은 무진의 안개를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다"고 했다. 무진 기행을 읽기 전에는 안개라고 했을 때는 다소 낭만적인 요소를 많이 지닌 자연현상이라 했는데 김승옥님의 이 묘사를 보고나서는 "차가운 그것도 시리게 차가운 것"이 안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차갑고 무기력한 안개는 내버려지듯 툭 던져진 강인호의 무진에서의 삶을 알려주는 서막과 같았다.
사업에 실패했다는 무기력감, 가족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자괴감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진에 내려와 자애학교에서 청각장애인에게 국어를 가르치게 된 강인호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작은 모욕은 견뎌내려 애를 써 본다.
하지만 무시무시하고 더럽고 치사한 현실을 알게되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내 자식, 내 가정, 내 인생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인호는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장애아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꿔 보려고 애를 쓴다.
이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일은 없다고 하더니, 장애아들의 인권을 찾기라고 생각한 일이 단순히 인권에 관련된 일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과 명예와 돈에 맞물린 복잡한 일이 되어버린다.
몰상식, 몰염치, 무법, 욕심이 판치는 광란의 도가니가 되어버린다.
나와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니지만 이 사회가, 이 세상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인물 서유진, 변하려 애를 쓰지만 결국 개인적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대표적 인물 강인호의 대비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변화한다. 무혐의처리에 맞먹는 가벼운 형량이 거대한 부정 덩어리는 없애버리지 못하지만, 작디 작은 바른 의지들이 모여 핍박받는 약자들을 돕게 된다.
그래, 아주 느리지만 공명정대한 바퀴는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을 향해서 돌아가는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이 소설을 단 한 줄의 신문 기사를 보며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적 상상력에 의지한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철저하게 취재하여 이루어진 소설이라고 하니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며 기함했을 것인가?
작가의 상상이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알고 싶지 않은, 알고 나니 안타깝고 억울하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실이 진짜 많았다.
장애인, 게다가 여자, 게다가 어린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홀로 서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가 그들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시 되려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살아가는 사회를 경험할 수 있는 통합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에는 교육현장에서 통합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 장애인이 보호받아야 되고 배려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모든 학생들이 알아가고 있다.
자애학원의 교장과 행정과장 같은 인간은 장애인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명예를 얻으며 입에 담기 힘든 개인적 욕망까지도 부끄럼없이 채운다. 선을 배우지 못했고, 악을 다스리지 못하며,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행이 더 이상 없는 세상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읽고 나면 항상 마음이 바쁘다.
이렇게 가만히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될 것 같고,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이 느낌이 참 버겁다.
내 아이,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에게만은 가르쳐주고 싶다. 약한 사람은 배려해 줘야 한다고, 그것이 진정한 "똑같음"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