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권오길 지음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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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학력고사에서 이과 계열 학생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4과목 중에서 2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치뤄야만 한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과목을 골라서 시험 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학교에서 선택한 과목을 의무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자신이 화학에 약하다고 판단되어도 학교에서 화학을 선택해서 가르치면 그걸 공부해서 시험을 쳐야했다. 여고에서는 대부분 화학, 생물을  선택해서 가르쳤다. 암기에 약한 나는 생물이 진짜 싫었다. 효소, 호르몬, 각 기관의 이름, 역할등은 이해만 해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는 과목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고전하던 생물이 고3 때 갑자기 좋아졌다.  생물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경북대 생물교육과를 막 졸업하신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처음에는 생물도 싫어하고 대구 사투리가 귀에 거슬려 생물시간엔 자야겠다 마음 먹었는데 갈수록 선생님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어떤 인쇄물도 없이 그저 이야기식으로 생물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데 어쩜 그렇게 감칠맛나게 강의를 잘 하시는지, 조는 아이들이 하나씩 눈을 뜰 정도였다. 이야기 속에서 그 어려운 단어들을 하나씩 하나씩 말씀을 해 주시니까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잘 외워졌고 수업 마무리에서는 마인드 컨트롤처럼 자신 자신에게 스스로 설명해보는 시간을 갖게 해 주셔서 용어들이 내 입에 착착 붙도록 해 주셨다. 덕분에 무사히 학력고사를 치를 수 있었고, 그 뒤로도 나는 생물이라는 과학 분야를 참 눈여겨 보게 되었다.  오늘 또 한명의 생물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권오길 교수님이 바로 그분이다.

  "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몸 산책"이라는 책은 교수님의 손을 잡고 우리 몸의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각 기관, 조직의 설명을 듣고 교수님께서 살아오신 긴 세월의 지혜를 배우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물론 백과 사전식의 설명은 다소 부담스럽다.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각종 매커니즘과 호르몬 이름, 기관 역활 등등이 떠 올라서 반갑기는 하지만 한꺼번에 이해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은 각종 용어들 뒤에 보라색의 한자 표현과 괄호 속에 쓰여진 영어식 원어들이다. 작가가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현대 과학의 뿌리가 서양과학에 있기 때문에 영어를 알아야 하고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일본식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한자를 사용하는데 이 두 용어를 잘 알고 있으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각 기관, 조직에 대한 설명에는 칼라 그림, 칼라 사진 자료가 첨부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쉽다. 최근에 본 책중에 백과 사전을 제외하고 이렇게 색깔을 과감하게 쓴 책은 없었다. 시각적인 만족이 있으므로 지식 이해도 훨씬 쉽다.

  자세한 설명 뒤에는 작가의 부연 설명이 있는데 그 설명이 다른 책과 이 책의 차별화 된 전략이다.
인생의 선배답게 일상생활과 관련된 부연 설명들이 가슴에 와 닿는 충고가 되기도 하고, 살짝 미소짓게 하는 유머가 되기도 하며, 책을 쉬었다 읽도록 만드는 휴게소 같은 역할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폐(허파)는 근육이 없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횡격막과 늑골의 움직임으로 공기가 들락 날락 한다는 것, 식물들도 물질대사를 하기 때문에 노폐물이 생기는데 우리처럼 배설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각 세포의 액포라는 작은 주머니에 배설물을 담아 두고 잎이 떨어질때 같이 버린다는 것,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지만 핵과 미트콘드리아가 없기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는 산소를 쓰지 않아서 헌혈로 뽑은 적혈구를 35일동안이나 보관 할 수 있다는 것, 각막에는 혈관이 없어서 이식 과정에서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기관이라는 것 등등 정말 많은 생물 상식을 얻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내가 잘 못 알고 있던 상식도 고쳐지게 되었다. 옛날 연탄을 때던 시절에 우리를 괴롭히던 일산화탄소는 산소와 결합을 좋아해서 산소를 부족하게 만들어 사람을 숨지게 만든다는 엉터리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일산화탄소는 산소와 결합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적혈구와 결합도가 산소보다 높기 때문에 위험한 가스라고 한다. 자식은 엄마와 아빠의 DNA 반반씩 물려 받기 때문에 공평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세포의 발전소, 세포의 힘이라 불리는 미토콘드리아는 모계성 유전이라고 한다. 정자는 난자 속으로 DNA와 150여개 미토콘드리아만 갖고 들어오고 난자 속의 30만개의 미토콘드리아를 그대로 물려 받는다고 한다.

  이 모든 사실은 나 스스로 알게 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아이를 재우면서 아이의 침대 머리에서 이야기 해 주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엄마, 또 재미있는 생물 이야기 해줘!"
라면서 말이다.
청소년을 위해서 쉽게 쓰셨다고 하는데 일반인, 특히 생물과 연관이 적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퍽 멋진 읽을거리가 될 것이라 장담한다. 오랫만에 나도 과학과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 갑자기 인생이 풍성해 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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