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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 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 문화재 수집 이야기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간송 전형필. 우리 나라 문화재의 외국 유출을 막고, 자신의 소장품으로 개인 박물관을 만든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 소개되는 우리나라 국보 사진 밑에 "간송 미술관"이란 소장처를 대할 때마다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 간송 미술관이 살짝 궁금한 정도였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간송 전형필"이란 책을 보는 순간,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욕망이 갑자기 생겼다. 어떤 사연으로 우리나라 문화재를 모으기 시작했을까? 굳이 개인 박물관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자, 지금부터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작가는 재미 작가 이충렬이다. 그는 1996년부터 간송 미술관 관람을 하다가 2006년 간송 탄생 100주념 기념 관람을 하고 난 뒤 간송에게 푹 빠지게 된다. 그 후로 간송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허구와 사실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은 소설 형태로 되어 있어서 결코 지루하지 않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단 번에 읽을 수 있다. 하긴 간송의 삶이 워낙 다이나믹해서 평전으로 쭉 써내려도 재미있을 것도 같다.
글의 도입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숙하게 알고 있는 문화재인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을 간송이 소장하게 되는 사건의 서술이다. 일본인 도굴군이 도굴하고, 일본인 골동품상이 입수하여 일본인에게 팔려나가는 것이 대부분인 청자를 간송이 사들인다. 거금 2만원, 당시 경성의 기와집 20채의 값을 치르고 구입한다. 전형필이 미술품으로 돈 벌생각을 가졌더라면 일본인 소장가가 2배에 다시 구입하고자 했을 때 내어 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간송은 문화 지킴이의 자존심을 가지고 내어 놓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국보 68호가 된 청자이다. 글의 시작부터 읽는 이로 하여금 큰 긴장을 느끼게 만들고 책속으로 빨려 들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와, 간송은 이렇게 어렵게 문화재를 구입하였단 말인가? 그 외 어떤 문화재를 어떻게 사들였을까? 자연스럽게 간송의 인생속으로 들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간송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매년 기와집 150채 상당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와집 2000채 상당의 논이라는 경이로운 재산을 젊은 나이에 물려 받을 수 있었고, 자신을 도와주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 간송을 위해 아버지는 "옥정연재"라는 서재를 만들어 주었으며 고종 사촌형인 월탄 박종화 선생은 "민족의 앞날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었다.
간송의 인생에 나침반 같았던 대수장가 오세창. 그는 문화보국 즉, 문화를 지키는 일이 곧 민족 정신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였으며 간송이 정치 우여곡절에 휩쓸리지 않고 식민지 시대에 민족 존엄을 지킬 수 잇도록 이끌어 주었다.
소중한 문화재가 있으면 일본이라도 직접 가서 구입하였으며, 때로 작품의 가치를 모르고 헐값에 파는 사람에게도 자신이 판단한 대로 작품의 가격을 지불하였다. 문화재를 대하는 간송의 자존심을 교육사업에 빚이 늘어나 자신의 재산을 팔아야 했을 때도 작품을 절대 돈으로 환산하지 않았다.
6.25를 거치며 많은 고서적을 잃게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꾸준히 문화재를 수집하였으며 개인 미술관을 세워 작품을 단단하게 지켰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간송이라는 위인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단원, 겸재, 혜원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없을 수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본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혜안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지켜냈다고 생각하니 눈물나게 고맙기도 하다.
간송 미술관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방에 산다는 이유도 있지만 몰랐기때문이기도하다.
당장 올가을 전시 기간에 꼭 한 번 올라가서 간송의 손길도 느껴보고, 위대한 우리 문화재를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