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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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 1월 추웠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노랑무늬영원"이라는 소설을 발견했었다. 추웠기때문에 노란색이 눈에 띄였고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굉장히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몇 주전에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고르게 된 계기도 작가 한강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이야기. 광주 이야기였다. 와~ 이 작가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은가.

작가 한강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작가 한강을 검색해 보니 그녀가 쓴 산문집이 몇 개 보였다. 일단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란 산문집을 먼저 선택해서 읽었다.

이 책은 작가가 첫 장편소설을 내고 미국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기록한 글이다.

책을 펼치면 아주 깜짝놀랄만한 크기의 글씨로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해,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

나에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었는지.

나의 마음은 어디를

서성거리고 때로 헤매었는지"

라고 씌여져있다

3개월의 만남.

꿈같은 만남이었으리라. 잠시 꿈을 꾼 듯한 느낌을 잊지 않고 글로 엮어 냈는데 그 느낌이 정말 따뜻하다. 각자의 나라에서 1명씩만 선발되어 외국에서 외롭게 지내야하는 작가들이 공유하는 감정들을 한 꼭지씩 풀어냈는데, 그 사람들을 직접 내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잊혀지고 부서지는 기억을 글이라는 틀에 넣어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작가가 무척 부럽고, 행복하게 보인다. 나 역시 작가와 같은 시기에 일상을 벗어나 2년동안 딴 곳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그때 만난 사람들과의 감정도 어렴풋할 뿐이다.

나도 작가처럼 그때의 일을 기록으로 남겨둘껄.

아쉬움이 생기지만 앞으로라도 소중한 순간을 글로 남겨두는 부지런한 감성이 생기길 바랄뿐이다.

작가 한강.

당신의 따뜻함과 평온함, 그리고 항상 같은 느낌이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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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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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9년 1월에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이란 산문집을 읽었다. 김연수 작가를 알게 된지 얼마되지 않아 만난 산문집이라 어떤 기대도 없이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나는 김연수라는 작가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 이후로 김연수 작가의 책이라면 아무런 망설임없이 구입을 하게 된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나를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면서 덮어높고 사는" 최고의 독자로 만든 책이 "청춘의 문장"이다. 그의 박식함이 좋았고, 삶을 가볍지 않게 해석하는 무게감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았으니 그가 내게 읽어준 청춘의 문장들은 내 삶의 윤활유가 되었고, 나도 치열하게 살아가야겠다고 맘 먹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를 읽게 되었다. 나는 5년만에 읽는 것이지만 작가는 10년만에 청춘의 문장 후속편을 쓴 것이다. 5년만인 나도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감정이 엄청 다르다.

그때는 청춘이 버거웠다. 언제쯤 나도 노후의 편안함을 누릴 수 있을까? 매일 불안하고 힘들까?라고 여겼는데 요즘은 뭔지 모를 편안함이 나를 위로한다. 이제는 내 삶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할까? 나만큼 김연수 작가도 많이 달라졌겠지?라는 기대를 안고 책을 폈다.

책은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번에는 김연수 작가 혼자 책 속에 있지 않다. 금정연이란 평론가의 대담이 각 장의 끝에 동반되어 있다. 산문이라는 것이 개인의 세계를 드러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것을 읽는 독자는 궁금한 것이 참 많다. 작가가 내 옆에 있으면 물어 보고 싶은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궁금증을 금정연 평론가가 대신 질문해 주고 있다.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네 라고 빙긋 웃는 순간도 있고, 어 어떻게 이런 것을 물어 볼 생각을 했나?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김연수 작가가 쓴 글의 의도를 알 수 있고, 그가 생각하고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 과거의 김연수를 알아가고 , 미래의 김연수를 추측할 수 있는 멋진 책이었다.

10년동안 꾸준히 써 온 글을 나도 같이 꾸준히 읽어냈다는 것이 뿌듯했고, 그가 더 훌륭한 소설을 써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고도 그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 당신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나를 위해, 그리고 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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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 - 러시아 예술기행 2 이상의 도서관 24
이병훈 지음 / 한길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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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4박 6일짜리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마쳤다. 인천에 무사히 도착해야 끝나는 것이겠지만 비행기에 오르니 이제 러시아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는 일이 여행의 마지막 작업인듯 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준비하면서 책을 찾아 봤지만 대부분은 절판이 되어있거나 러시아 전체에 관한 책이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대해서만 설명된 책은 드물었다. 도서관을 샅샅히 뒤져서 ' 백야의 빼쩨르부르그에서' 를 구했다. 흔히 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검색해서는 찾을 수 없고 직접 찾은 책인데 그때의 희열은 보물을 찾았을때의 그것과 같으리라.
이 책을 쓴 이병훈 교수님은 러시아를 전공하시고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인'이란제목의 책에 이어 러시아 예술 기행 완결편으로 이 책을 쓰셨다. 책은 505쪽으로 제법 두껍다. 1,2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는 빼제르부르그 도시 이야기로, 2부는 빼쩨르부르그 도시 근교 이야기로 이루져 있다. 다른 도시와는 달리 빼쩨르부르그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이다 보니까 도시의 역사 문화 예술 다 방면에 걸쳐 의도가 심어져있다.
서유럽을 닮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표트르대제가 만든 도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하나씩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소개되어진 장소가 정말 다양하다는 점이다. 빼쩨르의 거의 모든 장소가 포함되어 있다. 덕분에 4일 여행을 정말 알차게 다닐 수 있었다. 더우기 정확하게 찍어진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서 여행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사진 찍는 포인터를 알게 될 뿐 아니라 다소 덜 알려진 장소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반미 감정이 있기도 하지만 문화적 우월감을 갖고 있어 영어로 문화재를 표기하거나 설명하는 친절을 절대 베풀지 않는다. 말도 잘 안 통하고 길을 모를때 책의 사진을 보여주면 금방 알아차리고 도와주기도 했다.
특히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내가 러시아 여행을 결심하게 된 '에르미따쥐 박물관' 소개였다. 루브르나 대영제국박물관과는 달리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사서 모은 예숭품이 모여 있는 이 박물관은 워낙 많은 수의 작품이 있어 하나 하나 보면 한도 끝도 없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 택에서는 주요 작품 즉 램브란트, 루벤스, 마티스, 고호, 세잔, 피카소의 작품을 소개해 주어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었다.
이 책이 빛난 것은 예술 중심의 소개였고 덕분에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도, 넵스키 사원의 차이코프스키도 보고 올 수 있었다. 수많은 묘 중에서 책 속의 사진에 나와 있는 차이코프스키를 만났을때는 소름이 돋는 감동을 느꼈다.
제정 러시아 수도로서 지닌 화려함속에 숨어 있는 억압된 민중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 이 책이 있어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어 2부에서 소개된 도시 근교를 2군데 밖에 못 가봤다는 점인데 완벽한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나중에 한 번 더 찾아올 기회가 있다면 그땐 도시 근교도 확실히 둘러 보고 싶다.

여행을 준비하며 여행을 다니면서도 이 책을 읽었는데 여행을 마치며 정리하며 다시 읽으니 여행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감동을 다시 느끼게 된다. 차갑지만 깊고 그윽했던 상트 페테르부르그를 같이 했던 '백야의 빼쩨부르그에서"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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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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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드라마, 역사 드라마가 성공적이게 되면 서점에는 그 드라마와 관련된 인물의 책이 막 쏟아진다. 영상매체가 가진 힘이 대단한 것을 서점에서 느끼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KBS에서 얼마전 "정도전"이란 드라마가 좋은 시청률로 끝이 났다. 어쩌다보니 한 편도 못 봤는데 서점에 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정도전이란 이름을 단 글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있었다.

그 중에서 나의 눈에 띄는 책 한권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덕일 선생님께서 쓰신 책 "정도전과 그의 시대"였다. 책을 들어 살펴보니 이건 내가 생각했던 "아류성" 글이 아니었다.

이 글은 KBS 대하 사극 "정도전"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과 연기자들에게 이덕일 선생님께서 강의한 내용을 재구성해서 엮었다고 했다. 이덕일 선생님의 역사책은 읽을 때마다 뒤통수가 띵하다.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던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실때가 많기때문이다. 그래서 기대가 많이 되고 설레인다.

이번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정도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라고 되짚어보았다.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도록한 공신,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점 정도.

내가 아는 것은 고등학교때 배운 지식이 전부였구나 싶었다. 하얀 종이에 새롭게 쓰여질 진실을 찾아 책을 펼쳤다.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장, 무너져가는 고려 왕실에서는 고려 왕조가 어떻게 무너지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해준다. 권문세족이라 배웠던 권세가들을 정도전은 그의 저서에서 "구가세족"이라 부르는데 가난한 농민들을 수탈하고 노비로 만드는 족속들의 행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고려 왕실은 여러차례 개혁을 시도하지만 구가세족에 의해 막히게 되고, 사대부들은 남송의 성리학을 받아들이며 개혁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2장, 절망 속에서 위민사상을 일구다에서는 드디어 정도전의 생애가 설명되기 시작한다.

농민들이 수탈당하고 노비로 전락하는 시대에 영웅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정도전은 이성계와 만나기전에 9년이란 긴 세월을 유배가게 된다. 친원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이다. 9년동안 다시 벼슬아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백성들의 생활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을 위한 세상을 생각하게 된다.

3장, 정도전 이성계를 만나다에서는 드디어 정도전이 이성계를 찾아가게 된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개국 플랜을 짜는데 그 핵심이 혁명적인 토지제도이고, 그 사상적 배경은 성리학이다.

'백성의 수를 헤아려서 농토를 나누어준다'는 계민 수전으로 대동사회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이란 책에서 "사람 위에 있는 자는 법으로 다스려서 다투는 자를 평화롭게 하고 싸우는 자를 화합하게 한 연후에야 민생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이는 농사를 지으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백성은 10분의 1을 내어서 윗사람을 기르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즉 벼슬아치는 백성이 기르기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런 위민사상을 갖고 있는 정도전이라니...정말 가슴 뭉클했다.

4장, 토지 제도를 개혁하다에서는 정도전이 왜 토지개혁을 주장할 수 밖에 없었던 고려말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과전법이 가진 장점을 다양하게 설명해 주었다.

5장, 조선의 개창 이념, 성리학에서는 성리학의 형성 과정, 중세 유학으로서 성리학이 송나라 사대부 계급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며 역성혁명파의 사상이 되는 과정이 나와 있다.

6장, 조선 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지다에서는 우왕, 창왕을 몰아내고 공양왕 4년에 이성계가 드디어 백관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이성계가 병석에 눕자 이방원이 군사를 일으켜 정도전을 살해하는 과정도 알려준다.

요동 정벌을 꿈꾸던 정도전이 죽게 되므로써 미완의 과제를 우리에게 남기게 되었는데 이덕일 선생님은 고려 말의 상황을 현대에 자주 비추어 말씀하시기도 했다.

"한 사회가 내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영화 "명량"이 대인기를 끌고 있다. 왜란을 종결지었던 이순신 장군을 지금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시대가 어려워 질 수 있다는 사실도 정도전의 시대에서 배우게 된다.

이덕일 작가는 사회 내부 문제를 순리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정도전의 모습을 통해 알려주고자 하는 듯 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나의 무지때문에 상당히 부끄러웠는데, 이런 책은 단 1번만 읽고 끝낼 것이 아니라 여러번 읽으면서 이덕일 선생님께서 정도전을 빌어 하고자 하신 말씀을 더욱 정확하게 알아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꺼운 책은 아닌데도 읽는데 힘이 좀 들었다. 나의 무지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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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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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한국 소설 파트에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 신권이 쭉 꼽혀있다. 저번에 전경린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였다. 김영하 작가는 글도 좋지만, 목소리도 참 좋다.

멀리 여행 갈때는 반드시 김영하 작가의 "책읽는 시간"을 다운 받아가서 무료함을 달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 그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어서 마치 그가 읽어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오로지 김영하 작가 덕분이었지 책에 대한 아무런 예비 지식이 없었다.

검은 꽃이라니... 검은 색의 꽃이 존재할 수 있나? 라는 의문을 갖고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자 마자 만난 것은 멕시코 지도였다. 앗~ 이거 뭐야? 멕시코 이야기야?

내가 가고 싶은 휴향지 칸쿤도 보이네. 무슨 이야기일까?

"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제물포의 풍경이었다."

책은 이정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이정. 그는 1905년 4월 4일. 외교관은 커녕 교민 하나 없는 멕시코로 가는 1033명의 조선인중의 한명이었다. 피리부는 내시, 신앙으로부터 도망중인 신부, 무당, 노루피 풍기는 소녀, 굶주린 제대 군인 등 조선 땅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는 무리들이 새로운 땅 멕시코를 향해 가기 위해 화물선 일포드호를 타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질 등 죽을 고비를 여러차례 넘긴 조선인들은 멕시코에 내려 에네켄을 재배하는 4년간의 노예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빌어먹을...조국이 힘을 잃으니 어디 가도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구나 싶었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조선인들의 모습에서 여러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굶주린 황족은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논어를 읽고, 비굴한 통역은 같은 민족이 굴욕과 고통을 당해도 몇 마디 먼저 배운 외국어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불길한 주술에서 벗어나고 싶어 머나먼 곳까지 가서 세례받은 신부는 다시 주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다 놓는 무기력함을 보인다. 싸움에 익숙한 군인들은 끓는 피를 다스리기 위해 멕시코 혁명에 뛰어들고, 대한 제국의 관리는 동포가 억울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눈감아 버린다. 힘없는 국가의 서러운 동포들의 생활에 또 한 번 마음이 쓰라린다.

멕시코 혁명에 뛰어든 이정은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우리모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왜놈이나 되놈으로 죽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그러니 우리만의 나라가 필요해.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p367)

검은 꽃.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

절대 받아서는 안되는 부정한 대접을 받고 살아야 했을 우리 민족에게 조국이라는 것이 검은 꽃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조국.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조국. 그 조국을 그리워하다 이국땅에서 삶을 마무리했을 우리 동포들의 아픔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정래 선생님의 아리랑처럼 나의 머리속에 우리나라 역사 장면을 정교하게 새겨 준 책. 검은 꽃.

고마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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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99 2015-09-29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제목에 대한 생각 잘 얻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