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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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부산은 "눈"과는 인연이 없는 도시다. 연평균 기온이 영상의 따뜻한 곳이라 다른 지역에 눈이 올 때 비가 오는 도시이다. 하지만 가끔씩 조금의 눈이라도 올라치면 산이 많은 지형이라 학교며, 아파트들이 산 기슭에 지어져 있어 교통 대란이 발생한다. 언젠가 눈이 많이 왔던 날 부산시내 교통은 엉망이 되고, 지각이 속출했으며, 등산을 하듯 한 발 한 발 삐질삐질 생땀을 흘리며 학교를 갔었다.

그래서일까? 부산 사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못한 눈을 그리워하면서도 멀리 두려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눈이나 겨울 스포츠에 대해서는 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인냥 불구경하는 경우가 많고 직접 해 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키나 보드는 즐기는 스포츠라기보다 보는 스포츠로 만족한다.

그런 나에게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백은의 잭"을 보는 순간, '아,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흐르는 신게쓰 고원 호텔의 스키장으로 얼른 뛰어 들었다.

스키어들과 스노보더가 엉켜 눈을 즐기는 스키장에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패트롤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작년에 호쿠게쓰 구역에서 알 수 없는 스노보더의 보더 에지에 여성 스키어가 목을 베어 죽는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년이 지났어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호쿠게쓰 구역은 폐쇄되어 있다. 폐쇄된 지역에 꼭 몰래 숨어 타는 손님들이 있어 패트롤들이 더욱 정신없는 신게쓰 고원 호텔에 느닷없는 지구 온난화를 찝으며 환경을 파괴 한다며 위자료를 청구한다는 메일이 온다. 위자료를 내놓지 않을 때는 눈오기 전에 미리 설치해 둔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에 호텔엔 비상이 걸려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관계자들의 회의 모습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하고 손님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한다는 쿠라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절대 경찰에 알리지 않고 위자료를 주겠다는 사장. 사장의 의사에 재빠르게 일을 진행시키는 마쓰미야.

독자들은 이 협박의 범인은 누구일까 지속적으로 의심을 하며 책을 읽어내린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여기 저기에 파 놓은 함정에 한 발씩 담궜다가 빼기를 반복하며 용의자를 한 명씩 한 명씩 확인한다. 이때까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사건의 범인은 대부분은 먼저 밝혀지고 이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안전하게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구성되었는지 그렇지 않다면 이 범죄의 진정한 범인은 누구인지를 집요하게 독자들에게 판단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범인이 먼저 밝혀지지 않아서 오랫만에 진정한 추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범인과 멋진 추격전을 벌이는 네즈와 에루의 스키와 보더 타는 모습의 묘사가 어찌나 사실적인지 손에 땀이 생길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450페이지가 넘는 전체 소설 중에서 380여 페이지 뒤에서야 범인이 밝혀지는데 다소 급하게 마무리 되었고, 모두가 해피엔딩이라는 다소 동화같은 결말에 힘이 좀 빠지기는 했지만 오랫만에 정통 추리소설을 읽는 듯 재미있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소설을 영화화 하길 원했다고 하던데 올해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와타나베 캔, 히료스에 료코가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하니 얼른 찾아서 봐야겠다.

여름에 읽었으면 시원했겠는데 이 추운 겨울에 나와 인연이 닿은 백은의 잭. 스릴 넘치는 한 편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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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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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또 선택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보다을 읽었으니 나에게는 7번째 작품이 되겠지만 김영하 작가에겐 첫 장편소설이다.

1996년 제 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역주행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10여년 전의 대한민국에서는 놀라웠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3편의 명화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클림트의 유디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다. 이 세 작품은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그림들이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나부터 궁금했다. 벨기에, 오스트리아, 루브르란다.

작중 화자인 자살 안내인은 흡사 박물관 가이드처럼 작품을 하나 하나 설명해 준다. 자살 의뢰인을 만나고 사건을 처리하면 반년 정도는 그럭 저럭 살만한 여유를 가졌기때문에 도서관에서 주로 역사책, 여행 안내서를 읽으면서 소일을 하는 자살 안내인. 그의 안내를 따라가면 우리는 죽음을 만나게 된다. 평화롭게 죽어간 마라와 황홀경에 빠지는 듯 죽음을 맞이하는 유디트처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죽음을 마주한다. 연결되는 이야기는 자살 안내인은 의뢰가 끝나면 쓴 그 일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꽤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는 인생을"살았던 유디트, 애비앙, 미미. 그들의 인생은 따분하고 지루하며 역겹고 컬트적이고 기괴하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우리 사회에 있음직한 불우한 삶이라는 데 마음이 상당히 무거워졌다.

왕따 당한 초등학생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중학생이, 성적을 비관하는 고등학생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군인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회사원이,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하고 차가운 방에 홀로 남겨진 노인이 선택하는 그 죽음이 바로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는냐고, 그때 내손을 잡고 따라 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고 그대들 갈 길을 가라"

고 자살 안내인은 마지막으로 충고를 한다.

뒤돌아 보지 말자. 앞을 보자, 달콤한 자살 안내인의 의뢰를 차갑게 외면하면서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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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스테펜 크베넬란 지음, 권세훈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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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읽을 거리를 찾아 도서관을 뒤지던 나의 레이더에 '뭉크'라는 새 책이 눈에 띄였다. 제법 두꺼운데 표지 그림이 뭉크의 유명한 작품' 절규'를 패러디한 재미난 그림이다. 도대체 뭐지? 싶어 책을 펼쳐보니 그래픽 노블이다.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이 만화에 빠져 허우적거릴때도 나는 만화를 보지 않았다. 만화를 읽을 때는 그림을 유심히 봐야 하는데 그림은 보지 않고 말주머니 속의 대사만 읽는 바람에 만화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까닭이다. 공간 감각이 부족한 걸까? 그래서 만화는 늘 나의 독서목록에서 자리 잡을 수 없는데 이 책은 도입부를 슬쩍 보다가 '와~ 읽어봐야겠다' 란 의욕이 생겼다. 왜냐면 도입부에 작가 스테펜 크베넬란이 왜 이 작품을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작품속에 등장하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뭉크 박물관에 새로 발견된 뭉크 작품을 보러갔다가 타인이 만들어낸 뭉크가 아니라 뭉크 스스로 말하는 작품을 그려 보리라 마음 먹게 된다. 즉 뭉크가 쓴 편지, 일기, 메모, 스케치, 소묘등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쓴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꿔 쓰거나 덧붙이지 않고 말이다. 작가가 어릴적부터 뭉크를 좋아했고 뭉크 작품을 자주 따라 그렸으며 그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고 했다. '까짓것 1년'이면 될거라 했던 작품은 7여년 걸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7년동안 정성들여 만들어진 그래픽 노블이라니 읽어주는 것이 예의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번 노블을 읽으면서 반드시 그림을 유심히 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뭉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때문이다.

뭉크가 스스로 말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모든 이야기는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뭉크의 스승 크리스티안 크로그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주고, 절친이자 작가였던 스웨덴 출신의 스린트베리가 "춤 슈바르첸 페르켈"이란 술집을 배경으로 일어난 이야기를 해 주고, 극작가 겸 소설가인 아돌프 파울이 뭉크의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뭉크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이 책의 작가인 크베넬란이 그려 넣은 뭉크의 작품, 그리고 상상으로 채워넣었을 뭉크 그 자체이다. 해학적 케리커쳐로 잡아낸 뭉크의 얼굴이 살아있는 듯 강렬했고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그려왔다는 뭉크의 작품이 그의 인생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니, 누나의 죽음, 아버지의 병적인 종교 집착으로 인한 고뇌의 삶을 회고해주는 뭉크의 살아 있는 말은 뭉크를, 그 시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거부 받았던 그의 작품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부분은 뭉크의 작품인 "아픈 아이"의 작품 만드는 과정이 소개된 부분이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으로서 죽음과 결별을 작품 속에 자주 담아내는데 아픈 아이 역시 그런 우울감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1년내내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가 다시 긁어내고 백지상태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의 작품을 위한 노력과 집중을 알 수 있다. 이런 습작의 과정이 이 책 곳곳에 그려져있으니 뭉크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뭉크는 화가란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과 사상, 느낌이 녹아 있는 '본 것'은 사람마다 다를 터 그것을 그려 내는 것이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한 뭉크는 끊임없이 솔직하게 본 것을 화폭에 담은 성실한 화가였던 것이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내가 따라 그릴 수 있겠다 싶을만큼 단순한 그림이다. 하지만 감히 흉내내지 못할 것은 그의 색깔 선택이다. 나라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피로 얼룩진듯한 하늘, 기름으로 덮힌 듯한 물결. 뭉크의 삶이 어떠했길래 이런 색감을 만들어냈을까란 나의 의문은 이 책을 통해 훌륭하게 해결되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노르웨이로 여행가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노르웨이의 멋진 자연 풍광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오슬로에 있는 뭉크 박물관이 목표가 되었다.

뭉크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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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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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사건이지 사고가 아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정당성을 부여해 준 책이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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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여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오후세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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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내내 신경써야 했던 가장 큰 일이 이번 주에 끝이 났다.

그동안 이 일에 신경 쓰느라 제대로 마음이 여유가 없었는데 갑자기 일이 끝나고 나니 한동안 멍했다.

이제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나에게 뭔가 선물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선택했다. 참, 그동안 진짜 여유가 없었네. 오쿠다 히데오의 새 작품을 찾아 보지도 못했네. 내가 읽어 보지 못했던 책이 2권이나 있었다. "준페이 다시 생각해"와 "소문의 여자". 먼저 "소문의 여자"를 선택했다.

오쿠다 히데오가 던지는 "여자" 이야기는 정말이지 재미있지 않는가? 초창기에 읽었던 오쿠다 히데오의 "걸"을 떠올려 본다. 마치 작가 자신이 여자인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여자의 심리, 여자의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능력이 대단하지 않는가?

책 표지에는 여자의 발가벗은 뒷모습이 보인다. 머리는 야무지게 틀어 올렸고, 목에는 빨간 색의 실뱀이 또라이를 틀고 있고 허리쯤엔 나비 문신이 있다. 이 여자가 바로 소문의 여자이겠지? 이 여자의 목에 있는 뱀은 무슨 의미일까? 허리의 나비는 또 무엇일까? 어떤 소문의 주인공일지 정말 궁금하였다.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가지 인간 군상을 보여 준다.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텐데도 굳이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서 억지 보상을 요구하는 인간들, 틈만 나면 마작장에서 마작을 하며 밤을 새우는 사원들, 간부들이 모두 친인척인 중소기업과 거기에서 일하는 사원들,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이권 챙기기에 혈안된 공무원들, 유산 상속을 위해 힘겨루기에 들어간 배다른 형제들, 삼 개월의 실업수당에 모든 것을 건 게으른 여자들, 집 대출금을 갚지 못해 자식에게 의지하고 매달리는 모자란 부모들, 파벌싸움 때문에 큰 사건을 묵혀두는 형사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젊은이를 매춘을 이용해 악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영감탱이들.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의 삶에 얽혀 있는 여자 이토이 미유키. 그녀가 스물 일곱살이 될 동안 그녀 주변의 남자 3명이 목숨을 잃는다. 하나 같이 돈 많은 남자들.

독자들은 미유키의 악행을 뻔히 알고 있다. 그런대도 우리는 미유키를 응원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미 공정이란 단어가 무의미한 일본의 작은 도시의 경쟁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미유키를 손가락질하면 안된다는 듯이 오쿠다 히데오는 우리를 설득시킨다. 그의 놀라운 필력에 딸려 들어간 나는 미유키의 악행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정상적인 법의 테두리에서 공정한 경쟁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민주적 삶을 꿈꾸는 우리들에겐 지극히 현실적인 이런 이야기가 오히려 먼 나라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미유키는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기를, 더 이상 남을 희생시키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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