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또 선택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보다을 읽었으니 나에게는 7번째 작품이 되겠지만 김영하 작가에겐 첫 장편소설이다.
1996년 제 1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은 작품으로 그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소설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역주행하는 나에게는 그다지 놀랍지 않은 소설이었지만 10여년 전의 대한민국에서는 놀라웠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3편의 명화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클림트의 유디트,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다. 이 세 작품은 "죽음"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이 그림들이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나부터 궁금했다. 벨기에, 오스트리아, 루브르란다.
작중 화자인 자살 안내인은 흡사 박물관 가이드처럼 작품을 하나 하나 설명해 준다. 자살 의뢰인을 만나고 사건을 처리하면 반년 정도는 그럭 저럭 살만한 여유를 가졌기때문에 도서관에서 주로 역사책, 여행 안내서를 읽으면서 소일을 하는 자살 안내인. 그의 안내를 따라가면 우리는 죽음을 만나게 된다. 평화롭게 죽어간 마라와 황홀경에 빠지는 듯 죽음을 맞이하는 유디트처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죽음을 마주한다. 연결되는 이야기는 자살 안내인은 의뢰가 끝나면 쓴 그 일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꽤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는 인생을"살았던 유디트, 애비앙, 미미. 그들의 인생은 따분하고 지루하며 역겹고 컬트적이고 기괴하다.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우리 사회에 있음직한 불우한 삶이라는 데 마음이 상당히 무거워졌다.
왕따 당한 초등학생이,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중학생이, 성적을 비관하는 고등학생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군인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회사원이,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하고 차가운 방에 홀로 남겨진 노인이 선택하는 그 죽음이 바로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는냐고, 그때 내손을 잡고 따라 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고 그대들 갈 길을 가라"
고 자살 안내인은 마지막으로 충고를 한다.
뒤돌아 보지 말자. 앞을 보자, 달콤한 자살 안내인의 의뢰를 차갑게 외면하면서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