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스테펜 크베넬란 지음, 권세훈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읽을 거리를 찾아 도서관을 뒤지던 나의 레이더에 '뭉크'라는 새 책이 눈에 띄였다. 제법 두꺼운데 표지 그림이 뭉크의 유명한 작품' 절규'를 패러디한 재미난 그림이다. 도대체 뭐지? 싶어 책을 펼쳐보니 그래픽 노블이다.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이 만화에 빠져 허우적거릴때도 나는 만화를 보지 않았다. 만화를 읽을 때는 그림을 유심히 봐야 하는데 그림은 보지 않고 말주머니 속의 대사만 읽는 바람에 만화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던 까닭이다. 공간 감각이 부족한 걸까? 그래서 만화는 늘 나의 독서목록에서 자리 잡을 수 없는데 이 책은 도입부를 슬쩍 보다가 '와~ 읽어봐야겠다' 란 의욕이 생겼다. 왜냐면 도입부에 작가 스테펜 크베넬란이 왜 이 작품을 하게 되었는지 스스로 작품속에 등장하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뭉크 박물관에 새로 발견된 뭉크 작품을 보러갔다가 타인이 만들어낸 뭉크가 아니라 뭉크 스스로 말하는 작품을 그려 보리라 마음 먹게 된다. 즉 뭉크가 쓴 편지, 일기, 메모, 스케치, 소묘등에서 그대로 인용하여 쓴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꿔 쓰거나 덧붙이지 않고 말이다. 작가가 어릴적부터 뭉크를 좋아했고 뭉크 작품을 자주 따라 그렸으며 그것들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고 했다. '까짓것 1년'이면 될거라 했던 작품은 7여년 걸려 완성되었다고 한다. 7년동안 정성들여 만들어진 그래픽 노블이라니 읽어주는 것이 예의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번 노블을 읽으면서 반드시 그림을 유심히 보겠노라 다짐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뭉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때문이다.

뭉크가 스스로 말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모든 이야기는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뭉크의 스승 크리스티안 크로그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주고, 절친이자 작가였던 스웨덴 출신의 스린트베리가 "춤 슈바르첸 페르켈"이란 술집을 배경으로 일어난 이야기를 해 주고, 극작가 겸 소설가인 아돌프 파울이 뭉크의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 해 주고 뭉크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이 책의 작가인 크베넬란이 그려 넣은 뭉크의 작품, 그리고 상상으로 채워넣었을 뭉크 그 자체이다. 해학적 케리커쳐로 잡아낸 뭉크의 얼굴이 살아있는 듯 강렬했고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그려왔다는 뭉크의 작품이 그의 인생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니, 누나의 죽음, 아버지의 병적인 종교 집착으로 인한 고뇌의 삶을 회고해주는 뭉크의 살아 있는 말은 뭉크를, 그 시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거부 받았던 그의 작품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부분은 뭉크의 작품인 "아픈 아이"의 작품 만드는 과정이 소개된 부분이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으로서 죽음과 결별을 작품 속에 자주 담아내는데 아픈 아이 역시 그런 우울감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1년내내 그림을 수없이 그렸다가 다시 긁어내고 백지상태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의 작품을 위한 노력과 집중을 알 수 있다. 이런 습작의 과정이 이 책 곳곳에 그려져있으니 뭉크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뭉크는 화가란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의 경험과 사상, 느낌이 녹아 있는 '본 것'은 사람마다 다를 터 그것을 그려 내는 것이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한 뭉크는 끊임없이 솔직하게 본 것을 화폭에 담은 성실한 화가였던 것이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내가 따라 그릴 수 있겠다 싶을만큼 단순한 그림이다. 하지만 감히 흉내내지 못할 것은 그의 색깔 선택이다. 나라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피로 얼룩진듯한 하늘, 기름으로 덮힌 듯한 물결. 뭉크의 삶이 어떠했길래 이런 색감을 만들어냈을까란 나의 의문은 이 책을 통해 훌륭하게 해결되었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노르웨이로 여행가려고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노르웨이의 멋진 자연 풍광이 목적이었지만, 이제는 오슬로에 있는 뭉크 박물관이 목표가 되었다.

뭉크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