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고 죽음에 가까워 지는것.
살아있는 모든것은 죽는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기에 먼저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고, 나보다 늦게 태어나도 스스로 또는 어떠한 이유로 아니면 다른 종이어서 먼저 죽는 경우도 있다.
몽실이 8살 복순이 7살 연희 6살 곤지 4살 다정이 3살.
나이순으로 하면 몽실이 부터겠지만, 그당시 가장 어렸던 나리가 1살 조금 넘어서 고양이 별로 갔으니 누가 먼저 떠나게 될지는 알수 없는 일.
다섯냥이 모두 사는 동안 행복하게 살고 떠날때는 가장 덜 고통스럽게 해주고 싶다.
병에 걸려서 치유의 가능성이 없다면, 병원에 입원시키지 않겠다.
가장 편안하게 떠날수 있게 해주고 싶다. 가능하다면 집에서 함께 있을때....
<고양이와 함께 나이드는 법>은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잡사님들에게
실용적으로도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실질적 케어 방법과 냥이들이 아플때 집사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는것이 냥이와 집사 모두에게 좋을지 그려져 있다.
사실 나는 지금 죽어도 별로 억울할것도 없고 여한같은 것도 없다.
사랑도 해봤고, 집사로도 살아 봤고 뭐 이쯤이면 됐다 싶다.
더 행복한 미래가 있을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나름 이정도면 행복한거 같다 라고 느낀 순간이
요근래에 많아서 인지 이정도면 충분하다 싶기도 하다.
문서로 남겨서 공증까지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심정지가 온다면 심폐소생술을 거부할것이며, 어떠한 연명치료도 거부할 생각이다.
인간은 죽을때까지 죽어서도 죽음을 알수 없지 않을까?
죽는 순간 느낌을 죽었는데 어찌 알까.
알수 없는 것이기에 죽음은 그렇게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사는것이 아무리 거지같고, 살아야 할 이유도 희망도 없지만,
그래도 살고 싶은게 알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겠지.
아버지는 심정지 이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 실에 있다.
의식이 있었을때 병원 관계자에게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싶은 걸까 궁금했다.
본능일지도 아니면 그저 두려움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만 이것이 두려울뿐. 그나마 의료급여 1종이라 다행이다.
아니였으면 입원 일주일만에 7백만원이 넘는 돈을 내가 어떻게 감당했을지.
하긴 앞으로 입원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는 거니까.....
냥이 페이퍼가 너무 무겁.....
여튼 사는 동안은 고양이처럼 당당하게 네발로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