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이책을 얼마나 읽었을지 읽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내게는 별 관심사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고 지금의 이 성별에 따른 억압적인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시스템만이 영원불변할 역사적 진실이나 사회구조 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엄청나게 비관적이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서 무언가를 꿈꾸거나 희망하는 것은 실패가 두렵고 상처가 두려워서 애당초 시도조차 안하는 사람이다.

행복해지기를 바란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저 지금 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기만을 바랬을뿐. 그래서였는지 행복해 죽겠어 라는 것보다는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 라고 느끼며 사는 편이다. 내가 지금 보다 '행복'해지기를 상상했다면 어땠을까?

바라는데로 이루어 지지는 않았겠지만, 불행 보다는 행복의 스펙트럼에 조금더 가까워 질수 있지도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유쾌한 상상력과 재치가 넘치는 소설일 뿐만 아니라 여성학 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과 여성 운동의 역사를 담고 있는 훌륭한 여성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억압의 기원이나 성과 계급의 문제, 동성애를 둘러싼 논의, 가사 노동에 대한 논쟁을 이갈리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학과 관련된 지식을 많이 알면 알수록 이 책은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이 소설을 너무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게 된.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 있는 성차별적 요소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것, 특히 생물학적인 것이어서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여기는것까지도 사실은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구성물임을 보여준다. 그러한 것들로 가장 대표적인 것들인 월경, 임신, 출산조차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가치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생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성관계도 이갈리아에서는 우리가 전혀 상상살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궁극적인 목표는 삽입과 사정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고안한 수많은 체위는 모두 남성의 페니스를 여성의 질에 삽입하는  다양한 형식일 뿐이다. 남성이 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여성의 성은 남성에 의해 설명되고 규정된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성욕이 음핵(clitoris)에서 질로 발달한다고 주장했는데 그에 따르면 질 오르가즘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음핵 오르가즘에 집착하는 여성은 미성숙한 여성이다. 그러나 현대 성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성 쾌감은 남성 성기가 삽입된 질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음핵의 자극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갈리아의 성교 방식은 여성이 가장 큰 쾌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의 성 쾌감은 음핵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갈리아인들이 주장하듯이, 그리고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 여성의 성이 생식과 반드시 연관될 필요는 없다, 반면 남성의 오르가즘은 사정으로 끝나고 사정은 항상 생식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남성(맨움)이 전적으로 피임의 책임을 지는 것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 여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페미니즘의 대안잉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책을 읽고 당혹감을 느낀 남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은 아니다. 우리는 이 책이 위협적이고 공격적인 것으로 읽히길 바란다. 페니스와 평평한 가슴에 대한 경멸을 가상의 세셰 속에서 잠시 경험한다면, '젖소부인'이라는 작명을 가능하게 한 가부장적 상상력을 비판적으로 불 수 있는 감수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옮기고 나서 중 발췌>

 

 

사냥꾼의 사냥물로만은 가족을 먹여 살릴수 없었다 . 사냥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성이 아이를 생산하고 아이와 남성이 먹을 것을 생산해 냈다. (수유 그리고 채취 또는 경작) 남성은 사냥할때 여성은 경작할때 각각 도구를 사용했지만, 살생을 할수 있는 무기를 가지게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할 수 있었고, 독점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후계자를 생산하고,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위해 가부장제가 만들어 진다.  그것이 자본주의와 함께 맞물려 지금의 이 성별 억압적인 사회를 유지해 가고 있다.

 

남성들이 더 폭력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이 출산을 해야 하기때문에 라는 단순한 생물학적 이유가 이 세상의 억압을

다 설명할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물학적 이유들에 부딪힐때마다 부정과 비관의 결정체인 나는 '어차피 안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들어 온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진 기득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불쌍한'남자들 속에서 진이 빠진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여성학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이 나보다 덜 똑똑하고 덜 부정적이여서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싸워왔을까?

아니겠지, 아닐꺼야. 내가 공부가 부족해서 일꺼야 라고 다독여본다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고 싸우고 연대하다보면, 지금 당장 무엇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그 변하지 않은 세상에도 또 변화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무언가가 될수도 있지 않을까.....

 

 

 

 

 

제목도 마음에 안들고, 저자 10명중에 남자가 8명인것도 진중권이 있는것도 싫은데

정희진이 있으니 어쩔수 없군.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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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11-2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개님 계속 공부하고 이렇게 얘기해주는 거 좋습니다. 계속해주세요. 저도 이갈리아 페이퍼 쓸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고민은, 이갈리아가 딱히 막 재미있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글 쓰기가 귀찮아서....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6-11-2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직까지 안 읽은 저로서는 무척이나 흥미로운 페이퍼예요. 이런 가정, 이런 상상이 소설에서 가능하다는 건 너무 근사한데, 소설에서만 그런가? 하는 생각에 좀 가라앉기도 하네요. 같이 읽고 같이 얘기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