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책을 읽고 싶어서 M 님께 추천을 부탁드렸다.

그중엔 절판인 책도 있어서 시립도서관 자료를 혹시나 하고 검색해 보았는데...

있다. 솔직히 있을거라고 전혀 기대도 안했는데 있다.

물론 서재에 있는건 아니였고 서고에 있던것을 직원이 찾아다 주긴 했지만...





일인당 5권 까지 대출이 되는데 나는 책 읽는 속도가 매우 느린편이라 2주안에 5권은 한번도 완독해본 경험이 없다.

그래도 매번 늘 다섯권을 꽉 채워서 대출을 받아왔고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올리브 키터리지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D님의 서재에서 보고 관심이 생겼던 책이고

인간은 조건은 P님의 서재에서 보았던 책이였다.


해방을 제일 먼저 읽으려고 했으나 이상하게 인간에 조건에 손이 먼저 갔다.


항상 이런 에세이(?)종류를 읽을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자신이 했던 말들, 생각들 그리고 남들이 했던 말들 행동들을

어떻게 몇년이 지나고서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서술할 수 있는지

기억력이 하루를 못 넘기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돼지농장, 주유소, 편의점, 하우스, 자동차 부품공장에서의 비인간적인 노동현실 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잠입취재를 했던 것도 아니다.

생계를 위해 돼지 똥밭에서 구르고 목숨 걸고 바다에서 통발과 전쟁을 치루고 감정을 말살하는 감정노동 등에 실제로 종사했다.

너무나도 구체적인 대화내용과 세밀한 장소의 서술이 나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일을 하면서 이렇게 메모를 하였다는 내용도 없다.

그럼 천재야? 다 기억해? 작가들은 다 그래? 그럼 이건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 


서너군데 포스트 잇을 붙이긴 했지만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역시나

내가 경험해 봤던 편의점과 주유소 그리고 살아봤던 고시원 부분이였다.


10만 원짜리 방은 현관 바로 앞에 있는 방이었다. 11만 원짜리는 바로 앞 고시원과 마주한 방이었다. 창문을 열면 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12만 원짜리 방은 벼랑 쪽으로 창이 난 방이었다. (.....)나는 12만 원짜리 방으로 게약했다. 2만 원짜리 전망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였다.   p.105


물론 내가 살던 고시원은 작가가 살던 곳에 비하면 거의 타워펠리스 수준이였을꺼다. 각 방에 샤워실,화장실이 따로 있었고 남녀 취사실 세탁실도 따로 있었다. 중국산 쌀과 김치였지만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고, 여름에는 에어컨 때문에 너무 추워서 겨울용 자카드 이불을 덮고 잤고 겨울에는 난방 때문에 속옷만 입고 자야 했으니까 말이다. 좁다는 것, 아주 인체공학적으로 좁다는것 그리고 창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살아 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창이 있는 방은 28만원 이였고. 나는 창이 없는 가장 안 쪽 방 25만원 짜리 방을 선택했다. 3만원의 창 값이 내겐 사치로 느껴졌었나 보다. 고시촌이 아닌 곳의 고시원에는 고시생은 없다. 대부분이 나같은 직장인이거나 대학생이다. 남편의 폭력에 백일도 안된 아이를 들쳐 업고 들어온 맞은편 방의 어린 여자나 부부가 같이 조금 넓은 이인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대게 그랬다. 맞은편 방에 아이와 아이 엄마가 입실하기전 총무는 내게 괜찮겠냐고 내 의사를 물었다. 옆방 사람 꼬르륵 소리까지 들리는 고시원에서 아기라....나야 뭐 어차피 술에 취해 잠들면 모르니 상관은 없다고 했지만 그 방 역시 창이 없어 환기도 채광도 안되는데 아기라.....신경이 쓰였다. 가끔씩 새벽에 아이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몇번 잠을 설치긴 했어도, 고등학생 녀석들이 벌이는 정사소리만큼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고 아이 엄마는 약 보름정도 머문후 떠났다. 어디든지 창이 있는 곳으로 갔기를......늦은 밤마다 주말에 데이트 하자고 문을 두드리던 옆방 아저씨도 장가 갔기를!


반말을 듣고도 울컥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건  길어봐야 2주 정도다. 다른 행동들도 시간이 지나면 반말만큼이나 불쾌하게 느껴진다. 종업원이 손을 내밀고 있는데도 돈을 카운터에 던지는 것.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카운터에 담배 포장지나 아이스크림 껍질을 버리고 가는 것, 게산 중에 생각이 바뀌었다며 그대로 나가버리는 것. 진열대에 있던 물건을 떨어뜨리고 내버려 두는 것 등등.   p.160


이때부터 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반말에 익숙하지가 않다. 내가 하는 것도 듣는것도 둘다.

지금은 살이 많이 찌면서(늙어서 라고 하고 싶지 않다) 덜해졌지만 좀 동안인편이라 30대 초반까지 어디서든 왠만하면 누구든 나에게 반말을 했다. 나보다 어린사람들도 당연히 내가 어릴꺼라 생각해서 말 놓고 시작. 


내가 처음 일을 했던 편의점은 그당시  유행이던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이였다. 나는 시급이 좀 더 많은(그래도 최저임금만큼은 아니였다) 야간반을 했지만 주유소 남자 직원이 밤에 카운터를 같이 사용했기 때문에 혼자 있어서 무섭다거나 취객이 소동을 부릴일은 거의 없었다. 술취한 손님은 꼭 남자 직원이 없을때만 소동을 부렸으니까....대신 나는 편의점 바깥에 놓인 파라솔에서 술마시는 손님들에게 유동골뱅이를 만들어서 팔아야 했다.

젠장! 손님이 주문을 하면 주유소 숙소에 딸린 식당에 가서 주물럭주물럭~만들어 가져다 줘야 했다. 아저씨들은 왜 꼭 술 한잔만 따라주고 가라는걸까? 왜 술은 여자가 따라줘야 맛있다는 걸까? 나는 왜 편의점에서 골뱅이를 팍팍 무쳐야만 했을까? 다시 떠올려도 너무나 짜증스러운 기억들이다. 물론 전면 유리창에 대고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며 소변을 보는 사람이나, 매장 타일바탁에 온통 토사물을 쏟아 놓고 가는 사람들도 진저리쳐지게 싫은건 마찬가지였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잘 웃지 않는다. 미소? 속없이 실실거리다 왜 "쪼개냐?" 며 맞을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눈 만 마주치면 웃는다. 이건 뭐 파블로프의 개도 아니고 마주치면 바로 싸악~물론 입만 웃는다.

가짜 웃음.  나는 원래도 잘 웃지 않는다. 내 눈가에 주름이 없는건 비싼 아이크림때문이 아니다.

사실 나의 인상은 꽤나 강렬한 편이다. 정대세의 친누나라고 해도 믿을수 있게 1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는 눈, 각진 턱, 짧은 머리, 심지어 나름 노력해서 웃으면 '왜 비웃냐?'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하긴 거울을 보니 그런 소리 들을만도 했다.

이 ooo이란 곳에서 처음 직장을 구했을때부터 얼마전까지 근 8년 정도를 계속 서비스부서에 있었는데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딱 한가지 있었다.

바로 그놈의 "Smile~~~~~"

처음엔 그래도 따라 웃어 주었는데 나중엔 너무 짜증이 나서' 나는 웃고 싶지 않아, 내가 왜 웃어야 해?' 라고

손님에게 항의를 했던 적이 있다. 아...그 때를 떠올리니 글을 쓰면서도 다시 울화가 치민다.쓰읍!

몰론 서비스 받을때 상냥한 직원에게 받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웃음'을 강요하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폭력적이다.


<인간의 조건>속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어쩌면 "남의 돈 벌어 먹고 사는건 원래 힘들다"라는 말인듯 싶지만

저자는 강력하게 그 말을 거부 한다. 왜 그게 남의 돈인가? 내 몸과 영혼을 판 대가인데 정당하게 일해서 받는 돈인데

어째서 눈치보고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해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젊은 친구들이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면서 돈만 밝힌다고 투덜댔다. 이런 평가는 공정하지 못한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은 힘들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작업장에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닌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어느 누가 그런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위험하고 보수도 적은 일을 참고 버티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걸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p.389


아..이 부분 뭔가 되게 맘에 안드는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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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3-08-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그게 남의 돈인가? 내 몸과 영혼을 판 대가인데 정당하게 일해서 받는 돈인데..."
저 완전 공감... 회사에서 말이죠, 윗사람이라고 으시대는 인간들 진짜 웃겨요.
지 돈 주나? 회사돈인데... 그것도 내가 정당하게 일한 댓가인데. 그건 작은 회사 사장도 마찬가지인거죠.
계약에 의해서 해주고 받은 댓가인데, 선심쓰는 양.... 큭큭, 이건 어디까지나 토론할 가치도 없는 얘기죠.

그런데 마지막 인용 글귀, 이거이거 폐부를 찌르는데요.
맘에 되게 안 드는데,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 되는 심정....... 저도 조금 그렇네요. 아무개님과 제 심정은 다를 수 있어도.

전여, 이 글귀를 읽으니, 그럼 내가 현명하고 이성적이지 않아서 참고 있는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ㅋ

아무개 2013-08-21 14:15   좋아요 0 | URL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 둘수도 있는 상황이기때문이지 않을까요?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도 그만 둘수 없는 그보다 더 수 없이 많은 굽은 어깨의 가장들이 있잖아요.
이 사람이 무슨 말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저 말에는 공감하기 어렵더라구요.

제가 편의점에서 골뱅이 무쳤던건 참을성이 많아서도 이성적이지 않아서도 아니였거든요.
그만둘수 없는 상황이였어요. ㅠ..ㅠ

다락방 2013-08-2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 저 이 책 사뒀는데(사둔게 너무 많다능;;) 아직 안읽었거든요. 사두긴 했지만 뭔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올리신 인용문을 보니 흐음.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아요.

아무개 2013-08-22 09:36   좋아요 0 | URL
전혀 어렵지 않아요~~
저자가 직접 격은 일들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같은거라 쉽게 금방 읽힙니다.
두세시간이면 휘릭 읽을순 있지만 이것저것 생각해봐야 할것들이 있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