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전태일의 1970년 8월9일의 일기에서-



그러므로 그는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라고 말하였다.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들을 구출하는 것이'이상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심정의 단순함, 이 단호함, 이 절절함이야말로 그의 결단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이제 전태일에게 있어서'평화시장의 어린 동심'을 위한 투쟁이란 곧 비인간적인 현실에 의해 파괴되어가고 있는 모든 인간상을 위한 투쟁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 어린 동심들, 아니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인간들을 전태일은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이라고 불렀다. 이것을 건방지다하는가?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과대망상이라 하는가? 아니, 이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목소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전태일이 가난하고 못 배운 밑바닥 인간에게 강요되어온 무력감과 열등의식을 완전히 청산해버리고, 자신의 힘과 인간성의 승리를 확신하는 한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제 발로선 것을 본다. 여기서 우리는 전태일의 성숙한 모습, 한 각성된 청년노동자가 스스로의 인간적인 책임에 대하여 가지는 강한 자긍을 보는 것이다.

-P241



늘 궁금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확연히 다른 선택을 하는 이유가...

누구나 다 어렵고 힘든시절.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어떤이는 자신보다 더 약한자를 짜내어 자신의 목을 축이고

어떤이는 자신의 점심값으로 굶는 아이들에게 풀빵을 사먹이고 자신을 굶는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 이순옥 여사가 꽤나 강단있게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잦은 사업실패로 인한 구타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몇차례 가출까지 했었다.

그런 상황에 딱히 가정교육이랄 것도 없었을테고.

학교는 거의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청옥공립고등학교를 채 일년도 다니지 못하고 아버지의 강제에 의해 그만두고 미싱질을 배우게 된다.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여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

-전태일의 1969년 12월31일 일기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면서 어머니는 죽어가는 아들의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근로자를 위하여 애쓰는 태일이의 뜻이 이 모양으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참새 한 마리도 당신의 뜻이 아니고는 떨어질 수 없다고 하였으니 이 가엾은 목숨도 당신 뜻대로 하소서." ......"어머니 담대하세요, 마음을 굳게 가지세요, 그래야 내가 말을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보고 아들은 말을 계속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지요? 나는 만인을 위해 죽습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버림받은 목숨들, 불쌍한 근로자들을 위해 죽어가는 나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조금도 슬퍼 마세요, 두고두고 더 깊이 생각해 보시면 어머니도 이 불효자식을 원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저를 원망하십니까?" ..."나는 너를 이해한다. 어찌 원망하겠니? 원망하지 않는다." 아들은 빙그레 웃었다,"역시...우리 어머니는 나를 이해해."...."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하였다.

P299


아니 도대체 왜? 어째서? 원망하지 않는거냐구. 왜 절망하지 않는거냐구.

뭘 하나님 뜻대로 하고 은총은 무슨 은총!

희망도 미래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죽어가고 있으면서

어째서 그 어떤것도 원망하고 포기하지 않을수 있는것인지.

난 이해할수 없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한 인간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억눌리는 고통에 찬 현실은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으로 되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정신의 싹을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무조건 받아들여'순한 양'이 된다.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모르는 ,주체성을 빼앗긴 정신적 노예로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등 어루만지고 간 빼어먹는다는 말이 있다. 강한 자들은 이 길들여진 양들에게'착실','겸손','온건','성실','적응성 있다' 하는 등의 온갖 아름다운 찬사를 퍼부으며 환영하고 칭찬하면서 최대한으로 그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털을 뽑는다. 고통받는 인간은 한동안은 얼떨덜하여 그가 고통을 당하는지 털을 뽑히는지 모른다. 설사 어렴풋이 그것을 알게 된다하더라도, 그는 다만 생존하기 위하여 현실의 부당한 행태와 그러부터오는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때때로 무언가'부당하다' 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나. 역시 자신은'무력'하며 그것은 시정될 길이 없으므로 그는 곧 머리를 흔들어 그런 건방진 생각을 털어버린다. 인내는 그의 영원한 금과옥조로 된다.

P138-9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 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

-김이설<환영>

저 글을 읽고 나니 김이설의 소설 마지막 문구가 떠올랐다. 나도 그랬다. 그렇다. 그럴 것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외국 여자가 리처드 버튼이라는 외국 남자와 몇 번 결혼하고 몇 번 이혼했는가를 사람들은 안다. 신문에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열세 살짜리 여공들이 하루 몇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가를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신문에 안 나기 때문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라는 외국 여자가 승마를 하다가 발가락을 삐었다 한다면 사람들은 늦어도 바로 다음날까지는 그 사실을 알게된다.'신속 정확한' 신문보도 덕분이다. 그러나 강원도 어떤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어 죽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반드시 알지는 못한다. 신문에 나지 않거나, 나더라도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구석자리에 작은 기사로 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신문인 것이다.

P266


1982년 조정래 변호사의 이 말이 2013년 우리 언론자유가 어디까지 회귀하였는지 보여준다.

얼마전 광화문에 일이 있어 갔다가. 엄청나게 많이 정차되어있는 전경버스를 보고

일행에게 여기 무슨일 있냐 물었더니.

춧불집회중이란다. 왠??

언론에서 말하지 않아 몰랐다고 관심이 없었던게 아니라고

나혼자 재빠르게 속으로 변명했다.



1970년 8월 둘째주 토요일에 전태일은 '어린 동심의 회복'을 위하여

죽기로 결심했다.

2013년 8월 둘째주 토요일에 나는

'불쌍한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위하여 통덫을 설치했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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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8-1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참 막막하네요. 저도 휴가 다녀왔더니 전경 차가 잔뜩 있어서
뭐냐 물었더니 그날이 촛불집회더군요. 내가 계곡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저 사람들은 그 한증막 같은 아스팔트 위에서 촛불을 들었구나 생각하니
굉장히 부끄럽더라고요... 촛불 안 드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습ㄴ다.

아무개 2013-08-13 08:17   좋아요 0 | URL
그러게말이에요. 에혀...

더이상 촛불이 시민들의 눈물과 땀을 대변하는게 아닌 시절이 오길....

마녀고양이 2013-08-1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는 원래 관심있었기 때문에 촛불 집회 1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메인 공영 방송에 안 나와도, 다들 알고 계시는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주일 전에 같이 일하시는 분이, 무슨 촛불 집회? 하고 물어보셔서 정말로 모르는구나,
사람들이 모르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어요.

지난주에 5만명 모였는데, 방송은 하나도 안 되었지요, SBS 토막 YTN 토막뉴스로 밖엔. ^^

네 저도 촛불 안 드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네요.

아무개 2013-08-13 08:21   좋아요 0 | URL

네 부끄럽지만 몰랐습니다.
SNS도 안하다보니 공영 방송이외에는 다른 언론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더구나 박통이 된 이후론 그나마 보던 뉴스도 잘 안보고...

그날 같이 있던 일행분이 몇만명씩 모인다고 하는 이야기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큰 촛불집회를 이 더위에 시민들이
절절 끓는 아스팔트바닥에서 하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까지 언론은 한마디도 안하는구나.
대한민국 대다나다! 싶더군요.

마노아 2013-08-13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는 10만이 모였다고 하네요. 오늘 민간인까지 국정원 댓글 사주에 동원된 기사 보고 계속 늘어나겠구나 싶었어요. 피같은 세금이 그런데로 흘러가네요. 모 재벌은 월 전기세가 기천만원이라는데... 머리가 더 뜨거워집니다. ;;;

아무개 2013-08-13 15:04   좋아요 0 | URL
10만이요? 세상에!!

민간인 모모씨에게 9천만원인가 흘러들어 갔다는 기사는 저도 어제인가 봤어요.
어디까지 예전으로 회귀할지....수구들의 단합된 힘이 대단하긴 한가봅니다.

광화문에 가야할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너무 더워요, 더워. 도대체 이 더위에 어떻게 그런 결심들을 하고
모이는지 참 대단하신 분들..
하아......주뎅이만 동동뜬.....아무개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