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을수 있습니다)
이젠 한국의 대표 감독으로 우뚝선 봉준호 감독과 '엄마'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김혜자씨가 만나 화제가 된 영화.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을것 이라고 했다. 그만큼 김혜자라는 배우가 이 영화의 출발점이자 끝, 모든것 이었다. 언제나 따뜻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상을 보여줬던 김혜자씨가 '봉테일'감독과 만났으니 분명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거라 예상이 됐다. 그리고 그 예상과 기대는 만족스러움을 안겨줬고, 김혜자라는 배우의 또 다른 모습을 볼수있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넓은 갈대밭 사이를 김혜자씨,즉 도준의 엄마가 가로질러 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화면 가까이에 다가온 엄마는 뽕짝스러운 배경음악을 시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녀가 어떤 감정인지를 느낄수 있게 해주는 춤 이었다. 처연한 그 몸짓은 처음엔 당황스럽고 웃음을 줬지만 점차 슬픔과 안타까움을 전해줬다. 말못할 어떤 슬픈 사연이 있지만 소리내어 울지 못하는 그녀는 춤으로,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낸것 같았다.
강렬한 오프닝을 시작으로 전개되는 영화는 시종일관 어둡고 무서웠다. 물론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도 있었지만 터질듯한 긴장감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있어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약재상에서 일하는 엄마는 조금 모자란 아들 도진을 끔찍히 여기며 살고있다. 조금 과하다 싶을정도로 보호를 해주며 말이다. 아들이 담벼락에 오줌을 싸고 있으면 유심히 보고있다가 그 흔적을 지워주고, 밥을 먹을땐 손수 닭다리 살을 뜯어 먹기 좋게 해줬다. 28살이 됐지만 여전히 엄마랑 한 방에서 자는 도진. 이 모자의 관계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친밀하고,조금은 이상하게 보일정도로 각별했다.
하지만 마을에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자신의 아들이 용의자로 몰리자 엄마는 전보다 더 강해진다. 모자라긴 하지만 누구보다도 착하고 예쁜 아들 도진이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리가 없었다. 여고생 아정이 죽은 그 날 밤에 근처 술집에 있었다는 것, 사체 근처에서 도진이 갖고있던 골프공이 발견됐다는 등의 증거는 너무 빈약해보였고, 도진의 체포는 부당해 보였다. 자신말고는 그 누구도 아들의 무죄를 밝혀주지 않을거라는걸 알기에 엄마는 홀로 싸움을 시작한다.
고용한 변호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자 엄마는 자신이 나서게 되는데,나이 많고 힘 없는 그녀가 할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보인다. 고작해야 도진의 친구인 진태의 집에 몰래 들어가 증거품을 찾고, 죽은 아정의 주변을 탐문하고 소문을 듣는것 뿐이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증거 수집이었지만 이것이 의외로 큰 수확을 거두게 된다. 치매 할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만했던 아정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밝혀지는 정보들은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게 만들어줬다.
오직 도진에 대한 믿음과 모성 만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엄마의 모습은 강했지만 광기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아정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유족들한테 "우리 아들이 안 죽였거든요"라고 하는 장면은 그 절정이었다. 엄마는 도진에게 "엄마만 믿으라"고 했고,어떻게든 아들의 무죄를 알리기위해 노력했다. 두려움과 싸우면서 말이다.
하지만 도진은 엄마에게 옛 기억을 들추어내서(자신을 죽이려했던 사건)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둘이서 살기 너무 힘든 시절, 엄마는 아들과 함께 죽으려는 생각으로 박카스에 독을 타서 주었는데 이걸 도진이 기억해낸 것이다.(어쩌면 잊지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자신을 또 죽이려 하냐고 묻는다. 순진하고 예쁜 눈을 한채로 말이다. 그 말에 엄마는 절규한다.
아들을 도우려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예상치못한 기억으로 상처를 주는 모자란 아들. 그리고 엄마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충고했던 진태. 도진과 진태의 의미심장한 말이 뒷부분으로 가면서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밝혀지게 되는 놀라운 사건의 진실과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은 씁쓸함고 안타까움을 남겼다. 엄마와 도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모든 아픔을 사라지게 해준다는 침을 맞는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 상처와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것 같다. 그렇게 엄마의 슬픈 춤사위는 계속될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