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 대신 대학진학을 하기 위한 과정이 되어버린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도 사제지간의 정 대신 삭막하게 변해버렸다. 시험 문제나 범위를 콕콕 잘 집어줘 내신 성적을 잘 나오게 해주고 간섭하지 않는 선생님이 좋은 교사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동주 선생은 정도의 길을 벗어난, 어떻게 보면 불량 교사처럼 보일법한 독특한 인물이다. 학생들로부터 '똥주'로 불리우는 그는 수업을 성실하게 하지도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교사생활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툭툭 내뱉는 거친 말 속엔 학생들 하나하나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학생들에게 교과서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는 게 교육이 아니라 인생을 더 많이 경험한 선배로서 말한다는게 느껴지고 그게 바로 산 교육 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똥주 선생의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는 완득이는 선생님의 갸륵한 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선생님의 관심은 부담이고 걸림돌 이었다. 항상 "얀마,도완득!" 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괴롭히는 똥주 선생이 세상에서 가장 싫었고, 처음으로 교회에가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똥주 선생을 죽여주세요 였으니 완득이의 현재 심정이 어떤지를 짐작할수 있다. 누구도 자신의 일에 상관하지 말기를, 있는 듯 없는 듯 학교에 있다가 가고 싶었는데 똥주 선생의 레이다망에 계속 걸리니 싫어할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똥주 선생이라는 것도 싫을 정도이다.
완득이의 가족은 아버지와 민구 삼촌이었다. 등이 굽은 아버지는 유흥업소에서 춤을 추고, 같은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어느 새인가 가족이 된 민구 삼촌은 정신적으로 부족하다.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는 완득이에게 가족은 완전하진 않지만 그러기에 더 애틋하고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민구 삼촌에게 안 좋은 일이있거나 무시를 당하면 화가 나 말 보다 주먹이 더 앞서기도 했다. 어려운 생활 형편에도 불평하지 않고 반항하지도 않는 완득이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모든걸 마음속에 꾹꾹 담고 살아 주먹으로 한꺼번에 폭발하는게 아닐까 싶어 우려도 됐다. 가족에게 충분히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했고, 친구를 만들지도 않았던 완득이에게 누군가 곁에 있어줬으면 했다. 그 누군가가 똥주 선생이라는게 완득이에겐 재앙이었지만, 보는 나로선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교사와 학생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마치 친구 같고 비슷한 성향의 두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변화였기 때문이다.
똥주 선생과 완득이는 이웃사촌 이기도 했다. 둘 다 아파트가 아닌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둔 옥탑방에 살고 있는 터라 굳이 전화로 하지 않아도 문만 열고 "얀마,도완득"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다 들리니 안 볼래야 안 볼수가 없는 사이 이다. 완득이는 학교에서도,집에서도 똥주 선생을 보니 아주 죽을 맛인데, 도무지 교사 다운 면모를 보이지 않으니 더 싫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가져온 햇반을 달라고 하질 않나 신문배달 하는 완득이에게 몰래 1부를 달라고 하질 않나 갈수록 가관이다. 또 완득이에게 소주를 따라 주니 분명 학교가 원하는 좋은 교사는 아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똥주 선생에게 정이 간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하며 노는 모습이 왜 이렇게 재미있고 흐뭇한지 모르겠다. 그리고 똥주 선생의 오지랖은 완득이에게 친엄마를 만나게 해주었다.
엄마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건 완득이를 두번 놀라게 했다. 하지만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은 곧 한번도 보지 못한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변해갔고, 똥주 선생의 주선으로 두 사람은 처음 대면하게 된다. 어색하고 낯선 기분과 동시에 따뜻함을 느낀 완득이는 이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만져보는 엄마의 손을 놓쳐버리고 싶지 않다. 비록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고, 그 존재조차 몰랐지만 이제 알아버린 이상 떨어져 살수가 없었던 것이다. 곱등이 아버지, 정신적으로 부족한 삼촌, 거기다 외국인 어머니를 둔 완득이의 가족은 분명 완벽한 모습은 아니다. 사회가 보는 시선은 '불쌍하고 안됐다' 라는 생각을 할게 분명하다. 하지만 완벽한 가족이라는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가족은 서로의 부족함을 감싸주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전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면에서 완득이는 생애 처음으로 완전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모국에선 배울만큼 배웠지만 한국에선 불법체류,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로만 여겨지는 완득이 엄마의 삶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약자로 보는 것도 문제이다. 모든 편견을 벗어나 그저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하는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않나 싶다. 똥주 선생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도 그들을 '도움을 줘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봤기 때문 같다.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하고 보상 한푼 받지 못한 채 쫒겨 난 외국인 직원들을 보면서 그런 사례들이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완득이 엄마가 함께 살기로 한 날, 집에서 펼쳐진 잔칫상에는 한국 음식과 필리핀 음식이 사이 좋게 놓여 있었다. 그 곳엔 사이가 안 좋았던 다른 이웃들도 함께 있었고 완득이도 세상에서 가장 싫었던 똥주 선생과 즐겁게 웃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완득이의 주선으로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다퉜지만 지금은 다시 합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합의했다. 집 안 곳곳엔 이들이 내뿜는 행복한 열기로 가득 찼고, 복작복작한 작은 집은 즐거운 웃음과 노랫소리가 넘쳐났다. 이제 완득이는 더 이상 혼자도 아니고, 격투기 선수라는 꿈도 생겼다. 첫 스파링 상대에게 시원하게 얻어터졌는데도 자꾸만 웃는 완득이를 보고 있으니, 이제 이 아이에게 웃을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죽도록 싫었던 똥주 선생이었는데 이제는 죽여주지 말아달라고 하느님께 기도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똥주 선생이 햇반도 뺏어가고 둘이 계속 티격태격 하겠지만, 완득이는 그마저도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