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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 Dri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한 남자(라이언 고슬링)가 있다. 이름도,고향도,왜 이 도시로 흘러 들어왔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그는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단 한가지 알수 있는 건 그가 운전을 좋아하고 잘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돈을 버는데 영화 장면에 필요한 자동차 스턴트맨을 하거나 범죄가 그것이다.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차에 태운 후 경찰의 수사망을 빠져나가게끔 도와주는게 그의 역할인데 이것도 딱 5분이라는 시간을 정해 놓고 한다. 그러니까 범행을 저지르면서도 그의 역할은 운전, 딱 한가지만 이었고 그마저도 깊숙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의 실력을 보면 이런 류의 범죄를 통해 많은 돈을 벌수도 있겠지만 그는 보통 범죄자들과는 달라 보인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극도로 신중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렇다면 왜 위험한 일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경찰과의 추격전에서 짜릿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고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인다. 그저 운전하는 것이 좋았던것 뿐일까. 이렇다보니 자꾸만 그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이 남자,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그런 남자의 일상에 이웃에 사는 아이린(캐리 멀리건)이 어느 순간 들어오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둘은 서로에게서 강한 이끌림을 느끼고, 그게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조금씩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하지만 아이린에겐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이들의 사랑은 감옥에 간 남편이 출소하기까지 라는 기한이 정해져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서로에게 흠뻑 빠져버린 두 사람은 마치 풋풋한 10대 소년 소녀들 처럼 사랑을 나누는데 남편 스탠다드가 일찍 출소를 하면서 사랑을 꽃피우기도 전에 감정을 추스려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어쩌면 더 깊게 빠지지 않았던 게 다행일 수도 있지만, 이 감정을 그대로 무시해버리기엔 두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었다. 더구나 이미 아이린과의 일상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남자에겐 남편과 같이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건 고통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아이린의 가족과 식사를 하게 된 날,스탠다드가 자신이 어떻게 아이린과 만났는지를 알려주며 아들이 태어난 순간이 가장 행복했었노라고 말하는 걸 듣는 남자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진다. 하지만 남자의 심정을 느낄수 있는 건 그게 전부이다. 아이린이 곧 남편이 출소할 거라는 걸 알려줬을 때도 잠깐 운전을 멈춘것만이 충격받은 그의 모습을 드러내주는 것이었고, 그 후로도 남자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이린과 함께했던 짧은 순간의 데이트, 그리고 그때 보여줬던 웃음이 다신 나오지 않을 것처럼 남자의 얼굴은 다시 굳어져버렸다. 그럼에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는 남자는 스탠다드가 어쩔수없이 전당포 털이를 하게 되자 기꺼이 도와주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범인들이 아이린과 아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스탠다드가 해야 하는 일은 5분안에 전당포를 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일을 사주한 사람들에게 얼마씩을 받고, 다신 볼 일이 없는 것 뿐 이었다. 하지만 이 범죄는 누군가에 의한 음모였고, 스탠다드와 함께 참여한 여성이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졸지에 남자는 백만달러와 함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남자에게 감춰진 폭력적인 면이 드러나며 오히려 쫒기는 건 음모를 주도한 사람들 이었고, 아이린을 지키기 위해 남자는 이들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복수의 과정도 지금껏 흘러왔던 것 처럼 꽤나 잔잔하다. 엘리베이터 씬에서 잠깐 보여지는 잔혹한 장면들이 언뜻언뜻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주인공들의 심리에 더 공을 들인 것 같다. 거기다 좋은 음악들을 곁들이면서. 만약 이 영화가 호쾌한 액션영화 였다면 결말은 당연히 관객들의 입맛에 잘 맞는 쪽으로 흘렀겠지만, 초반부터 그렇지 않았기에 좀 아쉬운 결말도 크게 불만은 느껴지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추천은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나에겐 꽤 괜찮았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