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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평점 :
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p9) 라고 시작하는 소설?
와….첫 페이지부터 너무나 강력하다.
동거를 원하는 연인을 18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고 찾은 자유가 중요해서 동거를 거절했는데, 연인에게 새로운 연인, 동거녀가 생긴다. 그렇다고 나와의 관계가 끊긴 건 아니고. 그 이후, 나는 연인의 새로운 연인에 대한 집착이 생긴다. 그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다.
나의 24시간이 미지의 그녀에 의해 좌우되고, 질투에 의해 바닥까지 끌어내려진 나는 낱낱이 나의 감정을 해부하고 그와의 관계를 끊음으로 그 집착에서 벗어난다.
작가의 내밀한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쓰기.
참 재미있게 읽었다. 독자의 못말리는 관음증을 충족시키고, 가끔 나에게도 저런 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며 돌아보게 하고.
아니 에르노가 어디까지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나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작가의 다른 책들처럼, 소설 속 주인공은 작가와 달리 볼 수가 없으니.
아니 에르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차마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속내를 글쓰기로 승화시켜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능력에 있다고 본다. '질투라는 뜨거운 감정과 그것을 관찰하고 해부하고 분석하는 작가의 차가운 이성이 빚어내는 묘한 대조(p76 옮긴이의 말)'를 읽어내는 묘미가 크다.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을 간직하는 방식, 그러나 이제는 '사로잡힘'이자,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으로 변해버린 그것을 간직하는 방식이었다.p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