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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 1-3권 합본 양장판
로베르트 무질 지음, 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다른 책을 읽다가 언급되어 찾아보니, 99명의 독일 지성이 뽑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독일어 소설이라는 홍보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더구나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20세기 현대문학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고. 언급되는 두 작품을 보면, 이 책의 성격이 어떤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읽어내기 쉽지 않았고..속독을 자랑(?)하는 나로서는 드물게, 오랜 시간을 투자한 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작가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했고, 그나마 번역도 다 다루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1천여 페이지에 달한다.
이 책은,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지를 아우르는 중부 유럽의 거대한 제국이 1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하기 직전의 마지막 몇 년을 그린 소설이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소설 속에선 카카니엔)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88세 되는 해( 1918년, 이 소설의 시점은 1914년. 황제는 1916년 사망한다) , 제국의 위대함을 천명하는 행사를 준비하는 시도를 그렸다. 일명 ‘평행운동’이라 이름 짓고, 과거 종교가 국가와 국민에게 가졌던 권위를 대체할 그 ‘무엇’을 찾고 온세계에 천명하여 오스트리아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다.
당시 이 제국은 다양한 사상과 이데올로기로 들끓는 용광로 같았고, 한편으로는 과거의 영광과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염세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그 모든 것이 등장인물들에게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엄청나게 방대하다. 봉건적 귀족주의와 시민계급의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독일식 군국주의와 반유대주의, 그 밖의 학문과 문학예술 등.
얕은 지식으로나마 당시 역사를 숙지하고 있던 터라, 고백하자면, 소설 속 사유와 시도들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저항하는 미약한 인간들의 발버둥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과거, 머리 속은 들끓고, 가슴은 벅차 오르지만 어디에고 작은 힘이라도 보탤 기회를 찾지 못했던 구한말 지식인들의 방황이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현재인 지금도, 다르다고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나는, 우리 사회는, 국가는 나아가 인류는 어떤 존재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절반은 과거가 좋았다고 하고, 절반은 반대로 말한다. 추는 좌우로 흔들리지만 결국 중앙을 향해서 움직인다. 그 중앙은, 현재는 무엇일까? 역사는 어떻게 흘러가고 진행되는 것일까. 하루 하루가 쌓여 돌아보니 역사가 만들어졌는데, 어떤 것을 역사에 남기고 어떤 것은 망각 속으로 잊혀질까.
이 소설은 무질 스스로 ‘에세이즘’이라고 일컫는 독특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에세이란 인간의 내적 삶이 결정적인 사유를 통해 추론해낸 단 하나의 변할 수 없는 형식이다. p384), 각 장에서 그 장의 주인공들의 내면을 함께 읽어낼 수 있다. 주인공 울리히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줄거리를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렵게 읽었지만. 일단 완독했다고 기록함)
p205 당신은 철학자니까 충분한 근거에서 나온 원리라는 말을 알거예요. 거기엔 단 하나의 예외가 있지요. 우리의 현실적인, 그러니까 우리 개개인의 삶과 우리의 공적이고 역사적인 일들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원래 어떤 올바른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거든요.
p229
오늘날 책임감의 무게중심은 사람들이 아니라 상황들에 넘어갔다.
p596
바로 위대한 일에 말려드는 일보다 정신에 더 위험한 것은 없다.
p938
나는 이런 삶에 더이상 참여할 수 없어. 또한 더이상 반항할 수도 없어! 그는 생각했다.
p939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혁명에서 사유하는 사람들은 늘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문명이 도래할 것이라고 약속함으로 시작한다.그들은 지금까지 인간 영혼이 도달한 것을 마치 적들의 유산인 듯 쓸어버린다. 또한 이전에 성취된 경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다음. 혁명에 의해 전복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