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기사가 나서 올려본다.

이제까지 과학에서 말하는 자연법칙을 난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 과학에서도 이런 논의가 있다니

어쩌면 중국철학에서 말하는 이기론(理氣論)도 이런 맥락에서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고

또 철저한 주리론자들이 왜 종교적 심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조선일보  why라는 섹션에 난 기사이다.

 

중력(gravity)은 실제 존재하는 힘인가? 아니면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힘인가?”

항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 나무와 분리되는 순간 아래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교통신호나 법규가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낸 단순한 아이디어도 아니다. 중력과 같은 물리 법칙은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절대적 존재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법칙들은 과연 실제 존재하는 힘일까? 아니면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법칙을 만들어낸 것일까?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데니스 오버바이는 지난 18일 뉴욕타임스에서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질문에 빗대 ‘우주(the universe)가 먼저냐 법칙(law)이 먼저냐?’ ‘우주 법칙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자연법칙은 만고불변의 진리”

자연법칙은 예측 가능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소위 플라톤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연법칙은 객관적인 사실이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는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자연법칙은 불변하며 창조되거나 변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칭 순수 플라톤주의자인 스티븐 와인버그 텍사스대 교수는 “들판에 바윗돌이 널려있는 것과 같이 자연법칙은 명확히 실재하며 영속적”이라고 말했다. 이 시대 최고의 플라톤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 MIT대 막스 테그마크 교수는 “수학이 곧 자연법칙이요, 우주 그 자체”라고까지 규정했다.

플라톤주의자에게 자연법칙은 확실히 존재하는 실체며 우주의 질서를 규정하는 절대적인 존재다. 이들은 자연법칙들이 실제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며 절대적인 대상이라 여긴다.

◆“자연 법칙은 변하는 도구”

플라톤주의자와는 달리 자연법칙은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라는 견해를 가진 학자들도 있다.

애리조나 주립대 우주학자 데이비스 박사는 “과학은 마치 종교처럼 신념과 믿음에 근거한다. 다만 그 신앙의 대상을 신으로 하는 종교와는 달리 우주는 일정한 질서와 규칙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는 생각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즉 자연에서 우리가 질서라고 알고 있는 것도 2000년 이상 계속된 관찰과 실험으로 형성되어온 것으로, 과학자들이 실험하고 있는 가설 바로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주의자들이 말하는 시공간을 초월해 적용되는 자연법칙이란 불과 17세기에서야 생겨난 개념이며, 그 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신으로부터 과학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존 휠러 교수 같은 과학자들은 심지어 자연법칙을 근본적 법칙이 아닌 근본적 프로그램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결국 자연법칙은 언제나 변할 수 있으며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라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자연법칙 근원은 영원한 수수께끼”

우주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법칙은 어디서 왔는지, 언제 어디서든 적용되는 보편성과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거센 바람 앞에 있는 나뭇잎처럼 쉽게 휩쓸려가는지 명확히 알기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오버바이는 도박에서 이기는 사람들과 과학자들을 비교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나쁜 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당히 좋은 패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에 소극적으로 방어하기보다는 오히려 과감하게 배팅을 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자연법칙에 대해 사람들이 의심을 품게 되고 세상의 복잡함에 부딪히게 된다면, 도박사들이 이기기 위해 마치 자기 패가 좋은 것처럼 나서는 것같이 과학자들도 행동할 수밖에 없다. 바로 과학자들의 이런 자세 때문에 ‘우주가 먼저인지 자연법칙이 먼저인지’ ‘자연법칙은 과연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오버바이가 내놓은 설명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2000년 이상 도박에 임해왔고, 현재까지도 과학자들은 이 판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오버바이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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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글을 올린다.

즐겨 보는 한겨레21에 실린 정재승 씨의 글이다. 불륜본능도 사회적 조건에 따라서 강화된 것이라는 주장인가?

 

만프레트 타이젠의 저서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포유류의 97%는 정조관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5천 종이 넘는 포유류 가운데 평생 같은 짝과 함께 지내는 동물은 비버와 수달 등 약 3%에 불과하다. 이미지와는 달리 늑대와 여우도 일부일처를 하는 동물에 속한다. 하지만 포유류의 대부분은 섹스를 위해서, 혹은 자식 양육을 위해서 한동안 함께 지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목적이 달성된 뒤에는 각자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떠난다.

인간은 ‘사회적 일부일처제’



△ 남성과 여성의 60% 이상이 결혼 뒤에 이따금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애정 행각’을 나눈다. 불륜이 살인이라는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게다가 짝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도 사실은 몰래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를 떠나기도 한다. 사람처럼 이혼을 한다고나 할까? 진화생태학적 가설이 맞다면, 동물 세계에서 대부분의 수컷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 목표이고 암컷은 건강한 새끼를 낳기 위해 최상의 상대를 고르는 데 전념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일부일처제는 한 상대에게 생식에 관해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부담이 따르는 제도다.
진화생태학자들은 동물 세계의 ‘일부일처 습관’을 일정 시간대에 한 짝과만 짝짓기하는 ‘성적’ 일부일처제와 암수가 짝짓기를 한 뒤 새끼를 함께 키우지만 바람도 피우는 ‘사회적’ 일부일처제, 그리고 한 암컷이 평생 한 수컷의 알만 낳는 ‘유전적’ 일부일처제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새들의 90%는 암수가 새끼를 함께 키우지만 다른 상대와도 성적 관계를 갖는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많은 국가에서 인간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지만, 혼외정사 빈도와 혼전 성관계를 고려하면 사회적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60% 이상이 결혼 뒤에 이따금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성행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애정 행각’을 나눈다. 이른바 ‘감정적 부정’이란 걸 한다. 또 남녀의 35%가 결혼 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남편의 50%, 미국 아내의 26%가 혼외정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킨제이 보고서 이후 조사된 몇몇 연구들에서는 그 수치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전체적인 경향은 별반 차이가 없다. 8천명의 기혼 남녀를 조사한 한 연구는 남편의 40%와 아내의 36%가 적어도 한 번 이상 혼외정사를 했다고 보고했으며, 어떤 보고서는 최대 70%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심지어 5%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외도 상대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최근 결과일수록 남녀 간의 혼외정사 수치 차이가 조금씩 줄어들긴 하지만, 모든 연구에서 일관적으로 혼외정사의 발생률과 빈도에서 남성이 여성을 앞서고 있음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 아내보다 남편이 더 자주 더 많은 상대와 혼외정사를 한다. 킨제이는 자신의 보고서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사회적 규제만 없다면, 남성들은 평생 아무 여자나 섹스 상대로 삼으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길 것이라는 명제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면 여성들은 다양한 상대를 접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인간이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를 발전시키게 된 것은 다양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식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길면서 안정적인 가정이 필요했고, 사유재산을 내 유전자를 가진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일부일처제는 제 꼴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일부일처제라는 특징이 우리의 두뇌 작용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순애보와 불륜은 호르몬 차이?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 ‘불스’와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지만, 애정생활에 관한 한 완전히 상반된 특징을 보인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냄새를 통해 적합한 파트너를 찾으며 끔찍이 서로를 아끼는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나중에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본다. 반면 산에 사는 그들의 동족은 정반대의 애정생활을 보인다. 수컷은 새끼를 낳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의 치마 속을 호시탐탐 노린다.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두 들쥐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를 그토록 불성실한 수컷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5년간 들쥐들을 연구해온 미국 에모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들쥐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암컷에게는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데, 이들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순식간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췄고, 암컷 또한 파트너에 대한 흥미를 곧바로 잃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음 연구 결과였다. 이번에는 산에 서식하는 들쥐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와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들쥐들이 갑자기 ‘자상한 아버지’로 돌변했다. 예전의 불성실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초원에 서식하는 들쥐처럼 그들도 이제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전념하더라는 것이다.
비록 들쥐를 통한 연구 결과이긴 하지만, 이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왜 사람들이 결혼생활이 깨질 수 있음에도 혼외정사를 꿈꾸는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순애보적인 사랑’이나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불륜적인 사랑’ 안에는 생물학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포함돼 있음을 시사한다. 뇌 속에 어떤 호르몬이 좀더 지배적인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랑관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성전략이 그렇듯, ‘원나이트 스탠드’도 그에 다른 손실이 있기 마련이다. 도덕적인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고, 남성들은 성매매를 통해 매독이나 에이즈 같은 성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바람둥이’라는 나쁜 평판을 얻을 수도 있으며, 여성들은 더욱 가혹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또 혼외정사나 하룻밤의 정사를 추구하는 미혼 여성은 때론 자신과 자식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해줄 남성이 없는 상태에서 임신해 자식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안정된 결혼생활이 한순간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질투심으로 가득 찬 ‘여성의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여러 문화권에 걸쳐 살인 사건의 상당수가 (특히나 배우자 살인의 대부분이)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한, 그래서 질투심에 휩싸인 남편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원나이트 스탠드’에 따르는 손실

그럼에도 원나이트 스탠드가 오래도록 유지되는 데에는 생물학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요소들이 많이 관여된다. 예를 들어 일시적인 성관계가 주는 손실의 상당 부분이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달라진 생활환경 덕분에 겪지 않아도 된다. 효과적인 피임법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도 원나이트 스탠드나 결혼과 상관없는 섹스를 늘리는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도시생활의 상대적인 익명성은 찰나적인 성관계로 인한 평판의 하락을 어느 정도 줄여준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은 남성에게서 장기적 투자를 기대하지 않고 섹스를 할 수 있도록 해주며, 부모로부터 독립, 낯선 사람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의 증대 역시 혼외정사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찰나적인 성관계로 인한 손실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복잡한 성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태로 현대생활 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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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연재하는 정재승의 칼럼이다.

성숙할수록 자신과 비슷한 세계의 사람에게 끌린다. 그런데 어릴수록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데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레일 라운즈는 자신의 책 <누구라도 당신과 사랑에 빠지는 법>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을 전한다. “엄마는 아빠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어?”라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자장가 한 구절을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한다.

잭 스프래트는 기름기 많은 고기를 못 먹고요/ 그의 아내는 살코기를 못 먹는대요/ 그래서 둘은 접시를 사이에 두고/ 깨끗이 핥아먹었대요.

N극과 S극이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하면 매력을 느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사하면 서로 공감하며 사랑을 싹틔운다. 우리가 ‘천생연분’이라고 부르는 커플들도 대부분 그런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사랑을 일반화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서로 달라서 잘사는 부부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남녀처럼 성격이 다른 커플은 많지 않다. 아주 다른 남녀의 만남은 심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자신의 태도에 불만이 많거나 미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사실이다.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달라붙는 것처럼 상반되는 사람끼리 끌리는 경우도 많다. 사색적인 남자는 감성적인 여자에게 끌리고, 순종적인 사람은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부드럽고 신사적인 남자는 밝고 활달한 여성이 예뻐 보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남성은 남들이 수다스럽다고 여기는 여성에게도 남모를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격이나 삶의 방식, 세계관 등의 관점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과 굉장히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사람들은 누구를 더 선호할까? 설문조사에 따르면, 81%의 사람들이 나와 유사한 사람에게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대답했고 실제로 그런 사람과 살고 있었다. 연인들이 처음 사랑에 빠질 때에는 삶의 태도나 생활방식이 비슷하다는 것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관계가 진전되면서부터는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 성격이 비슷한 부부가 성격이 다른 부부보다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이다.
그렇다면 자기와 상반되는 이성에게 이끌리는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해왔을까? 실제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나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평소 가치관이 같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때에는 의견이 같기 때문에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때에는 의견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와 상반된 사람과의 사랑을 좀더 가치 있는 사랑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게 보이는가!
미국의 심리치료사 머리 보웬은 나와 달라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굉장히 기분 나빠할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의 가족에서 떨어져나와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심리적 성숙도라 정의하면서, 심리적 성숙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신과 비슷한 이성에게 끌린다고 주장했다. 연인들에게 심리적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설문조사와 성격 테스트를 해보니, 어리거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나와는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더라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일수록

심리적 성숙도가 낮은 사람이 서로 다른 측면을 갖는 이성에게 끌리는 이유를 머리 보웬은 이렇게 설명한다. 심리적인 불안에 대응하는 자신의 방어기제와 매우 상반되는 방어기제를 가진 사람이 일반적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면서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에겐 시원하게 소리도 지르고 제대로 대응하는 상대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태도에 불만이 많거나 미처 성숙하지 못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 보웬의 주장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자 작곡자이면서 가수였던 로드 매쿠언의 노래집 <스탠얀 거리와 다른 슬픔들>(Stanyan Street and Other Sorrows)에는 아주 감미로운 노랫말이 담겨 있다.

나는 당신을 원했지/ 그날 해변에서 당신이 나와 달랐기 때문에/ 당신이 날 보고 미소지었기 때문에/ 당신의 세상이 나와 달랐기 때문에…/ 사랑이란 당신이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사람을 선호한다고는 하지만, 무조건 똑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떤 부분에 한해서만 다르길 원한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생활을 방해받을 정도로 다른 점이 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흥미롭게’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르길 원한다. 레일 라운즈의 지적대로, 사람들은 내 연인이 저녁식사 자리에게 내게 새로운 경험을 들려주고, 새로운 재미를 알려주며 알지 못했던 세상을 열어주길 바란다. 나의 부족한 생활방식을 끌어올려주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줄 수 있는 연인을 갖길 원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비로소 완성되는 충족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람들은 상대에게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특징을 추구하는 경향과 함께 자신도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연인은 기대만 하진 않는다.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연인들은 완벽을 기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항상 찾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랑의 신화 중 하나는 사람들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다름이나 차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다름이 서로를 보완해주는 경우에만 그렇다는 사실이다.

만남 초기 ‘닮은 점 부각 법칙’은 불변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종종 즐겨보는 ‘연애의 기술’류의 책들은 이 점을 잘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상대에게 부족한 부분이나 필요한 성격, 혹은 그가 갖지 못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면 이를 잘 활용해 점수를 따라는 것이다. 손재주가 있어서 못 고치는 게 없다면 기계치인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절호의 찬스가 생길 수 있으며, 늘 신문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데 밝은 여성이라면 우직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이런 특징을 너무 빨리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오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낸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비슷한 점을 먼저 확인하고 서로에게 편해진 뒤에야 서로 상호 보완적인 성격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 너무 닮았어요!’라는 신호를 열심히 보낸 뒤에, ‘게다가 이런 점이 달라서 더 좋아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좀더 유용한 전략이라는 게 심리학자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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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서 강준만의 글을 가져왔다.

가문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가문의 영향력은 존재한다.

그게 나의 관심이기도 하다. 가문의 권력 속에서 개인의 위치 말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가문과 족보 따지는 걸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의 취미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윤학준의 <양반동네 소동기>(2000)라는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 법정대 교수인 저자가 자기 고향의 양반문화를 소개한 책이다. 그는 그 이전에 낸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로 인해 고향에서 왕따를 당하고 절교까지 당하는 수난을 감수해야 했다. 무슨 비리를 들춰낸 것도 아니고, 말로는 누구나 해오던 이야기를 글로 쓴 죄 때문이었다고 한다.




△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봉건적 잔재인 가문의 전통이 중시된다. 한 대가족 집안에서 도포를 입고 제례를 지내는 모습. (사진/ 한겨레)




연고가 명분보다 강했던 역사

양반문화는 옛날 이야기인가? 아니다. 지금도 가문 좋은 한국 엘리트들의 행태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야기다. 가문·족보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집안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겐 싱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한국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기에 족하다. 이 책엔 한국 문단에서 가문·족보를 비교적 소중히 여기는 걸로 유명한 이문열·이인화 이야기가 등장한다.

 

 

 

 

 

 


윤학준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을 “남인의 후예인 작가의 노론에 대한 한풀이 소설”로 이해한다. 이 소설에 대해 이문열은 윤학준에게 “그 작품이 나오면서부터 노론 쪽의 분노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윤학준의 말이다.
“나는 순간 도깨비한테 홀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남인이니 노론이니 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그럼 이인화씨는 저 미운 노론에게 일침을 가한 셈이 되는 건가?’라는 나의 말에, 그는 ‘아마 그렇겠죠’라며 껄껄 웃었다.”
실제로 이문열은 <여우사냥>의 머리말에서 “내 역사 인식의 기초에는 남인들의 사관(史觀)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렇다. 사색당쟁은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지금 그걸 강조하려는 건 아니다. ‘보호막’ 이야기를 하려는 거다. 가문이란 무엇인가? 보호막이다. 출세의 필수적인 발판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유효하다.
조선의 부정부패에 관한 학자들의 논쟁에선 이른바 ‘공명첩’(空名帖)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공명첩은 부정부패의 핵심이 아니다. 공명첩은 이름을 밝히지 않는 관직 임명장으로 어떤 신분이건 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면 다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명첩을 산 평민의 자식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기에 실속이 없었다. 그저 벼슬 못하고 양반 못된 것에 한 맺힌 사람들의 일시적인 한풀이 수준이었다.
조선의 진짜 부정부패는 가문 단위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부정부패는 가문이라는 문화적 결속의 장막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밝혀질 수도 없었거니와 심지어는 바람직한 것으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정삼품 이상 당상관이 내외 8촌까지 먹여살리는 건 미덕인 동시에 의무였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면 20촌이 넘는 먼 친척까지 돌봐야 했다.
봉급으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신복룡은 고부 봉기를 촉발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물욕에 눈이 뒤집힌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영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지만 그를 그곳에 심어준 문족(門族)들에게 상납하기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어디 조병갑만 그랬겠는가?
지금 조선을 폄하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가문·족보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한국 사회를 정확히 이해해보자는 뜻이다. 역사학자들이 사소하게 여겨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의 이면을 파고들면 ‘연고’가 ‘명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역사는 명분 위주로 기록되는 게 아니던가.
그런 이면을 밝히는 데 비교적 신경을 쓰는 대표적인 역사학자가 바로 박노자다. 박노자의 최근작인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의 일독을 권한다. 예컨대, 거의 모든 책에 훌륭한 애국지사로만 소개된 남궁억에 대해 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상놈’ 김구의 변신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신복룡의 <한국사 새로보기>도 읽을 만하다. 이 책은 그 자체의 가치를 떠나 한국 사회에서 가문을 건드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해준다. 신복룡은 그동안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관계자의 후손들이 연구실을 점거하는가 하면 직장 책임자를 찾아가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의 고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문중의 문제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요, 금기의 지대였다. 그럴 때마다 절망하기도 했고,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망연자실한 적도 있지만 그 자리에서 돌아서면 내 생전에 내가 이길 것만 같은 자신감이 나를 다시 부추겨주었다.”
당사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아 소개할 수 없어서 그렇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필화 사건만 해도 여럿이다. 문중 파워, 정말 무섭다. 나라 망하는 건 팔짱 끼고 구경하다가도 문중을 건드리면 목숨 걸고 총궐기하곤 했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라는 게 실감난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문중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비판을 하긴 매우 쉽다. 아무리 급진적이고 과격한 주장을 펴더라도 괜찮다. 옛날 이야기이니 국가보안법에 걸릴 위험도 없다. 그러나 문중을 건드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30여 년간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만4607명을 추적 연구한 송준호는 “조선시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제나 양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했다. 최근 우리 학계에 “민중이 주역이었지 양반이 뭐가 중요한가” 하는 주장들이 제기됐고, 나아가 양반 연구자들에게 비난과 공격이 쏟아지고 있지만, 양반을 도외시한 조선의 역사는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 되었어야 한다는 ‘당위’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추구하는 ‘실증’ 사이의 충돌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송준호는 연구 파트너인 미국학자 에드워드 와그너와 더불어 “민중의 시대에 양반을 연구하는 보수 반동주의자”라는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비난이다. 혹 진보·보수의 구분보다 더 강하고 원초적인 그 무엇이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엔 진보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신의 양반 혈통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며 족보 관리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진보파는 절대 가문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가문은 이데올로기의 상위 개념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윤학준의 책에도 나오지만, 이념에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자마저도 족보 앞에선 흐물흐물해진다.



△ 정규직, 비정규직 갈등과 모순의 본질도 ‘보호막’ 쟁취 투쟁이다. 이랜드 일반노조원들이 8월31일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비정규직 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어려서부터 자기 집안이 ‘상놈’ 출신인 걸로 알고 자라 ‘상놈’을 적극 옹호했던 김구의 경우도 흥미롭다. 김구는 나중에 자신이 양반, 그것도 신라 경순왕의 후손이라는 걸 알고선 문중에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해방 뒤 귀국해서 경순왕릉을 참배했고, 이후 자신의 가계와 관련된 모든 기록에서 자신이 ‘경순왕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화려하게 산 이유

가문과 족보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극소수 아닌가? 아니다.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회적 자본 실태 종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사회적 관계망 가입 비율은 동창회가 50.4%로 가장 높고, 종교단체 24.7%, 종친회 22.0%, 향우회 16.8%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공익성이 짙은 단체들의 가입률은 2%대에 머물렀다. 종친회 가입률 22%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지난 2005년 종친회를 빙자해 5년 동안 7900명에게 싸구려 족자를 비싼 값에 팔아 7억여 원을 뜯어낸 사기 사건은 어떤가. 이 사건에서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피해 신고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종친회의 가공할 파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문을 너무 당연시 하는 경향이 있다. 가문이 없거나 약한 사람이 나름의 보호막을 찾으려는 걸 냉소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보는 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튼튼한 가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연한 사람과 그게 없기 때문에 자기 보호막을 만들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을 다르게 취급해도 괜찮은 걸까?
개화기 시절 보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은 바로 외세(外勢)였다. 물론 외세야 상층 엘리트 계급도 보호막으로 삼곤 했지만, 보통 사람들의 외세 이용은 신앙의 형태로 나타났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믿는 것, 그것이 가장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조선 정부가 일본에 휘둘리건 러시아에 휘둘리건 개신교·천주교 교회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이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 드라마틱하게 나타났다. 보호가 너무 잘된 나머지 나중엔 교회를 등에 업고 횡포를 부리는 일까지 나타났다.
개화기의 개신교 선교사들은 사치스럽게 살았다. 당시에도 그런 비판이 제기됐던 모양인데, 실은 사치스럽게 사는 게 선교의 한 방편이었다. 정치적으로건 물질적으로건 선교사들에게 힘이 있다고 보여야 신도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한 선교사는 사치스러운 삶에 대해 “이 모든 것이 우리 종교의 결실이요, 또 그 발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독교의 실제적 가치는 그들에게 강한 매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교사들이 때로는 안락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사치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영어 열풍·비정규직 갈등의 본질

교회뿐만 아니라 서양인과 교제를 갖는 것도 보호막이 되었다. 외국인을 보호막으로 삼는 건 이미 1880년대부터 유행했던 현상이다. 1885년에서 1886년까지 2년간 조선에 머물렀던 청나라 상인 허오는 자신이 편찬한 <조선잡술>에서 일반 백성은 관원들을 매우 두려워하지만 “그러나 일단 외국인에게 고용이 되고 나면 매우 우쭐대며 교만해져,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어떤 형태로건 외세를 등에 업는 게 보호막이 되는 건 분명했고, 놀랍게도 이런 역사는 1980년대까지 지속됐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가를 위한 보호막이 돼줄 수 있는 건 누구였는가? 물론 그 보호막은 부실했고 때론 기회주의적이긴 했지만, 주로 외세였다. 한국의 선진적인 지식인들이 보편주의에 매료된 주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은 어떤가? 양상이 좀 바뀌었을 뿐, 보호막 형성을 위한 외부 지향성은 여전하다. ‘유학 열풍’과 ‘영어 열풍’도 그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제도적으로 공정한 보호막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매우 서투른 나라다. 아예 신경을 안 쓴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이 개화기·일제 시절 한국 지식인을 사로잡았던 사회진화론을 국제관계의 관점에서만 말하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진화론의 내부 작동 방식이다.
사회진화론의 3대 지주라 할 약육강식·우승열패·적자생존은 한국 내부에서 지금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 원리를 예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 여기서 그걸 놓고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 그걸 예찬하는 사람조차 인정할 수준의 과도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자. 한국 사회는 그 과도함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없다!
왜 없는가? 사회적 보호막 장치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엘리트 계급이 가문 보호막에 안주해 있어서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문 보호막이 없는 사람들은 종교와 더불어 학벌 보호막을 갖기 위한 투쟁을 벌인다.

언론·지식인의 담론 생산만이라도

한국인 다수에겐 대세에 편승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강박이 있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거의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찾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각종 ‘신드롬’이 양산되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이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편승이 잘 이루어지면 우리가 가진 역량 이상의 성취를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불안정과 피곤함은 피할 길이 없다.
좋은 가문·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 고수를 위해 일로매진할 경우 보호막 쟁취를 위한 대중의 투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지금 가장 현저한 투쟁은 ‘기업 보호막’ 쟁취 투쟁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의 본질도 바로 그것이다. 비슷한 조건 아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누구는 과도한 보호를 해주고 누구는 보호를 해주지 않는 방식으론 사회적 안정과 평화를 이룰 수 없다. 이를 평등주의 논리로 비판하려면 비판자 자신의 보호막부터 검증해볼 일이다.
사회적 불안정과 피곤함이 우리의 숙명이라면 감수해야겠지만, 언론·지식인의 담론 생산 방향만이라도 ‘보호막 사유화’ 체제를 ‘보호막 공영화’ 체제로 나아가는 쪽을 향한다면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보호막 공영화는 복지 예산을 늘리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기회의 단계부터 공정한 게임의 룰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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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에 연재하는 정재승의 칼럼이다.

 

▣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사랑에 대해 관심은 많으나 경험은 많지 않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 중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할까? 아니면 비슷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행복할까?’ 하는 것이다. 정반대끼리 결혼해야 잘 산다는 얘기를 어른들은 종종 하는데, 비슷해야 호감이 가는 것이 사실 아닌가? 깨끗하고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면 과연 행복할까?



△ 부부는 닮는다? 같이 살다 보면 생활습관이 비슷해져 닮아간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몸무게와 신체조건 역시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페르난도 보데로의 <연인>(왼쪽)과 <가족>.




과연 결혼한 커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유사한가 혹은 그렇지 않을까? 아얄라 파인스가 쓴 <사랑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따르면, 커플 사이의 유사성을 처음으로 분석한 연구는 19세기 말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부부 사이에 나이, 인종, 종교,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와 같은 문화적인 변수들이 서로 유사한지 다른지를 설문을 통해 조사했다. 덧붙여 키나 눈동자의 색깔, 심지어 지능과 같은 육체적인 특성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19세기 영국의 부부들 사이에는 육체적인 특성이나 문화적인 배경에서 상당한 유사성이 발견됐다. 비슷한 성격과 문화적 배경, 신체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더라는 것이다.

정신병도 공유한다

100년이 지난 뒤 영국에서 다시 실시된 연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미국에서 1499쌍의 부부를 조사한 결과, 남녀 사이에 성격적인 특성이나 일반적인 인식적 특성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특히 내향성·외향성, 논리성과 같은 특성에 대해서도 부부들은 서로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다시 말해, 내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외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을 더 좋아해서 결혼에 이르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커플들은 키나 몸무게, 몸집과 같은 신체적인 특징도 유사하다고 한다. 대개 키가 큰 여자는 키 큰 남자와 결혼하고, 키가 작은 남자는 (그렇지 않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불행히도) 결국 키 작은 여자와 결혼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부부 330쌍의 몸무게를 조사한 결과도 이와 비슷하게 나왔다.
물론 같이 살다 보니 생활 습관이 비슷해져서 함께 살이 찐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은퇴를 앞둔 부부들의 경우에는 신체적으로 서로 많이 닮는다는 연구 결과는 여러 번 확인되기도 했으니까.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을 보면 가족이 모두 하나같이 뚱뚱하게 생겼는데(심지어 그 집에서 기르는 개도 뚱뚱하다), 같은 집에 살면서 생활 습관을 공유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누군가? 그들은 갓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몸무게와 신체 조건을 조사해보았는데, 그 역시 비슷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좀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커플들은 서로 정신병을 공유하기도 한다는, 좀 기괴한 커플 유사성 연구도 있다. 정신분열증을 앓는 여자들의 경우 남편도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같은 우울한 이성에게 끌린다는 증거도 있다. 성격이 활발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사람에게 끌린다는 증거는 더욱 많다. 그들은 함께 살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공유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특별한 성격에 끌리게 되어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진술이다.
그렇다면 이미 함께 살고 있는 부부들이 아니라, 서로 처음 만나서 사랑을 속삭이는 동안에도 ‘유사한 성격’이 사랑에 빠지는 데 도움이 될까? 당연히 그렇다! 아얄라 파인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연인들의 3분의 1은 처음 호감을 갖는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유사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응답했다. 성격이나 사고방식, 목표나 관심거리, 혹은 취미가 비슷하면, 처음 느꼈던 호감이 더욱 증가되고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소중한 것을 이야기하라

그렇다면 어떤 점이 유사할 때 사람들은 서로에게 가장 매력을 느끼는 걸까?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나이와 교육 수준, 인종이나 종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꼽는다. 이 요인들은 평소 인간관계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결혼을 위해 맞선이나 소개팅 자리의 상대방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이 맞지 않으면 우선 대상에서 제외한다. 예를 들어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거나, 교육 수준이 너무 다르다거나, 민족적·종교적 배경이 다르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이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들은 서로 비슷하면 호감을 느끼고 유사한 성격의 사람과 함께 살 때 만족을 느끼는 것일까? 사실 서로의 생각이나 성격에 차이가 있으면 종종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깨끗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고통스럽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느긋한 사람이 늘 답답하게 느껴지며, 느긋한 사람은 성격이 급한 사람과 지내는 것이 형벌처럼 느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태도와 기질, 행동양식이 비슷한 커플들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자신의 인식이나 생각을 비슷한 방식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친구를 얻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이란 책을 써서 전세계 수천만 명의 독자를 사로잡은 데일 카네기는 태도와 관심의 유사성에 주목하며 “상대방의 가슴에 감동을 주는 최고의 방법은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그의 이 처세술과 인간관계학에 탄복한다. 그의 말은 현실에서 효력이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도 사람들이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나열하면서 ‘태도와 관심의 유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 가재는 게 편이고 찌르레기는 까마귀 편이겠는가?(‘찌르레기는 까마귀 편이다’는 탈무드의 격언이다.) 우리는 평생 어떤 순간에도 자신과 한편이 되어줄 반려자가 필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신데렐라와 왕자의 위대한 사랑, 호텔 재벌의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처녀의 사랑, 아름다운 창녀와 백만장자의 결혼은 모두 동화나 한국의 TV 드라마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선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동화와 드라마, 통속소설에서 이루려는 것 아닐까?
줄리아 로버츠와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은 원래 마지막에 서로 헤어지면서 끝을 맺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이 이야기가 영화화됐을 때 시사회에서 관객이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을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관객은 이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지을 것을 요구했고, 영화감독은 마지막에 결말을 바꾸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기적 같은 로맨스는 영화에서나 가능하며 대개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설령 드물게 결혼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들이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으리라’ 짐작되진 않는다.
연인들의 행복은 ‘공감’에서 나온다.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는 사람과 함께라서 우리는 행복한 것이다. 사랑을 연구하는 인류학자 헬렌 피셔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의 64%와 여자의 76%는 ‘내 연인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고 그가 슬플 때 나도 슬픔을 느낀다’라고 대답했다. 시인 E. 커밍스가 자신의 시에서 ‘그녀는 그의 기쁨을 웃었고, 그의 비탄을 울었다’라고 노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귀여운 여인, 결혼 뒤로도 행복했을까?

연인들에게 사랑의 전략을 소개하는 레일 라운즈는 그의 저서 <누구라도 당신과 사랑에 빠지는 법>이란 책에서, 처음 만나서 상대를 사로잡고 싶다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보이라고 조언한다. 상대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며 상대와 유사한 말투를 쓰라고까지 주문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언을 평생 실천하지 못할 것이라면, 혹은 평생 노력해볼 사랑의 힘이 없다면 아예 시도하지 마시라. 결국 들통날 것이니까. 다음호에선 ‘왜 우리는 때론 나와 정반대의 사람에게 끌리기도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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