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역학: 정보와 엔트로피
  
  그 다음으로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 여러 가지 발전이 있었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통계역학의 확립입니다. 통계역학의 핵심은 엔트로피 또는 정보로서, 통계역학은 결국 정보에 대한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상대론과 우주론(cosmology)에 대해 뛰어난 업적을 지닌 물리학자 휠러(John A. Wheeler)의 언급은 흥미롭네요.


  

 

 

 


  물리를 잘 모를 때는 "모든 것이 알갱이"라고 생각했는데, 물리를 조금 알게 되자, 알갱이가 아니라 "모든 것이 마당(field)"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당의 예로 널리 알려진 것이 중력마당, 전자기마당 등입니다. 한자어로는 중력장, 전자기장 등으로 말하죠. 그런데 물리를 잘 알게 되고 세상을 좀 알게 되니까 마당도 아니고 "모든 것이 정보"라는 것을 뒤늦게 깨우쳤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은 알갱이 또는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것에 대한 지식을 우리가 얼마나 얻는가를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보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아 대상의 구성 자체라고 할 수 있고, 휠러는 이를 지적한 것이죠.
  
  자연과학의 목적은 자연 현상의 이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때 어떤 자연현상을 일으키는 실체로서 대상이 있고 그 자체의 성격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대상 자체의 성격만 알면 자연현상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현상이 "대상 자체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정보의 문제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이라는 거지요. 전통적으로 자체가 자연 현상의 본질인 어떤 대상이 있고 측정을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따라서 정보가 어떻게 우리에게 흐를 수 있는지, 대상에서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는지가 주관심사였습니다. 최근에는 이를 넘어서 "대상 자체의 핵심이 정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혼돈과 질서
  
  20세기 후반으로 와서는, 이른바 '혼돈(chaos)'이라는 현상이 알려졌습니다. 흔히 그냥 카오스라고도 부르지요. 카오스라는 말 많이 들어봤죠? 심지어 혼돈 이론을 적용했다는 카오스 세탁기라는 것이 판매된 적도 있습니다. 통계역학, 엔트로피와 정보, 혼돈 모두 뒤에서 자세하게 공부하겠지만, 혼돈이라는 현상의 핵심만 지적하지요. 우리가 주사위를 던질 때, 1에서 6까지의 숫자 중 하나가 나오겠지요. 주사위의 운동은 고전역학에 의해 기술됩니다. 주사위의 초기 조건, 곧 위치와 속도를 적당히 주어서 던지면 바닥에 떨어져서 어떤 숫자가 나오는데 뉴턴의 운동 법칙의 지배를 받으니까 결정론적인 겁니다. 다시 말해서 초기 조건이 주어지면 결과가 결정돼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번 던져서 6이 나왔는데 똑같이 던지면 또 6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는 6이 안 나오지요. 그 이유가 뭘까요?
  
  학생 : 처음과 다르게 회전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하지만 돌기(회전; rotation)도 고전역학에 의해 기술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F=ma라는 '뉴턴의 운동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회전하는지에 따라 결정돼 있는데 두 번째에도 처음에 똑같이 회전시켰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주사위 숫자가 다르게 나올까요?
  
  학생 : 똑같이 하면 6이 나오던데요?
  
  정말로 해봤다면 대단하네요. 그러면 여기 있을 게 아니라 태백에 강원랜드인가 하는 곳에 가면 좋을 겁니다. 아니면 남산에 요즘도 있나요? 이른바 야바위라고 주사위 몇 나오면 얼마 벌고 그러는 좌판 말입니다.
  
  결정론의 중요한 예로 천체의 운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식이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 몇 분, 몇 초에 일어난다고 1초의 오차도 없이 예측합니다. 혜성도 마찬가지로 언제 어느 상공의 고도 얼마 지점에서 나타난다고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예측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결정론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것들의 운동이 뉴턴의 운동 법칙, 일반적으로 말하면 고전역학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지요. 이는 주사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사위의 운동도 지구나 천체의 운동과 같이 고전역학에 의해 기술되지요. 지구도 회전을 하는데 이러한 자전이 포함된 지구의 운동을 정확히 예측합니다. 자전 때문에 낮과 밤, 하루가 생기는 것인데, 예컨대 해가 몇 시, 몇 분, 몇 초에 뜰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지구가 회전하지만 역시 결정론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몇 백 년 후에 혜성이 어떻게 나타날지 일식이 몇 천 년 전에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00년 후는 고사하고 1년 후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1년도 말고 1주일 후의 날씨라도 정확히 맞출 수 있나요? 몇 해 전 겨울에 눈이 조금 온다고 했다가 엄청나게 많이 왔고, 여름에 비가 조금 내린다고 했다가 많이 내려서 난리가 난 적이 있지요. 불과 하루 전에 예보한 것이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것은 몇 천 년 후까지 정확히 예측하면서 어떤 것은 불과 하루 앞을 내다보지도 못할까요?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대기의 순환을 예측하는 것인데 이것도 똑같이 뉴턴의 운동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결국 일기예보는 혜성이나 일식의 예측과 근본적으로 똑같은 이론 체계의 영향을 받는 겁니다. 똑같이 고전역학인데 왜 어떤 것은 몇 만 년 후를 예측하면서 어떤 것은 하루 앞도 예측하지 못할까요?
  
  학생 : 관계된 것들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닌가요?
  
  날씨의 경우는 관계된 변수가 많겠지요. 그러나 주사위의 운동에도 관계된 것들이 많을까요?
  
  사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잘 고려하면 알 수 있을 텐데, 주사위의 운동을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초기 조건을 완전히 똑같이 준다면 결과는 당연히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주사위를 똑같이 던지려고 애써도 조금은 다르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속도를 1로 주었는데 두 번째 던질 때 아무리 똑같이 1의 속도로 던지려고 해도 0.00001의 차이가 있게 되지요. 내가 분필을 던져서 어떤 학생이 맞았다면 또 다시 던져도 그 학생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번째 던질 때 초기 조건이 처음 던질 때 초기 조건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틀리기 때문에 떨어지는 지점도 조금밖에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유도탄(미사일)을 쏘아서 어느 지점을 맞추려 할 때, 초기 조건을 아무리 정밀하게 정하더라도 소수 몇 번째 자리 이하는 조절할 수 없습니다. 컴퓨터에도 입력할 수 있는 유효숫자의 한계가 있지요. 하지만 유도탄이 날아가서 떨어져야 할 곳이 어떤 패권국가의 국방성 건물이고, 그 중심을 맞춰야 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초기 조건이 조금 달라서 중심에서 1m 떨어진 지점을 맞춘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겁니다. 따라서 유도탄은 어느 지점에 떨어질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사위 같은 것은 초기 조건이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초기 속도가 정확히 1이었으면 숫자 6이 나올 것인데 1.000001이 되니까 숫자 2가 나오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이 바로 혼돈입니다. 핵심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혼돈이란 초기조건에 극히 민감함을 가리킵니다. 초기조건이 미소하게 아주 조금만 바뀌어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말하지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라는 말이 있죠. 날씨가 맑으리라 예상되었는데 갑자기 눈이 내렸습니다. 이상해서 그 이유를 따져봤더니 아마존의 밀림에서 나비가 한 마리 날았다는 겁니다. 그 나비가 날지 않았으면 우리나라에 이렇게 눈이 내리지 않았을 텐데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퍼덕이는 바람에 미세한 차이가 생겼고,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는 겁니다. 이를 나비 효과라 부릅니다. 초기 조건에 극히 민감하게 의존하는 혼돈 현상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지만 날씨 예측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 일기도

  여러분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이라는 영화를 보았나요? 여러분 세대도 ≪쥬라기 공원≫ 세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미있게 만들었지요. 그러나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이 지은 원작 소설과 비교하면 좀 엉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쥬라기 공원≫ 끝 부분에 티라노사우루스(Tyranosaurus Rex)가 난리를 치고 공원이 엉망이 됐잖아요. 처음에 쥬라기 공원을 만들 때 DNA 유전자 정보를 찾아서 공룡들을 복원하였죠. 그런데 티라노사우루스는 워낙 위험하니까 많이 만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10마리만 만들고 나머지는 덩치는 크지만 순한 브라키오사우루스(Bracchiosaurus)나 트리케라톱스(Triceratops) 같은 초식 공룡을 만들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잘못돼서 티라노사우루스가 수백, 수천 마리가 생겼습니다. 왜 그렇게 됐냐면 컴퓨터로 제어를 했는데 컴퓨터에 초기조건을 입력할 때 약간의 오차가 있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1.3을 넣어야 하는데 1.3000001을 넣었던 겁니다. 그 차이가 아주 작으니까 티라노사우루스 10마리가 생길 것이 11마리 생기는 정도면 괜찮았을 텐데 나비효과에 의해서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수백, 수천 마리가 만들어졌으니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혼돈이고, ≪쥬라기 공원≫ 영화와 달리 원작 소설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쥬라기 공원≫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려면 이러한 혼돈에 대해 알아야 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핵심은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게 됐고, 이는 종래 결정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게 해주었죠.
  
  보통 '혼돈'과 '질서'를 대비시켜서 서로 대조되는 개념으로 생각하지요. 그러나 흥미롭게도 자연의 해석에서 질서와 혼돈은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이중적인 개념입니다. 상호보완적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혼돈이 완전히 무질서해 보이지만 사실은 놀라운 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정확한 의미는 뒤에서 얘기하지요.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 간단해서 질서정연할 것으로 생각되는 대상도 알고 보면 혼돈을 보여 주는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질서와 혼돈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고,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질서와 혼돈의 성격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변증법(dialectics)과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을 생각해 보지요. 라면 끓일 때 어떻게 하나요? 처음에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이죠. 그러면 물이 따뜻해지는데, 찬 물과 따뜻한 물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물 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찬 물과 더운 물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앞에서 이미 얘기한대로 분자들의 운동이 다른 겁니다. 분자들이 거의 꼼짝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얼음인데, 조금씩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대체로 얌전히 있는 상태는 찬 물이고,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면 더운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자들의 운동은 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아주 무질서하게 움직이지요.
  
  이럴 때 열은 어떻게 전해질까요?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켰을 때 처음에는 냄비의 아래 부분만 뜨겁지만 물은 점차 윗부분까지 열이 전해지지요. 이렇게 에너지가 전해지는 방식이 '전도(conduction)'라는 겁니다. 처음에 아랫부분이 뜨거워져서 그 부분의 물 분자의 에너지가 높아졌다고 합시다. 그러면 마구 난리칠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옆에 있는 분자들과 부딪치니까 에너지가 전해집니다. 이렇게 에너지가 전해지는 현상을 열의 전도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전도 때문에 물이 윗부분까지 따뜻해지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따뜻해지고 있는 중에 라면을 넣으면 안 됩니다. 더 기다려야 하죠. 더 기다리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물이 더 뜨거워지면 엇흐름(대류; convection)을 하게 됩니다. 아래에 있는 물이 뜨거워지면 위로 올라가고 위에 있는 덜 뜨거운 물은 아래로 내려갑니다. 물이 뜨거워지면 미세하게나마 부피가 늘어나고 밀도가 작아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지요. 다시 말하면 조금 가벼워지게 되고 부력을 많이 받으니까 위로 올라가고 찬 물은 밀도가 크니까 아래로 내려가서 물이 순환하는 겁니다. 엇흐르는 경우 물은 규칙적인 두루마리 무늬를 만들면서 아주 놀라운 질서를 만들어냅니다. 적당히 따뜻할 때에는 무질서하던 물 분자들을 더 뜨겁게 해주면 규칙적인 질서를 만들어내는 거지요. 그런데 아직 라면을 넣으면 안 됩니다. 더 기다려야 해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참을성이 있어야죠. 더 기다리면 어떤 일이 생기나요?
  
  물이 펄펄 끓게 됩니다. 펄펄 끓는다는 게 무슨 뜻이죠? 우리 토박이말로 '막흐름(turbulence)'이라고 부릅니다. 마구 난잡하게 흐른다고 해서 한자어로는 난류(亂流)라고 부르지요. 이같이 펄펄 끓으면 공기방울이 올라오고 물이 마구 흐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혼돈 현상입니다. 이 때 라면을 넣으면 되지요. 이러한 과정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무질서했는데, 질서가 생겼다가 다시 혼돈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보통 '질서'는 좋은 것이고 '혼돈'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지요? 왜 '질서'는 좋고 '혼돈'은 나쁜 것 같아요?
  
  학생: '질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고 '혼돈'은 엉망인 상태로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 몸에도 혼돈을 보여 주는 예가 있습니다. 심전도(electrocardiogram)라는 것 알죠? 나이 들면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나므로 염통에서 심전도를 조사합니다. 염통의 박동을 나타내는 전기신호를 통해서 염통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보는 겁니다. 염통은 규칙적으로 박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슴에 손을 대고 느껴보세요. 규칙적인가요? 놀랍게도 대부분 사람의 경우 염통의 박동은 규칙적이지 않고 약간의 혼돈이 있습니다. 규칙적인 사람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박동의 주기가 언제나 같지는 않고 조금씩 변합니다. 그러면 규칙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중 어떤 경우가 더 좋을까요? 질서와 혼돈 중에 질서가 더 좋은 것 같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규칙적인 박동이 더 좋을까요? 그런데 사실은 박동이 규칙적인 사람은 안됐지만 얼마 안 남은 분들입니다. 건강한 염통의 박동은 어느 정도 혼돈을 보이는데 반해서 심근경색 등 치명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조금 전에 염통의 박동은 규칙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히려 혼돈이 질서보다 좋은 것임을 시사하는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사실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도 질서정연한 사회가 있고 혼돈스러운 사회가 있습니다. 어떤 사회가 질서정연하죠? 여러분 몇 년에 태어났죠?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분들이 많겠지요. 그 이전인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는 유신이라는 이상한 체재가 있었습니다. 유신 시대는 아주 질서정연한 사회였습니다. 말하자면 나찌(Nazis) 정권에서 독일이나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에서 볼 수 있듯이 독재 사회나 전제 군주 사회는 질서정연합니다. 그런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요? 그런 사회는 쉽사리 붕괴할 수 있습니다. 유신이 10. 26 사건으로 끝장났듯이 말입니다. 몇 해 전에 ≪그 때 그 사람≫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는데 어려움 끝에 일부 검은 칠을 하고서야 상영이 되었지요. 1979년 우리 사회의 격동을, 그리고 그것이 현재까지도 지속됨을 보여주었고, 사실 과학적 사고와도 관련이 있는 영화입니다. 하여튼 다시 강조하지만 질서는 좋은 것이고, 혼돈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은 타당하지 않다는 겁니다. 왜 사회나 우리 몸에 혼돈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혼돈이 왜 바람직하고 필요한 것인지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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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론들을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모자라 아쉬었던 차에

프레시안에 좋은 연재를 발견했다. 최무영의 과학이야기이다.

 3강 과학의 발전과 시대정신
  
  지난 강의에서는 과학 활동이 시대정신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에는 고전물리학에서 현대물리학에 걸쳐 과학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시대정신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 물리학 이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고전물리: 운동과 빛
  
  고전물리학이란 간단히 말하면 뉴턴의 고전역학과 맥스웰(James C. Maxwell)의 전자기 이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고전물리학의 두 축 중 하나는 역학, 곧 운동의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전자기 현상 및 빛의 이론이지요.
  
  운동의 기술은 17세기에 뉴턴이 운동 법칙을 제안하면서 확립되었습니다. 식으로 나타내어 a = F/m의 관계는 힘이라는 원인에 의한 결과로서 운동이 변화한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합니다. 이는 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 사회의 이성주의 또는 합리론(rationalism)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운동의 법칙을 에너지의 관점에서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에너지 보존 법칙을 확장하면서 에너지는 다양하게 형태를 바꾸는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됩니다.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낭만주의(romanticism)와 나란히 간다고 여겨지네요.
  

▲ 뉴턴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은 19세기 중후반에 완성됐는데, 그 때 유럽이라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19세기 후반 유럽은 주로 절대왕정 시대이었던가요? 이와 관련해서 앙시앙레짐(ancien regime)이라는 표현을 쓰죠.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 혁명, 부르주아 혁명이 있었고, 그 반동으로 이어진 절대왕정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것은 결정론적인 사고에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고전물리학이 완성되었다는 말은 운동과 전기, 자기 현상 및 빛의 정체를 완전히 밝혔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자연을 완벽하게 해석했다고 믿은 거죠. 그래서 그 당시 물리학자들은 "우리는 더는 할 일이 없다. 물리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하나?"하는 걱정도 생겼겠지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정해집니다. 내가 공을 던지면 어디에 떨어질지 결정돼 있습니다. 처음에 어떤 속도로 어느 지점에서 던질 것인가만 정하면 어디에 떨어질지 완전히 결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공을 던지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원인이 주어지면 결과가 결정돼 있다는, 이른바 결정론(determinism)은 자연과학, 곧 물리학에서 출발했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나 사회, 인간의 행동 자체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연현상만 결정론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다양한 현상의 해석에도 결정론이 영향을 미친 거죠.
  
  이런 전통에 입각한 경우로 널리 알려진 예가 마르크스(Karl Marx)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Marxism) 철학을 보면 놀랄 만큼 자연과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자연과학적인 사고에서 출발한 거지요. 다음으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한 선구적인 사람으로 프로이드(Sigmund Freud)를 들 수 있습니다. 유명한 저서로 ≪꿈의 해석≫이 있지요. 프로이드는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했는데, 우리 의식과 관계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범주라고 생각했던 것까지도 자연과학적인 전제, 결정론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을 꼽으라면 거의 언제나 들어가는 사람이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그리고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습니다. <타임(Time)> 잡지에서 20세기 100 년 동안 가장 중요한 사람을 뽑는데 아인슈타인이 선정됐죠. 정치가가 아닌 물리학자가 뽑혔다는 것은 참 인상적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도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의 이론을 과학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 자연을 인문, 사회와 구분하여 한정시키면 이들은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연과학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했던 과학적 사고라든가 과학적 구조라든가 하는 것들은 자연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학이 과학의 전형으로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자연과학의 정의에서 '자연'을 '사회'로 바꾸면 사회과학(social science)이 되겠고, 따라서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학문도 '과학(science)'이라고 지칭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논의했던 과학의 여러 가지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의 이론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 '역사과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들어봤어요? 북한에서는 머릿소리 되기(두음법칙)를 쓰지 않으니 '력사과학'이라고 부르죠. 아무튼 이러한 이론 체계들을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포퍼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고 유사과학의 범주에 넣었지만 사실 판단 기준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물리: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제 20세기로 들어가 볼까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고전물리학은 붕괴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정확하게 얘기하겠지만 붕괴했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고전물리학이 붕괴한 이유는 자체 모순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전물리학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물리학, 이른바 현대물리학이 등장했습니다. 고전물리학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옛 질서라고 할 부르주아 혁명, 앙시앙레짐 같은 것들이 함께 무너진 것입니다.
  
  

 

 

 

 

고전물리학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과학 이론 체계가 생겨났는데 그 첫 번째가 상대성이론입니다. 여러분 지난 2005년이 무슨 해인지 알아요? 국제연합(UN)이 정한 '물리의 해'입니다. 왜 하필이면 물리의 해일까요? 이는 아인슈타인 100 주년 기념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런데 탄생 100 주년이 아니고, 논문 발표 100 주년 기념이죠.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기념비적인 논문 세 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유명한 상대성이론 뿐 아니라 쇠붙이에 빛을 쬐어서 전자를 내는 빛전자 효과(photoelectric effect), 물 같은 흐름체(fluid) 속에서 꽃가루 같은 알갱이가 보이는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에 대한 연구결과인데 이는 양자역학과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도 포함해서 현대물리학의 지평을 연 매우 중요한 논문들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빛전자 효과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았지요. 어쨌거나 이러한 세 편의 논문을 모두 한 해에 발표했다니 너무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은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근본 개념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오류가 있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사고에는 시간과 공간에 절대성이 부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절대시간, 절대공간 등의 개념이 뉴턴의 고전역학 체계에 전제되어 있지요. 이에 반해서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서 상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핵무기와 핵발전을 비롯한 핵에너지는 바로 상대성이론에 의해 알게 되었지요. 핵폭탄 등을 둘러싼 문제들이나 우리가 쓰는 전기의 40퍼센트 정도가 핵발전에 의한 것임을 생각하면 상대성이론은 우리 일상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성이론이 현대 사상, 철학과 예술에 미친 지대한 영향이지요. 이에 따라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아인슈타인이 선정되었지요.
  
  여러분이 21세기에 살고 있고, 현대 사상과 삶에 대한 성찰에 진지하다면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문ㆍ사회 계열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네요. 흔히 스스로 교양 있다고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철학이나 문학과 예술 등에 조예가 깊어 보입니다. 이를테면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와 괴테(Johann W. von Goethe), 플라톤(Plato)과 칸트(Immanuel Kant), 바흐와 베토벤에 대해 얘기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프로이드에 대한 얘기도 하지요. 대체로 마르크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아는 것이 창피한 듯,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거든요. 이상한 현상이지요.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뉴턴과 맥스웰, 볼츠만(Ludwig Boltzmann)이 셰익스피어, 칸트, 베토벤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스토예프스키(Feodor M. Dostoevski)나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피카소를 얘기한다면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도 얘기해야 할 텐데 '고상한' 사람들을 보면 이에 대해 알기는커녕 아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앞서 소개한 스노우의 지적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더 나아가 '고상 절차'에서 인문학조차 없어졌고 사치와 천박함만 남은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여러 이유로 자연과학이 다른 분야보다 일반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에는 적어도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은 과학에 대한 이해가 놀랄 만큼 깊습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지요. 미국이 일반적 교양의 수준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결코 낫다고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 과학 지면에 나오는 과학 관련 기사를 보면 제가 봐도 놀랄 만큼 수준이 높습니다.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이 일간지 과학 기사로 나와요.
  
  우리나라는 꿈도 꾸기 어렵죠. 우리나라 신문사를 보면 대부분 '과학부'는 따로 없는데, 전에는 '생활과학부'라고 하다가 요새는 'IT', '정보과학부'라고 하고 같이 끼워 놓았습니다. 아무리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신문사들을 봐도 과학을 정말로 전공한 전문기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신문에서 과학 관련 기사가 나온 것을 보면 대부분 과장과 왜곡, 때로는 허위로 차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떠들썩했던 줄기세포 보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사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다른 기사들도 얼마나 엉터리일지 짐작이 갑니다. 아무튼 외국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과학이 매우 잘못 인식되어 있는 듯하여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얘기가 좀 길어졌네요.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과학의 주된 토대가 양자역학인데, 당연히 이 두 가지 이론체계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하는 정신이 무엇인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양자역학의 중요한 전갈은 이런 겁니다. '측정'이 과학에서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었죠. 이론체계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우리 머릿속에만 있습니다. 순전히 인간의 창작물에 불과하지요. 이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것인데 과학으로 기능하려면 우리의 감각 경험에 의한 현실세계와 연결이 되어야 하지요. 현실세계와 연결하는 것을 뭐라고 했었죠? 운동의 법칙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연에 내재하는 법칙으로 인식합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론의 실재성은 없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다른 의미의 실재성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관측을 통해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자연현상을 해석할 때, 우리가 구성한 이론체계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순전히 관측에 의한 것이므로 측정이 매우 핵심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고전적인 생각, 고전물리학에 비해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이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기본 전제 자체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론 구조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나나요? 개념이 있고 진술이 있지요. 개념은 이론의 출발점인데 상대성이론은 시간, 공간 등 개념 자체의 의미를 바꾸어 버렸습니다.
  
  한편 양자역학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론이 있고 현실세계가 있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측정이라고 단순히 말했지만, 측정이 현실세계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핵심 내용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려 할 때 그 대상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식하려 한다는 것은 측정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본질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간의 능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자연의 본성 때문에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기본 사고이지요. 그러니까 결국 대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식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분필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내가 분필을 유심히 관찰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양자역학의 정립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튼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두 가지가 현대물리학의 핵심적인 토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는 현대인의 삶에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을 응용해서 얻은 이른바 첨단기술―우스운 용어지만―의 핵심은 대부분 이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이 즐겨 쓰는 휴대전화, 컴퓨터 등 전자기술도 양자역학에서 출발했고, 떠들썩했던 배아복제, 유전자 조작 식품 등 유전공학 기술도 양자역학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 그리고 북한에서 성공했는지 아닌지 떠들던 핵폭탄은 모두 핵분열 반응을 이용한 것인데 결국 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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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의 글이다. 프레시안

 

3. 근대적 인종주의의 본격적 발전
  
  블루멘바흐의 퇴화이론

  
  17, 18세기는 인종주의의 이론적 기반이 점점 확고하게 된 때이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은 인간을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등 여러 인종으로 나누었다. 그들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하나의 종일 수는 없으며 처음부터 다르게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다인종설(多人種說)이며 많은 학자들이 그것을 믿었다.
  
  이런 주장은 노예제를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인종이 달라야 열등하게 보이는 사람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인간은 아담의 자손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17세기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적 설명을 더 좋아했다. 인간은 모두 아담의 자손이기는 하나 아프리카인이 흑인으로서의 열등함과 추함, 그에 따라 영원한 노예의 운명을 갖게 된 것은 햄의 아들에 내린 신의 저주 때문이라는 것이다.
  
  18세기 중반에 스웨덴 학자인 린네(C.Linnaeus)가 동식물을 종으로 나누는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어냄으로써 다시 문제가 생겼다. 근대 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종을, 생식력 있는 후손을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다른 인종 사이의 결합에서도 생식력 있는 아이를 낳을 수 있으므로 모두 하나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근대 생물학의 아버지인 린네(C.Linnaeus, 1707~1778)

  이것이 학자들을 고민스럽게 했다. 그래서 그들은 퇴화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그 곤란함을 피하려 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18세기 후반의 독일인인 블루멘바흐 (J.F.Blumenbach)이다.
  
  그는 기독교 교리에서 말하는 대로 단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여러 인종들의 두개골이나 신체 각 부위의 모양이나, 자세들을 면밀히 비교 검토한 결과 인간은 하나의 종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 근대 인종주의를 학문적으로 확립한 블루멘바흐(J.F.Blumenbach, 1752~1840)

  
▲ 독일의 괴팅겐(Gettingen)시. 아름다운 대학도시인 게팅겐시는 19세기 초의 게팅겐 대학 7교수 사건 등 자유주의운동과 관련해서 많이 알려져 있으나 한편에서는 18세기 이후 유럽 인종주의 발전에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종으로 시작했으나 사는 곳이 달라짐에 따라 기후나 생활양식 등 환경의 차이와 혼혈에 의해 다섯 개의 인종으로 나뉘었다고 생각했다. 코카서스 인종, 몽골 인종, 에티오피아 인종, 아메리카 인종, 말레이 인종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백인종인 코카서스 인종이야말로 최초로 생겨난 가장 아름답고 재능이 있는 인종으로 다른 인종들은 모두 이것이 퇴화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블루멘바흐의 이 퇴화 이론은 19세기 중반까지 인종주의적 생각의 중심 역할을 했다.
  
▲ 블루멘바흐가 분류한 다섯 개 인종의 두개골 모습.

  인종주의의 학문적 확산
  
  인종주의적 생각은 18세기의 계몽사상가들에게서도 거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인간의 보편성을 믿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비유럽인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유럽인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식민지배나 비유럽인의 노예화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유럽인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로크나 디드로, 달랑베르, 흄, 칸트, 헤겔 같은 유명한 인물들이 이런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생각해야 된다고 주장했으나 그렇다고 인종주의적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성과 문명은 전적으로 백인, 서유럽인과 동의어였고 유럽 외부의 비백인들은 비이성, 야만성과 동일시되었다. 결국 이런 주장은 유럽인의 문화적, 인종적 우월성을 고무시킬 수밖에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인종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찾으려는 노력은 해부학, 생리학, 언어학 등 여러 분야에서 집요하게 추구되었다. 녹스(R. Knox)는 1820년대에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해부학자였다. 그는 많은 인간의 머리 골격이나 기타 몸체 구조의 분석을 통해 여러 인종은 분명히 해부학적인 차이를 보이며 그 외부적 특질은 지난 6천 년간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종주의적 생각을 의학 분야에 광범하게 유포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언어학 분야에서 이런 일을 한 대표적인 사람은 고비노(J.-A. de Gobineau)이다. 그는 19세기 중반에 인간을 세 집단의 어족(語族)으로 구분했다. 햄어족, 셈어족, 인도-유럽어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인도, 이란, 거의 전체의 유럽언어를 포함하는 인도-유럽 어족이다. 그는 인도-유럽어를 쓰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북유럽의 추운 지역에 사는 게르만족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혼혈을 통해 타락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아름다움, 신체적 힘, 지적인 능력에서 다른 인종이나 종족들을 훨씬 능가하는 코카서스 인종의 게르만족(아리아족)이 다른 인종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비노의 주장은 19세기 유럽 인종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고비노(Joseph-Arthur Gobineau, 1816~1882)

  노예제와 19세기 미국의 인종주의 이론
  
  19세기 인종주의 이론의 중요한 발전은 미국에서도 이루어졌다. 그것은 미국이야말로 노예제의 합리화가 중요한 과제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독립선언서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노예제는 미국민의 자유와 평등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열등한 다른 종이 있다면 이런 원리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쪽으로 논리가 발전하였다. 그런 생각은 헌법 기초자인 토마스 제퍼슨에게서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노예제가 미국인들의 도덕적 성격에 암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제의 폐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신체적인 아름다움이나 정신적, 지적인 능력에 있어서의 흑인의 열등성을 지적하며 그들은 더위에 강하기 때문에 육체노동에 생물학적으로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그뿐 아니라 미국 독립에 기여한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런 노력은 1840년대 이후 특히 이집트 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흑인의 문화적, 생물학적 열등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모턴(S.G.Morton)이라는 해부학자는 두개골의 크기를 인간의 도덕적, 지적 능력과 결부시킨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인들의 두개골 연구를 통해 고대 이집트의 지배계급이 코카서스인이었다고 주장을 폈다.
  
  '이집트에 니그로가 많기는 했으나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하인이나 노예였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고대 이집트를 흑인노예를 부리는 백인사회로 만들었다. 미국의 노예제 사회에 정당성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윈의 진화론과 인종
  
  찰스 다윈은 1859년에 <종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진화론을 주장함으로써 생물학의 혁명을 불러왔다. 그는 동물이나 식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지역을 여행하며 과학적 증거를 수집했다. 특히 1835년에 그가 남미 에콰도르의 태평양상에 있는 갈라파고스 섬을 탐사하여 생물 진화의 흔적을 찾아낸 것은 유명하다.
  
▲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0) 진화론의 창시자.

  그의 이론의 핵심은 종이 변화해 가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는 자연도태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한다. 생존투쟁에 이로운 특질들을 가진 개체들은 살아남아 후손을 재생산하는데 성공하고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경쟁에서 져서 그대로 사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도태를 통한 적자생존이 장기간 지속되면 이것이 유전형질을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종의 변이를 가져오는데 이것이 바로 진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윈은 이제 이렇게 만들어진 진화론을 가지고 인종 사이에 나타나는 여러 차이를 설명할 수 있었다. 모든 인류는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되었으나 진화에 의해 여러 인종으로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1850년대까지도 단일인종설(한 쌍으로 시작한 인류가 아마 환경에 의해 여러 인종으로 분화했다)과 다인종설(인종적 차이는 인류의 처음부터 존재했다)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다윈은 진화에 의한 변화를 가지고 단일인종설의 퇴화이론과 함께 다인종설의 불합리함을 함께 비판함으로써 두 이론의 다툼을 끝낼 수 있었다.
  
▲ 생물학의 보고인 갈라파고스섬(Galapagos Islands)의 이구아나.

  스펜서와 사회적 다윈주의
  
▲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다윈주의를 인간사회에 똑 같이 적용한 이론이 사회적 다윈주의이다. 그 가장 유명한 주창자는 허버트 스펜서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생물학 원리를 받아 들여 그대로 사회에 적용했다.
  
  동식물과 같이 개인이나 가족, 인종도 진화과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으며 결국 사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인적인 생존투쟁, 계급적인 생존투쟁, 인종적, 문명적 수준에서의 생존투쟁도 모두 이 원리에 의해 합리화될 수 있었다.
  
  사회적 다윈주의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인종주의 이론의 기반으로 유럽에서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그것이 자연과학의 껍질을 둘러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이 맹목적으로 존중되고 있던 19세기 후반의 분위기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그것은 유럽국가들의 제국주의 정책과도 관계가 있다. 이 시기는 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던 시기였으므로 사회적 다윈주의는 이것을 정당화하기에 아주 좋은 무기가 되었다. 유전적으로 우월한 유럽인이 열등한 비유럽인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다윈주의가 가장 크게 환영을 받은 곳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이다. 그 이론이 당시 거의 무제한한 자유를 누리며 급격하게 성장하던 미국 자본주의의 요구에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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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보기 연재는 항상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다.

 

 1. 인종주의, 왜 문제인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인종주의'
  
  요사이 우리나라에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우리의 경제력이 커진 탓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대접은 매우 소홀하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라 하여 우습게 안다. 욕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타도 심심치 않은 것 같다. 또 불법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임금을 제대로 안 주는 경우도 많다.
  
  이런 차별과 관련해서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인종주의'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런 차별을 인종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인종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막연히 미국의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 차별 같이, 피부색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할 뿐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인종주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고 역사적으로도 매우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인종주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세계사 교육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인종주의와 관련된 내용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니 인종주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서양의 역사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종주의 문제를 다룬 전문적인 책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역사책 속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이 인종주의 문제를 밖으로 잘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 사람들의 그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기네가 그 동안 인종주의를 갖고 수백 년 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떳떳하지 않은 이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회피하려는 것이다.
  
  우리의 서양사나 세계사에서 인종주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이런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사람들이 자기네 책에서 인종주의를 다루지 않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의 유럽중심적인 서양사 내지 세계사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양인도 아닌 우리가 이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것은 매우 잘못된 태도로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세계의 역사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인종주의 문제가 왜 중요한가
  
  그러면 우리는 왜 인종주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지난 500년간 유럽 국가들이 전 세계로 식민지를 확대해 나가며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념이 인종주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원주민을 거의 멸종시키고, 중남미 · 아시아 · 아프리카의 식민지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화하고 착취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 2차 대전 때에는 독일 사람들이 약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는데 그 바탕에 있는 것도 역시 인종주의이다.
  

▲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18세기에 서양인들이 그 지역으로 들어간 이후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 유대인 학살의 모습.

  인종주의가 이렇게 사악한 성격을 갖는 것은 그것이 인간을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으로 나누고 전자가 후자를 다스리는 것은 물론, 노예로 부리거나 심지어 죽이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종주의는 결코 윤리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이념이다.
  
  그런데도 2차 대전이 끝난 후 비교적 약화된 것 같이 보였던 인종주의가 최근 서양에서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1980-90년대에 들어와 경제 사정이 나빠지며 유럽 국민들 사이에 자기 나라에서 거주하고 일하는 이민 노동자를 비롯해 비유럽계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자기네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불만이 인종주의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극우파 정당이나 단체들이 공공연히 이들에 대한 보다 엄격한 규제나 추방까지도 주장하고 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호응도 적지 않다.
  
  인종 차별이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는 미국에서도 냉전이 끝나고 사회가 보수화하며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인종주의가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며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부딪쳐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프랑스 국민전선의 당수 장 마리 르팽 (Jean-Marie Le Pen).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은 10% 이상의 지지를 계속 받으며 프랑스 정치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 있다. (© REUTERS)

  2. 인종과 인종주의는 무엇인가
  
  '인종'은 비과학적인 개념
  
  먼저 인종(人種:race)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근대에 들어와 서양인들은 인종이라는 단어를 혼란스럽게 사용했다. 민족을 의미한 경우도 있고 유대 인종이라는 말처럼 종교적 집단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 또 인류 전체(human race)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을 신체나 용모의 특징에 따라 나누는 것을 뜻한다. 19세기에 인종을 보통 황인종, 흑인종, 백인종의 세 형태로 나눈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체나 골격, 용모의 특징은 인간 집단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여기에 의해 딱 떨어지게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사이에는 호르몬 활동이나 혈액 성분 등 여러 다른 기준들이 더 추가되기도 한다. 그에 따라 수십 개의 인종으로 나누기도 하나 정확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 여러 인종적 타입의 모양

  더 중요한 것은 학문적으로 볼 때 인종이라는 것이 별 의미 없는 구분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생물학에서 종(種)이라고 부를 때에는 그 안에 속하는 개체들이 공통의 유전적 특징을 갖고 있고 성적 교섭을 통해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른 종 사이에서는 후손이 만들어질 수 없으며 가까운 종 사이에서 그것이 혹시 가능하다 해도 그 후손이 생식능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과 당나귀 사이의 잡종인 노새가 생식력이 없는 것이 그 예이다.
  
▲ 암말과 숫당나귀 사이의 종간 잡종인 노새. 노새는 생식능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인종으로 불리는 다른 인간 집단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하다. 백인과 흑인, 황인과 흑인, 황인과 백인 사이에서 얼마든지 생식 가능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인종은 종이 아니며 과학적인 면에서는 아무 쓸 데 없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사회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양 사람들이 인종을 생물학에서의 종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여 어떤 인종에 속하는 사람은 그 정신적, 신체적 특징들을 유전에 의해 후손에게 물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의 아름다움이라든가 지능, 또 도덕성 같은 것도 인종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때 그들이 미리 머리 속에 가정하고 있는 것은 백인종이 황인종이나 흑인종에 비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우월성은 유전되는 것이고 생물학적인 것이므로 결코 인간이나 환경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뜻에서 인종은 과학적으로 보다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갖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인종주의는 무엇인가
  
  이렇게 불분명하며 인간 집단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가정하는 인종 개념 위에 서 있는 이데올로기를 인종주의라고 한다. 그러니 인종주의도 많은 문제점들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다음 몇 가지의 기본적인 가정에 기초해 있다.
  
  첫째, 인간은 공통의 신체적 특질을 가진 다른 인간집단인 인종으로 나뉘는데 그들 사이 의 차이는 동물의 다른 종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와 같다.
  
  둘째, 신체적, 정신적 특질은 서로 관련이 있으며 유전에 의해 후대에 전달된다. 교육이 그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셋째, 집단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행위는 대체로 그가 속한 인종적, 문 화적 집단에 의존한다.
  
  넷째, 인종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서로 간에 우열이 있다. 이는 신체적인 아름다움이나 지적, 도덕적 특질의 우열로 나타난다.
  
  다섯째, 위의 전제의 의해 우월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예속화, 절멸하는 것은 정당화 된다.
  
  인종적 집단 사이에 이렇게 우열을 가정하는 것은 자원이나 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한 인종이 이런 것의 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거나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심지어는 어떤 인종적 집단을 한 사회에서 고립시키거나 축출하고 심지어는 모두 죽이는 것까지도 정당화한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모든 이념 가운데 가장 악질적이고 저질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 학살과 식민지 해방으로 인해 2차 대전 후에는 UN을 중심으로 인종적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적 운동이 벌어졌고 법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나라도 많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과거와 같은 노골적인 인종주의적 태도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서양의 많은 사람들은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겉과는 달리 속으로는 황인종이나 흑인종을 깔보고 경멸한다. 그것은 이 세계가 식민주의 시대 이래 불평등하게 만들어졌고 오늘날에도 백인종과 다른 인종 사이에 경제적, 문화적 격차가 크게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종주의는 아직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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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에서 가져온 강철구의 글이다.

 

 1. 근대 자연법, 어떻게 볼 것인가
  
  근대 자연법의 형성

  
  고대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스토아학파에서 발원한 자연법은 중세 시대에는 신학적 원리에 의해 지배되었다. 중세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모든 법의 원천이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중세적 자연법은 16, 17세기의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16세기의 종교개혁과 그 후 1세기 넘어 계속된 종교전쟁, 또 유럽인이 아메리카나 아시아로 진출하며 부딪치게 된 많은 문제들이 자연법의 변화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의 자연법 학자들은 신적인 원리보다 스토아 학파가 설파하고 있는 인간 이성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인간 이성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원리가 근대 자연법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그들은 자연법을 성경에서 나타나는 신의 절대적인 의지와 같은 초월적인 원리가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의 '이성'에 근거시켰다. 자연법의 존재를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사회성이나 편익과 관련시켜 설명한 것이다. 그런 것을 위해 자연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비토리아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시작되어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로크에게로 이어지고 나중에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며 17, 18세기 유럽 사회, 정치사상의 근본 모티브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나타나는 국제법, 사유재산권, 자연상태, 자연권, 사회계약론, 인민주권설 등의 이론들은 모두 자연법에서 비롯되었다. 자연법이 계몽사상의 핵심일 뿐 아니라 근대 서양 사상의 본질적인 부분이 된 것이다.
  
  그것은 또 당대 미국의 독립전쟁이나 프랑스 혁명에도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근대사의 진행과정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자연법의 바른 이해는 유럽 근대사상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한 선결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법의 이해와 유럽중심주의
  
  서양학자들은 지금까지 자연법을 대체로 인간의 보편적인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사상체계로 이해해 왔다. 근대인들을 맹목적이고 기독교적인 중세적 도덕률에서 해방시켜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인 도덕철학 위에 서게 했다고 믿은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고 찬미하는 태도를 보인다.
  
  물론 서양 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연법을 유럽의 사상사적 전통과 근대 초 유럽 내부의 정치, 사회, 경제와의 관련에만 중점을 두고 접근하기 때문이다. 즉 유럽적 관련에서만 자연법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자연법은 유럽인들의 탁월한 문화적 성취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정에는 그렇게 볼 수 없는 다른 중요한 측면이 있다. 자연법의 발전이 근대 초 유럽인들의 식민주의적 열망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자연법의 발전이 애초에 식민주의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서양학자들은 이런 면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자연법 형성에서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고 단지 사소하고 부수적인 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근대 자연법에 미친 식민주의의 막중한 영향을 생각한다면 이런 태도는 상당 부분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서양학자들의 유럽중심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식민주의와의 관련성을 차단함으로써 그들이 찬양하는 자연법의 보편적인 의미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자연법을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장에서는 근대 자연법의 형성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비토리아,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로크의 자연법사상과 식민주의와의 관련을 검토함으로써 근대 자연법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서 보다 객관적인 이해에 접근하려 한다.
  
  2.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과 비토리아
  
  아메리카 정복의 정당성 문제
  
  15세기 말에 시작된 스페인인의 아메리카 정복과 식민화는 매우 쉬운 과정이었다. 토착 제국들과 정치체들이 급속히 붕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정복과 지배는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큰 지적인 문제를 만들어냈다. 즉 아메리카에 대한 스페인왕의 지배권(imperium)과 재산권(dominium)을 어떻게 정당화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16세기 초에는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칙서가 그 근거가 되었다. 1493년에 교황이 이사벨라와 페르디난드 공동왕에게 대서양에서 새로 발견되는 땅에 대해(그것이 어느 기독교 군주에 의해 점유되어 있지 않은 한) 지배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황의 이런 행위는 교황이 기독교인과 이교도들 모두에 대해 세속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중세 자연법에 기초를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신학자들이나 법률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교황알렉산더 6세 (Pope Alexander VI, 1431~150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504년에 페르디난드왕이 한 회의를 소집했다. 여기에 모인 법학자, 신학자, 교회법학자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오가 왕에게 속하며 그것은 인간의 법이나 신의 법에 합치된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왕의 지배권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 스페인의 공동왕 페르디난드(Fedinand Ⅱ)와 이사벨라(Isabella Ⅰ)

  1511년에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서인도의 이스파뇰라 섬에서 선교를 하던 도미니쿠스 파의 몬테시노 신부가 원주민에 대한 스페인 식민자들의 잔인하고 부당한 행위들을 설교를 통해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자들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그들은 무어인이나 튀르크인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강경하게 성토했다.
  이 사건이 서인도제도 뿐 아니라 본국에까지 파장을 일으키며 국왕의 지배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 해에 부르고스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다시 한 번 스페인왕이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권과 재산권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결론을 내린 논거는 무엇일까.
  
  이 회의는 로마법에 근거하여 원주민들의 재산권을 부정했다. 원주민들이 적법한 사회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로마 법학자들에 의하면 사회란 재산에 기초해 있는 것이고 재산관계가 진정한 시민 사이의 모든 교환의 기초였다. 따라서 그런 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회는, 즉 시민공동체를 갖고 있지 않은 사회는, 그들의 땅을 빼앗으려는 침략자에 대해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살게 된 열린 공간이라는 것이다.
  
▲ 아메리카 원주민과 그 사회,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은 16세기 스페인인들에게 매우 큰 과제였다.

  이런 주장은 서인도 제도 같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곳에는 적용할 수 있었으나 아스텍이나 잉카 지역에는 불가능했다. 이들 나라가 정치 공동체를 갖고 있고 그 땅을 지배하고 잘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유럽인들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530년대에 정복의 정당성 문제가 다시 대학을 중심으로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논리를 제공한 사람이 살라만카 대학의 신학부 교수인 프란시스코 드 비토리아(Francisco de Vitoria)이다.
  
  정복의 정당성과 신법
  
▲ 비토리아 (Francisco de Vitoria, 1483~1546)

  비토리아는 도미니쿠스파 신부로서 1511-23년 사이에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학문적으로 매우 유능한 인물로 파리 대학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편집하는 일에 참여했고 귀국해서도 제자들에게 주로 신학대전을 교과서로 하여 가르쳤다. 말하자면 전형적인 스콜라 철학자로서 16세기 스페인의 유명한 살라만카 학파의 창시자이다.
  
▲ 파리 대학의 강의 모습.

  스콜라철학자들은 재산권이란 그것이 사회를 구성하건 아니건 모든 사람에게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재산의 권리가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주어진다고 하는 부르고스 회의의 결론은 비토리아에게는 불충분해 보였다. 아메리카의 정복은 원주민들이 이 자연권을 그 자신들의 행위에 의해 상실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 살라만카 대학은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의 하나였다.

  따라서 그는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의 토지를 원주민들로부터 빼앗는 근거를 파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 야만인들은 인간적인 법(유럽적인 법)이나 그 지배자 밑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유럽의 실정법에 의해 판단할 수는 없었고 신법(神法)에 의해 판단되어야 했다.
  
  그들은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많은 죄를 짓고 있고 이단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주권이나 재산권을 부인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기독교적 사회만이 아니라 자연상태에 사는 사람들도 이에 대한 자연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이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복되어도 좋다는 생각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도 교육을 잘 받지 못해서 그렇지 그 나름으로 이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시의 건설이나 결혼, 관리(官吏), 통치자, 법, 수공업, 상업 등 '이성의 사용'을 필요로 하는 행위들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비토리아에게 문제가 된 것은 토착민들이 기독교 선교를 거부할 때 그것이 정복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는 이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어떤 유럽의 군주나 교황도 지구 전체에 대한 세속적인 지배권을 주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원주민들이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해서 공격을 받을 수는 없었다.
  
  또 그들이 온갖 종류의 성적인 일탈이나 인육을 먹는 카니발리즘을 통해 중세 자연법을 위반했다 해서 그들을 강제할 근거도 없었다. 따라서 비토리아는 유감스럽지만 스페인인은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하는 일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법의 입장에서 볼 때 스페인인들은 식민지 정복의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민법과 교통의 자유
  
  이렇게 신법으로는 아메리카 정복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었으므로 비토리아는 다른 방법을 취했다. 로마 시대의 만민법(ius gentium)을 끌어 들인 것이다. 만민법은 로마 시대에 그 영토 안에 있는 수많은 종족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는 모든 국가 사이에는 만민법이 작용한다고 믿은 것이다. 그는 만민법을 자연법이거나 또는 자연법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만민법의 개념을 바탕으로 신화와 허구를 포함해 고대의 많은 글들을 인용하며 '사회와 자연적 교통의 권리'라는 원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이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을 포괄할 수 있는 기독교보다 더 보편적인 원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의하면 바다, 해안, 항구는 시민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공동으로 속하는 것으로 사유 재산에서는 벗어나 있다. 따라서 그는 어떤 해안이 누구에게 속하든 상관없이 거기에 들어가는 것은 법의 객관적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로마의 전설적 시조인 아에네아스가 자신의 정박을 거부한 라티움 왕을 야만인이라고 부른 이유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고사(故事)로부터 선례를 만들어 가며 여행과 방문, 정착, 교역, 광산 채굴의 보편적인 권리를 끌어냈다. 그리고 이런 권리가 정중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부인될 때는 전쟁을 할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전쟁의 정당한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교역을 막아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유무상통을 통해 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원주민들이 내지 여행을 막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금한다면(그들이 그것을 믿건 말건) 스페인인들은 그들을 정복할 권리를 갖는다. 또 인간을 희생시키는 제사나 카니발리즘을 강제로 막는 것도 합법적이다. 또 원주민들의 전쟁에도 요청을 받을 경우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인디언의 낮은 지성을 고려하면 폭력은 최소화해야 했다.
  
  이렇게 비토리아는 기독교가 정당화할 수 없는 정복행위를 자연법이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로마법에 근원을 갖고, 선례를 신화에서 찾고, 비토리아에 의해 주의 깊게 제한된 상황에서이기는 하나 후대에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가 원주민들에 대한 정복과 착취를 정당화한 것이다.
  
  1539년부터 본격화된 이 논리는 곧 지배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며 이후 스페인 식민주의의 중요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이는 다른 식민국가들에게도 유용한 이론이었다. 네덜란드나 잉글랜드를 포함하여 많은 나라 사람들이 이 이론을 열렬히 환영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과 동료애라는 가정 위에 선 이 원리가 아메리카에 적용된 상황은 참 역설적이다. 그 명목 하에 아스텍 여인들이 개의 먹이로 던져졌고 아메리카의 전체 문화가 파괴되었던 것이다.
  
▲ 도미니쿠스파 선교사인 라스 카사스(Las Casas)는 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스페인 식민자들의 악행을 고발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이다. 이 그림은 그의 책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1667) 가운데 한 페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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