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연재하는 기사이다. 본격적인 물리학에 관한 이야기.

 

  5강 물리학과 물질세계
  
  지난 시간까지 서론을 마친 것으로 하고 이번 시간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공부한 내용 중에 혹시 질문 있어요? 질문 없으면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강의 계획표를 보면 이번 시간의 주제가 '물질의 구성요소'라고 돼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얘기로 시작하지요. 자연현상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자연과학의 목적입니다. 그 기본 전제로 물질이라는 것을 자연현상들의 실체라고 상정하였지요. 따라서 자연과학은 물질세계를 다루는 학문이고 특히 이를 주되게 다루는 분야가 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의 분야
  
  자연과학을 여러 종류로 나누었는데 그 중 물리학은 성격이 특이하지요. 처음에 지적했듯이 자연과학의 관점에서는 생명을 포함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게 다 물질에 의한 현상입니다. 따라서 물질을 다루는 물리학은 사실상 모든 자연현상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면 물리학과 다른 자연과학이 같은 자연현상을 탐구할 때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물리학이 생명현상을 탐구하는 경우 생물학과 어떻게 다를까요? 물리학의 차별성은 앞에서 논의한대로 보편지식을 추구하는 데 있습니다. 이론과학이란 면에서 거의 유일하고, 물질세계 전체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은 그동안 모든 자연과학의 모범이 돼 왔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물리학에 대해 공부하기로 하지요.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은 모두 물질에 의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책상, 분필, 공기, 우리 몸 등 모든 것이 물질이지요. 이러한 물질은 일반적으로 구성원과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물질은 매우 많은 수의 구성원, 곧 분자들로 이뤄져 있다고 이해합니다. 분자는 원자들로 이뤄져 있고,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들, 그리고 원자핵은 기본입자라고 부르는 양성자, 중성자 따위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지요.
  
  따라서 물질을 이루는 여러 단계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중에 어느 단계의 구성단위를 다루느냐에 따라 물리학을 분류합니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 따위의 기본입자, 곧 렙톤, 하드론 및 쿼크, 게이지입자 따위를 다루는 분야를 입자물리(particle physics)라고 합니다. 그런 기본입자들이 모여 원자핵을 형성하지요. 원자핵의 구조라든가 상호작용을 다루는 분야는 핵물리학(nuclear physics)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에 원자핵과 전자가 함께 원자를 만들고 원자가 몇 개 모여서 분자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원자나 분자를 다루는 분야를 원자분자물리(atomic and molecular physics)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런 원자나 분자가 엄청나게 많은 수가 모여야 비로소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물질이 됩니다. 우리가 시각이나 촉각, 또는 미각 등 감각기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물질은 아주 많은 수의 원자나 분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런 물질을 응집물질(condensed matter)이라고 부르고, 이를 다루는 분야를 응집물질물리(condensed matter physics)라고 합니다.
  

 

 

 

 


  한편 온도를 매우 높이면 원자나 분자에서 전자가 일부 떨어져 나가고 물질은 전기를 띤 이온(ion)들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플라스마(plasma) 상태의 물질을 다루는 분야가 플라스마물리(plasma physics)인데 응집물질 중 액체나 기체 등 흐름체를 다루는 유체물리(fluid physics)와 함께 분류하기도 합니다. 또한 빛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가 광학(optics)입니다. 일반적으로 빛과 관련된 물질 현상은 원자나 분자에 의한 빛의 흡수 및 방출을 통해 생겨나므로 광학은 원자분자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자연과학 분야와 융합돼 있는 천체물리, 화학물리, 생물물리, 의학물리, 지구물리 따위가 있습니다. 화학은 주로 분자 수준의 현상을 다룹니다. 따라서 화학물리는 분자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생명체는 기본적으로 많은 수의 단백질 같은 분자들로 이뤄져 있으므로 생물물리는 당연히 응집물질물리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천체물리는 물론 우주를 다루는데 그 안에는 기본입자, 원자핵, 원자와 분자, 그리고 별이나 은하 등 응집물질도 있습니다. 따라서 천체물리는 입자물리부터 응집물질물리까지 전체의 종합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지구물리는 많은 경우에 분자와 응집물질물리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연구 대상에 따른 물리학의 분야를 설명한 것인데, 물리학의 연구 방법, 곧 보편적인 이론 체계에 따라서 몇 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물리학의 방법으로서 이론 체계를 일반적으로 역학(mechanics)이라고 합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동역학(dynamics)과 통계역학(statistical mechanics)이지요.
  
  동역학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널리 알려진 것이 17세기 뉴턴의 고전역학입니다. 뉴턴 이후에도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나 해밀턴(William R. Hamilton) 등에 의해 완성도가 높아졌지만 기본적으로 뉴턴이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20세기에 와서 슈뢰딩거 및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등에 의해 만들어진 양자역학이 있지요. 이러한 동역학에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전제하느냐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통적으로 뉴턴 시대의 시간과 공간 개념에 따라 고전역학이 만들어졌고 양자역학도 마찬가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간 개념에 따라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상대론적 (고전)역학(relativistic (classical) mechanics), 상대론적 양자역학(relativistic quantum mechanics)이 만들어져서 비상대론적(non-relativistic) 고전역학 또는 양자역학과 대비됩니다.
  

 

 

 

 

 


  정리하면 물리학의 보편 이론 체계는 크게 동역학과 통계역학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동역학에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두 가지 방법이 있고, 각각 상대성이론에 입각했는지 아닌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한편 통계역학은 동역학으로부터 구축되는데 고전역학에 기초를 둘 수도 있고 양자역학에 기초를 둘 수도 있으나 엄밀하게는 양자역학에 기초를 두어야 일관성이 있는 이론 체계를 얻을 수 있지요. 통계역학을 써서 다양한 현상을 기술하는 분야를 흔히 통계물리(statistical physics)라고 부릅니다.
  
  이들과 조금 다른 개념의 방법으로 마당이론(field theory)이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공부하겠지만,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을 포함한 동역학에서는 대상을 알갱이라고 가정합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알갱이동역학(particle dynamics)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컨대 힘이 주어졌을 때 알갱이가 어떻게 운동하는지 다루지요. 이와 달리 대상을 알갱이 대신에 마당으로 상정하고 이론을 전개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마당이론이라고 부르는데, 알갱이동역학에서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구분과 마찬가지로 고전마당이론(classical field theory), 양자마당이론(quantum field theory)으로 구분합니다. 흥미롭게도 마당이론은 통계역학과 비슷한 면이 있어서 관련을 지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설명하지요.
  
  물리학의 범위
  
  물리학에서 다루는 대상을 여러 가지 눈금으로 살펴보기로 하지요. 먼저 거리 혹은 길이의 눈금으로 볼까요. 그림 1에서 제일 짧은 것을 10-20부터 생각해서 10-10, 100이 되고, 더 커지면 1010, 1020, 1030까지 생각할까요? 이른바 로그 눈금(logarithmic scale)으로 나타내었고 단위는 미터라고 합시다. 원자부터 시작하지요. 원자의 크기는 10-10 m 정도로 보통 옹스트롬(Å)이라고 부르죠. 10-9을 나노(nano)라고 부르니까 원자는 대략 0.1 nm 크기입니다. 그리고 10-15 m 정도에 원자핵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다루는 한계가 10-17m 정도인데, 원리적으로는 10-35 m 가량의 이른바 플랑크 길이(Planck length)가 이해의 한계로서 이보다 더 짧은 길이의 세계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 길이의 세계


  10-6 m, 곧 1 μm 쯤에서 비로소 생명이 시작합니다. 여기에 박테리아가 있지요. 인간을 비롯한 많은 생명체가 100 = 1 m 정도 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크기라 할 수 있겠네요.
  
  10-7 m 정도에 지구의 크기가 있고, 1011 m 부근에 지구와 해 사이의 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1016 m 정도가 1광년입니다. 1초에 30만 km를 가는 빛이 1년 동안 가는 거리지요. 그러면 안드로메다 은하는 어디쯤 있을까요? 지구로부터 대략 2백만 광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밤하늘에서 2백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를 보는 겁니다. 지금은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 다음에 1026 m 쯤에 이른바 퀘이사quasar라고 부르는 게 있습니다.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멀리 있는 천체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관측하는 현재 우주의 크기라 할 수 있지요.
  
  결국 물리학에서 다루는 건 10-35 m 에서 1026 m 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왼쪽 부분을 주로 다루는 게 입자물리고, 다음에 핵물리, 그리고 원자분자물리, 일상세계를 중심으로 해서 응집물질물리지요. 더 큰 오른쪽으로 가면 주로 천체물리가 됩니다. 물리학자들은 이를 가지고 극소에서 극대까지 다 다룬다고 말합니다.
  

▲ 시간의 세계


  시간의 눈금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아래 그림에 10-40 부터 1030 까지 표시해 놓았습니다. 단위는 초(s)입니다. 현재 원리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짧은 시간은 이른바 플랑크 시간(Planck time)으로 10-43 s 입니다. 반면에 10-15 s, 곧 1 fs 정도가 현재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입니다.
  
  지수를 나타내는 접두사를 잠깐 정리해볼까요. 103 이 킬로kilo, 106 이 메가Mega, 109 이 기가Giga, 1012 이 테라Tera입니다. 일상에서 쓰는 말로 thousand, million, billion, trillion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으로 페타peta, 엑사exa, 제타zetta, 요타yotta까지 있지만 많이 쓰이지는 않습니다. 작은 쪽으로 가면 10-3 이 밀리milli, 10-6 이 마이크로micro, 10-9 은 나노nano, 10-12 이 피코pico, 10-15 이 펨토femto, 그리고 10-18 이 아토atto지요. 단위에 붙여서 쓸 때에는 머리글자만 씁니다. 예를 들어 그램, 볼트, 미터, 초에 붙여서 kg, GV, mm, ps처럼 씁니다. 다만 마이크로는 밀리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스 문자 μ를 쓰지요.
  
  아무튼 서양에서는 지수가 3, 곧 103 = 1000배씩 올라갑니다. 말이 나온 김에 동양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볼까요. 만(104), 억(108), 조(1012), 경(1016), 해(1020) 등으로 지수가 4씩 올라갑니다. 그래서 큰 수를 쓸 때 네 자리마다 쉼표를 찍어야 하는데 서양을 따라 세 자리마다 찍으니 읽기에 불편하지요. 서양에서보다 큰 수의 개념이 더 발달해서 극(1048)까지 있고, 불교에서는 이보다도 큰 수로 불가사의(1060), 무량대수(1064)까지 있습니다.
  
  시간 눈금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1020보다 조금 짧은 데에 우주의 나이가 있습니다. 대략 1백 37억 년인데 우주에서 이것보다 긴 시간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니 물리학에서는 10-43 s 의 '찰나'로부터 1020 s 의 '영원무궁'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길이의 눈금에서와 비슷하게 짧은 시간 쪽은 입자물리가 다루고 핵물리를 거쳐서 10-15 s 쯤부터는 원자분자물리에 해당합니다. 10-9 s 쯤부터는 응집물질물리, 그리고 긴 시간 쪽으로 가면 물론 천체물리의 영역이 되지요.
  
  이번에는 에너지로 따져 볼까요? 10-5부터 해서 100, 105, 1010, 이런 식으로 나가지요. 단위는 전자볼트(eV)를 쓸 겁니다. 처음 보는 학생들도 있죠? 전자볼트라는 단위는 전자 하나를 1 볼트의 전압으로 가속시켜 줄 때 가지게 되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전기량의 단위는 쿨롱Coulomb(C)이지요. 전자가 지닌 전기량을 기본전하(elementary charge)라 하는데 1.6×10-19 C 정도이므로 전자볼트는 널리 쓰이는 주울(J; Joule)이라는 단위와 1 eV ≈ 1.6×10-19 J 의 관계가 있습니다.
  
  작은 에너지부터 1 eV 정도의 에너지까지가 응집물질물리에서 다루는 범위이고 그로부터 104 eV 쯤까지 원자물리에 해당합니다. 핵물리에서는 106 eV, 곧 MeV 부근을 다루고 입자물리는 그로부터 TeV 라는 높은 에너지까지도 다룹니다. 기본입자들이 가질 수 있는 에너지 크기가 이 정도지요. 재밌게도 입자물리는 길이가 짧은 (작은) 세계, 시간도 짧은 세계를 다루지만 에너지로는 제일 높은 걸 다룹니다. 물론 응집물질은 엄청나게 많은 수가 모여 있는 거니까 전체 에너지는 엄청나게 커지지만 여기서는 하나하나 구성원의 에너지를 말하는 건데, 이는 입자물리가 가장 큽니다. 이에 따라 입자물리를 흔히 고에너지물리(high-energy physics)라고도 부르지요.
  
  마지막으로 밀도의 범위를 생각해보지요. 가장 작게는 10-25 부터 크게는 1015 까지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단위는 kg/m3 (또는 g/cm3)로, 1 m3 부피만큼의 질량이 몇 킬로그램인가를 나타내는 거지요.
  
  가장 작은 10-22 은 바로 우주에 해당합니다. 우주의 평균밀도가 10-22 kg/m3 이지요. 우주 1 cm3 공간에는 대략 양성자 하나가 있을 따름입니다. 우주는 참으로 비어 있단 얘기지요. 물을 비롯한 보통의 응집물질은 103 부근에 있습니다. 109 이라면 엄청난 거죠. 불과 1 m3 의 부피가 109 kg 에 해당하니 손톱만큼의 양이 1 톤 정도로 무거워서 들 수 없습니다. 이는 하양잔별(white dwarf)에 해당합니다. 한자어로는 백색왜성이라고 부르지요. 밀도가 더 커서 1016 이나 그 이상에 있는 게 이른바 중성자별(neutron star)이라 부르는 거예요. 엄청나게 밀도가 큽니다. 손톱만큼의 양이 1천만 톤이 되기도 합니다. 상상하지 못할 만큼 엄청나지요. 그런가 하면, 1018 이상에는 이른바 검정구멍(black hole)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물리학은 범위가 실로 넓습니다. 여러 가지 눈금에서 가장 작은 것, 이른바 극소부터 가장 큰 것, 극대까지 모두 다룹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탐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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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성격에 대한 마지막 부분이다. 과학이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믿음이 깨진지는 오래 되었다. 과학도 예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우주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상상력!

 

 

과학의 합리성
  
객관성 다음으로 생각해 볼 성격으로 합리성을 들 수 있습니다. 과학이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왜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이론이 합리적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요? 과학이론이 어떻다는 건가요?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의미도 몇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도구적 관점인데, 결국 주어진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으면 합리적이라는 겁니다. 자연과학의 목적은 자연현상의 이해이므로, 자연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면 합리적이라는 거지요.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것으로는 불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자연 현상을 이해하게 하는 이론 체계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행성의 운동을 설명할 때, 지구중심설과 태양중심설이라는 서로 다른 이론 체계가 존재하지요. 두 가지 모두 행성의 운동 이해라는 주어진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는 도구적 목적의 의미로만 합리성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떤 기준으로 합리성을 생각해야겠어요?
  

 

 

 

 


  이에 대해 앞에서 간단하게 논의를 했습니다. 이른바 '좋은 이론'이라고 부르는 판단 기준이 있었지요. 이를 테면 '경험적 적합성'이라고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이론'이라는 판단도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현상을 얼마나 정밀하게 설명해 주느냐를 생각해 볼 수 있고, 또는 정밀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더 넓은 범위를 설명해 줄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이론과 B라는 이론이 있는데 A라는 이론은 어떤 현상은 기막히게 잘 설명하지만 다른 건 설명하지 못하고, B라는 이론은 이런 거 저런 거를 모두 설명하지만 정밀하지 않다고 합시다.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이론일까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요.
  
  또는 설명의 능력과 예측의 능력이 다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떤 이론은 지금 이 현상을 잘 설명하는데, 이에 반해 어떤 다른 이론은 지금 현상에 대한 설명은 좀 떨어지지만 예측을 훨씬 잘 할 수 있다든가. 하여튼 여러 가지가 서로 대립할 때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경험적 적합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거지요.
  
  결국 이론의 합리성에 관해서 도구적인 합리성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경험적인 적합성으로도 불충분할 수 있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과학 활동의 사회적 요소들, 가치와 의미의 문제 등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합리성도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고요.
  
  과학의 역사성
  
  다음에는 역사성이라는 문제입니다. 역사성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과학은 역사성, 쉽게 말하면 전개과정이나 역사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전개 과정과 무관하다는 것, 곧 어떻게 출발했던 간에 결론은 하나로 도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출발점에 관계없이 동일한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 한 가지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의존한다는 것인데, 전개과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우발성(contingency)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 거지요. 이 두 가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산꼭대기에 올라가는데 꼭대기는 하나니까 어느 쪽으로 올라가도 다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 한 가지 생각이고, 그렇지 않고 어느 쪽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모두 다른 데로 가게 되고, 과학이 다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 게 다른 한 가지입니다.
  
  하나만 얘기하고 끝내겠습니다. 페미니즘의 관점이 이런 것입니다.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은 앞에서 한 번 얘기했지만, 분명히 남성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지금도 물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남학생입니다. 물리학자도 대다수가 남자입니다. 생물이나 화학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남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물리학 사회가 매우 남성 중심적인 지금의 모습이 됐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만약에 여자들이 물리학을 주도했다면 지금 물리학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럴지, 아니면 여자들이 했어도 결국 물리학의 모습은 지금과 똑같을지, 어느 쪽이겠냐는 겁니다. 두 가지 의견이 있겠네요. 어떻게 생각해요?
  

 

 

 

 


  학생: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든 간에 동일한 결론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요?
  
  학생: 물론 발달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곧 어느 쪽은 더 발달하고 어느 쪽은 덜 발달하는 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끝까지 가면 같을 것 같아요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여자들이 주도해서 물리를 했어도 내용은 지금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혹시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 있어요?
  
  학생: 저는 1년 전 쯤에 어떤 책을 읽었거든요? 물리학이 처음 유럽 고대에서 중세 시절에 자연철학으로 발전했고 그때 자연철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종교와도 연관이 있었죠. 종교에서는 흔히 남성은 상위에 두면서 좋게 평가하고, 여자는 좀 안 좋은 쪽으로 평가를 한 걸로 기억해요.
  
  그러니까 실제로 인류의 생각이 고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여성 중심에서 남성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여성적인 대지, 곧 지구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남성적인 태양의 신 아폴로(Apollo)로 중심이 바뀌면서요. 그건 타당성이 있지만, 만일에 여자가 중심이 됐다면 과학의 내용이 바뀌었을까요? 사실 여러 가지 엇갈린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답이 있는 건 물론 아니고, 두 가지 답이 다 일리가 있겠습니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과학자도 인간이고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사회의 여러 가지 관념체계의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사성이 없을 수는 없겠네요. 그러나 또한 반대 면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자연이라는 아주 강력한 구속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현상의 관측을 통해서 적어도 어림이라고 하는 일관성(consistency), 일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강력한 구속 조건입니다. 그것이 자연과학이 다른 분야와 완전히 다른 특별한 형식을 가지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결국 두 가지 면이 다 있습니다. 강력한 구속 조건이 있지만, 이것만 갖고 한 가지로 결정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거기에 사회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텐데 기회가 되면 얘기하지요.
  
  오늘은 딱딱한 얘기들이 많이 나왔네요. 이것으로 서론을 끝내고 다음 시간부터는 물리학의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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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오마이뉴스에 났다.

 

까만 얼굴과 두꺼운 손마디를 보면, 그는 딱 농부다.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으면 좋은 세상이라고 '있음과 없음'으로 세상의 진보를 논하는 그는 철학자다. 가난한 도시 사람들에게도 유기농산물을 먹이고 싶어, 원가 5000원짜리 유기농 밥을 1000원에 파는 그는 휴머니스트다. 또 노동자와 농민의 진정한 연대를 말하고 20대 대학생들에게 "영어책 덮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분명 투사다. 

그의 이름은 윤구병이다. 1943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아홉 형제 중 막내다. 그의 첫째 형은 윤일병이고, 그의 여덟번째 형의 이름은 윤팔병이다. 부모님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형제 중 6명은 6·25 전쟁 때 목숨을 잃었다. 상심한 아버지는 나머지 자식을 농부로 키우고 싶었다. 그게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그는 학교에 가지 않고 '소년 농부'로 유년을 보냈다. 친척의 제안으로 뒤늦게 학교에 들어간 그는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가는 '괴력'을 보였다. 졸업 후에는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충북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어린이를 위한 책 <개똥이 그림책> 등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6년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전북 부안 변산면 운산리로 내려갔다. 농부가 된 그는 '변산공동체'를 일궜다. 남들은 이상한 눈으로 봤지만 그는 행복했다. 또 최근에는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을 설립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유기농식당 '문턱없는 밥집'을 서울 서교동에 열었다. 역시 가난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들만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가 오는 3월 문을 연다. 역시 무상교육이다. 

과거엔 '걸어다니는 병실'... 귀농하고 병원 가본 적 없어

소년 농부에서 철학교수로, 그리고 다시 농부로의 귀환. 윤구병은 왜 이런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그가 추구하는 것, 그리고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의 말을 듣고 싶었다. 한 쪽에선 '절망'이란 단어가 쉽게 들리고, 또다른 쪽에서는 '오렌지'와 '어륀지'의 차이를 논하는 세상이라 더욱 그랬다. 
지난 15일 <오마이뉴스> 취재진 5명은 전북 부안 변산공동체로 향했다. 그 곳에 2박 3일을 머물며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일하고 밥을 먹었다. 그래야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윤구병 선생과는 16일 밤 공동체마을 손님방에서 마주 앉았다. 우리 사이에는 막걸리 한 박스가 놓여졌다. 그리고 삶은 꼬막과 유기농 배추김치가 안주로 올라왔다. 이른바 '막걸리 인터뷰'였다. 
쓰다보니 길어졌다. 그러나 뒤의 인터뷰는 더 길다. 감히 일독을 권하며, 이만 줄인다. 



  
(왼쪽)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윤구병 선생이 대안학교 기숙사 공사에 사용할 돌을 나르고 있다. (오른쪽) 16일 밤 변산공동체 손님방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들과 마주앉은 윤구병 선생앞에 막걸리와 함게 삶은 꼬막과 유기농 배추김치가 안주로 올라왔다.
ⓒ 박상규/김혜민
윤구병

- 1년 365일 중 360일 막걸리 마신다고 들었다. 왜 그렇게 좋아하나.

"땀 흘리면서 일하다 보니까, (막걸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게 들어가야 힘도 나고 일이 잘 된다. 일종의 마취제다(웃음)."

- 오늘처럼 막걸리 마시면서 인터뷰 해본 적은 있나.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 나눌 때는 늘 술이 있었다."

- 1년에 막걸리를 몇 병 정도 마시는 것 같나?

"헤아릴 수 없다. 하루에 5병 마실 때도 있고, 없을 때는 그냥 참기도 한다."

- 건강은 어떤가.

"올해 만 65세다. 계속 대학에 있었으면 올해 정년퇴직이다. 과거에 나는 걸어 다니는 병실이었다. 갑상선·당뇨·비염 등을 앓았다. 귀농 이후 평소 먹던 음식의 양을 3분의 1로 줄이고, 씹는 건 5배 늘렸다. 그렇게 하니까 병이 스스로 낫더라. 귀농 13년째인데, 그동안 병원 가본 적이 없다."

잘 웃는 윤구병도 화가 난다 "농사꾼 주제에...?"

- 선생은 어린 시절 농사를 지었고, 대학에서는 철학도였다. 또 대학교수를 했고, 다시 농부로 살며 변산공동체를 일궜다. 그동안 어린이책을 여러 권 냈고, 곧 의학책도 나온다. 선생이 삶을 통해 일관되게 추진하는 건 도대체 뭔가.

"내가 살아온 세상, 또 지금의 세상이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우린 이런저런 이유로 험한 세상에서 살았다. 우리 뒤에 태어난 사람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세상보다 훨씬 좋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고 나쁜 세상일까. 간단하다.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으면 좋은 세상이다. 반대로 없어야 할 것이 있거나,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나쁜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에 없을 것이 있고,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만들어야 하고, 없어야 할 것이 있으면 없애야 한다. 

 

 

 

 

 

나쁜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에겐, 나쁜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리고 이들은 없어야 할 것을 없애는 사람을 파괴자라고 부른다. 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창조적인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만들어내자고 하면, 기존 제도를 전복하려는 무모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경계하고 따돌린다. 반대로 기성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장 모범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쁜 세상은 계속 지속되고,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열망은 꺾이게 된다. 우리는 비겁하고 힘이 약해서 체제 순응적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조차 그렇게 살게 해선 안 된다.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데 조그마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시간들이 많아서 마음이 씁쓸하다."

- 선생은 없어야 할 것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삶을 바꿨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 따돌림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걸걸하고 웃음이 호탕한 윤구병. 그는 이 질문을 받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에게도 상처는 많은 듯 했다.   

"있었다. 당연하다.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있을 것이다. 왜냐면 사실 (지금의 내 삶은) 현 세상에는 위험한 것이다. 기존 질서를 자연스런 것으로 보고 더 이상 나은 질서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세상에는 없앨 것이 많다는 생각 자체가 불온한 것일 테니까. 기존 질서에서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나를 나쁘게 보는 건 당연하다." 

- 그런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은 것 같다. 

"상처도 있었지만… 그건 크지 않다.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한 예로, 내가 민족의학연구원을 연 건 사람들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농사꾼 주제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내가 딴 마음을 먹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내가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화가 난다."

"농부 된 게 신기하다고? 당신들의 질문이 거꾸로 됐다"




  
변산공동체 주민들이 오전 작업을 마친 뒤 점심식사를 위해 공동체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변산공동체

- 대학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변산으로 내려와 농부가 됐다. 우리 대학생들이 봤을 땐 신기할 뿐이다.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 (김혜민 인턴기자가 물었다.)

그 동안 윤 선생은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물음을 뺄 수는 없었다. 지겨울 법도 한데, 윤 선생은 눈을 반짝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인터뷰 질문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해 대답했다. 

"대학생이라고? 몇학년? 자, 생각을 달리 한 번 해보자. 여러분들은 안정된 직장과 삶을 말했는데, 실제로 대학교수가 정말 안정적일까? 대도시 중산층의 삶, 그리고 지금의 세계체제가 정말 안정적일까?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 인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믿고, 미래가 예측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인류의 상황은) 지난 100년, 50년 사이에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수십만 년 동안 지구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생체에너지를 이용해서 살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생체에너지는 순환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쓰레기가 없다. 

사람 힘으로 안 되면 말이나 소·낙타를 이용했다. 그런데 200년 사이에 물질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삶이 시작됐다. 도시의 삶은 90% 이상이 물질에너지에 의존한다. 그런데 물질에너지는 수렴에너지가 아니다. 석유·석탄 태우고, 우라늄 폭파시키는 파괴에너지다. 이것들이 하늘·수질·땅을 오염시킨다. 

조상들이 준 맑은 하늘, 깨끗한 물과 땅을 지난 200년 동안 모두 더럽히면서 살아왔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깨끗한 자연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 우리 때 다 말아먹겠다는 결심인 것 같다. 이건 안 된다. 물질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은 환상이다. 국제관계와 고갈에 따라서 교란이 올 수 있다. 도시에 전력이 끊기면 일주일도 못 버틴다. 

그러면 전부 흩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생체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을 전수받고 익혀놔야 한다. 변산공동체가 그런 곳이다. 이런 곳이 자꾸 늘어나야 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삶이 가장 안정적인 삶이다. 현대 교육 체계가 물질중심인데, 그것이 사회와 개인의 삶을 안정시키는 게 아니다. 

실제로 많은 생명체는 생체보시를 하면서 어울려서 살 길을 찾는데, 인간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사는 길을 찾지 않았다. 물질에너지 공급이 끊기면 일주일도 견딜 수 없는 삶을 안정적인 것으로 보고, 다른 생명체와 상생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훨씬 안정된 길을 찾았다. 당신들의 질문이 거꾸로 된 것이다."

- 생명과 환경을 중시하는 것 같다. 경부운하에 대한 논란이 큰데, 걱정이 많겠다. 

"다른 생명체하고 상생할 생각은 없고, 사람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게 경부운하다. 우리 민족은 강산을 하나의 생명체로 봤다. 그래서 산 하나 물 하나 건드리는 걸 조심스러워 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그런 우리의 방식을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는 삶의 기운으로 봤다. 그래서 혈맥을 끊기 위해 몰래 쇠말뚝 몇 군데 박지 않았나.  

그런데, 이젠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인위적으로 공개된 상황에서 (혈맥을) 죄 끊어놓겠다고 한다. 물길도 끊고, 산줄기도 끊고…. 살아있는 국토의 관절을 끊고 손발을 자르려 하는데, 이걸 개발이라고 부른다. 너무 놀라운 생각이다. 그건 국토를 죽이는 길이고, 국토에서 사는 생명체를 죽이는 길이다. 용납해서는 안 된다."

"컨닝이 나쁜 게 아니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 변산공동체 마을.
ⓒ 권우성
변산공동체

- 이제 변산공동체 이야기 좀 해보자. 공동체가 13년째 이어졌는데, 성과는 있나.

"거미나 벌은 부모님한테 집짓는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지을 수 있다. 스스로 본능으로 집을 짓는다. 또 들쥐나 길섶의 강아지풀도 모두 제 앞가림을 한다. 그러나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집은 물론 옷감도 못 만들고, 곡식을 기를 수 없다. 배워야 살아남는다. 개체의 유지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건 교육을 통해서 이뤄진다. 

사람은 모여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안경·신발·미용…, 스스로 못하지 않나. 인간은 서로 돕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다. 더불어 사는 힘을 길러야 한다. 두 개의 목표만 달성하면 교육은 끝이다. 스스로 앞가림 할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게 그것이다." 

- 변산공동체가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여러분들 컨닝해봤나? 유명한 이야기 하나 하겠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 아메리카에 호피인디언이 있었다. 백인들이 이들을 보호구역에 가둬두고 근대 교육을 시키겠다고 덤벼들었다. 백인선생들이 교실의 똑같은 책걸상에 호피인디언을 앉히고 시험을 보게 했다. 백인들은 '절대로 옆 사람것 보지 말고, 보여주지 말고, 서로 의존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는 건 부도덕한 짓이라는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여러분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이게 호피인디언에게는 안 통했다. 시험 시간에 우르르 서로 보여주고 토의하고 난리가 났다. 백인들은 왜 그러냐고 야단을 쳤다. 호피인디언들이 답했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늘 같이 모여 상의해 최선의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신들이 시험에 집착을 하는 건 이게 중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우린 중요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서로 의논해서 최선을 답을 찾으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아는데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모르는데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이건 살 길을 찾지 않겠다는 말이다. 알면 가르쳐 주고 나눠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들은 당신네들이 '아는데도 가르쳐 주지 말라, 모르는데도 묻지 말라'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맞다고 보지 않는다.' 

이 말처럼 우리가 살 길을 찾으려면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이게 더불어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냐'고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컨닝이 나쁘다고 하는데, 컨닝을 나쁜 제도로 만든 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왜 컨닝을 하게 만드나. 모르면 서로 의논해서 최선의 답을 함께 찾는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그렇게 대들어야 한다. 변산공동체는 더불어 살고 있다."

- 처음 공동체 열었을 때 뭐가 가장 힘들었나.

"그동안 스스로 앞가림하는 걸 전혀 못해봤다. 언제 씨 뿌리고, 언제 김을 매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 우리 마음대로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씨뿌리는 시기 놓치면 싹이 안 나고, 김매는 시기 놓치면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 곳 마을 공동체 사람들에게 농사일을 물어봤다. 내가 좋아하는 풍천 할머니가 있는데, 그 분이 그러더라. 여기는 감꽃 필 때 검정콩 심고, 감꽃 질 때 메주콩 심는다고. 감꽃은 해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다르다. 그러니 풍천 할머니의 말이 얼마나 과학적인가. 공동체 어른들이 우리 앞가림을 가르쳐 줬다. 마을 공동체가 그래서 소중하다."

'도시 부적응자'의 공동체 적응... 역시 사람이 힘들다




  
변산공동체 사람들이 집 지을 때 사용할 나무를 다듬고 있다.
ⓒ 박상규
변산공동체

- 공동체 내에서의 어려운 문제는 뭔가.

"여긴 종교·이념 공동체가 아닌 생활공동체다. 굉장히 느슨한 공동체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도시에서 적응 못해 들어온 사람들인데, 여기라고 적응이 쉽겠나. 예전에 우리 공동체에 수녀님들이 찾아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내가 그분들에게 물었다. 10년 동안 예비수녀 과정 지나고 종선서원을 하면 몇 명이나 남느냐고. 그랬더니 10명 중 2~3명이 남는다더라.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역시 사람관계 때문이라더라.

 우리 공동체는 개인 공간이 없다. 여럿이 최소한 1년 이상 살아야 한다. 그 후에 독립이 가능하다. 함께 살다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것이다. 밤에 이를 가는 사람, 코를 고는 사람…. 이런 사람들과 24시간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봐야 한다. 

수녀원은 개인적인 독립공간이 주어지기도 한다더라.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이란 '빽'과 사랑으로 무장돼 있다. 우리 공동체? 하나님 빽도 없고 사랑으로 무장된 사람도 없다. 도시에서는 등 돌리면 돌아갈 자기 집 있고, 직장에서는 퇴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긴 개인 공간이 없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죄를 덜 짓고 사는 사람들이다. 착한 사람들이니까 남는 것이다. 공동생활 1년 지나고 나면 독립하고 싶어 하는데, 자기 삶의 시간을 자기가 통제하고 싶어서다. 인간관계의 문제, 역시 가장 어려운 일이다."

- 그동안 공동체에 왔다가 떠난 사람은 얼마나 되나.

"물론 손님처럼 몇 주 혹은 며칠 머물다 떠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1년 이상 있던 사람들은 거의 근처에 포진해 있다. 도시로 다시 안 간다. 9시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남의 밥 먹기 위해 싫은 일 해야 하는 통제 속의 삶을 끔찍해 한다.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는 것이다." 

- 처음에 온 사람들의 태도는 어떤가. 적응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처음엔 불만이 많다. 기존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오늘은 고추 심자, 마늘 심자'하면 속으로 '꼭 오늘 해야 돼?'하며 불만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건 자연이 사람의 입을 빌어서 하는 말이란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 공동체에 들어오고자 하면 다 받아주나. 면접 같은 건 없나.

"면접은 물론 조건도 없다. 물론 처음 3박 4일 함께 지내는 게 원칙이고, 더 있고 싶으면 그러라고 한다."

- 범죄자나 탈옥한 사람이 와도 받아주나.

"여긴 과거를 묻지 않는다."





  
윤구병 선생이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집 마당에 앉아 마을을 방문한 지인들과 오마이뉴스 기자들에게 식혜와 곳감을 대접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윤구병

 "초기 5년간은 적자... 지금은 자급자족 체계 마련돼"

- 공동체의 땅은 어떻게 구입하고 관리하나.

"처음엔 내 퇴금직과 책 판매 인세로 구입했다. 지금 공동체 식구들이 일하는 땅은 여러 가지 형태다. 기존 농촌 노인들의 땅을 빌리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200평에 쌀 한 가마니를 준다. 독립가구에게 공동체 땅 일부를 내주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농산물의 8할은 본인이 갖고, 2할은 공동체 신협기금으로 들어간다."

- 돈 관리는 어떻게 하나?

"이런 것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공동체식당 안에 돈을 두는 곳이 있다. 필요한 사람이 그걸 꺼내 쓰고, 어디에 썼다고 기록으로 남기면 된다."




  
변산공동체 주민들의 소박한 밥상.
ⓒ 권우성
변산공동체

- 이 곳에선 유기농산물만 먹는다. 그래도 가끔 라면이 먹고 싶고 그럴 텐데.

"솔직히 그게 제일 불편한 것 중 하나다. '불량식품'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사람에 따라서 콜라도 피자도 먹고 싶을 것이다. 누구도 말리지 않지만, 돈 가져다가 라면 사먹었다고 하면 창피하지 않나(웃음). 그래서 자기 스스로 통제를 하는 것 같다."

 - 공동체 재산은 적자인가 흑자인가.

"처음 5년은 농사를 지을 줄 모르니까 적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급자족 체제가 마련됐다."

- 변산공동체는 안정적으로 13년 동안 유지됐다. 비결이 있나.

"변산은 땅이 좋다. 바다가 있고, 들판이 있고, 산이 있다. 풍요로운 곳이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주민들에게 '흉년이 들면 뭐 먹고 살았냐'고 하니까 '갯벌에서 낙지 잡아먹고 살았다'더라(웃음). 몸만 제대로 놀리면 흉년도 견딜 수 있는 곳이다."

- 겸손한 말인 것 같다. 그래도 뭔가가 철학과 원칙의 힘이 있지 않았겠나. 

"그런 거 없다. 정말 땅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여긴 농사를 1년에 두세 번 지을 수 있다."

"가난한 동네에도 '웰빙' 바람이 불어야 한다"

- 기존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마을에 계시던 분들도 처음엔 다 유기농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이 없어 일을 못하니 농약을 쓰는 것이다. 주민들이 우릴 처음 봤을 때, 캠핑 온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일이 서툴기 짝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치지 않고 계속 성실히 일하고 마을잔치가 있으면 심부름도 하고 하니까, '건달은 아니네' 하며 인정한다. 그렇다고 아직 완전한 화학적 결합을 한 것은 아니다."

- 도시 사람들은 유기농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유기농산물은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데.

"'웰빙' 바람이 잘 사는 동네만 분다. 도시 사람들 중에서는 하층의 막노동 하는 사람들,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이 건강이 안 좋다. 그런데 그들은 돈이 없어서 유기농 못 사먹는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유기농산물을 나눠먹기 위해 '문턱없는 밥집'을 열었다. 가난한 동네에서도 웰빙 바람이 불어야 한다. 

도시의 가장 어려운 사람하고, 농촌에서 힘겹게 농사짓는 유기농가하고 탄탄한 연대를 열어보자고 그 식당을 열었는데, 자꾸 확산돼야 한다. 없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의 사정을 잘 안다. 그렇게 없는 사람들끼리 연대해야 참된 연대다. 

도시의 노동자들이 파업기금 산더미처럼 쌓아놓아도 소용없다. 도시에서는 돈 없으면 죽는다. 한국노총이 자본가와 결합했다는 이야기 들리는데, 지금도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이런 요상한 이야기도 생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나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답게 살 수 없다면 끝까지 싸워라. 우리가 쌀 대줄 수 있다. 정 못 살겠으면 우리랑 농사짓자. 우리가 뒤에 있다. 이런 게 돼 있으면 훨씬 더 원칙을 갖고 건강하게 싸울 수 있다. 이게 진정한 도농연대고, 노동자-농민의 결속이다." 

변산공동체에서도 영어교육이 있을까




  
16일 낮 올 3월 개교를 앞둔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대안학교(위 사진) 주변에서 기숙사를 짓기 위해 공동체 주민들이 나무를 다듬고 흙벽돌을 직접 찍어내고 있다.
ⓒ 권우성
변산공동체

- 오는 3월이면 새로 학교를 여는데, 어떻게 운영할 생각인가.

"기초생활수급자 집안에서 중1부터 고3까지 학년마다 5명씩 뽑아 무상교육을 할 생각이다. 오전에는 철학·영어·수학·인문학·예술 등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텃밭가꾸기·목공예 등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배운다.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이 다니고 싶으면… 가출을 해서 오는 방법이 있다(웃음)."

- 최근 사회에서 교육만큼 뜨거운 화두가 없었다. 느낌이 어땠나?

"과연 이게 맞나 싶다. '조기 교육' '영재 교육' 등 온갖 이름으로 아이들을 학대한다. 적어도 취학 전까지는 아이들이 춤추고 뛰어놀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하게 둬야 한다. 많은 부모들에게 과거 시골에서 놀다가 밥 때를 놓친 기억이 있냐고 물어보면 다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가 참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은 다 방에 가둬두고 영어를 가르치고, 각종 학원 교육을 시킨다. 왜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학대하나.

맘껏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산과 들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나. 여기 아이들은 자기 삶의 시간을 자기가 통제하는 걸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 영어 몰입 교육이니 하면서 홍역을 치르기도 했는데. 

"만약 (이명박 당선인이) 그런 생각이라면 외교력 발휘하고 국민들 설득해서 그냥 미국의 제 51번째 주로 들어가자. 미국의 삶의 방식·경제체제·가치관이 우리의 살 길을 열어준다면 미국에 편입하지, 뭐 하러 독립 국가를 유지하나."

- 변산공동체에서도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치나.

"한다.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도시와 다르다. (영어가) 경쟁의 도구로 사용되면 재난이다. 서로 돕는 상생의 수단으로 봐야 한다. 영어 교육은 필요하지만 모두가 배울 필요는 없다. 꼭 배워야 할 사람이 징검다리 노릇을 해주면 된다."

"끝까지 싸워라, 그 뒤엔 우리가 있다"

- 지난 대선 즈음, 그리고 대선 후에 진보진영에서는 '절망'이란 표현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대선에서 누가 지고 이기는 건 부수적인 문제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자. 진보가 좋을 때가 있고, 보수가 좋을 때가 있다. 100% '꼴통' 보수가 (집권해야) 좋은 세상도 있다.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변화하면 안 되지 않나. 여기선 꼴통 보수가 제일 좋은 것이다. 

그런데 있을 것은 하나도 없고 없어야 할 것 투성이면 전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혁명을 하자는 진보가 최고의 가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없을 것이 많고 있을 것이 아직 적은 사회이기 때문에 진보의 가치가 중요하다. 진보는 무조건 옳고 보수는 나쁘다고 보지 말자. 

미래는 아직 모른다. 새 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겁먹고 있는 것 같다. 당선인은 어렵게 살았고 몸으로 깨우쳤다고 말한다. 그의 주변에는 아주 보수적인 사람도 있고, 진보에 앞장섰던 사람도 있다. 우선 지켜보자. 다만 대운하, 그 일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가 있나.

"살 길이 없으면 죽어야 한다. 죽을 각오로 해야 한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힘들지만, 운동은 움직이는 것 아닌가. 고착되고 바뀔 수 없다고 하면 운동은 중지된다. 거기서 절망이 생긴다. 제 앞가림을 하면서 타인과 함께 사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그걸 앞당기기 위해서 하는 게 운동이다.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가,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힘이 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게 있다면 긍정적인 힘이 생길 것이다. 이 힘을 남과 함께 공유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나. 그러면 절망할 틈이 없다. 가슴으로 나누고 몸을 움직이는 사람은 절망할 틈이 없다. 자꾸 머리로만 생각해서 그렇다."

- 선생이 갖고 있는 희망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보면 뒤늦게 정년을 맞이한 것이다. 서울에서 65살이면 전철표도 공짜다. 대학교수가 정년이 늦는데, 대학에 있었어도 올해 정년이다. 65살이 넘어도 일할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몸을 놀리고 마음을 써야 한다. 농사일에는 계약직도 임시직도 없다. 농사에는 어린애부터 나이 많은 사람까지 할 일이 다 있다. 정부는 실버타운이니 그 따위 소리 하지 말고 시골살림에 예산을 대폭 할애하라.  

수용소에 있건 실버타운에 있건 다 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야 한다. 이런 곳에서 나 스스로를 내밀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

"나 없어도 공동체 잘 굴러간다, 이제 떠나야지"



  
전북 부안군 변산공동체 윤구병 대표.
ⓒ 권우성
윤구병

- 곧 5월이면 이 곳을 떠나 세계 곳곳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내 기운은 물이다. 물은 밑으로 흐르지 않나. 대학 때도 길 걷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 뭔가가 돼 있더라. 그럼 다시 화들짝 놀라서 다시 길을 걷는다. 지금도 여러분들이 내가 뭔가 돼 있어서 찾아 온 것 아닌가(웃음). 모두 나를 속박하는 일이다. 여러분들 기대대로 살아야 하니 얼마나 답답한가. 

나를 존경하지 말고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 이미 저질러놓은 것이 많고, '뻥' 친 게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솔직히 불편하다. 이제 떠나야지. 나 없이도 이제 (변산공동체) 잘 굴러간다. 마음껏 놀았지 뭐. 난 복이 많은 사람이다."

- 그 복을 여기 있는 대학생들에게 좀 주면 어떤가. 

"20대는 박사 학위를 받아도 88만원 밖에 못 받는 세상 아닌가(웃음). 오죽하면 우석훈 박사가 짱돌을 던지라고 하나. 여러분 선배가 다 차지하고 자기들이 이 세상 다 말아먹고 하나도 안 주려고 한다. 

맑은 하늘, 맑은 물, 땅 한 뙤기 남기지 않고 다 망가뜨리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토익·토플 만점 받아도 소용없고, 머리 굴려도 소용없다. 몸 놀리고 마음 써서 함께 더불어 사는 길을 먼저 찾아라. 자기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맞서는 게 좋다. 영어책 덮고 짱돌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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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영 선생의 과학 이야기기이다. 점차 흥미로운 이야기로 접어들고 있다.. 

4강 과학의 성격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과학자가 속한 과학자 사회의 영향도 받지만 일반 사회, 곧 일반인이 속한 전체 사회의 지배적 관념체계의 영향도 서로 주고받습니다. 이것을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하는데, 과학 활동이 시대정신과 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지난 시간에 지적하였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17세기부터 21세기까지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과학은 결국 인간의 활동입니다. 인간의 활동이니까 사회와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과학과 가치
  
  이에 대해 이른바 가치(value)의 문제가 과학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각해 봅시다. 두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보지요. 먼저 과학의 목적이 자연을 이해하려는 것임을 고려합시다. 과학 활동이 자연현상의 객관적 탐구라면 당연히 보통 의미로 가치라는 것이 개입될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적어도 제대로 된 과학 활동은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자연현상을 객관적으로 탐구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가치도 여기에 개입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관점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자연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해석하는 활동이라는 사실에서 봅니다. 해석하는 과정의 보편적 체계로서 이론은 결국 과학자가 만들어낸 창작물이고, 말하자면 우리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지 실재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자연 현상에 정말 어떤 이론이 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다시 말해서 이론은 인위적 구조물입니다. 이는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그것은 당연히 기존의 가치 체계, 가치 관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가치 관념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 해석이 가치중립이 아니고 가치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두 가지 견해가 다 존재할 수 있겠네요, 자연과학이 과연 가치중립이냐, 가치의존이냐에 대해서. 여러분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자연과학이 가치의존일 것 같아요, 가치중립일 것 같아요? 가치 의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 다음에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요? 왜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손든 세 사람?
  
  학생: 기술을 탐구하는 거니까요.
  
  아, 기술을 탐구하는 거고, 거기에는 가치가 개입될 수 없다. 그럼 가치 의존적이라고 말한 학생 얘기해 봐요. 왜 가치의존적인가요?
  
  학생: 제가 다른 과학 수업을 듣는데 그때 요즘엔 과학이 기술하고 연관을 가지고, 기술을 개발하는 건 기업이나 어떤 상업적인 힘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요즘의 과학은 뭐라 그럴까 뭔가 의도에 의해서 연구가 이뤄지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의 관련성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런 면이 현대사회에서 두드러지니까? 그렇다면 만일 기술과의 관련이 없다면 과학 자체로서는 가치중립일 거라고 생각하나요?
  
  학생: 중립이다 아니면 가치 의존이다 할 수 없지만 지금은 거의 가치 의존적일 거 같아요.
  
  자연과학이 과연 가치중립인지 가치의존인지 하는 문제를, 다른 분야와 비교해 봅시다. 사회과학이나 예술, 인문학 등과 비교해 볼까요. 아마도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등을 가치중립이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누가 봐도 가치의존으로 보이지요. 그런데 자연과학은 적어도 그것보다는 가치중립적 요소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자연과학과 가치는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요. 브로노브스키(Jacob Bronowski)라는 과학사상가가 ≪과학과 인간 가치(Science and Human Values)≫라는 책에서 과학과 가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했습니다. 그의 견해를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관심 있는 학생은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번역도 되어 있지요. 과학과 가치에 대해 관련된 과학사적 문제가 많지만 교양강의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니 생략하고, 과학의 성격에 대한 것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과학의 객관성
  
  흔히 과학의 객관성이란 말을 씁니다. '객관성'이란 말을 잠깐 생각해 봅시다. 예컨대 '과학은 객관적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이겠어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과학의 객관성에 관해 가장 극단적인 주장은 이른바 '과학적 실재론(realism)'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 과학적 실재론은 과학 이론이 결국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의 실재(reality)를 반영한다고 믿는 겁니다. 물론 옳은 과학 이론을 말하는 건데 적어도 그것은 참이고 진리라는 이야기지요. 여기서 말하는 진리라는 것은 철학의 독단(dogma)이나 종교의 초월적 진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어림(approximation)으로는 참'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공기가 주로 산소와 질소로 이뤄져 있다고 누구나 믿잖아요? 그것을 안 믿는 사람 있어요? 산소는 두 개의 산소 원자로 이뤄져 있고, 질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산소 원자 한 개와 수소 원자 두 개가 붙은 H2O 분자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안 믿는 학생 혹시 있어요? 다 믿죠? 이게 바로 과학적 실재론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보니까 다 믿잖아요. 그래서 과학이 객관성이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다른 의견이 없나요?
  
  학생: 시대별로 객관성이 좀 다르지 않나요? 역사적으로 본다면 계속 객관성이 무너져 온 것 같은데요.
  학생: 종교 같은 것은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좋은 지적이네요.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실재론은 모두 믿으니까 그렇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 전에 왜 믿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H2O 분자가 존재한다고 다 믿잖아요. 왜 믿죠? 그것은 종교적 믿음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일 겁니다. H2O 분자가 있다는 것을 왜 믿나요? 이는 우리가 하느님이 있는지를 믿느냐 하고는 다르게 실제로 관측 결과가 있으니까 믿는 거지요. 관측을 통해서 우리의 감각 기관과 연결을 하는데 그 결과의 타당성 때문에 믿는 겁니다.
  
  정량적인 관측 결과는 수치로 표시하지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결과의 수치가 비슷하다고 해서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과학 이론 체계가 주는 값이 10인데, 관측해 보자 10.00001이 얻어졌다면 그 이론은 맞는 건가요, 안 맞는 건가요?
  
  학생: 어느 정도 가까우면 맞는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10.1이 얻어졌다면? 그래도 맞아요? 그럼 한 11쯤 나오면?
  
  학생: 안 맞아요.
  
  그럼 어디까진 맞는 거고 어디부터는 안 맞는 거예요?
  
  학생: 어느 정도까지 정한 오차 범위를 넘어가면 신뢰하지 않는 거죠.
  
  그러면 신뢰할 수 있는 오차의 범위란 어떻게 정하나요?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범위에 드는 결과가 얻어졌다면 이론은 타당하다고 믿을 수 있는 거여요? 언제나?
  
  주어진 관측 결과를 적절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조건이 이론을 반드시 한 가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측 결과는 일반적으로 다른 이론 체계에서도 얼마든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론이 어림의 의미로도 참인지 아닌지를 그 예측이 관측 결과가 수치적으로 유사하다는 것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이론의 타당성을 판단하려면 다른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수치적 유사성은 과학적 실재론을 주장하기에 불충분하고, 그래서 과학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객관성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재 지배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관점은 이른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란 것입니다. 과학은 엄밀한 의미로 개별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주관적이지만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과학자들이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이란 바로 관측과 논리적 추론입니다. 그러므로 이론 체계를 만들 때 논리적 추론의 정합성을 유지하고 관측과 일치를 통해서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이 경우에 객관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거지요.

 
  현재 많은 사람들은 과학 이론의 객관성에 관해 실재론의 관점보다 상호주관성의 관점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문제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각자 생각을 해 보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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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동현상과 떠오름
  
  다음으로, 혼돈과 함께 중요하게 인식된 문제로 '협동현상(cooperative phenomena)'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들은 많은 수의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원자나 분자 하나하나를 보지는 못하며, 만지거나 보거나 하는 것들은 많은 수의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진 물질이지요. 그런데, 구성원끼리 서로 작용하는데 구성원이 많으면 그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구성원 전체, 곧 흔히 계(system)라 지칭하는 대상에 어떤 집단적 성질이 생겨납니다. 여러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해서 생겨난다는 뜻에서 '협동현상'이라 부르며, 한편 구성원 하나하나와는 관계없는 집단성질이 생겨나므로 이를 '떠오름(emergence)'이라고 부르지요. 요즈음 한자어로 창발(創發)이라고 쓰는데 저는 이보다 우리 토박이말을 좋아합니다.
  

 

 

 

 


  이러한 협동현상으로 대표적인 것이 물과 얼음입니다. 몇 차례 말했지만 물은 H2O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온도를 낮추면 얼어서 얼음이 되는데, 얼음도 물과 마찬가지로 H2O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을 구성하는 H2O 분자와 얼음을 구성하는 H2O 분자는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 분자들의 상호작용 때문에 어떤 때에는 물이 되고 어떤 때에는 얼음이 되는데, 그 둘은 성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액체인 물에는 빠지고 죽을 수도 있지만 고체인 얼음에는 빠질 수 없지요. 이렇게 매우 다른 것은 분자 하나하나의 성질과 관계없이 분자가 많이 모였을 때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때문에 집단성질이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H2O 분자가 한 개나 두 개, 다섯 개 정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물이냐 얼음이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H2O 분자들이지 물이나 얼음이라고 구분할 수 없습니다. 물이나 얼음이라고 말하려면 많은 수의 H2O 분자가 있어서 서로 협동을 통해서 집단성질을 떠오르게 해야 하지요.
  
  그러면 협동현상에 의한 가장 궁극적인 떠오름이 뭘까요? 저는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현상을 보이는 기본단위가 무엇인가는 어려운 문제지만 간단히 세포를 생각해 보지요. 세포는 여러 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과 흰자질(단백질; protein)을 비롯해서 지질(lipid), 탄수화물(carbohydrate), 무기물(mineral) 등 여러 가지로 구성돼 있는데, 명백하게도 그런 분자들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저 분자일 뿐인데 그런 분자들이 많이 모여서 세포라는 집단을 만들면 그들의 상호작용, 즉 협동현상을 통해서 놀라운 생명현상이 떠오릅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운 일로서, 떠오름 현상의 궁극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떠오름 현상은 우리에게 과학에서 환원론 또는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대한 반성을 요청합니다. 전체를 이해하려면 전체를 하나하나 쪼개서 각 부분을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떠오름 현상은 구성원 하나하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성원 하나하나를 아무리 연구해봤자 많은 구성원이 모였을 때 전체의 집단성질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환원주의 관점이 잘못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모든 문학 작품은 글로 쓰여 있고, 이는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글은 24개, 영어는 26개의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쪽이든 모든 글자는 결국 0과 1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0과 1의 조합을 가지면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컴퓨터는 이러한 이진법을 쓰고 있지요.
  
  도서관에 가보면 책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서가 많은 도서관이 어디인가요? 국회 도서관인지 모르겠는데, 대학 도서관 중에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이 가장 많을 겁니다. 책이 몇 권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으나 수백만 권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일본의 큰 대학 도서관에는 대체로 1천만 권이 넘지요. 10여 년 전에는 서울대학교 도서관 수준이 미국 100위 대학 도서관보다도 형편없이 뒤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훨씬 좋아진 듯합니다. 특히 예전에는 장서 수가 중요했는데 요즘은 전자 정보를 널리 쓰고 있고, 이를 많이 구축했어요.
  
  어쨌든 따지고 보면 그 많은 책들이 담고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모두 0과 1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0과 1만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환원주의입니다. 하지만 0과 1을 아무리 연구한다고 해서 그로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얻어질 수 있겠냐는 거죠. 당연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떠오름 현상이며, 이를 표현한 말로 "더 많으면 다르다(More is different)"가 유명하지요. 노벨상을 받은 앤더슨(Philip Anderson)이라는 물리학자가 한 말인데,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요. 갑이 "부자는 우리와 다르다"고 말하자, 을이 "그들은 돈이 더 많을 뿐이야"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갑이 다시 말하기를 "더 많으면 다르지", 이는 (구성원 또는 돈이) 많으면 단순히 양만 다른 것이 아니라 질도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곧 정량적인 차이가 정성적인 차이를 가져온다는 뜻으로 존재의 양상을 나타내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라는 단순한 환원이 속성이나 인식의 측면에서는 성립하지 않음을 지적하지요.
  
  복잡계 현상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로 넘어가 볼까요? 21세기 자연과학, 특히 이론물리학의 과제로 가장 중요한 것이 '복잡계(complex system)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론과학은 보편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면 보편지식의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비교적 쉽고 간단한 현상만 이론 체계를 구축해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이론물리학자들은 어려운 것은 이해할 능력이 없어서 거의 빤한 것만을 다루면서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자연에도 복잡한 현상이 많이 있고, 그래서 전통적으로 물리학이 다루지 못했던 현상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생명 현상이나 인간의 사회 현상 같은 것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그 동안 이론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여겨져 왔지요. 간단한 현상과 복잡한 현상, 어느 쪽이 자연의 더 본원적 모습인가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아무튼 20세기 후반부터 혼돈이나 협동현상, 떠오름 같은 개념이 정립되면서 많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계에서 상호작용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의 이해가 시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복잡해서 이론과학으로 다룰 수 없었던 현상까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된 겁니다.
  
  20세기까지 지배적인 자연과학적 사고의 핵심은 결정론 및 환원론이었지요. 복잡계 현상을 이해하려면 이에 대한 수정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21세기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출발해서 자연현상을 해석하자는 거지요. 이른바 결정론을 보완해서 예측 불가능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고려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환원론에 대비해서 전체론(전일론; holism)적 관점에서―환원론은 환원주의라고 쓸 수 있지만 전체론은 전체주의라고 하면 다른 뜻이 돼버립니다―자연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인데, 말하자면 나무를 보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
  
  흔히 20세기에 사고의 틀을 지배하던 시대정신을 근대주의(modernism)라고 말합니다. 영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현대주의'가 되겠지만 '근대주의'가 더 정확한 표현인 듯합니다. 대체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현대물리학에 대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탈근대주의(postmodernism)'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들어 봤죠? 이는 혼돈과 떠오름, 그리고 복잡계 현상 등의 관점에서 해석과 관련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 탈근대주의는 아직 실체가 모호해 보입니다. 저는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이와 관련해서 물리학자 소칼(Alan Soka)l이 인문학자에 대한 조롱 섞인 비판으로 촉발시킨 이른바 '지적 사기' 논쟁은 유명합니다. 양자중력(quantum gravity)이라는 난해하고 아직 불확실한 물리학의 개념을 아무렇게 따다가 철학적으로 적당히 포장한 풍자의 글을 - 제목("Transgressing the boundaries: toward a transformative hermeneutics of quantum gravity")부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 인문학 학술지에 발표하고서 곧이어 그 실상을 폭로하는 글을 다른 학술지에 발표해서 논쟁이 시작되었지요. 여기에 가담한 인문학자 중 한 사람인 라투어(Bruno Latour)의 ≪우리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었다(We Have Never Been Modern)≫라는 저서도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이 되지 않아 아쉽지만,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 논점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 저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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