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 연재하는 강준만의 글이다

승부사형 인간의 빛과 그림자



노무현과 꼭 닮은 이명박이 ‘성공’하기 위해서 피해야 할 일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시 남긴 어록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건 “승부의 세계를 떠난다”는 말이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좋은 뜻으로 해석할 경우, ‘승부’를 넓은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승부의 세계’가 아닌 게 없다. 속세를 떠난 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것도 ‘자기 자신과의 승부’가 된다. 따라서 이렇게 해석하는 건 무리다.
이 말은 정치를 ‘승부의 세계’로 본 노무현의 의식 세계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게 옳겠다. 물론 이 경우에도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자신은 정치가 ‘승부의 세계’가 아니길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피곤함을 토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이렇게 보기엔 노무현이 스스로 승부를 즐겼고 또 그가 명승부사임을 증명한 여러 사건들이 걸림돌이 된다.



△ 노무현과 이명박 모두 고생을 많이 했고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해 ‘코리안드림’을 이루었다. 지난해 12월28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만찬을 겸한 회동을 가졌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으로서 위험한 ‘인간 승리’

정치가 ‘승부의 세계’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선거야말로 ‘승부의 세계’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러나 승부사적 기질은 사람마다 다르다. ‘승부사형 인간’이 따로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승부를 즐기고 승부에 능한 사람들이 있다. 노무현이 바로 그런 경우다. ‘승부사형 인간’이라는 개념은 그 명암(明暗)이 있으므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 의미다.
아무나 원한다고 해서 ‘승부사형 인간’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재능이 있어야 한다. 재능이 없는데 무슨 승부를 할 수 있을까? 재능이 승부욕을 낳고, 승부욕이 재능을 키운다. 그러나 늘 그런 건 아니다. 재능이 승부욕을 낳지만, 승부욕이 재능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승부욕은 정치인이나 기업인들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드물게나마 지식인 중에도 탁월한 재능과 더불어 강한 승부욕을 가진 이들이 있다. 지식인의 승부는 주로 논쟁 형식으로 이뤄진다. 평소 해박한 지식, 날카로운 안목, 냉정한 엄밀성을 보여주던 지식인이라도 논쟁에만 임하면 확 달라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지식인에서 승부사로 변신해 무서울 정도의 집요함을 보이면서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고 든다. 그 열정이 거의 광기에 가까워 사람들을 질리게 한다. 이게 바로 승부욕이 재능을 망치는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노무현은 과연 어떤 유형의 승부사였을까? 그의 승부사 기질은 비상한 상황에선 비상한 힘을 발휘했지만 평소의 국정운영엔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도움이 되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때론 전혀 불필요하거나 얼마든지 피해갈 수도 있었던 갈등을 유발하고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명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노무현과 닮은 점이 많은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지난 1월31일 당선자 자격으로 연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사람들은 ‘해봐라, 그래도 안 된다’고 하는데 난 그걸 거역하며, ‘해 봐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다.” ‘인간 승리’라고 하는 점에선 박수를 보내도 좋을 아름다운 말이긴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특수성에 비춰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 모두 고생을 많이 했고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해 ‘코리안 드림’을 이루었다. 이건 개인과 가문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선 독약이 되었고 독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정운영을 자신이 이룬 코리안 드림의 복사판으로 간주하는 사고의 틀에 갇히기 때문이다.
고생은 노무현보다는 이명박이 훨씬 더 했다. 어느 정도였는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 이명박의 삶은 처절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가난과 시련의 연속이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큰 부상을 당한 형제 두 명이 병원비가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 자신 또한 온갖 궂은일을 하고 영양실조로 10대 중반에 넉 달이나 병석에 누워 있었지만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혹독하게 일을 했는지 몸이 너무 상해서 병역면제를 받을 정도였다.”

“해봤어?” “가봤어?”

이게 시사하는 게 무엇일까? 이명박이 자신의 ‘성공 신화’를 국정운영에 그대로 도입해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닐까? 노무현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고언을 할 때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386 참모들과 단신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해왔던 방식으로 일하게 내버려둬달라”며 내치곤 했다. 그 중대한 국정운영을 자신과 동지들의 ‘코리안 드림’ 수준으로 격하시킨 동시에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과도한 확신을 표현한 셈이다. 개인적인 ‘성공 신화’의 포로가 돼 있다는 점에선 이명박도 비슷하다.




△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뒤 부처별 업무보고를 전국을 돌면서 받았다. 그의 ‘현장’ 중심 ‘해봤어?’ ‘가봤어?’ 정신의 실현 모습이다. 3월14일 강원도 춘천 스톱모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참석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말을 메모하면서 듣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일은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골에 가면 비쩍 마른 노인네가 하루 종일 삽질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헬스클럽에서 근육을 키운 사람들이 시골에 가서 삽질을 해보면 한두 시간도 못해요. 큰일은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런 과도한 경험주의는 시각주의와 만난다. 이명박은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나의 전략”이라고 했다. 이런 시각주의는 박정희 개발시대엔 확실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고, ‘시각주의 정치’의 정수라 할 청계천 사업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절대적 기여를 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통령직은 ‘시각주의 정치’만으론 안 된다. 승부사 기질은 승패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제로섬게임에선 유리하지만, 민주화된 국정운영엔 제로섬게임이 아닌 게 많다. 또 대통령은 성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사안들도 많이 다뤄야 하기 때문에 ‘승부’가 아닌 ‘소통’에 능해야 한다. 이는 ‘해봐라, 된다’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명박은 ‘해봤어?’ 병에 걸려 있는 걸 어이하랴. 그는 측근들이 어떤 정책 현안에 대해 ‘어렵다’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보고를 하면 “해봤느냐”고 되묻는다. “해봤어?” 앞에서 반대란 있을 수 없다. 그 어떤 반대도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대연정’과 이명박의 ‘대운하’는 닮은꼴이다. 노무현도 사실상 ‘해봤어?’ 정신으로 대연정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참담했다. 이명박도 ‘해봤어?’ 정신으로 대운하를 시도할 것이다. 대운하는 대연정과는 달리 온 국토를 헤집어놓는 시각주의 사업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파괴적일 것이다.
‘해봤어?’의 시각주의 버전이 ‘가봤어?’다. 이명박이 ‘해봤어?’와 더불어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가봤어?’는 탁상행정과 공리공론에 비해 장점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가볼 수 있는 현장이 없는 사안마저 같은 식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정치’를 혐오하는 점에서도 똑같다. 그들은 승부 못지않게 타협을 중요시하는 ‘여의도 문화’를 극도로 싫어한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이런 특성이 정치 혐오를 넘어 정치를 저주하는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없인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즉, 이들이 지지를 받은 이유가 이들의 발목을 잡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정 욕구’ 폭로하는 “역사의 평가”

노무현과 이명박은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도 같다. 노무현은 ‘시대정신’이니 ‘당위’니 ‘원칙’이니 하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한 반면, 이명박은 자신의 무오류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이명박은 “저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과오가 있다. 저는 늘 변하고 있는데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70년대 이명박 사장, 80년대 이명박 회장, 90년대 정치인, 2000년대 서울시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사는데 70년대에 만난 사람은 70년대 얘기를, 80년대에 만난 사람은 80년대 얘기를 한다. 저에 대해 뭘 알고 싶으면 오랫동안 함께 일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큰일 난다. 나를 최근에 만난 사람에게 물어보라. 많은 언론과 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다.”
자신은 늘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착오적인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맞다. 이명박은 늘 변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자신의 ‘성공 신화’에 근거한 승부사형 인간 체질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이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또 하나의 수법은 ‘역사의 평가’를 들먹이는 선지자형 자세를 취한다는 점이다. 노무현의 경우엔 더 들먹일 필요도 없겠고, 이명박도 “지지를 못 받아도 시대를 앞서가는 게 낫다”고 했다. 이 점에선 두 사람 모두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외친 박정희를 쏙 빼닮았다. 이명박이 ‘개발주의 박정희’라면, 노무현은 ‘개혁주의 박정희’인 셈이다.
노무현은 박정희는 절대 찬성할 수 없지만 박정희가 목숨을 걸고 한강 다리를 건넜다는 건 평가한다는 말을 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는 식으로 올인을 해야 성공한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자신의 승부사형 인간 체질을 실토한 셈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노무현 어록과 이명박 어록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지지를 못 받아도 시대를 앞서가는 게 낫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했지만, 진심은 그게 아니다. 두 사람의 인정 욕구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는 걸 폭로해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대한 자기 방어 기제를 미리 가동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두 사람 모두 ‘막말’을 잘 하는 걸로 유명한데, ‘막말’을 하게 된 배경도 똑같다. 두 사람의 ‘막말’은 특히 청중의 호응이 좋아 현장 분위기가 ‘뜨끈뜨끈’해질 때 나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즉, 이들의 ‘막말’은 한결같이 열혈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잦은 막말은 모두 무슨 ‘애정 결핍’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닌지 심리학자들의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결국 문제는 두 사람의 ‘성공 신화’다. 묘한 역설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코리안 드림’은 우리 모두가 반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한국의 자랑이요, 잠재력이 아닌가. 이명박도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역설한 바 있다.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시골 소년이 노점상, 고학생, 일용노동자, 샐러리맨을 두루 거쳐 대기업 회장, 국회의원과 서울특별시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명박을 ‘진보’로 보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코리안 드림’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게 대통령으로선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니 이 어찌 역설이 아니랴.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어떻다고 하지만, 이념의 문제를 떠나 신자유주의적 요소는 두 사람의 ‘성공 신화’에 내재돼 있다.

자신의 ‘성공 신화’에 도취되는 건 결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랜 세월 지속된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본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오류를 교정할 수 없는 한국의 유별난 ‘지도자 추종주의’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코리안 드림’의 포로가 되지 않기를


이명박이 “할 수 있다” “된다는 생각으로 하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긍정의 힘 전도사’처럼 행세하는 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다. 이명박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불후의 금언으로 남겨도 좋을 법하다.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행동을 불러오고, 긍정적인 행동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나라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문제는 그 이전 단계인 ‘의제 설정’에 있다. 자신의 ‘성공 신화’에 근거한 의제 설정을 혼자서 미리 다 해놓고, 이의 제기에 “해봤어?”라고 윽박지르는 건 ‘긍정의 문화’가 아니다. 긍정이 자기 위주로만 이뤄지고, 다른 생각에 대해선 부정 일변도로 나간다면, 이걸 어찌 ‘긍정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도덕성이 박약한 사람들을 무더기로 고위 공직에 앉히면서 ‘긍정하라’고 외치는 반면, 그 반대의 목소리엔 긍정의 시늉조차 보이지 않는 걸 어찌 ‘긍정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방통행식 ‘긍정의 문화’는 오직 자신의 승리만을 생각하는 승부사 체질의 속성이다. 국정운영을 ‘승부의 세계’로 보는 한 성공은 점점 더 멀어진다. 이게 바로 국가와 기업의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명박이 부디 자신이 이룬 ‘코리안 드림’의 포로가 되지 않음으로써 ‘성공한 대통령’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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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연재물을 오래간만에 옮겨 온다. 요즘 심리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뇌와 호르몬의 상태이다. 심리는 이제 완벽하게 물질적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심리의 물리적 메카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날이 올때 그 때는 아마도 우리의 감정과 심리가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떠나는 사람은 담담한데 버림받은 사람은 왜 비탄-자조-격노 ‘비용 많이 드는 감정적 반응’을 겪는가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저는 도저히 지금 제 운명의 수레바퀴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입술은 바싹 타고 있어요. 오, 그대가 나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면! 오, 그 누가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면.”
2500년 전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가 쓴 이 시구는 깊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한 사람의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에 실연의 아픔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류학자들의 고고학적 문헌 연구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에서 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과 시베리아까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나 글귀가 발견됐다고 한다. 전 시대를 거쳐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인류는 사랑의 실패가 주는 아픔을 경험해왔다는 것이다.





△ 실연당한 사람이 그토록 항의성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봄날은 간다>의 두 남녀가 헤어지는 장면.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뒤 여자의 차를 긁는 ‘만행’을 저지른다.




뇌는 모르는 거니? 사랑의 시작과 끝을

물론 현대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연구 주제이지만, 뉴저지주립대학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수행해 현대인에게 실연이 얼마나 보편적인 현상인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93%의 대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고, 95%는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찬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대학생 90% 이상이 이미 누군가를 사랑했고 결국 사랑했던 연인을 버렸거나 그로부터 버림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35살 이하의 남녀에게 같은 설문을 해본다면,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된다.
깊은 사랑 뒤에 찾아오는 이별의 고통은 지독하다. 사포의 표현대로, 밥을 먹을 수 없고 몸이 아프며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다. 마치 심한 감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상실의 고통은 온몸 구석구석을 휩쓸고 지나간다. 미국의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이별은 우리가 지옥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리 체험하게 해준다.
“사랑이 깨졌나요? 그런데도 그 사랑을 그냥 보낼 수 없나요?” 헬렌 피셔는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스토니브룩에 위치한 뉴욕주립대학 심리학과 게시판에 붙였다. 실연당한 학생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촬영해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 공고문이 게시판에 올려지자마자 많은 학생들이 실험에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고, 2005년 실험은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들에게 퇴짜를 놓은 애인들의 사진과 낯선 사람들의 사진을 번갈아 보면서 뇌영상을 찍게 되었다.
실연의 고통을 느끼는 동안 도대체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헬렌 피셔의 실험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실연당한 자들의 뇌에선 사랑이 처음 시작됐을 때 관련되는 모든 신경회로와 신경전달물질이 다시금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이 시작되면 연인들에게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고 늘 함께 있고 싶고 갈망하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몸을 흥분 상태로 만드는 ‘노르에피네프린’, 긴장하게 만들고 스트레스 상태를 유발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 이 세 녀석이 실연당한 사람의 뇌에서 왕성하게 분비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만족감의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드는 것 역시 일치했다. 실연당한 사람의 뇌는 마치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안달이 난 ‘첫 만남의 뇌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은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대뇌 상태였던 것이다.

 

 

 

 



쾌락이 사라졌을 때, ‘좌절-공격’ 가설

흥미롭게도, 이별 뒤에 과다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은 실연당한 자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려 감기와 몸살을 선사한다. 낙심한 연인들이 고열에 시달리게 되거나 입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실연으로 앓아누운 연인들은 말 그대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 <봄날은 간다>




그러나 이것이 ‘실연당한 사람은 처음 사랑이 찾아올 때 감정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정신과 의사 토머스 루이스와 리처드 래넌에 따르면, 우리가 이별할 때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느꼈던 홍역을 치러야 하는 것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몸이 강력한 ‘항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해 포유류는 상대가 자신의 사랑과 애착을 받아주지 않으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을 통해 몸을 강한 흥분 상태로 만드는데, 낭만적 사랑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던 바로 그 화학물질들이 흠모의 열정과 이별 뒤의 두려움을 더욱 격정적으로 만들고, 이 부당한 이별에 대해 분노하고 신체적으로 항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때론 실연당한 자의 이런 항의 상태가 상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 관계를 회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지만, 그들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잦은 이별이 때론 오래된 연인에게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사랑을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이런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떠나본 뒤에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경우라고나 할까?
실연당한 사람이 그토록 항의성 분노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떠나는 연인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상대에 대한 동정심과 추억을 간직한 채 연인 관계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지만, 버림받은 사람들은 비탄과 격노 사이를 오가며 격정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포도주가 가장 독한 식초로 바뀔 수 있듯이, 깊은 사랑도 한순간 가장 지독한 혐오로 바뀔 수 있다”는 영국의 시인 존 릴리의 오래된 시구처럼 말이다.
헬렌 피셔는 저서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생각의 나무·2005)에서, 이것을 좌절-공격 가설로 설명한다. 인간은 혐오와 분노를 느낄 때 편도체와 시상하부, 뇌섬엽 피질 등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이 영역은 쾌락을 예측하고 평가하는 전전두엽 피질의 중심부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그래서 자신이 기대했던 보상이 위험한 처지에 놓이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전전두엽 피질은 편도체에 신호를 보내어 분노를 촉발시킨다.
좌절-공격 이론에 따르면, 기대했던 기쁨이나 쾌락이 실현되지 못하면 곧바로 분노의 반응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고양이의 쾌락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자극하면 고양이는 격렬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 자극을 거둬들이면 고양이는 갑자기 난폭해지는 것이다. 쾌감을 박탈할 때마다 고양이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 낭만적 사랑의 쾌감에서 한순간 거절당한 연인의 분노를 이 실험 결과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신경과학자들의 추론이다.

 

 

 

 


분노하라, 새로운 사랑을 위하여

신체적으로 봤을 때, 분노는 ‘치러야 할 비용이 많이 드는 감정적 반응’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뇌는 왜 버림받은 연인에게 그 자신이 흠모했던 사람을 쉽게 혐오하도록 만들었을까? 정신과 의사 존 볼비는 자신의 논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할 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잃어버린 연인을 되찾기 위해 자연이 만들어놓은 생물학적 설계’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많은 경우, 이별이 주는 분노를 표출할수록 연인을 되찾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한때 연인이었던 상대에 대한 매몰찬 분노는 고통스럽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마음 상태를 준비해준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별의 분노를 충분히 토해내지 않을수록, 그래서 상대에 대한 미련과 애정의 앙금이 남아 있을수록,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연인들이여, 실연의 분노를 받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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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 교수는 일반적으로 교과서적으로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역사적 현실에 접근하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신정론과 이신론
  
  일반적으로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사고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주장된다. 기독교의 종교적 독단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킴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지도적인 계몽사상가들이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독교 신학의 불합리성과 교회의 부패를 통박하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런 글들만을 읽으며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유럽인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 문제로 심각한 고뇌를 겪었다. 각 나라에서 카톨릭과 신교 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고 대량학살 사건들도 일어났다. 또 17세기에 들어와서는 30년 전쟁 같은 국제적인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공포 속에서 그들은 과연 신이란 무엇인지 기독교는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755년에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시가 거의 파괴되고 수만명의 사망자가 났다. 사람들은 이 비극적 사건과 관련해 악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신이 이런 악을 예비하였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인가 하는 것이다.
  

▲ 리스본 대지진 (1755년)으로 도시인구 23만명 중 6~1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들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이성적인 종교나 은혜로운 신의 가능성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정론(神正論)과 관련된 논의이다. 이렇게 17, 18세기의 일부 지식인들이 신의 존재와 권능에 대해 회의를 느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그들을 기독교에서 벗어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종교의 세속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는 이신론(理信論: deism)의 존재이다. 이신론은 초월적이며 계시적인 신을 거부한다. 신을 이 우주의 창조주로 인정은 하되 그 후의 운행에는 관계를 하지 않는 존재로 본다. 마치 시계를 만들어냈으나 그 후 시계의 작동에는 관계 하지 않는 시계공의 역할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신론자들은 예수의 부활 같은 것을 믿지 않았고 또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기적 같은 많은 초자연적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무신론 내지 범신론과 가까웠으므로 기독교인들이 기존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릴지도 모를 이신론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품었을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미 16세기부터 그런 두려움이 나타난다. 1654년에는 프랑스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장 필로라는 사람이, 카톨릭 개혁가인 얀센 등 7명이 프랑스의 카톨릭을 파괴하고 그것을 이신론으로 대치하기 위해 1621년에 비밀모임을 가졌다고 주장한 일도 있다. 이신론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 얀센 (Cornelius Jansenius, 1585~1638), 벨기에 루뱅 대학 교수. 얀센주의를 만들었다.

  17세기 말의 프랑스 위그노인 삐에르 벨은 그의 시대가 '자유사상가들과 이신론자로 가득 차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국교회 목사들이 이신론 운동의 존재를 점점 확신한 것 같고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이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신론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정말 그렇게 두려움을 느낄 만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것이 하나의 커다란 세력이나 운동으로 성장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일관된 이론체계를 발전시킨 것도 아니다. 사람들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
  
  이신론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은 영국의 존 톨랜드, 마튜 틴달, 앤토니 콜린스와 프랑스의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 같은 사람들이다. 이 외에 사료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몽땅 합쳐 보아야 20명이 채 안된다. 무신론자는 더 적어서 7명 정도이다. 그러니 이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파괴하는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은 별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신론의 존재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
  
▲ 돌바흐(Baron d'Holbach, 1723~1789), 유럽에서 최초로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일컫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현대 서양역사가들도 이신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이신론자들의 수가 매우 많았던 것처럼 주장한다. 이렇게 이신론이 중요하게 취급된 것은 이신론이 근대성의 지표라고 할 세속성을 강화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료에 기초하지 않은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종교적 관용
  
  계몽사상가들은 종교적 관용을 부르짖었고 그래서 서양에서 종교의 자유를 가져오는 데 크게 공헌한 것으로 주장된다. 1762년에 '관용론'을 써서 상당한 영향을 미친 볼테르 같은 사람이 특히 부각되는 이유이다.
  
  볼테르가 그 글을 쓴 것은 칼라 사건 때문이다. 1761년에 프랑스 남부 툴루스의 위그노파인 칼라라는 포목상인의 집에서 맏아들이 목을 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아마 자살을 한 것 같으나 당시에는 아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아버지가 그것을 막기 위해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때는 위그노가 탄압을 받을 때이므로 칼라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정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그는 사지가 찢긴 다음 시체까지 불태워지는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볼테르는 이 사건을 가족 사이의 유대까지 파괴할 정도로 심각한 카톨릭의 종교적 아집의 결과로 보았다. 그래서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관용론'을 쓴 것이다. 정부는 그 팜플렛을 배포하는 사람들을 탄압했으나 결국 1787년에 관용칙령을 통해 위그노파에게 일부 시민적 권리를 허용했다. 그래서 볼테르가 신앙의 자유, 나아가 양심의 자유를 가져온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 관용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한편에서 종교개혁과 그에 따른 참혹한 종교전쟁에 대한 반성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사회적 여러 문제들과 얽혀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명예혁명 후인 1689년에 이미 상당한 정도로 종교적 관용을 허용했다. 프러시아에서도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한 1740년에 상당한 정도의 종교적 관용을 허용했다. 특히 프러시아 같이 종교적 분열이 심한 나라에서는 국가통합을 위해 반드시 종교적 관용이 필요했다. 왕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Wilhelm II, 1744~1797)

  또 경제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추방된 신교도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려고 종교적 관용을 허용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관용의 실천은 단순한 계몽사상가들의 업적이 아니다. 군주들의 정치, 사회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볼테르는 다른 기독교 종파에 대해서는 관용을 주장했으나 유대교에 대해서는 전연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계몽사상기의 가장 열렬한 반유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관용의 사도'라는 그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계몽시대의 종교성
  
  그러면 18세기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았을까.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종교를 떠나서 완전히 세속적인 삶을 살았을까. 계몽사상 시기를 이성 대 종교의 대립으로 보는 생각은 계몽사상이 반교회주의의 기초 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이성에 대한 호소를 폭 넓게 함으로써 신앙의 수준이 떨어지고 경건성도 약화되었다고 보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오늘날 잘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 시기에는 일부 세속화 경향과 함께 그 반대 경향도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대부분의 계몽사상가들이 기독교를 신봉했으며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다. 일부 무신론자나 이신론자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 세속화를 이야기하려면 정부나 사회의 기준이 세속화 되어야 하나 별로 그렇지 않았다. 신앙의 수준도 과거보다 별로 낮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18세기에 한 편에서 새로운 종교적 열정이 불붙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발전한 카톨릭의 분파인 얀센주의, 독일에서 발전한 경건주의, 잉글랜드에서 발전한 메소디즘(감리교파)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모두 새롭게 초월적 신앙을 강조하는 종파들이다. 특히 독일의 경건주의는 17세기의 30년 전쟁이 가져다 준 참화를 신의 벌로 생각하고 이를 회개하려는 가운데 발전한 것이다.
  
  또 일반 민중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상당 부분 무지몽매함과 미신에 묶여 살았다. 18세기 초까지도 마녀사냥이 행해지는 곳이 있었고 교회에서도 공공연하게 악마추방을 위해 엑조시즘(악마추방 시술)을 행했다. 이 시대의 유럽 사회는 결코 사람들이 종교성이나 미신을 떠나 이성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생각한 시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얼마 안 되는 계몽사상가들이 마치 세속화에 큰 역할을 하여 일거에 세상이 바뀐 것처럼 생각해서 안 될 것은 당연하다. 물론 18세기에 세속화를 위한 모든 주된 논의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세속화는 그 후 오랜 시간이 걸린 느린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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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영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하는 글이다. 과학을 공부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수학 공식만 나오면 젬병이다. 이런 ..... 중학교 때 수학을 매우 잘했는데 고등학교 때 껄렁껄렁 인생이 어쩝네 하며 철학책을 들척이다가 미적분을 공부하는 순간 .... 아차 했다. 이해 불가능 .... 그 후론 수학이 내 인생에서 멀어졌다는 ..... 열심히 해 둘껄 ...... 이 세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인데 ..

 

 전자기이론
  
  한편 전기 및 자기 현상을 다루는 분야가 전자기학으로 정립이 됐는데 그 효시는 쿨롱(Charles-Augustin de Coulomb)입니다. 앞 강의에서 언급했듯이 쿨롱에서 출발해서 앙페르(André-Marie Ampère)와 패러데이가 전자기학의 확립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전기 및 자기 현상은 마당(field) 개념을 써서, 전기마당(electric field) 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주 편리합니다. 마당이라는 개념이 꼭 전자기 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여러분은 고등학교 때 마당 대신에 '장'이라고 배웠죠? 전기장, 자기장 등으로요. 마당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가 어떻게 힘을 주고받을까요? 종래 방식으로는 한 물체가 다른 물체에 직접 힘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먼 거리 작용(action-at-a-distance)이라고 합니다. 서로 떨어져 있어도 직접 힘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끼리 과연 어떻게 직접 힘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예컨대 해와 북극성도 서로 중력을 주고받을 겁니다. 그런데 북극성과 해는 1000광년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빛이 1000년을 가야 할 만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데 힘을 어떻게 직접 주고받는지 납득하기 어렵지요. 그래서 다르게 해석해 보자는 것입니다.
  
  힘을 직접 주고받는 대신에 물체는 자기 주위 공간에 마당을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마당에 놓인 다른 물체는 마당에 의해서 힘을 받는다고 생각하지요. 이렇게 하면 멀리 떨어진 데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놓인 자리의 마당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이른바 한곳성(국소성; locality)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전기력의 예를 들지요. 전하, 곧 전기를 띤 알갱이가 둘 있을 때 전기력을 직접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각 전하가 각각 자기 주위에 전기마당을 만든다고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한 전하가 만든 전기마당에 다른 전하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하는 자기가 놓인 자리의 전기마당 - 다른 전하가 만든 - 에 의해 힘을 받는 것이지요. 서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두 전하가 힘을 직접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전기마당에 의해 간접적으로 주고받는 거지요.
  
  전기력이 힘이니까 벡터이듯이 전기마당도 벡터로 주어지며, 단위전하, 곧 1 C의 전하가 받는 전기력으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전기마당 인 지점에 놓인 전하 q가 받는 전기력은 로 주어집니다. 이 전기마당이 만일 r 떨어진 지점에 있는 다른 전하 Q 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크기는 로 주어지므로 전하 q가 받는 전기력은 , 곧 쿨롱의 법칙이 됩니다.
  
  중력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게(weight)란 지구로부터 받는 중력의 크기를 가리키는데, 이를 지구가 직접 나를 당겨서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지구의 중력마당에 내가 있기 때문에 그 중력마당에 의해서 힘을 받는다고 해석하자는 것입니다. 지구의 질량을 M, 반지름을 R라 하면 지표면에서 지구가 만드는 중력마당은 로 주어집니다. 따라서 질량 m인 물체의 무게, 곧 중력의 크기는 가 되어서 뉴턴의 중력 법칙과 같습니다. 물체가 받는 힘이 W이므로 운동 법칙을 적용하면 물체의 가속도는 가 되지요. 이는 질량 등에 상관없이 지상의 모든 물체가 지구 중력에 의해 가지게 되는 가속도로서 중력가속도라 부르며, 구체적인 값을 넣으면 널리 알려진 대로 = 9.8 m/s2 이 됩니다.
  
  마당이라는 개념은 흥미롭게 발전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대체로 물질 사이의 상호작용을 편리하게 기술하는 보조적인 관점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물리적인 실체로서 개념이 확장되었지요. 고등학교에서 물리를 배운 학생은 운동량(momentum)을 기억하지요? 일반적으로 운동량은 , 곧 질량과 속도의 곱으로 주어집니다. 따라서 운동량이란 물질, 곧 질량을 지닌 알갱이가 가지는 양이라고 생각하는데, 놀랍게도 마당도 에너지와 함께 운동량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물질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자세한 얘기를 여기서 하긴 어렵지만, 마당이란 물질과 에너지나 운동량을 주고받을 수 있고 심지어 물질을 대체해서 자연현상의 실체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마당 개념은 역시 전자기 현상의 기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기마당과 자기마당에 대해 들어 봤지요? 앞에서 지적했지만 전기와 자기는 본질적으로 한 가지 현상이라 할 수 있으므로, 합쳐서 '전자기'라고 부르지요. 일반적으로 전기마당이 변화하면 자기마당을 만들어냅니다. 그 반대 과정도 성립하지요. 결과적으로 진동하는 전기마당과 자기마당은 서로 상대방을 변화시키면서 공간을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마치 소리가 퍼져나가듯이. 이를 전자기파라고 하지요.
  
  빛이 바로 이러한 전자기파인데 에돌이와 간섭이라는 파동의 특징적인 성질을 나타냄은 이미 논의하였습니다. 호이겐스와 영, 프레넬(Augustin-Jean Fresnel) 등에 의해서 빛이 파동이라는 사실이 확립되었지요. 그러면 어떤 파동이냐? 전기마당과 자기마당이 진동을 하는 전자기파라는 것입니다. 이를 이론적으로 보여서 전자기이론을 완성한 사람이 여러 번 언급한 맥스웰입니다.
  
  전자기이론은 이른바 맥스웰의 방정식(Maxwell's equations)이라고 부르는 네 가지 식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기마당 , 자기마당 가 만족하는 관계식들로 전문적인 내용이라 여기서 다룰 필요는 없지만 적분 꼴로 한번 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적분 기호에 동그라미가 겹쳐있는 것은 한 바퀴 돌려서 전체에 대해 적분하라는 뜻입니다. 주어진 부피의 겉면 넓이 , 또는 주어진 넓이의 둘레 길이 를 따라 한 바퀴 돌려서 적분하라는 거죠. 미분한 도함수를 로 쓰지 않고 로 쓴 것은 가 시간뿐 아니라 공간(x, y, z)에도 의존하는데 시간으로만 미분하라는 뜻입니다. 편미분(partial differentiation)이라 부르지요.
  
  첫 식은 임의의 부피 겉면에서 전기마당을 모두 합치면 그 부피가 품고 있는 전기량과 같다는 뜻으로 가우스의 법칙(Gauss' law)이라 부르는데, 사실은 쿨롱의 법칙을 모양만 바꾸어 쓴 것입니다. 은 유전율(permittivity)이라 부르는 상수인데 쿨롱상수와 의 관계가 있지요.
  
  둘째 식은 자기에 대한 가우스의 법칙이라 하는데 전기량에 대응하는 자기량이란 없다, 곧 N극이나 S극이 혼자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모든 자석은 N극과 S극이 같이 있지요. (N극이나 S극이 혼자 있는 자기홀극(magnetic monopole)이 과연 있는가는 현대물리학의 또 다른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셋째 식은 전기마당을 임의의 면의 둘레를 따라 합치면 그 면에서 자기마당 의 시간적 변화율을 합친 것과 같다는 뜻인데, 자기마당의 시간적 변화가 전기마당을 만들어낸다는 바로 패러데이의 전자기유도 법칙(Faraday's law of induction)이지요.
  
  마지막 식은 오른쪽에서 첫 항만 생각하면 전류 가 자기마당을 만든다는 앙페르의 법칙(Ampère's law)입니다. 암페어의 법칙이라고 배웠나요? 프랑스 사람이라서 앙페르라고 불러야 하지만 요즘은 미국의 시대니까 영어로 읽어서 암페어라고 부르지요. 전류란 전하의 이동으로서 단위시간, 곧 1초에 지나가는 전기량으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단위는 C/s 인데 이를 이 사람의 기념으로 암페어(A)라고 하지요. 는 투자율(permeability)이라 부르는 상수입니다. 오른쪽의 둘째 항은 전자기유도 법칙을 거꾸로 해서 전기마당의 시간적 변화가 자기마당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은 것이지요. 셋째 식과 대칭을 고려해서 추가한 것인데 사실 맥스웰은 다들 알고 있었던 관계식들을 정리하고, 이것 하나를 더 생각한 것뿐입니다.
  

▲ 제임스 클럭 맥스웰 (James Clerk Maxwell)


  이 네 식을 맥스웰의 방정식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이들을 적분 형태 대신에 미분 형태로 표현합니다. 여러분들이 알 필요는 없지만 물리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식이므로 참고로 써 보지요.
  


  거꾸로 된 삼각형기호는 물매연산자(gradient operator)로서 x, y, z에 대한 미분을 각 성분으로 가진 벡터라고 생각하면 되고, 식들의 왼쪽은 전기마당이나 자기마당 벡터와 점곱(dot product) 및 가위곱(cross product)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각각 발산(divergence)과 회오리(curl)라고 부릅니다. 오른쪽에서 는 전하밀도, 곧 단위부피 당 전기량이고 는 전류밀도, 곧 단위넓이 당 전류입니다. (전하가 움직이는 방향을 고려해서 벡터로 취급하지요.) 이 식들을 적분하면 정확하게 앞서 보았던 적분 형태의 방정식들이 얻어집니다.
  
  이 네 가지 맥스웰의 방정식을 연립해서 풀면 전기마당과 자기마당이 서로 어울려서 자기마당의 변화가 전기마당을 만들고 그것이 변화하면서 자기마당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 이 자기마당이 변화하면서 다시 전기마당을 만들어내지요. 이렇게 서로 변화하면서 얽혀서 퍼져나가게 되는데 이것이 전자기파이고 바로 빛입니다. 결국 자동으로 빛이 나오는 거지요. 여러분 중에 기독교 신자가 있을 텐데 구약 창세기에 보면 태초에 빛이 있었다고 하죠. 하느님이 "'빛이 있어라"고 말한 것은 사실은 이 맥스웰의 방정식을 쓴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빛이 생겨나야 되지요.
  
  맥스웰의 방정식을 풀면 빛의 빠르기 는 유전율 및 투자율과 관련되어 로 주어집니다. 진공에서의 값을 넣으면 = 3×108 m/s, 곧 빛은 1초에 30만 km를 나간다는 사실을 얻게 되지요. [실제로는 의 값을 주어진 것으로 정의하고 위의 식으로부터값을 정합니다.] 이러한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은 뉴턴의 고전역학과 비교할 만한 업적이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고전물리학의 끝인 셈입니다. 고전물리학의 핵심내용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고전)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고전)전자기학입니다. 뉴턴에 의해서 운동을 기술하는 데 완벽하게 성공했고 맥스웰에 의해 전자기 현상 및 빛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을 모두 이해했으니 이제 물리학은 완성되었고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고전)물리학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에 들어오면서 고전물리학 자체 모순에 의한 심각한 문제가 알려지게 됐습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역사적으로 당시 시대정신하고 묘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이른바 쿤의 관점에 따르면, 변칙 또는 비정상성이 급격하게 쌓여 결국 패러다임의 전환, 과학혁명이 필요하게 됐습니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에 과학혁명이 시작해서 유명한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는 다음 시간에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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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라고 해서 사랑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정재승의 연재물을 오랜만에 싣는다. 젊었을 적에는 성욕이 모든 활동의 근원이라고 믿는 편이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왠지 ...... 내가 늙었다는 증거일까. 늙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예술에 대한 학문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섹스가 없다면 예술이 있었을까



음악, 소설뿐이겠는가, 과학자들도 성적으로 왕성한 시기에 가장 정력적인 활동 펼쳐

▣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학과 예술, 과학을 잉태하는 원동력은 섹스다?

“그는 똑똑하고 달콤하고 재미있고 섹스를 잘하는 남자였어요, 호호.” 어느 인터뷰에서 백남준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가 ‘인간 백남준은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질문에 한 대답이다. 만약 이 말을 덴마크의 과학 저널리스트 토르 뇌레트라네르스가 들었다면, 그는 ‘남성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며 그것이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라고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성적 억압을 투영하는 게 예술? 오, 노!



△ 사랑이 없다면 예술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어떤 과학 저널리스트는 예술가들이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는 ‘섹스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딜리아니가 부인인 잔을 그린 <어깨를 드러낸 잔>.






그는 자신의 저서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에서 예술가들이 창작에 몰두하는 이유를 ‘섹스를 얻기 위한 노력’이라고 단언한다. 1997년 영국의 전자음악가이자 음악이론가인 브라이언 이노가 “예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창작하지 않는 인간 무리가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예술을 창작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러한 충동의 본성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자, 토르 뇌레트라네르스는 “인간은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남을 감동시키는 방법을 통해 이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자연의 진화는 인간에게 사치스러울 만큼 거대한 뇌를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랑이 없다면 예술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그림들과 서점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소설들. 이 예술작품들의 대부분은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예찬하고, 사랑에 절망한다. 극장과 전시장, 콘서트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연인들이며(여기에는 결혼한 부부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음악회나 전시회의 주된 고객이 미혼의 커플들이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에는 돈과 시간을 겸비한 노부부들이 더 많다), 흥미롭게도 예술작품을 왕성하게 창작하는 예술가들 역시 사랑과 섹스가 아니었다면 그처럼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섹스 에너지가 예술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100년 전,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승화’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예술과 과학에 몰두하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창조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성적 에너지가 왕성한 데 비해 그것을 발산하고 표현하는 것이 금지되었거나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섹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분의 에너지를 예술을 창조하고 과학연구를 수행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가 자신의 책 <메이팅 마인드>에서 했던 주장은 프로이트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그는 인간이 억압된 성적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해 예술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선택받고 섹스를 즐기기 위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유전자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그는 대부분의 문화적 표현은 성선택이 당면 과제인 시기에 가장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세상의 모든 화가와 재즈 연주자, 소설가들은 배우자 선택이 코앞에 닥친 2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초반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걸작을 남긴다는 것이다. 20대 후반에 가장 활력이 넘치고 놀라운 재주를 보이는 것은 그것이 ‘섹스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밀러가 덧붙인 유머가 걸작이다. 밀러는 대중이 볼 수 있는 모든 공연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공연자는 성적으로 가장 왕성한 시기에 있는 젊은 남성입니다.’

평생 연구하려면 결혼하지 마라?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여 섹스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고 소설을 쓴다는 그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예술가는 많지 않겠지만, 자신의 창작 에너지가 섹스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이론의 문제는 여성의 창작열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술적인 창조성이 여성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주장에는 진화심리학자들도 동의하기 어려울 텐데, 그렇다면 여성들이 걸작을 남길 수 있는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사회학과의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는 밀러의 이같은 주장이 과학자들의 연구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280명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는 그들이 가장 왕성한 연구활동을 보인 시기가 언제인지 분석했다. 그 결과 예상대로 성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시기에 가장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진화와 인간 행동>이란 저널에 발표된 이 논문의 결과를 여기까지만 본다면, 성적으로 가장 활동적인 시기가 지적으로도 가장 왕성한 시기이며 또한 이 시기는 ‘박사후 연구원과 조교수’ 시기와 맞물려 종신재직권을 얻기 위해 가장 열심히 연구를 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니 섹스나 결혼과 결부시키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더욱 놀랍게도 미혼인 경우에는 노년기까지 생산적인 생활을 유지했으나 기혼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수록 연구성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말로 결혼을 한 뒤에는 더 이상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이유가 없어 과학자들이 굳이 열심히 연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첨언하자면, 사실 가나자와 사토시 박사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위대한 연구는 대부분 선행 연구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20세기 후반 들어 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노벨상을 탄 업적을 낸 연구가 언제 시작되었는가를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흔히 20대 젊은 나이에 이루어졌을 거라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36~38살에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니 이미 결혼을 한 과학자들, 너무 상심 마시라.

가난한 예술가와 센스 없는 부자 중 고른다면

한편, 남성 예술가들의 뛰어난 창조성이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로스앤젤레스 소재)의 마티 해즐턴 박사는 사랑에 대한 진화론적 접근으로 유명한 심리학자인데, 제프리 밀러와 함께 ‘창조성의 구애능력이론’을 검증한 바 있다. 이들은 젊은 여성들에게 다양한 남성상에 대한 설명을 들려준 뒤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짝을 고르도록 했다. 개중에는 창조적인 예술가적 기질이 있지만 가난한 남자가 있는가 하면, 돈은 많지만 예술적인 재능은 보잘것없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성들은 돈이 아닌 예술가적 재능에서 매력을 찾았다는 것이 그들의 연구 결과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토르 뇌레트라네르스가 든 비틀스의 예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비틀스 초기 공연 시절의 전기작가였던 마크 헤르츠가드의 글을 이렇게 전했다. “비틀스는 하룻밤에 예닐곱 명의 여자를 돌려가며 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존이 ‘다음!’이라고 외치면 각 멤버는 명령에 따라 파트너를 바꾸었다.” 우리의 위대한 비틀스가 그처럼 영감 어린 곡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 진정 이런 이유 때문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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